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람들이 뭘 하고 노는지 알아보기 전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놀지?'란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거야 사람 나름 아니겠어?', '대충 조깅, 수영 등의 스포츠나 등산, 여행?', '무지하게 많지 뭐!'. 아마 이런 유의 답이 주류를 차지할 것이고, '영국 사람들 노는 것은 알아서 뭣해?'하고 좀 톡 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답이 나올 수 있는게 사람들의 여가시간 보내는 법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국사람들의 여가생활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쉽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관심있는 것은 우리하고 뭣이 다른가 하는 점이고, 그 점에 있어서는 몇가지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외부인의 시각이 더 객관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남이 여가시간에 뭐하고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다.
하지만 필자의 예리(?)한 눈에는 영국인들의 평범한 모습이 결코 범상치 않아 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영국인의 여가생활을 적당히 분류해서 빈도순으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빈도에 관한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니, 통계적 근거를 대라고 하지 마라! 스포츠하고 일부 취미생활에 대해서는 통계가 발표되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있는지 자체를 모르겠다.
1) 집안에서
정원 다듬기, 집 수리, 차 마시기, TV나 비디오 보기, 애완 동물(주로 개) 손질하기, 독서, 차 수리, 빈둥대기 ......
2) 집 주변에서
산책, 이웃 방문, 일광욕, 공원에서 놀기, 자원봉사, 소풍, 펍에 가기, 벼룩시장 가기 ......
5) 문화생활
연주회, 뮤지컬 보러 극장가기, 박물관/동물원/식물원 가기, 카지노나 놀이동산 가기, 나이트클럽가서 춤추기, 연애하기, 성당 가기, 파티참석, 책 쓰기 ......
자 그러면 하나 하나 그들이 노는 모습을 조명해 본다.
1. 집안에서
앞 칼럼에서도 소개했듯이 영국 사람들은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선두는 정원 다듬기와 집 수리를 꼽고 싶다. 이것이 취미생활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정서로는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데, 아무튼 이건 엄연한 사실이고 영국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다. 어느 행정가가 나와 '우리 모두 이렇게 하자!'고 외쳐서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고......
그 다음 영국인의 소일거리 중 하나는 차 마시기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혹은 나이 든 중년 여성 혼자서 따끈한 홍차에 우유를 타서 천천히 마시는 순간은 영국인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티타임을 정해놓고 모든 일 중단하고 차 마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건 영국 살면서 한번도 못봤다. 필자가 다니던 회사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TV나 비디오 보기는 대체로 한국하고 비슷하다. 영국인들도 가장 많은 시간을 TV나 비디오 시청에 보낸다는 통계다. 역시 시간 죽치는 데는 20세기 최대 발명품 중 하나인 TV를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용이나 점잖은 비디오는 도서관에서 싸게 빌려 볼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최신 영화는 비디오방에 가서 1-2파운드 주고 빌려야 한다. 한국이나 여러모로 비슷한게 비디오 대여점이다.
그 다음 애완동물(주로 개) 손질하기도 영국인의 여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것도 앞 칼럼에서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생략하지만, 개하고 침대에서 잘 정도니 말 다했다. 아니다, 듣자하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다던가?
독서는 영국 문화의 한 부분이고 여가생활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사람들 책 많이 읽는게 영국인들한테 배운 것인지 원래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소설책을 읽는 것, 이것 또한 영국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한 부분인 것만은 분명하다. 해리포터를 쓴 작가도 원래는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이 독서와 저서와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집에서 혹은 집앞에서 가끔 볼 수 있는게 차 수리하는 광경이다.
차 수리비가 비싸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 초등학교서부터 배우는 것이 목공이나 가정기술이고, 집안 수리도 취미로들 해서 그런지 손재주가 그런 대로 있다. 우리 동네에도 차 수리를 잘 하는 집이 있었는데, 지나다니다 보면 거의 매일 차를 뜯었다 붙였다 해대어 차가 거의 누더기다. 세상에 살다보니 차에 베니어 합판으로 대고 못질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영국 와서 이런 것 처음 보는 한국 사람들, 분명 영국은 거지 나라라고 할 것이다. 이런 기술력과 장인정신, 절약정신이 모여 프랑스를 꺾고 GDP 4위의 경제대국이 된 줄도 모르면서......
마지막으로 영국사람들이 집안에서 시간 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는 빈둥대기다.
한번은 영국인 회사친구가 자기 주말 스케줄을 열심히 짜길래 보니까 한 나절이 'Day off'라고 되어있다. 어차피 주말에 쉬는 것인데, 무슨 '휴일(Day off)'표시가 있냐고 하니까, 그건 아무 일 안하고 쉬는 것이라는 것이다.
!!!!!
그 때 문득 스쳐 지나가며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주로 주말을 '쉬는 것'으로 보는데, 이 자들은 주말도 주중이나 마찬가지로 '활동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빈둥거리는 시간으로 남겨두어, 졸든지 못다 한 다른 일을 가볍게 하든지 해서 몸과 마음을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단언컨대 영국인의 여가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빈둥대기'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영국인 특유의 여유가 나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얘기 중에 '필요없는 것의 귀중함'이 있다. 삶이 중요한 일로만 가득 채워져서는 참다운 여유나 진정한 행복이 우러나올 수 없는 이치 아니겠는가?
영국사람들이 집안에서 노는거 좋아한단 얘기는 전번에 했었다. 그런데 이는 날씨가 전반적으로 안 좋을 때 얘기고, 조금이라도 해가 뜨면, 아니 비만 안 오면 집밖으로 뽈뽈 기어나오는 것이 영국사람들이다.
2. 집 주변에서
먼저 거의 날씨 불문하고 영국사람들이 목숨걸고(?) 즐기는 것 중의 하나는 산책이다.
왜 미국사람들처럼 조깅이 아니고 산책인가?
조깅하는 사람이 아주 없진 않지만, 그 비율에 있어서는 미국과 눈에 띄게 비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영국인 친구 여럿한테 물어봤더니, "신사는 뛰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그네들 평시 불이 나도 질서 있게 걷기 훈련하고, 바빠도 좀체 뛰지 않더니 쌍놈(=비 신사)취급 안 받으려고 그랬었나?
한번은 사유지를 경유하는 산책로를 주인이 막아버리자, 주민들이 데모하면서 농작물을 밟고 야단을 치는데도 여론은 주민들 편이었다. 독일 국민들한테 맥주값 올린다고 하면 데모하듯이, 영국 사람들한테 산책 못하게 하면 데모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산책로 이외의 사유지에 무단침입하면 불법이다. 위 경우는 산책로 자체를 봉쇄해서 생긴 문제고.......
아무튼 사색을 많이 하는 문화를 일궈온 영국에 있어서 산책은 중요한 '의식(ceremony)'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은 인간의 기본권리로 '통행의 권리(Public right of way)'가 있는 나라니 말 다했다.
잠깐! 이 글을 막 탈고하고 뉴스를 보니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그가 아끼는 하이그로브 자택의 정원을 산책한 뒤 스콘 빵을 곁들인 얼그레이 홍차를 마시는 값은 8만파운드(약 1억6천만원)라고 선데이 텔레그래프가 21일 보도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정원이란 걷는데 수십 분이 걸리는 큰 숲을 얘기한다는 것 아실 것이고, 찰스가 자선 모임에서 이같은 상품을 경매로 내놔서 부자들이 값을 올려 놓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인데, '산책'이 왜 영국에서는 상품이 되는지 이제 독자들은 이해가 갈 것이다.
다음으로 영국사람들이 시간나면 찾는게 친지와 이웃이다.
우리가 살던 마을에서 보면 딸, 아들, 손자는 물론, 5촌이상의 먼 친지들 끼리도 방문이 잦다. 가족이나 친지간 우애가 돈독하다는 한국 뺨치게 이들도 가족주의적이다. 또 하나는 친구집이나 취미모임 같은 데 가는 것이다. 미국 체류시에는 못 느꼈던 분위기다.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그런지 남의 일 상관 안 하는 것을 중시하는 반면, 영국은 공동체주의도 발달해서 그런지 남의 일도 좀 상관하는게 당연하다고 보는 것 같다.
영국서 살기 시작한지 몇 달 안 되어 안 사람이 영국인 친구를 사귀어 주말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전부 여자라서 그 집에 데려다 주고 되돌아 왔는데, 저녁 9시면 돌아오겠다는 사람이 밤 10시가 넘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11시가 넘자 불안한 마음에 그 집을 다시 찾아갔는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들 있는 것이 아닌가? 각자 약간씩 돈을 내서 중국음식점에서 take-out으로 사다가 저녁을 먹으면서 밤 12시 넘게 수다떠는 것은 기본이라는데, 어렸을 때 시골여자들 밤모슬 가는게 자꾸 오버랩되었다.
이러한 것을 보고도, 한국과 영국이 문화적으로 아주 가깝다는 생각이 안 들면 비정상 아닐까?
그 다음 이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일광욕!
우리가 살던 곳은 남부 해안가라 공원에서 일광욕하는 것은 못 봤고, 해안가에 가면 노브라로 일광욕하는 여자(주로 아줌마들, 아가씨들은 수줍어서 잘 안 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햇볕이 부족한 나라다 보니 나체로 일광욕하는 해수욕장 및 농장이 있다는 소개를 전에 한 적이 있기땜시로 일광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음, 앞 편에서도 소개했듯이 공원에서 보내는 것도 영국사람들이 여가를 보내는 중요한 방법이다. 우리가 살던 포츠모스에서는 어디든 5-10분만 걸어가면 공원이 있었으니까, 도시를 설계할 때 공원을 먼저 정해놓고 집을 짓지는 않나 생각이 될 정도다. 절대로 집 먼저 짓고 남는 땅에 공원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다음, 영국인들이 시간이 남아서 자원봉사를 한다면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여가생활이라 할만큼 자원봉사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된다. 영국의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최근 인터넷 한겨레, 영국 테마 기행기에서 여러 분들이 집중 거론했으니 그곳을 참고하길 바란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jkim, '영국의 자선문화: 이건 좀 배우자',
영국첼튼햄, '영국의 자선문화에 대한 약간의 추가정보' ,
임호랑, '우리를 빼닮은(?) 영국' 이 있다.
요즘, 글솜씨가 좋은 몇몇 현지 체류 기고자들 덕분에 영국 테마 기행 운영이 무지 쉬워졌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주말에 많이 가는 것은, 단연 소풍이다. 야외용 대나무 그릇에다 빵이나 샌드위치, 과일을 담아가지고 나가 아이들과 공을 차거나 크리켓을 하고 노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고 보면 주말에 부부나 가족단위로 많이 노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다음, 토요일하고 일요일 양 이틀의 주말에 벼룩시장(car boot sale)엘 가는 것도 일부 영국인들에게는 필수적인 코스다. 이곳에 가서 작은 중고 생필품을 싼 값에 사기도 하지만, 물건을 둘러보고 사람을 만나고 하는 것도 영국의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일과인 것이다.
3. 조금 멀리로
영국인이 여가를 보내는 여러 형태 중 이번에는 비교적 멀리 다니는 것으로 테마를 묶어 소개한다.
첫째는 며칠씩 계속해서 도보여행을 하는 것.
1주일을 부부가 영국 국립공원을 횡단하는 경우를 봤다. 유명한 도보여행지로는 호수지방(Lake District), 코츠월드(Cotswold), 요크셔데일(Yorkshire Dales), 다트무어(Dartmoor) 등 14곳이 있다. 이와 같이 유명한 도보여행 코스 말고도 50-100km 정도 걸을만한 도보여행 코스는 도처에 있다. 우리가 살던 영국 중남부에 있는 New Forest에만 하더라도 지도상 직선거리 30km, 도보 이동거리 100km 정도의 도보여행 코스가 있다. 이러한 지역을 우리는 대부분 자동차로 지나갔는데, 수없이 많은 도보여행객들을 길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축제에 참가하는 것.
가끔씩 시청이나 무슨 단체에서 크고 작은 축제를 여는데 별로 돈 안들이고 놀 수 있는 곳이다.
가 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인기있는 것은 1년에 한번씩 하는 대형 불꽃놀이다. 이날은 11월 5일로서 Guy Fawke's Day라고 하여 도시마다 큰 불꽃축제를 벌이는데 정말 가관이다. 이 날은 실제 Guy Fawke란 인물이 1605년 11월 5일, 영국 국회의사당을 거대한 폭약으로 폭파하려 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더 알고싶은 분은 다음 원문을 읽어보세염!
"Guy Fawke was a rebel who attempted to blow up the Houses of Parliament on November 5, 1605. However, he failed to do so. It was during the time of James I of England. He was the son of Mary, Queen of Scots, and had just become King of England in 1603, two years earlier. It was he who authorized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 Guy Fawke was captured and executed, but the hatred of the British people was so intense toward him, that this event revived the traditional bonfires of the past, and a yearly practice began of burning effigies of Guy Fawke over the many bonfires annually. "
* hatred: 증오, bonfire: 큰 횃불(화톳불), effigy:(미워하는 사람을 닮게 만든) 인형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에 대해 원문과는 달리, 폭력과 피로 얼룩진 정치투쟁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일종의 '국민화합의 날' 차원에서, 비극을 축제로 승화시켰다는 현지 영국인의 설명도 있다. 우리도 이 축제에 한번 참석했는데, 대형 경기장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입장료를 1인당 3파운드 정도 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영국인들 최고의 꿈은 아마도 해외여행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만 해외여행 좋아하는게 아니었네?)
1주일 일하는 가장 큰 목적이 주말에 쉬는 것이라면, 1년을 열심히 일하는 목적은 해외여행가는 것이라고 자신의 인생철학을 주장하는 영국인 동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실제 1년에 2-3주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 살다온다. 해외여행이라고 해봤자 자동차나 기차로도 갈 수 있고 비행기로도 1-2시간이내니까 우리만큼 힘든게 아니다.
주로 많이 가는 계절은 겨울철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12월 20일-1월1일)에는 지중해 근처의 항공편 및 호텔이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비용도 2-3배로 뛰지만, 적어도 3개월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다. 햇볕 구경이 힘든 겨울철 영국을 탈출하려는 가련한 몸부림(?)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인들이 주로 하는 스포츠인데,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귀한 스포츠는 골프, 크리켓, 보트타기, 승마 정도가 아닐까 싶다. 반면 우리한테는 흔하고 영국인들한테 귀한 스포츠는 등산이다. 영국에는 쓸만한(?) 산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특히 평지가 많은 잉글랜드에는.
크리켓하고 테니스는 영연방을 단합시키는 국제대회로서 유명하고, 골프는 미국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흔한 스포츠다.
필자가 있던 지역이 해변가다 보니 보트타기(sailing)가 취미인 사람들이 많다. 돈이 좀 없는 사람은 카누같은 작은 배를 차에 싣고 바닷가로 가서 몇 시간이고 노를 젓고 다니며 놀고, 돈이 좀 있는 사람은 돛단배를 바닷가 보관창고에 두고(보관료 및 관리비를 관리회사에 내고) 몸만 가서 이용하는 형태다. 갑부들은 고급 요트같은 걸 이용한다는데, 한번도 가까이서 직접 본 바는 없고.... 아무튼 주말이면 포츠모스와 와이트섬 사이에 수백 척의 돛단배가 뜨는 데 쌍안경으로 보면 장관이다.
승마는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흔한 스포츠인데, 말 값이 비싸서 그런지 영국서도 귀족 스포츠로 통한다. 달리는 승마는 TV에서나 볼 수 있고, 실제 대부분의 승마는 말타고 천천히 걷는 형태의 것이다. 무슨 재미로 타나 싶다.
그리고 하이킹은 우리도 많이 하지만 영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도로에서도 자전거 보호의무가 철저하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자전거 주위를 지날 때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통과한다. 자전거 운전자는 거의 방심할 정도로 타고가고, 오히려 자동차 운전자들이 바짝 긴장하는 형국이다. 도로 교통법이 자동차 운전자에게 매우 불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약자보호 원칙이 엄격히 적용된다니까. 아무튼 영국사람들 철저한 데가 있어서...)
또한 유명한게 산악 하이킹이다. 거의 진흙탕 같은 곳을 가는데, 전국 단위의 경주도 있어 챔피언을 가른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유명 도보여행지에는 거의 같은 수의 하이킹족들로 붐빈다. 당시 필자의 자문가(Mentor)였던 Geoff Hall이란 사람은 수십년간 출퇴근을 자전거로 했던 사람이다.
5. 문화생활
마지막 테마로 영국인의 여가생활 형태 중 하나로 다양한 문화생활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주회, 뮤지칼 보러 극장가기, 박물관/동물원/식물원 가기, 카지노나 놀이동산 가기, 나이트클럽가서 춤추기, 연애하기, 성당 가기, 파티참석, 책 쓰기 ......
우리하고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박물관/동물원/식물원 가기하고 책 쓰기가 많은 게 영국인들 문화생활의 특징이다. 반면 나이트 클럽이나 성당가기는 우리나라에 비해 빈약하다.
영국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만 수만개에 달하고,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 '박물관 나라'라고 불러도 될 만 하다. 그런데 이 많은 시설이 유지되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영국인들이 찾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좀 아는 체를 해야 품위가 유지되는 곳이기에 이런 수요가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 책 쓰기(저술문화)를 문화생활의 범주에까지 놓을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평상시 그들의 기록습관과 필자가 만난 평범한 작가들을 두고 볼 때 분명 문화생활의 한 형태로 보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영국의 골동품 수집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Arundle에 가서 150파운드를 주고 100년 된(것이라고 가게주인이 주장하는) 책상을 산 적이 있다. 아마 거기서 산 최저 수준의 골동품 가구일 게다. (돌아다니며 이런 거나 산다고 필자를 '상류층'으로 보아주는 분 혹시 있으면 엎드려 감사드린다.) 그런데 귀국해서 우연히 책상 서랍 안쪽을 열어보다 이 책상의 주인인 듯한 사람의 일기가 발견되었는데, 매일 매일의 일기를 몇 줄씩 간단히 적은 것이었다. 오늘은 누굴 만나고 어디서 편지가 왔고 등등. 생활내용으로 보아 노인이었던 것 같다. 뭣이든 꼼꼼이 기록하는 이들의 생활습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가 만난 영국인들 중 몇몇은 무언가 책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영어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자신은 현재 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보면 업무회의를 하면 곧바로 기록이 되어 전파되고, 보고서에 들어가서 나중에는 책으로 되어 나오는데, Manager의 중요한 요구조건으로 writing을 들 만큼 이들이 중시하는 것이 글 쓰는 능력이다.
서점엘 가보면 온갖 잡다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한 박물학적 저서들이 많은데, 이는 이러한 수많은 무명 작가들 작품들 중 발탁된 것들이다. 정 쓸 것이 없으면 나이들어 자신의 자서전이라도 쓴다.
소설류나 문학작품이 주를 이루는 우리와는 달리, 기록습관이 발달한 영국이나 일본에는 유난히 사실에 바탕을 둔 실무적인 서적이 많다. 물론 대문호 세익스피어를 비롯 노벨문학상을 10개도 넘게 배출한 나라답게 문학도 세계적 수준이지만, 유명한 책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국민 다수가 글쓰는 것을 취미로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초중고 과정을 통해 토론과 작문으로 엄청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교육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듣는 것과 읽는데 엄청난 시간을 보내는데 이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비단 국어시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과과정을 통해 토론과 작문을 중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을 10-15년 해대면 엄청난 국제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듣기 잘 하는 훈련만 쌓은 사람은 복종적이고 수동적으로 되어 민주시민이 되는데는 결격이다.
교육개혁을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한 몇 가지 원칙이라도 지켜지게 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가만, 얘기가 왜 교육개혁으로 튀었냐? 오늘 칼럼은 심각한 테마가 아닌데......)
영국인들의 여가생활 중에 나이트 클럽가서 춤추기, 성당 가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다.
영국 살면서 나이트 클럽은 딱 한번 가봤는데,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찾는 이곳에 50-60대 할아버지들도 가끔 발견된다. 입구에서 티켓을 사서 들어가면 중앙의 광장과 주변의 테이블이 나온다. 분위기는 우리나라나 비슷한데, 과일안주 시키는 것이 없다는 점하고, 부르스 타임과 디스코 타임을 번갈아 하지 않고 디스코 타임만 있는 점이 색다르다. 다른 나이트 클럽은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이트 클럽이 상대적으로 귀한 것만은 틀림없다.
다음, 영국의 성당은 대부분 노인들만 찾는 곳이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안 간다.
한국의 열광적인 기독교 문화에 비해 왜 이렇게까지 그리스도교(영국식 카톨릭인 성공회 및 로만 카톨릭)가 침체(거의 몰락수준?)되어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현지 영국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더 이상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잡질 못한다는 얘기도 있고, 주 5일제가 정착되어 토요일이면 여행 등을 떠나기 때문에 일요일에 성당에 갈 여유가 없다는 얘기도 있다. 또 다른 설명은 과학의 발전으로 성경의 권위가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상대적 침체에 비해 이슬람이나 힌두교 및 인도의 명상이나 불교가 급속히 신장되어 그리스도 교도 숫자와 맞먹는다.
영국인들의 여가생활과 취미생활을 이제 정리해볼 시간이다.
우선, 한국이 정말 놀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가?
하지만, 영국인들의 취미생활 중 호감이 가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제 놀이(Entertainment)는 문화일 뿐 아니라 스포츠이고 산업이며 자원이다. 우리나라의 미래 핵심기술인 6T중의 하나로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이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즐길 거리를 더 발굴해야겠고, 산책코스 개발이나 공원설치, 저술문화 육성 등에도 적극 관심을 쏟아야겠다. 제주도를 비롯한 국제 관광위락시설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일본, 중국, 미국, 동남아시아, 유럽 등 한국을 찾을 만한 나라 사람들의 놀이 습성을 더욱 연구하는 것은 앞으로 남겨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