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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트라바 7화.-프롤로그- Take Me To The Top
"나참. 그런녀석한테 그런말투를 들을줄이야. 보통사람이라면 상대가 어려보여도 존댓말부터 하는게 아냐? 아무리 내가 동안이라도 말이지."
"평민따위가 그런 예의를 갖추고 있을리가 없겠죠. 잘 참으셨습니다 도련님."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커다란 쿠션에 앉아있는 회색포마드 컷의 사내에게 부착식 수신기를 건냈다.
웨스턴 호텔의 1110호실 거실 안.
투박한 본체에 정보가 전달할때마다 초록색 라이트로 점멸하는 오더링 시스템이 거실의 글라스 테이블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건장한 사내 3명과 흰색 연구복을 걸친 짙은 이목구비지만 여리여리한선에 갈색털을 가진 가진 한명이 그것을 둘러싸고서 앉아있다.
도련님이라 불리는 남자는 크리스탈잔에 들어있는 냉수를 마시고 피부와 비슷한 색상의 매우얇은 스티커 형식으로 된 그것을 귓볼뒤에 붙였다.
"꿀꺽. 뭐..수연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이라서 건드려봤을뿐이야."
-....그보다 감도는 양호한가?
-예. 아주 잘들립니다.
-클리어.
-1110호실 이제부터 저녁먹으러 갑니다.
-다음은 1120호실 입니다. 10분안에 식사를 종료하라. 다음은 우리 차례다.
-거절한다.
-그런건 무전으로 하지마!
여러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지만 최신식 수신기답게 정확한 분리도와 자동주입처리 기능으로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아.. 이녀석들 믿을 수 있는거야?"
'도련님'이 눈썹을 긁적였다.
"아하하핫..! 좀더 정신교육을 시켜야 겠네요..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녀석들 입니다."
"아하하핫 거리는 너부터 좀 어떻게 하고싶은데? 애당초 경호라는건 아버지의 쓸데없는 일자리 창출일뿐이지 나한테 저런것들은 쓸모없단말이다. 정말 문제는 일이 이렇게 성가시게 된것이야. 아, 우리 수연이는 예외. 나에게 정말 큰힘이 되어준다구~"
"....예."
수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또래보다 약간 조숙해 보이는 여자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서 검은색 티타늄테 안경을 낀 레어한 속성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도련님'의 말마따라 현재 천화고교생 3학년. 졸업반이다.
서울에 있는학교가 아닌 센트럴 시티에있는 본교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이 방안에서 정식으로 '도련님'과 계약을 맺은 자는 윤수연 뿐이다.
경호원중 한명이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날 한국으로 도착할 예정인 모든 비행편보다 빠르게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였는데 설마 그녀가 타고있었을 줄은.. 죄송합니다."
경호원의 말처럼 '도련님'은 전세계에서 하루한정 세계에서 가장빠르게 한국에 도착한것.
그러나 말테가 오지에서 블링크했던 비행기가 하필이면 '도련님'의 전용기였던 탓에 '도련님'과는 달리 국제선터미널에서 자동차를 타거나 갖가지 격식을 차릴필요가 없는 말테에게 웨스턴 호텔의 1111호실을 빼앗긴 것이다.
일반에게 1111호실이 공개되기전부터 한국에서 사람을 고용해서 대기시킬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않은것이 실수였다.
우연치고는 너무 딱딱맞아떨어지는 정황이기때문에 말테가 무언가를 노리고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귀국하자마자 마력을 사용해서 서울로 워프를 탄 말테가 가장좋은 호텔이라고 알려진 이곳에 파산할 각오로 묵는것은 어느정도 정황이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운이 나쁘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도련님' 사이드.
호텔안에서 투숙객을 건드릴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예 1111호실 주변의 전 객실을 빌려둔 상태다.
이렇게 물쓰듯이 돈쓰는것을 감안하고서라도 감시하는 이유라면 '도련님'은 현재 말테를 요주의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
요즘세상엔 저렴한 모텔이라도 몰래카메라 설치가 불가능하기때문에 특급호텔인 이곳에 그런 꼼수가 통할리도 없다.
그들은 하는수없이 말테가 객실밖으로 나올때마다 뒤를 밟거나 천리안, 투시를 사용해 소지품체크를 할 예정이었다.
"하아~ 우리 전용기에 침투할 정도라면 보통내기는 아니라는건데.. '클로버'에 대해 분명히 알고있는 녀석이다. 신원과 뒤에 어떤 조직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어떤 작전을 짜던지 우리 쪽에서 불리해.."
회색안구에 가로가 얇은 마름모꼴 눈동자를 가진 '도련님' 은 몸보다 더큰 쿠션의자에 덜렁 누웠다.
왁스로 고정된줄 알았던 포마드 스타일의 회색 머리카락이 풀리면서 주르륵 쿠션으로 흘러내렸다.
"'인폼'의 정보가 항상옳은것도 아니고 설사 '클로버 루트'를 알아냈다 하더라도 홀몸으로 그 길을 걷는건 불가능할겁니다. 그때 꼬리가 잡히겠죠. 협상의 여지도 있고요."
풀이죽은 도련님을 보며 수연이 말했다.
"그렇긴 하지. 어차피 난 시장이라면서 정체도 보이지않는 녀석이 사는 세계 따위는 궁금하지않아. 괜히 이런 만족스러운 삶이 흔들리기는 싫거든. 단지 그 책에 적혀있는 내용이 궁금하단 말야. 어쩌면 염동파동에 대한 원서가 적혀있을 수도있고..아아. 그방을 다 뜯어내서라도 책의 행방을 찾을생각이었는데."
-보고드립니다. 좀전에 만난 그 소년 아무래도 말테의 지인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E.D.R. 요원도 함께 있습니다.
-뭐라고? 그녀석에 대한 정보를 다 뽑아와. 천화고등학교 학생같으니까 '인폼'에 의뢰하도록. E.D.R.에 대해서는.. 우선 상황을 지켜본다.
-라져.
수많은 지하경제의 암부(暗部)중 비교적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정보거래 조직 인폼.
초능력을 사용한 비이상적인 전산능력을 가졌거나 사이코메트러계열등 정보를 캐내기에 용이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모여 만든 조직으로 특별히 지하세계 쪽의 인간만을 대상으로 거래하는것이 아니라 일반인과도 거래하는 불법탐정사무소 같은 느낌의 실력파 조직이다.
심지어 넷상을 조금만 뒤져보면 나올만한 수준의 주소로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인폼은 국가가 관리하는 곳의 데이터베이스는 건드릴 수 있는 레벨은 아니라고 알려져있다.
그들도 국가가 관련되면 정보전이 아니라 혈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것을 알기 때문.
"궁금하네요. 천화고등학교 학생이 이런 신원도 불분명한 사람과 지인이라니.."
수연이 안경테를 올리며 말했다.
"흐음. 그 패기는 허세가 아니었다 라는 건가..그렇다면.. 우리가 할일은.."
"할일은?"
꼬르르르륵.
"밥부터 먹자. 여기 음식 엄청 맛있데."
"하아--."
수연이 안경테를 벗고 긴장시켰던 눈동자를 비볐다.
*
그 시각. 태화일행은 이아의 능력덕분에 발견한 세계3차대전 영웅기를 읽고있었다.
[이 이야기는 저의 가슴을 향해 쏘아진 적군의 화살을 한 영웅이 잡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영웅의 이야기. 즉 영웅담. 이라고 불러야 하는 대단한 것이지요.
제 이름은 장백련. 저에대해 누군가가 알 수있을만한 소개를 하자면 중국에서 태어난 세기말의 댄서. 라고 해야할까요. 과장같은게 아니랍니다. 후세에도 제 이름이 남아있다면 말이죠.(웃음)
저는 지금 어느 폐쇠된 건물 안에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능력을 사용해 빛을 밝히고 남아있는 힘을 모아 간신히 글을 써내려가는 중이죠.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무것도 적혀있지않는 이 책을 발견한것은 부지런함 이라는 신이 내려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파란장만한 저의 인생은 여느 영화처럼, 여느 연극에 등장하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기엔 정말 많은 훌륭한 작가가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정할수 없습니다. 제 삶의 마지막 일이 홀로 고작이런 차갑고 어두운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적에 인생의 넋두리를 써내려 가기위해서라는 것이라뇨........
재능이 있어서, 재능이 있는 일을하면서, 재능을 알아주는곳에서 일하는것은 참 즐거운 인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죽지만 않았다면.................
어릴적. 빠르게 무용지침서를 읽고나서 보던 무협소설에 빠진적이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그 소설속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째서일까요........................
이런, 나쁜 감상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것을 영웅기에 쓴다면 그분들에게 실례겠지요.
제가 쓰려고 하는것은 조난 소설같은 시시한 것도 아니니까요.
제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된것은 한국으로 와서 세계 3차 대전을 겪은 일입니다.
저와 저의 가족. 그리고 강혜조아저씨는 전쟁으로 인해 최후방기지인 서향반점까지 피난오게 되었습니다.
혜조 아저씨는 저의 댄스에 반해서 저를 찾아온 열정적인 팬이지요. 강하기도 해서, 저희 객단의 호위를 맡고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정도로 강할줄은 몰랐습니다.
죽고싶어서 적들이 몰려오는데도 춤을 춘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래를 비관한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피할곳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언덕위를 두르고 있는 강철의 전차들이 저희들을 향해 포구를 돌렸지요.
호텔안으로 들어가는것을 통제당한 덕분에 천막을 치고서 살아가고있을 뿐인 생존자들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습니다.
저는 저를 향해 날아오는 반짝이는 탄환들과 병기들을 봤습니다.
제 댄스에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두들 저의 춤에 취해 넋나간듯이 즐거워 하며 제가 만든 만두를 먹으면서, 전쟁같은건 다 잊으며 즐거워 하고있었습니다.
날아오는 포탄을 맞고 제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들의 웃음역시 사라지게 되는것. 조금이라도 더 이들이 웃음짓기를 바랬습니다.
값비싼 세단의 주행소리처럼 세련된 소리를 내면서 발사된 탄환과 병기들은 불과 저의 수십미터앞에서 보이지않는 벽에 가로막힌듯 폭발하고 주변을 잿더미로 만들었죠.
열기를 뚫고 제 가슴 바로앞까지 날아든 화살을 막아준 혜조 아저씨 역시 싸움에 동참했습니다.
단 두명이 참가한것만으로 전쟁의 국면은 갑자기 바뀌게 되고 한국군이 승리를 쟁취하면서 모스크바에서 평화협정을 맺게되었죠.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곳에 쓰여지는 것은 모두 사실이며 역사가 될 것들입니다.]
"이건..정말 대단한걸 발견한 걸지도. 3차 대전이후로 이동진과 파천왕이라는 인물에대한 행적, 그들이 숨겨둔 보물이나 병기들이 있는 위치가 적혀있어."
이아가 책의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보고서 눈을 빛냈다.
말테는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고있고 태화는 파천왕이라는 이름이 나온 후부터 책에서 손을 놓고 창가에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바깥풍경을, 아니 자신의 뇌내기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책에서 내 능력이 유도될정도로 사기를 띈거지?"
이아가 책을 빠르게 파르르르 훑었는데 딱 후반부쯤에 무언가에 걸리면서 멈췄다.
"이건... 네잎클로버네!"
종이가 누렇게 변할정도로 오래되었는데 책사이에 끼워진 클로버는 바로 방금 끼워 둔것처럼 싱싱했다.
네잎클로버를 오랜만에 본 이아는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그것에 손을 뻗었다.
말테는 긴장한 표정으로 이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허업!"
클로버에 손가락이 데이자마자 이아는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그녀의 시야에 영상이 강제로 투시되면서 주변이 일그라들었다.
눈앞의 풍경이 깨져버리면서 빨주노초파남보의 잔상이 빠르게 위로 올라가며 새로운것으로 교체되었다.
저항할 틈도없이 강제로 투시되어가는 영상.
지상은 빛과 자동차 라이트가 반짝이지만 이아 자신이 있는 곳은 어두움이 깔린 밤하늘의 공중.
검은색 고층빌딩. 반짝이는 붉은색 항공조명등. 상층부의 어떤 창문으로 시선이 빨려들어간다.
통로와 계단. 문.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암홍색 테이블위에 놓여있는 양주병과 찰랑이는 크리스탈잔.
테이블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빛나는 모니터를 뒤로하고 앉아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
따뜻함이 감도는 방안이지만 알수없는 거북함. 답답함. 가득찬 느낌. 불유쾌한 긴장감. 그래. 이것은 존재감이다.
남자의 존재감에 자기자신이 밀려나가 사라질것만 같아 이내 두려움으로 변한다.
그래도 주시할수밖에 없다.
그가 몸을 옆으로 돌리자 모니터 빛이 비춰져 색이 보인다. 녹색 니트를 입고있는 남자의 옆얼굴은 웃고 있었다.
"안녕."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입술은 분명히 그런식으로 움직인다.
남자가 완전히 뒤돌아 보며 술잔을 들어올리자 영상이 두절된다.
삐이--.
검정색 화면이 위아래로 열리며 새로운 풍경이 드러난다.
"허억..허억..허억..허억..허억.."
숨쉬고있는건가? 들어보지못한.. 마치 짐승의 숨소리다.
양쪽 귀는 오로지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쫑긋거린다.
그곳과는 다른 차가운 공기가 폐에 들이차자 안도감이 든다.
떨리는 손을 들어 명치부근에 데고 부드러운 호텔가운에 싸여있는 자신을 매만진다.
보이는 사물들은 깨끗했지만 정신이 희뿌옇다.
"하아..태..화.."
"이아야 왜그래!"
이아의 짜낸듯한 목소리를 듣고 태화가 달려오고 이아가 옆으로 쓰러지려고 하자 말테가 몸을 잡아준다.
"뭐야 이건. 책읽더니 갑자기 왜이래!"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을수도 있어.. 클로버를 만난거야."
"클로버? 클로버라니 그게 뭐야!"
"..야..그만 말해 어지러워.."
뻗어져 휘청휘청 허공을 젓는손이 목소리가 높아진 태화쪽을 가리킨다.
"어머. 괜찮니? 클로버와 마주했는데 버티다니."
말테가 쓰러지지않는 이아를 보며 걱정보단 놀라움을 표했다.
"제능력.. 치성력(熾聖力)이 있는이상 정신이 날아가지 않아요...언니. 뭔가 알고있군요. 당신은 대체.."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능력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인 피곤함을 보이는 이아는 쇼파뒤로 고개를 젖혔다.
"그래. 이책은.."
이아는 어째선지 말테를 똑바로 볼수 없었다.
식은땀이 나고있는걸 지금에야 느꼇다.
"이아야?"
태화의 목소리.
"졸려.. 지금은 그냥 자고싶어."
말테의 정체나 목적이 무엇인지. 다치워버리고 지금은 그냥 자고싶은 기분이 드는 이아다.
태화가 시끄럽게 군 덕분에 손을 들어올리느라 남은 힘을 다썻다.
"태화..바보."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음냐음냐."
"..........바보.?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바보?"
태화는 양팔을 축 늘어뜨리며 어이없다는듯이 말했다.
"풋. 푸하하하하하하하! 주인님 아주 캐릭터가 확정되셨네요!"
말테가 진심으로 내뿜은 큰 웃음이 방안을 울리며 새벽을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