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물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든가, 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므로, 나는 《케임브리지 근대사》의 제 1차 및 제 2차 간행과 제각기 관계가 있는 두 구절을 인용하여 주제로 삼을까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특별 평의원들에게 보낸 1896년 10월의 보고서에서, 액튼(1834-1902)은 자기가 담당해온 역사 편찬 사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세기가 후게에 남기려고 하는 지식을 전부 다 기록하는 데는, 또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데는 지금이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기회다. 슬기로운 분업(分業)덕분에 우리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이 국제적인 연구에 의한 가장 새로운 문서와 가장 원숙한 결론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릴 수 있다.
우리 세대는 현재로서는 아직 완전한 역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상투적인 역사를 처리할 수 있고, 또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에 이르는 도상에서 우리가 지금 도달한 지점을 알려줄 수는 있다. 오늘날에는 어떤 지식이든지 알아낼 수 있으며,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거의 정확하게 60년뒤, 조지 클라크(1890-1979)교수는 제 2차 《케임브리지 근대사》의 사론에서 언젠가는 완전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액튼과 그의 동료들의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그후의 역사가들은 전혀 그런 예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일이 계속해서 극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의 정신을 통해서 전해져 온 과거에 대한 지식이 그들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라는 사실, 따라서 결코 바뀌지 않을 원소적(元素的)이며 비인간적인 원자로 구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탐구의 길은 한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 어떤 성급한 학자들은 회의주의로 피해 버리거나,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 관점이란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또 다른 사실과 유사하며,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학설로 도피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학자들이 서로 맹렬히 충돌하고 있을 때는 그 분야가 연구에 있어서 크게 융통성을 갖게 된다.
나는 자신이, 무엇이건 1890년대 씌어진 것은 모두 넌센스라고 말하기에 충분할 만큼 현대적이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1950년대에 씌어진 것이라면 어떤 것이나 모두 뜻이 있다는 견해를 수긍하는 데까지 진보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런 연구는 흔히 역사라는 것의 본질보다도 상당히 광범한 문제로 들어가게 마련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줄 안다.
액튼과 틀라트의 경우가 이렇게 서로 엇갈리는 것은 이 두 발언 사이의 기간 동안에 일어난 우리의 전반적인 사회관의 변천을 반영하는 것이다. 액튼이 빅토리아 시대 후기의 적극적인 신념과 냉정한 자신을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데 비해서 클라크는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당혹한 혼란스런 회의주의를 권하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의 시대적 관점을 반영하고, 또 그 대답은 우리가 현재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더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답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것이다.
자세히 검코해 보면 나의 연구주제가 중요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이와 같이 광범위하고 중대한 문제를 꺼내어 주제넘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19세기는 사실을 매우 존중하던 시대였다.
《고된 시기》의 주인공 그래드그라인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사실뿐이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은 대부분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1830년대에 랑케는 역사가가 할 일에 대해 「도덕주의적 역사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시도하고, 오직 틀림없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뿐이다.」라고 했지만, 이 그다지 심오하다고 할 수 없는 경구(警句)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3세대에 걸쳐서 독일, 영국, 프랑스의 역사가들까지도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마법의 말을 주문처럼 외면서 진군했다. 이 주문도 대부분의 주문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들로 하여금 혼자서 생각하는 귀찮은 의무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역설하는 실증주의자(實證主義者)들은 그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여 이 사실 숭배를 조장했다. “우선 사실을 확인하라, 그런 다음 사실에서 결론을 추츨해야 한다”고 실증주의자들은 말했다.
영국에서는 이 역사관이 Locke에서 Russell에 이르는 영국 철학의 지배적인 조류인 경험론의 전통과 완전히 조화되었다. 경험주의의 인식론은 주관과 객관의 완벽한 분리를 전제로 한다.
사실이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부터 관찰자에게로 부딛쳐 오는 것이며, 따라서 관찰자의 의식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이것을 받는 과정은 수동적인 것, 다시 말해서 주는 것을 받은 뒤에 관찰자가 이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중사전(中辭典)》은 편리한 대신 경험주의 학파의 선전서 구실을 하고 있는 책인데, 사실이란 ‘추론과는 전혀 다른 경험의 소여(所與)’라고 정의함으로써 두 과정이 별개의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역가사에 대한 상식적인 관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역사란 확인된 사실의 집성(集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된다.
생선을 생선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것처럼 역사가들은 문서나 비문(碑文)속에서 사실을 얻을 수 있다.
역사가는 사실을 얻어 집에 가지고 가서 조리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식탁에 내는 것이다.
요리에 대한 취미가 대단치 않았던 액튼은 사실을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는 제 1차 《케임브리지 근대사》집필자들에 대한 지시서에서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한 일이 있다.
「워털루 전사(戰史)는,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이나 독일인이나 네덜란드인을 두루 만족시키는 것이어야만 하고, 집필자의 명단을 조사해 보지 않는 한 옥스퍼드의 주교가 어디까지 썼고, 그 뒤를 이어 쓴 것이 페어베언(1838-1912)인지, 가스퀘트(1852-1929)인지, 아니면 리버먼인지, 헤리슨인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액튼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클라크까지도, 역사에서의 ‘사실이라는 굳은 핵심’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의심스러운 해석이라는 과육(果肉)을 대비시키고 있지만, 그는 아마 과일은 과육부분이 굳은 핵심보다 쓸모 있는 것임을 잊었던 것 같다.
「우선 사실을 확실하게 손에 넣어라. 그런 다음 해석이라는 모래의 흐름으로 용감하게 돌진하라」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 경험적이고 일반적인 학파의 궁극적인 지혜이다. 이것은 그 위대한 자유주의적 저널리스트 C.P.스코트가 좋아하는‘사실은 신성하며, 의견은 제멋대로이다’라는 격언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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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글을 올리려고 하였으나 어떤 취지건 간에 논란이 있을 것 같아 예전에 타이핑친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올리겠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왜 역사를 공부하느냐와 더불어 평생따라다닐 것입니다.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는 역사공부의 가장 고전적인 입문서로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글일거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이정기님 감사드립니다. 한번 역사학이나 사관, 연구방법론 등을 정리해서 올려보려 했는데 게을러서 올리질 못했는데.. 셤 끝나면 저도 다른 책 올려보겠습니다. 운영자님 관련 게시판 하나 만드는건 어떨지요?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논박하기 보다는 역사를 보는 눈부터 키우고 역사를 바라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첫댓글 20세기 사학사도 괜찮은 책이라우,,나는 머리 아파서 첫장 읽고 잠깐 때려쳤지만서두,,나중에 나도 그거 타이핑쳐서 올려볼까나?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도의 필독서죠.
음,,사족일지 모르겠지만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도의 기초서적은 절대 아닌거 같습니다. 내용이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역사 지식이 맥락적 지식으로 바뀌기 전에 보는 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정기님 감사드립니다. 한번 역사학이나 사관, 연구방법론 등을 정리해서 올려보려 했는데 게을러서 올리질 못했는데.. 셤 끝나면 저도 다른 책 올려보겠습니다. 운영자님 관련 게시판 하나 만드는건 어떨지요?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논박하기 보다는 역사를 보는 눈부터 키우고 역사를 바라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