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패전(동소산머슴새의 제4부 혈투편) / 문병란
<빈지쪽 벽돌담에 찬바람 소슬하고
건넛산 두견조는 불여귀로 밤새우고
새 절 곁에 희석정는 옥수심회 도와낸다
정수의 부는 바람 원한을 아뢰는 듯
분국의 맺힌 이슬 의병눈물 아니런가
국운이 불행키로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비분한 창의가(倡義歌) 한 대목
생각하면 원통한 일이
이 하늘 아래 어디 또 있겠는가?
전투가 끝날 때마다
새로이 시작할 때마다
피를 토하고 싶은 분통함이
젊은 사나이들의 가슴에 끓어 올랐다
원수여, 너의 간을 꺼내어 씹지 않고는
우리의 이 한이 풀리지 않으리라
산비탈 가시숲에 돌베게 잠을 자며
칼날을 만지며 잠 못드는 청춘들
꽃 같은 아내와
도토리 같은 새끼들
편한 안방 이부자리 놔두고
맨바닥 칡덤불 위 새우잠이 왜인가?
울분한 심정이 극하면
약오른 주먹이 근질근질
쪽바리 사냥이라도 나가야 견딜 만
그 때 만약 일병 잡히기만 한다면
누가껍딱 벗기고 간 꺼내고
눈깔 파내는 데 주저할까?
그리하여 대원 전원의 동의를 얻어
이번엔 주재소 습격을 감행한다
1908년 5월 15일
송광면 대곡리 주재소 습격
기습 매복 유격전보다 전력이 많이 소모된다
한시간 동안의 총격전
집안에 쳐박혀 응사하는
쪽바리 쥐새끼들 다 잡기는 어려웠다
섬멸은 어려워
전선을 겨두어 퇴각
서봉에가서 전진을 털었다
소나무와 작목림 아사리 밭으로 무성한
서봉 수림 깊숙이 숨어
휴식을 취하기에는 알맞는 산이었다
당시 의병의 구성은
정예부대로만된 것이 아니라
8도의 오만 잡놈
떠돌이 패들도 끼어 있어
반드시 우국 충정과
칼날 같은 매운 지조인은 아니었다
3개월째 접어드는 산속의 생활
어느새 몇 명의 도망병
일일이 동지를 감시할 수 없어
야음을 타고 민가로 돌아가는 것
굳이 만류할 수 없었다
그날 밤도 누군가 어둠을 타고
대오를 빠져나가는 그림자 두 서넛
언제나 말썽은 거기서 온다
의병에서 민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 가정으로 귀가함을 막지 않는데
의병의 휴식처를 밀고할 줄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배신자는 있기 마련인가?
새벽녘 동틀 무렵 ,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안대장 산 아래를 살펴보니, 아뿔싸!
기병과 순사대를 투입
까맣게 밀려오고 있지 않는가?
비오듯 날아오는 일병의 적탄들
뽕뽕 소리를 내며 이마 위를 스쳐
파아란 신록을 갈기갈기 찟어 발긴다
일부는 응사하고 일부는 퇴각하고
서봉을 빠져나가 본진으로 기도록 명령한다
더욱 거세어지는 총소리
규홍은 뽀얀 시야 속에서
폰쇠가 가는 것을 보았다
본능적으로 폰쇠를 향하여 몸을 굴린 다음
“폰쇠야, 죽으면 안된다. 너는 처자가 있는
몸이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뒤쪽으로 피해라“
그 다급한 속에서도 안대장을 알아보고
손을 덥석 잡으며,
“나는 네 곁에 있는 것이 제일 기쁘다”
큰 소리로 외치며
“너와 나는 같이 켰고 같이 철이 들었고
같이 의병이 되었으니 같이 죽어야 되지 않겠냐“
연방 총을 쏴 응사하여 싱글벙글 한다
그 때 더욱 억세게 총탄이 날아오며
노송가지가 우지직끈 , 유탄 한 방이
폰쇠의 다리에 맞았다, 붉은 피가 흐른다
쑥잎을 으개어 바르고 광목 붕대로 감는다
귷롱이 날쌔게 그를 부추켜 좌봉 산허리
서봉 뒷면으로 퇴각 혈로를 뚫는다
꾸지뽕 , 맹감덩굴 온갖 잡목의 줄기들이
마구 때리고 할퀴고 감기고 넘어지고
입에서나 코에서고 찝찝한 피내음
거기다 부추긴 폰쇠의 끙긍거리는 신음소리
눈부시게 빛나는 5월 의 아침 햇살이
총소리로 갈기갈기 찢기며
고요한 산속이 흡사
금가루를 뿌린 듯 어지럽게 출렁이고
화약내 피비린내, 거기다 꽃내음 까지 뒤섞여
참혹한 격전 뒤의 살벌함이 극에 달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서봉 중턱을 탈출한 사람은
안대장을 중심으로 주변 맴버 등 20여명
나이든 분 어린 병사들을 대부분 잃었다
폰쇠의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총상이라 재빨리 응급처지를 했다
본진 진산으로 가기 전에
전사한 의병의 시체를 묻고자
다시 밤되기를 기다려 서봉으로 들어가
시신을 수습 , 고축문을 외워 명복을 빌었다
부하를 잃은 대장은 할 말이 없다
비방과 비판이 가해 왔으나
묵묵히 받아 들이고
다시 부대 재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렇다! 누가 전쟁에 지고 싶어 지는 가?
한반 패배는 병가상사라 했지 않는가?
자식과 동생을 잃은 사람들
원망을 바꾸어 규홍에 협력
동생 뒤를 따른다는 형
자식의 뒤를 따른다는 아버지
남편의 뒤를 따른다는 아녀자까지
의로운 군민들의 협력이
다시 담살이 부대를 회복할 수 있었다
폰쇠는 부상이라 하산하라 권했으나
이미 당국에 마을의 형편이 알려진 터
숨어서 잽혀 죽느니 싸우다 죽겠다 마다하여
불편한 몸으로 규홍을 꼭 따랐다
열 살 때 들판에서 맺은
깔담살이 그 우정 변함없이
지금은 하나의 깊은 동지애
생사를 초월한 곳에서
그들은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몸과 같았다
폰쇠, 꽃싸움에 졌고
언제나 그에게 규홍은 대장격
지금도 그는 당당한 대장이다
그러나, 군율보다 깊은 우정
공사가 아닐 땐 언제나 너냐 나냐
내동리 들판 깔베던 깽변길의
깔담살이 꾀복쟁이 치구 바로 그것이었다
부상당한 폰쇠의 상처에 대한
안대장의 깊은 심려, 어찌나 극진하고 꼼꼼한지
어수룩한 약이었지만 이미 완쾌되고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자라난 그 정이 그토록 깊을까?
전야의 우정이 아름다움이여 전우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