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의 관민이 합쳐 17배나 되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군대에 저항하다 죽은 최대의 혈전 2차 진주성 전투..
1980년대 사극 '조선왕조실록'에서 제대로 다룬거 딱 한번 있던게 전부였죠. 그 이후에는 영화나 사극 등 나온게 없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쪽은 진짜 농담 안하고, 올스타급 전국구 장수들 총출동 구성되어 싹 긁어모아 출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안룡' 다테 마사무네, 이시다 미츠나리(세키가하라 전투때 서군 실질적 총지휘), 시마즈 요시히로(규슈 지역 지배자), 쵸소가베(시코쿠 지역 지배자), 우키타 히데이에(하시마 히데요시 양자),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다치바나 무네시게 등등 전국구 일본장수들이 출전한 전투였죠. 말 그대로 왜놈들도 저 전투 못 이기면, 하시바 히데요시한테 썰릴각오로 임한것이고.
진주성에 수성한 조선군쪽 인사들도 진짜 '난 여기서 죽을 거다'라고 각오로 임한 사람들만 출전한 전투였지요.(대표적으로 창의사 김천일 의병장은 진주성은 호남으로 이어지는 관문으로 여기가 뚫리면 호남 전체가 끝장난다고 생각했고, 이어 창의사는 "내가 이제 죽을 곳을 얻었다."고 기뻐하며 3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남하하며 죽을각오로 수성에 임했습니다) 주변 의병장(대표적으로 곽재우 장군), 조선 관군(권율,선거이 장군 등), 명나라 군대들도 왜놈들 군세 보고, 지원 포기한 전투였지요.
당시 영남 지역의 백성들 및 인근의 백성들 사이에 '일본군으로부터 도망치기는 어렵고 진주성은 견고해서 함락 안된다' 라는 소문이 번져 수만의 백성들이 진주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의 느린 피난 속도는 일본군의 진격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피난처로 진주성을 떠올리는 수 밖에 없었죠. 한마디로 진주성 전투에 참전한 조선군은 피난 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일본군으로부터 도망쳐 온 백성들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에 수성에 들어간것.
이거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처절할겁니다.
세계역사 통틀어서 병력규모가 20배 차이나는데 전투한 경우도 정말 드물고(거의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정도이죠.) 6000명 전부 전사했기도하고 심지어 전투 막판에는 물도 없어서 말을 잡아서먹고 말 피도 나눠마시면서 버티고 버티다가 다 전사해버린 전투..
영화로 만들면 너무 슬플겁니다..
첫댓글 개인적으론 슬프고 힘든 역사를 피해가는 현상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남한산성을 그래서 엄청 좋아하는가봐요.
차라리 진주성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조선군들을 담담하게 조망하면서 선조들의 정신을 강조하는것도 좋은 작품이될텐데 아쉽네요
영화로 만들고 앤딩은 논개로..
그래도 영상화로 만들어도 좋을거 같아요. 슬프고 힘든 역사도 방영하는게 필요해서요
진주성 성벽이 저렇게 높았었나요...?
1. 어쨌든 못 이김. → 어줍잖아서는 오락적으로 인기가 없음.
2. 처절하고 잔혹함. → 불호가 갈리거나 (아마도 )이용가 연령대가 올라감.
3. 역사적으로 민감함. → 영화는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정치에 써먹으려 들 수 있음.
4. 대규모, 공선전 → 제작비가 많이 듦.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각본만 괜찮다면 외국자본이 있어서...
@데미르 거지같은 라부라부씬에 되도않는 머리꼬라지들하고 나와서..
+ 빨아야 될 인지도있는 '영웅'은 도주 및 참전 거부하고 이미 성 안에 대피해있던 백성을 차마 저버리지 못한,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는 의병장들이 분투한 전투라..
이때는 하시바성씨 안씀 도요토미였죠
시코쿠의 공주 배트걸 조소카베가 참전한건 관심밖이라 몰랐네요.
원래 역사 라는 건, 명암이 있어야 되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