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讀>조중동에게 묻습니다

뭐가 그리즐거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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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동(재미 언론인)
여러 날을 망설이다가
조중동에게 이 글을 씁니다.
조중동이
누구냐고 물을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아주 오래전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누군가가 저를 비판하니까
독자가
“조광동이 누구지요?
조중동 동생인가요?” 하고 물어서
실소했습니다.
요즘
조중동(朝中東)을 보면
속이 많이 상합니다.
언론자유를 남용합니다.
제가
신문 기자를 시작할 때는
언론 탄압이 질식할 것처럼
숨 막히던 유신 시절이었습니다.
신문사를 담당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이
편집국장 옆에 의자 하나를 놓고
편집국장에게
지침을 조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 데모 기사 한 줄을
1면도 아니고
사회면 구석에 넣기 위해
편집국에서 밤새 농성하고,
월남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기사를 게재했다고
편집국장과 외신부장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영장은 없었고
임의 동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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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언론 탄압이 극심하다 보니
언론 자유 투쟁이 기자의 과제였고,
투쟁이 미덕이고 용기였습니다.
언론 자유가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일환으로
젊은 한국일보 기자들 20여 명이
만리동 어느 허름한 음식점에서
언론 노조를 발기했습니다.
노조 발기인 대회를 하는데
정보 형사가 식당 문을 두들겼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열 명만 모여도
식당 주인이 신고해야 했습니다.
가슴이 덜컥하고 숨이 막혔지요.
그때 선배 한 사람이
그 지역 경찰서 출입 기자라
형사와 안면이 있어서
고등학교 동창회를 한다고 둘러대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언론 노조가 발기되어
신문사에 파란을 일으키고
노조위원장은 해직되고
노조는 법정에 섰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일보 초년생 기자였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조중동이란 말이 없었고,
4대 중앙 일간지란 말이 있었습니다.
석간 신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조간 신문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지칭했습니다.
동아일보 부수가 한참 앞서가고
조선일보와 한국일보가
2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했습니다.
‘조중동’이란
시쳇말로 모방하면
‘동조한중’ 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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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이야기만 하면
섭섭해하거나
반발할 신문이 있겠군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들 신문이
이념적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한겨레와
경향이 흔드는 진보 깃발이
민노총 깃발과 색깔이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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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이념이 들어간 사람에겐
아무리 말해도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니까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은
다른 의견을
도무지 경청하지 않습니다.
자유당 시대에
동아일보와 쌍벽을 이루면서
한국 언론계를 이끌었던 경향신문은
지금
이념의 기관지로 주저앉았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저를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6월 항쟁 이후
한겨레신문이 창간의 깃발을 들었을 때
춘추필법 언론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저도 그랬지요.
제도권 언론을 규탄하면서
한국일보사를 떠났던 저도
시카고에서
한겨레신문 지사를 만들어
한겨레신문을
미국 동포들에게 배달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신문은
제가 생각했던 신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념의 색깔이 너무 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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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중동에게 말하기 전에
조선일보 주필과
동아일보 주간의 글을 언급 해야겠습니다.
주필과 주간은
신문사의 가장 중심되는 어른이고
철학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로 돌아간 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 쓴 칼럼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는
글을 읽으면서
이게
주필이 쓸 칼럼은 아니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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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중한 시기에
계엄의 정당성 문제를 논해야 할
위중한 글을 쓰면서
수첩에 적어 둔 것 같은
시시콜콜한
지난 이야기 십여 개를 나열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자폭을 일삼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테러리스트 정도로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조선일보 주필의 글이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양상훈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재명 야당의 입법 독재와
막장 정치의 민낯에 분노하고 고뇌하는
글을 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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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상훈 씨 글을 읽으면서
주필의 글로
너무 가볍다고 실망했던 저는
동아일보
천광암 논설 주간의 글을 대하면서
주간의 글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경박하고 단세포적인 사고에
실망보다
깊은 비애를 느꼈습니다.
천광암 씨 글은 천방지축이었습니다.
“탄핵 의결로 막 내린
정치 초보자의
무모한 ‘내란 도박’”이란 칼럼에서
천광암 씨는
계엄 선포를 아예 내란으로 규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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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에서
천광암 씨는 카지노판에서 나온다는
‘초보자의 행운(beginner’s luck)’을 언급하고,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보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맺는다”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초보자의 행운이 가져오는
자만과 착각으로
운이 다하는 순간
패가망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로 탄핵당하는 결과를
초보자의 행운이 다한
패가망신에 비유했습니다.
천광암 씨는 두 번째 칼럼
“윤 대통령이 쌓은 거짓말의 성…
총 도끼 다음엔 뭐가” 하는 칼럼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제를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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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로 줄줄이 드러난
尹 거짓말”
“국회 마비 의도 없었다더니”
“총 쏴서라도”
“도끼로 문 부수고”
“명태균 관련 거짓말도 ‘양파껍질’ 보는 듯”
그리고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
“뭐 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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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쓰는 글도 아니고,
운동가 논객이나
황색 신문의 주간도 아니고
한국의 대표적 신문의 주간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검찰 수사 내용을,
그것도
이재명 국회의 눈치를 보는 수사 내용을
사실로 단정하면서
충동적인 제목을 감정적으로 달고,
문제가 될 수 없는 내용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계엄 선포를
내란 도박으로 짜맞추기 위한
글을 썼습니다.
계엄 실패를
초보자의 행운이 다하는
패가망신으로 비유하는 서툰 논리도 딱하지만,
계엄 선포를
내란 도박으로 규정하고,
국회의 탄핵 의결을
윤석열의 자업자득이라는
천광암 씨의 널뛰는 감정 논리에는
이성이 보이질 않고
주간이 가져야 할
진중함이나 숙려가 없습니다.
천광암 씨의 칼럼을
이렇게 장황하게 나열하는 것은
한국의 대표적 신문의
논설 주간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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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의 글이 이런 정도니
기사나
사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조중동 가운데 중앙일보는
오래전 균형을 상실했고
동아일보는
한쪽으로 기울다가
계엄사태 이후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탄핵 반대자를
극우로 폄훼하는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한겨레, 경향은 극좌이고,
동아, 중앙은 좌파이고
조선은 중도 좌파입니다.
저는 탄핵을 반대하니 극우로 분류되겠지요.
이번 기회에
보수 신문을 지칭했던
조중동이란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수는
새로운 대체 신문을
찾을 시점이 되었습니다.
제가
조중동에게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지만
마지막 경고를 위한 것입니다.
조중동의 광포한 지면은 처음이 아닙니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 조중동은
촛불 시위에 감염되어
촛불 반란을 촛불 혁명으로 만들어
한국 정치를 초토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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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은
지금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을
“내란 수괴범”이라 난도질하고,
대통령을 체포하라는 신문 논조를 보면
참담함과 절망을 느낍니다.
대통령을 물어뜯는 것이
죽은 시체를 뜯는 하이에나 같습니다.
6.25 때 북한군이
남침해 서울을 점령하자
그동안 색깔을 감추고 있다가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호외를 발행했던
기자들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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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찬성 여론이 70%라면서
이것이 민심이고
여기에 답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문은
국민의 눈높이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국민 여론이 금과옥조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국민 여론은 감정적이고 감각적입니다.
대중은 기회주의적이고
약자에게
쉽게 돌을 던집니다.

더욱이 그 여론이
선동되고 집단화되고 이념화되면
국민 눈높이는
무지와 광란이 됩니다.
인민재판이 그런 것입니다.
신문은
잘못된 국민 눈높이와
부화뇌동하는 국민과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독재 권력에 맞서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자 용기인 것처럼
여론 독재에 맞서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자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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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도 생존하기 위해
국민 눈높이에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겠지요.
독재시대도 그랬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권력에 굴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생존을 위해
권력에 야합하는 것보다
생존을 위해
여론에 영합하는 것이
더 기회주의적이고 비겁합니다.
권력에 굴종하는 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기에
어느 정도
동정과 수긍을 얻을 수 있지만
여론에 굴종하는 것은
자발적이기에 야비하고 간교합니다.
탄압의 시대는
투쟁이 용기고 미덕이지만
자유의 시대는
절제와 분별과 균형이 덕목이고 용기입니다.
잘못된 여론을 바로잡는 것이
기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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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매체가 나오면서
훈련받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기자들이
언론의 칼을 마구 휘두릅니다.
뉴스와 논평의 홍수 속에
가치와 진실이 매몰되고 실종되고 있습니다.
조중동까지
여기에 합세하면
한국 언론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오늘의 한국 언론은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남용, 오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좌파 이념이 극렬해 지면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신문은 좌파의 기관지로 전락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칼을 주면
불행을 만듭니다.
오늘 한국 언론은
선배들의 눈물과 고뇌와 땀으로 이룩한
언론 자유를
마구 휘두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여 준 것처럼
조마조마합니다.
조중동에게 묻습니다.
조중동은 부끄럼 없이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까?
고뇌와 성찰로
기사 한 줄,
제목 하나와 싸우면서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까?
다시 말합니다.
독재 시대에는
언론 자유 투쟁이 용기였지만
언론 자유가 넘치는 시대에는
자유를 절제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2025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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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유를 절제하는 것이 용기란 말 너무나도 좋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좌경화 된 조중동 정신들 차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