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3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11장 17절 – 37절 –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생명과 부활의 자리에 날마다 나아가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열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은혜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육신의 만족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자임을 발견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주의 보혈로 더러워지고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마음과 영혼을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주님을 가까이 하며 주를 알아가는 영생의 삶을 사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며 나아가오니 빛을 비추시고 주의 길에 서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본문 해설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오셨을 때 그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있은 지 4일이 지났다.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은 3일간 그 시체를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미쉬나에는 3일 동안 시신을 확인하고 장사 지낼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4일이 지났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념과 생각에서도 나사로는 완전히 죽은 자임을 보여준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오리(약 3km)였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를 조문하기 위해 왔고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아가 맞이했으나 마리아는 집에 남아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이 베다니에 일찍 오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통해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나사로의 죽음이 예수님의 능력(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하지는 않음을 고백하는데 이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한 고백이 아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예수님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다시 살아 날 것을 선언하신다.
이에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먼 미래의 부활을 고백하는데 이는 당시 바리새인들이 부활에 대해 가르쳤던 내용이기도 했다.
마르다의 대답에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셔 마르다가 이 사실을 믿는지 질문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십자가 죽음 이후에 나타날 부활을 선포하시며 자신을 믿는 자들이 부활을 현재로 경험하고 영생을 얻을 것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마르다의 고백에는 나사로의 실제적 부활에 대한 믿음은 아직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마르다는 마리아에게로 가서 예수님 부르심을 알려주고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고 마리아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마리아가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르다와 이야기하던 곳에서 마리아를 만나셨으며 마리아는 마르다와 동일하게 예수님이 이곳에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울며 이야기하는 것과 주변에 같이 따라온 자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신다.
이는 여전히 죽음의 세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며 그런 고통을 안기는 마귀에 대한 격동의 마음임을 보여준다.
이에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는지 물으시고 그들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예수님을 안내한다.
이때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눈물이 나사로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눈물로 생각했으나 예수님의 눈물은 죄와 사망의 종으로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에 대한 눈물이었다.
어떤 이들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냐는 말을 통해 예수님을 한계가 있는 연약한 사람으로 보는 무지함을 드러낸다.
나의 묵상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시기는 유대인들도 나사로가 완전히 죽음을 맞이한 시간이었으며 살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시점임을 보여준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는 사실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주님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생명을 주시고자 오신 분임을 드러내시고 마르다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하신다.
히브리서 2장 14절과 15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지금도 각 나라와 중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며 죽음의 공포로 인하여 갈등과 대립과 마음의 동요를 경험하고 있다.
죽음 앞에 철저히 무능력한 인생이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인생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통해 참된 소망과 연합,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본문의 예수님은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죄의 세력을 무너뜨리시고 생명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끄실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부활이 먼 미래에나 주어질 사건이 아니라 현재 부활을 경험하며 살 수 있음을 드러내신 것이다.
나사로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앞으로 전개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죄에 세력에 매여 살아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를 죽음에 내어준 슬픔의 눈물이라고 착각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의 가치와 기준으로 예수님을 평가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허망한 일이며 잘못된 생각임을 본문은 보여준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믿음을 통해 부활과 생명을 현재적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제시하신다.
이는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자로 살아갈 때 부활의 현재적 사건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죽음의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며 상황에 매이게 되는 한계에 대해 자유함을 얻는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풍성한 은혜는 더욱 견고한 믿음을 세우게 만들며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요일5:4)
지난 날 나의 신앙도 부활은 먼 미래에 있은 사건으로만 이해하고 부활하신 주님과 교제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막연한 생각으로만 여겼던 자이었다.
바리새인에 제시하는 부활의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부활의 현재적 사건에 대해 무지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부활은 감동과 감사의 사건이 되지 못했으며 부활절은 형식적 절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현재적 사건이며 날마다 복음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은혜의 현장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 은혜가 크며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발견한다.
무지하고 부활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게 하시며 주님과 함께 연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인생이 되길 소망하며 교회의 모든 지체들도 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삶이 될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속에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부활도 제대로 모르고 무지함으로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던 자를 이끌어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신 은혜가 참으로 크심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실재적인 모습을 드러내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을 현재적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선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오늘도 믿음으로 받고 그 안에 연합되기를 간구합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과 부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날마다 구하고 그 길로 나아가게 하시며 주님을 만나 생명을 누리는 자로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세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갈등과 대립, 분열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자는 연합과 하나 됨을 경험하며 생명의 공동체가 됨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그 생명의 공동체로 세워지게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날마다 만나고 교제하는 자로 서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모든 삶의 인도자가 되시고 능력자가 되시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