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원예농협 거점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서 작업자들이 설 상품으로 내놓을 배를 선별하고 있다.
설 대목 농산물시장 점검 <상>사과·배
사과, 생육기 가뭄·우박 피해로 특품 적으나 대과는 많아
일반상품 값 하락할 듯…유통업계, 저렴한 선물세트 내놔
배, 개화기·비대기 기상호조로 생산량 늘자 저장량도 급증
홍수출하로 낮은 시세…특품 외엔 대목장 전후로 출하해야
설(2월16일)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목을 잡으려는 산지와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최근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농업계는 지난 두차례의 명절과 달리 이번 설에는 국산 농축산물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통업계도 설 선물 키워드를 ‘농축산물·10만원’으로 잡고, 국산 과일 선물세트 물량을 확대했을 정도다. 과일류·임산물 등을 중심으로 주산지와 도매시장·유통업체 등이 예상하는 설 대목장 농산물 수급 및 가격 전망을 두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사과=22일 오전, 충북 충주시 금가면에 있는 충북원예농협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APC). 본격적인 설 대목을 앞두고 유통업체 견본상품 선별·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명절 선물세트인 만큼 5㎏들이 한상자 기준으로 10~13개가 담기는, 일명 3단위 위주의 사과가 주로 포장되고 있었다.
이번 설에는 유통업체의 선발주량이 2017년보다 10%가량 증가한 터라 대목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하지만 흠집과·미색과가 많아 선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상복 충주거점APC 센터장은 “지난 설에는 특품 비율이 20%대였으나 이번에는 10% 수준”이라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경북능금농협 문경거점APC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보다 대과는 많지만 선물용으로 쓰일 특품이 부족한 상황이다. 문경APC의 한 관계자는 “3단위 물량의 절반가량이 선물용으로는 부적합한 비품”이라고 하소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과 저장량은 지난해보다 4% 적은 26만3000t 내외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과 물량은 넉넉하다. 전국 주요 산지 관계자들은 저장사과의 대과 비율이 40~50%에 달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만 지난해 사과 생육기에 가뭄·우박·탄저병 피해가 극심했던 탓에 특품 비율은 현저히 낮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따라 설 대목에 사과는 일반상품과 특품간의 가격 차이가 심할 것으로 보인다. 물량이 부족한 특품은 가격이 높지만 일반상품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과가 많은 해의 평균 도매가격은 중소과가 많았던 해에 비해 낮게 형성된다는 농경연 분석 결과도 있다.
실제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서비스(KAMIS) 기준 1~23일 10㎏들이 <후지> 상품 평균 도매가격은 3만66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9200원)보다 9% 떨어졌다. 같은 기간 평년 가격(4만733원) 대비로는 12% 낮아졌다.
김영란법의 선물가액이 올랐음에도 이미 유통업계는 지난 설보다 가격이 10~20% 저렴한 사과 선물세트를 내놨다. 최훈학 이마트 마케팅팀장은 “올해 들어 사과 시세가 예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산지 직거래를 통해 몸값을 낮춘 사과 선물세트를 다양하게 마련했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원예농협 거점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서 작업자들이 설 상품으로 내놓을 배를 선별하고 있다.
◆배=농경연에 따르면 2017년 배 생산량은 26만6000t으로 지난해 대비 12% 증가했다. 그 여파로 저장량이 급증했다는 게 산지의 공통된 목소리다.
충남 아산·천안, 전남 나주 등 주산지 관계자들은 “지난해 개화기와 비대기 기상호조로 생산량이 증가한 데다 출하기(9~11월) 가격 약세 탓에 저장량이 더욱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운휘 충남 아산원예농협 거점APC 센터장은 “현재 저장량이 예년보다 20~30%가량 많다”면서 “25일부터 시작하는 설 대목장 출하는 원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물량은 많은데 비품 비율이 높고 특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원래 설 물량은 저장배이기 때문에 비품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는 수확기 고온 탓인지 유난히 무름현상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설 물량을 1차 선별해보니 상품으로 쓸 수 있는 배보다 비품 비율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상품화 가능한 물량 중에서도 특품 비율이 40%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정도 낮다”고 설명했다.
물량이 넘치다보니 산지 시세도 좋지 않고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 영향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서재홍 전남 나주배원예농협 유통팀장은 “물량이 많지만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으로 농산물 선물가액이 올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에 큰 영향이 없는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그러면서 “대형 유통업체 납품단가가 7.5㎏ 특품 한상자에 2만원 후반대로 지난 추석보다 오히려 10% 하락했다”고 답답해했다.
산지와 마찬가지로 시장 관계자들도 이번 대목장 시세를 어둡게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추석 성수기(추석 2주 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신고> 특품(7.5㎏들이) 평균가는 2만3300원, 상품은 1만8000원이었는데, 이보다 더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상혁 서울청과 경매사는 “올 설은 홍수출하로 특품 시세는 2만원 안팎, 상품은 1만5000원 내외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특품이 아니라면 설 대목장 전후로 꾸준히 출하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태옥 한국청과 경매사는 “배는 이번 대목장에 값이 좋지 않을 것 같다”면서 “최근 불어닥친 한파가 대목장까지 지속되면 매기가 더더욱 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농협은 이달 25일부터 2월 말까지 산지 농협의 저장배 5000t(전남 나주시 협력 2000t 포함)을 가공용으로 수매한다. 이번 수매는 재고누적과 시장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지 농가들의 소득안정과 설 성수기 배 수급안정을 위한 선제적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