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만시지탄 북한 인권보고서, 국제사회와 공조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3.03.31 00:09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엔인권사무소는 28일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아물지 않는 상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의한 강제실종 및 납치″ 제목으로 발간한 보고서 발표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7년 만에 공개
북한인권재단 출범시키고 인권 외교 강화를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한 ‘북한 인권보고서’가 어제 처음 공개됐다. 2016년 3월 어렵사리 여야 합의로 ‘북한 인권법’이 제정됨에 따라 매년 제작했으나 3급 기밀로 분류돼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인권법 제정 이후 7년 만의 첫 보고서 공개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소중한 첫걸음이란 의미가 작지 않다.
공개된 보고서는 2017∼2022년 탈북한 탈북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 등 국제적 기준을 적용했다.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 사례를 두루 담았다. 국경 지역에서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전 경고도 없이 총살당한 사례, 한국의 영화·드라마 등을 시청·유포했다고 공개 처형한 사례도 들어 있다.
첫 인권보고서가 공개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와중에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해 북한 인권 문제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실제로 2020년부터 지난해 5월 정권 교체 때까지 2년반가량 북한 인권단체의 하나원 출입을 막아 탈북민을 상대로 한 사례 조사가 불가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가 자체 조사를 했다지만,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지만, 통일부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로 이달 초부터야 뒤늦게 사례 조사가 재개됐다.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그동안 민주당의 반대 때문에 출범하지 못한 ‘북한인권재단’도 조속히 발족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최근 재단 이사 5명을 추천했고 정부 몫 이사 2명도 추천됐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이사 5명을 추천하지 않고 있다. 2013년 3월 21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4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치를 결의했고, 이듬해 2월 최초의 유엔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공표됐다. 이에 자극받아 2016년 한국 국회가 제정한 북한인권법에는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며, 탈북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고, 국제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입법 취지에 맞게 윤석열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촉진할 외교적 노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마침 유엔의 외교 무대에서도 최근 활발한 인권 외교에 시동이 걸렸다. 2014년부터 안보리 공식 의제로 등록된 북한 인권 문제가 지난 5년간 삭제될 위기였지만 이를 되살리기 위해 한·미가 외교 공조에 나섰고, 탈북자들이 유엔 안보리 비공식 회의에 출석해 증언하는 성과도 거뒀다. 물론 보고서 한 번 공개했다고 북한 인권이 곧바로 개선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인권 참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려 북한 동포들의 열악한 인권이 개선되도록 연대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