석철주展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
글 | 박종철 (갤러리베아르떼 수서큐레이터, 미술평론)
“초봄에 꽃이 필때 등불을 켜 놓고 책상위에 난분을 올려 놓으면 이파리의 그림자가 벽에 비치어 아른거리는 것이 즐길만 하고 글을 읽을때 졸음을 쫓을 만하다.” 강희안의 ‘양화소록(姜希顔, 養花小錄)’中에서 작가 석철주가 좋아하는 이 문구는 그의 미학적 지향점이 어디인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의 나이 16세 때 부친의 권유로 이웃에 살던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화백으로부터 전통적인 한국화 기법을 사사받기 시작한 석철주는 약관 20세에 국전에 입선, 이후 7회 입선하고, 1979년 부터 중앙일보 미술대전에서 연3회 특선하였으며 1990년 제9회 미술기자상, 1997년 한국미술작가상을 수상하였다.
박연폭포 _ 캔바스. 먹. 아크릴릭. 263X111cm. 2009
그는 최소한 5번 이상 밑칠을 한 캔버스에 바탕색을 올린다음 그 색이 마른 후, 흰색을 가볍게 칠한다. 그리고 그 흰 색이 마르기전에 에어 스프레이(Air Spray:압축공기를 이용해서 스프레이 건으로 염료를 살포하는 기법)나 붓질을 통해 바탕의 색상이 배어 나오도록 하여, 물기가 촉촉하게 머금은 상태의 제작과정을 선호하며 작품을 완성해간다. 또, 한지를 배접한 캔버스에 검정이나 흰색으로 바탕칠을 하고 이 과정이 마르기 전에 맹물을 적신 붓으로 형상을 그리고 마른 붓으로 여러번 붓질을 함으로서 아련한 흑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한다.
자연의기억3 _ 캔바스, 먹, 아크릴릭, 180X180cm. 2009
이러한 기법들은 그의 화두이기도 한 전통(선비정신, 한지, 먹)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기법을 상징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생활 일기’라는 큰 테마 아래 신몽유도원도(新夢遊挑源圖: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거닌 꿈을 꾸고 난뒤 꿈속의 아름다운 도원을 현실로 되 살리기 위해 안견에게 그리게 했다는 몽유도원도를 작가자신이 꿈, 구름, 산의 형상으로 환원시켜낸 작품), 흔들림, 달항아리, 들꽃이야기, 유기농등의 부제를 달아 시리즈화 해 갔으며 최근에는 ‘자연의 기억’ ‘매화초록도’ ‘매화서옥도’등을 통해서도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인 조형성의 병립으로 그 조화의 미학에 매진하고 있다.
자연의 기억4 _ 캔바스, 먹, 아크릴릭. 130X130cm. 2009
또, 전통적인 오방색에 무채색을 가미하고, 핑크와 흰색, 옥빛과흰색, 보라와 암록, 그리고 노랑등을 써서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내고 환상적인 정경을 창출해낸다. 또한 화면 전체에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색상을 올리고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기 위해 아교성분의 보조제를 사용하는가 하면 작가 스스로가 대나무를 잘라 만든 다양한 죽필들, 롤러, 스키저등을 이용하여 스크렛치(Screech)나 롤러링(Rollering)을 하기도한다. 그리고 그는 한지와 캔버스, 염료가 갖고있는 물성의특징인, 그 삼투압 작용과 흡습성을 이용하여 ‘스밈과 번짐’ ‘우연성(Automatism)' 등을 구사한다. 그 질박하고 습기찬 화면에 날카로운 죽필을 이용하는 스크렛치 기법은 대조의 조형성에서 오는 시각적인 쾌감을 가져오며 마티에르(Matiere)의 향연을 불러 오기도 한다.
자연의 기억1 _ 캔바스, 먹, 아크릴릭. 130X130cm. 2009
그러한 사유로 전통의 정신과 현대적인 미학의 테크놀로지가 결합되고 오리엔탈리즘의 현대적인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동서를 아우르는 공통분모의 미학이 탄생되는 것이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산의 형상들, 계곡, 봉우리, 그리고 기암괴석들은 구름무리 속에서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몽환적인 신비경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미지의 공간과 대지위의 이름모를 풀꽃들은 미풍만을 허용할 것 같은 적막의 서정성을 가져다준다. 석철주는 겸재의 창호에 비친 그림자 같은 사생 산수화를 마음속 풍경으로 담아두되 보수적인 전통화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조형성과 시각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의 “식물 이미지” “옹기 시리즈” “들꽃 이야기”등의 모든 작품들에서 그러한 요소들을 엿볼 수 있다. 또 화분에 담긴 식물의 형상화인 흔들림 씨리즈, 통통한 무를 소재로 하는 신작의 유기농 씨리즈, 청화백자 씨리즈등은 재료와기법의 다양성을 감지할 수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가 한국화가, 혹은 동양화가로만 불리워 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5. 청화백자 _ 판지, 먹, 아크릴릭. 98X59cm. 2009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먹, 아크릴, 혼합재료로 제작되며 다양한 기법으로 인한 결과로서 동,서 미학의 추출물을 그 사의(寫意)로 하는 모더니즘(Modernism)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6년 5월, 장흥의 가나아트 아뜰리에에 입주하여 창작 활동을 해왔으며 2007년, KIAF전 에서는 작품이 솔드 아웃(sold-out)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의 영은미술관 입주작가 시절에는 1년 반 동안 100호이상 크기, 100여점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실성과 열정에서 기인 되어진 결과로 보여진다. 첨단의 기계문명과 엄청난 정보, 그리고 물량의 이 시대에 느림의 미학과 자연의 숭고함을 알게 해 주는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사뭇 시사해주는 것들이 많다. 지금의 그의 작업이 한동안 계속되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철학과 그 사유로 인하여 현실참여적이고 시사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작업으로 전환이 이루어질런지는 그의 미학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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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古齋 (Gallery Hakgojae)
1988년 서울 인사동에서 개관된 학고재(대표:우찬규)가 20주년을 맞이한 2008년 소격동으로 증축 이전하였으며, 개관 20주년을 맞아 프랑스 생 테티엔느 미술관장인 로랑 헤기(Lorand Hegyi)가 ‘Sensitive Systems’라는 명제하에 창조의 근원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우환, 로만 오팔카(Roman Opalka),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 권터 위커(Gunther Uecker)등이 참여하여 거장들의 창작정신을 보여주었다. “19세기 문인들의 서화” “구한말의 그림” “조선후기 그림”의 “기(氣) 와 세(勢)” 등의 전통미술의 역사성과 새로운 가치를 생각하게 하였으며 언론의 주목과 애호가의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또 한국의 현대 작가전은 강경구, 강요배, 강익중, 문봉선, 민정기, 석철주, 신학철, 오윤, 윤석남, 이종구등의 열정적인 작가들을 통해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해외작가들을 적극적으로 국내에 소개, 미국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작가들로 구성한 “풍경으로서의 미니멀리즘” 전에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로버트 만 골드 (Robert Man Gold), 리처드 터틀(Richard Tuttle),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과 로버트 라이먼 (Robert Ryman)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진 하이시타인(Jene Highstein), 팀 롤리(Tim Louly), 쥴리앙 오피(Julian Opie),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 Martin),이안 다벤 포트(Ian Daven Port)등 세계 미술계의 걸출한 작가들이 학고재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어 애호가와 만났다.
이외에 중국의 자 유푸(Jia Youfu), 천 원지(Chen Wenji), 슝 위(Xiong Yu), 왕 펑화(Wang Fenghua)등의 역량있는 작가들과도 손을 잡았으며, 또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장 피엘 레이노(Jean Pierre Raynaud), 류 샤오동(Liu Xiaodong)의 작품도 선 보일 계획이다. 한편 스페인의 ARCO, 중국의 CIGE, SHContemporary, 미국의 ACAF, ART Chicago 등의 아트페어에 적극 참여 함으로서 해외미술교류와 한국현대미술의 위상확립에도 주력하고있다.
(종로구 소격동/02)720-1524/ info@hakgojae.com /www.hakgoj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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