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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천부경해석을 하다말고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섭니다.
현재의 동서의 학문적인 상식을 바닥부터 두드리는 이야기를 많이 해 놓았는데도 제 설명이 부족해서인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한 나중에 다룰 천부경의 문장 중 생칠팔구와도 연계되는 것이 창세기의 숫자와 팔쾌와 역(易)이라 보며 은문에 쓰인 문자를 분해한 파자들은 룬문자나 가림토와 같은 단순기호문자나 고대인들이 남긴 그림문자등과 연계 된다 봅니다.
왜냐하면 단순기호와 그림문자를 조합해 만든 것이 은문이니 그것을 분해한 파자들은 단순기호와 그림문자로 다시 환원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은문천부경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시대적인 배경이 많이 달라졌다 해도 인간사는 비슷하다 보기에 선대신라와 후대신라를 가르는 분기점이 원효대사가 살아 활동하던 시기를 전후로 해서 백년 정도의 시기라 봅니다.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나 현대사의 시대적 분위기나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데 오히려 선후대의 분기점이 갈라지는 신라의 분위기가 더 심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지금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지만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미국유학은 신분상승과 출세의 지름길로 통하는 확실한 문이었지 않습니까?
영어 몇 마디 할 줄 알면 선진문화를 체험한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바로 연결되기에 각종 방송이나 학술지를 통해 나타나는 모습도 서양식으로 표현해야만 주목받는 시대가 아닙니까?
우리나라 불교의 거두라는 원효대사조차 당나라 유학길에 오를 정도로 당시의 신라의 분위기는 당나라=미국=출세라는 도식과 정확하게 연결이 된다고 봅니다.
당시 신라의 좀 한다하는 귀족의 자식들은 당나라 유학과 당나라 문화와 당나라 언어를 할 줄 알아야 대접받고 출세할 수 있을 정도로 신라는 소중화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씨 조선이 명을 대국으로 받들며 소중화 정책을 편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뉴라이트 세력 중에 건국 몇 주 년이니 뭐니 하며 그 이전의 역사를 가르치지 말자고 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후대신라라고 달랐겠습니까?
당나라와 짝짝궁이 맞아 이루어진 역사외곡의 기본 틀은 이때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로 소중화 정책으로 신라가 돌아선 시기를 분기점으로 사찰은 거대해 집니다.
황룡사 불국사 등등 거대사찰은 후대신라 일이 백 년 안에 거의 지어진다고 보는데 왕이 살던 왕궁이 모텔급 이라면 거대사찰은 특급 호텔급이었습니다.
<현대사에 나타난 기독교의 성장배경을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이런 정황은 당시의 지배계급들이 추진한 후대신라 이전의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뿌리를 완전히 단절하기 위한 고도의 정책적인 결과들이라 봅니다.
그러므로 역사외곡 또한 이때 거의 그 기본 틀이 완성되었다고 보기에 우리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초점도 여기에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후대신라가 만들어 놓은 역사외곡의 기본 틀 속에서 기록된 이후의 사서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말해 봅니다.
사설이 좀 길어졌읍니다만 삼태극과 인연이 닿은 모든 분들이 늘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 불가에서는 천수경을 외우기 전에 정구업 진언이라며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 바하를 세 번 외우게 하는데 특
별한 설명은 없고 그냥 지은 업을 지우게 해달라는 진언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불가에서 나름으로 설명한 것을 보면 이것을 깨끗하도다 깨끗하도다 그렇듯 깨끗하니 모든일이 원만히 성취되어지이다와 길상존 이시여 길상존 이시여 극 길상존 이시여 그 길상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소서 등과 같이 지난 인생의 구업을 참회하고 관음보살님에게 복을 기원하며 소원성취를 비는 특별한 주문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천수경은 매우 중요한 경전중의 하나로 불가에서는 다루는데 그런 중요한 경전의 맨 앞에 나오는 진언이라면 천수경의 전체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이유 없이 천수경의 맨 앞에 이 진언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한자식 표현에는 수자가 닦을 수(修 )로 쓰여 있다.>
이 진언은 복을 구하기 전에 먼저 지은 업을 참회하고 청정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라 보는데 그럼 업은 무엇으로 생겨나게 되는가?
이는 너와 내가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적인 양태인 너가 가진 팔쾌수와 내가 가진 팔쾌수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것이 역(易)이라는 64쾌의 변화양태로 나타나는 인간세이니 그러한 사바세상에서 살아오며 지은 구업을 참회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복을 빌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지 않는가?
따라서 수자를 닦을 수(修)가 아닌 우리말 숫자를 나타내는 수의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불가에서의 설명을 보면 수리 수리에서 앞에 쓰인 수리를 깨끗하도다와 길상존이시여로 뒤에 쓰인 수리를 깨끗하도다와 길상존이시여로 대비하고 있고 수수리를 그렇듯 깨끗하니와 극 길상존이시여로 수수리 사바하를 모든 일이 원만히 성취되어지이다와 그 길상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소서 등으로 대비한다 보는데 개인적인 견해이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해석이라 생각한다.
실제 산스크리트어를 영어로 표기한 것을 보면 Suri Suri Mahsuri Susuei Svaha로 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말 숫자를 의미하는 수와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 쓰인 수자는 닦을 수(修)가 아니라 우리말 숫자를 의미하는 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위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전에 올린 계시글을 다시 한 번 올립니다.
<팔쾌와 역은 고대한국인들의 기호문자다.>
팔괘와 역(易)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처럼 고대의 차이나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 만들어 사용한 독창적인 심리학과 정치철학서로서 그동안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심하게 훼손되었는지 간단하게 예를 들까 한다.
오늘날 팔괘와 역을 이야기하면 아예 손 사레를 치거나 점이나 보는 신비주의 정도로 밖에 보지 않고 있다고 보는데 옛 조상님들은 철저한 인간중심의 실용학문으로 팔괘와 역을 심리학과 정치철학에 사용했다는 것으로 윷놀이와 깊게 연관된 것이 팔괘와 역이라 본다.
우선 팔괘를 이루고 있는 효와 관련된 것부터 이야기를 풀까 하는데 8개의 궤상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겹쳐진 수평선에서 맨 위에 그려진 수평선은 인간의 감정적 양태를 의미하고 중간에 그려진 수평선은 분석과 판단을 내리는 생각의 양태를 의미하고 맨 아래에 그려진 수평선은 인간의 행동양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는 도, 개, 걸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어진 양(一)의 부호는 긍정적인 심리(心理)적 양태를 의미하고 끊어진 음(--)의 부호는 부정적인 심리(心理)적 양태를 의미하게 됨으로 각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개인적인 심리(心理)적 양태의 경우의 수는 8개가 되어 팔괘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최상의 긍정적인 심리적 양태는 건(三)의 부호로 최악의 부정적인 심리적 양태는 곤( )의 부호로 잡을 수 있고 나머지 여섯 괘는 이 사이로 보면 된다.
예를 들면 감정은 부정적인데 생각과 행동은 긍정적일 경우나 감정과 생각은 긍정적인데 행동은 부정적인 경우 같은 것으로 팔괘는 인간의 개인적인 심리적 변화양태를 기호화 시킨 것이고 역경(易經)의 64궤는 너와 내가 가진 심리적인 경우의 수가 8과 8임으로 서로가 부딪히며 인간세의 변화로 나타날 때 생겨날 수 있는 최대의 변화수를 의미하게 되어 8×8=64로서 64가지 경우의 수로서 인간세가 돌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불가에 나타나는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는 수학적 표현도 역경과 깊게 연관된 것으로 수리 수리는 너와 내가 가진 심리적인 경우의 수를 의미하고 마하수리는 그것이 분란의 근원임을 의미하게 되고 수수리 사바하는 너와 내가 수수리로 부딪힐 때 나타나는 64가지 양태의 인간세가 곧 속세임을 사바하로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팔괘와 역경을 모르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수학적 논리라 보는데 석가모니 부처가 한민족 계열의 성자라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참고 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팔괘와 역경은 이러한 인간과 인간세의 경우의 수를 잘 살펴 공동체를 조화로 이끌어야 함을 나타내는 지도자의 정치철학적 지침서로 고대의 한국인들이 만들어 낸 기호문자라 보는데 오늘날 조상들이 남긴 훌륭한 학문적 바탕을 더욱 갈고 다듬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뿌리조차 부정하며 고대 차이나인들이 지어낸 신화적 이야기에 동화되어 <진시황 때 부터라 본다.> 선조들이 물려준 보배로운 유산을 점이나 보는 신비주의 정도로 비하시켜 바라보는 부끄러운 현실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육십갑자로 나타나는 생리(生梨)와 연계된 사주와 심리(心理)로 연계된 팔괘와 역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라이프니쯔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이진수 체계를 역경과 연계시켜 현대 컴퓨터의 작동원리인 이진수의 탁월한 수학적 바탕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한국 고대의 선조들 중 한분이신 태호복희 씨는 최소한 오천년 이전에 이미 그것을 뛰어넘어 심리학과 정치철학적 분야로 까지 확대 적용시키고 있었음이 우리전통 놀이인 윷놀이에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데 라이프니쯔가 수직적 음양운동에 촞점을 맞추었다면 팔괘와 역은 수평적 음양운동에 촞점을 맞추어 자유자재로 팔괘와 역의 원리를 인간문명에 실재적으로 사용한 분들이 우리고대 선조들이라는 걸 이제는 알았을 것이니 자신의 뿌리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 본다.
아울러 여기서는 심리학과 정치철학적 분야에만 국한시켜 간략하게 설명했으나 여러 분야의 과학 원리에 응용할 수 있다고 보기에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해 본다.
또한 슈메르 민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아니라 동방에서 이동해 온 아시아인이며 문자도 가지고 있었다는 영국학자 크레머의 글을 읽어보면 이 사람의 말에 더욱 공감하리라 본다.
개인적인 의견이나 천부경과 관련된 말로 숫자 팔과 연관되어 우리말 팔팔하다는 말이 생겨났으리라 보는데 너와 나의 경우의 수 8×8=64는 인간의 심리적인 양태의 최대 역동성의 변화수를 의미하게 되기에 너와 나의 경우의 수인 8과 8을 그대로 사용해 팔팔하다는 말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리라 본다.
이는 팔괘와 역은 고대한국인들의 기호문자란 앞글을 읽어보면 공감하리라 본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밥 먹을 때 사용하고 있는 숟가락 젓가락이 있는데 수저라고도 하는 것으로 수저의 사용은 은허의 유적에서도 그 흔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유례가 매우 깊다고 본다.
따라서 여러 가지 복잡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이 말 그대로 숫자와 연관된 의미를 수로 무언가를 재거나 헤아리는 의미를 저로 이해하여 수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숫자는 만물의 척도라는 피타고라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천부경에 쓰인 문자의 삼분의 일 정도가 숫자의 형태로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숫자가 우주만물을 나타내는 척도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실제적으로도 숟가락의 사용은 양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젓가락은 질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즉 숟가락은 밥이나 국을 떠먹는 양적 용도이고 젓가락은 반찬을 하나하나 집어먹는 세부적인 용도이다.
그러므로 양적인 의미는 우주만물은 모두 수로 되어 있다는 의미와 연관 시킬 수 있고 젓가락은 그러므로 우주만물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 이치를 알 수 있다는 의미와 연계 시킬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나 민간의 풍습을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가만히 살펴보면 천부경과 관련된 것들이 무수히 있을 것이라 보기에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리라 본다.
<은허는 동이(東夷) 계열의 우리 겨레임을 차이나 인들도 인정하고 있으니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로 보아도 큰 이견은 없다고 보며 이(夷)라는 의미도 원래는 활 잘 쏘는 대인을 의미하기에 후대의 차이나인들이 외곡시킨 오랑케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말고 활 잘 쏘는 대인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 사람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옥편자체가 차이나의 문자 학자들이 만들어낸 기가 막히게 잘 쓴 소설이라고 보기에 옥편을 픽션쯤으로 생각해 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천부경에 대한 문자해독과 문장적해석이 거의 마감되어 가는 지금 무작위로 옥편을 들춰 보아도 외곡의 흔적이 눈에 보일 정도니 다시 보아도 옥편이라는 소설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기에 앞으로는 옥편의 문자적인 의미는 일상에서 문서를 통한 의사소통 정도로 생각하고 나머지 의미는 크게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본다.
이미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를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고 보기에 >
전에도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나는데 학문은 어려운 것이라는 신화적인 착각에 빠진 눈으로 사물을 보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 느낌대로 본다면 그 핵심이 오히려 더 잘 들어올 것이라 본다.
또한 천부경의 문자적인 해석과 문장적 해석을 거의 마친 지금 가림토(녹도문)와 한글을 보니 둘 다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것으로 소리글이며 또한 뜻글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진 가림토와 한글은 소리글이자 뜻글로서 모음과 자음의 기호적인 뜻이 곧 천부경의 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부경에 대한 해석에 온통 신경이 쏠리다 보니 아직 구체적으로 해석을 시도해 보지 않아 확답은 할 수 없으나 한 시간 정도면 팔십퍼센트 정도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림토나 한글 자체가 소리글 외의 뜻글로서 천부경의 풀이이니 천부경의 우주론을 이해한다면 그 의미의 뜻풀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신라 하니까 예전에 본 드라마 선덕여왕이 생각납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같은 모화사상의 책 외에 수많은 역사서들이 이조시대에 금서가 되고 불에 태워버렸다니까 실제 당시의 신라가 저토록 사대주의적이었나는 한번 의심해 봐야합니다. 물론 당시의 신라상황이 당나라와 화친을 맺은건 확실하지만. 적어도 전통종교가 가장 늦게까지 큰 힘을 발휘하고 불교가 늦게 정착한게 신라이기 때문이지요.
불교가-승려들의 권력유착- 가장 큰힘을 발휘한 시기는 고려시대이고.... 김부식도 고려조 사람이고.
이조시대 이전의 모화사상에 대해서는 사라진 역사서들 만큼이나 그 규모나 영향력이 불분명합니다.
물론 사대주의뿌리는
신라에서 시작된걸로 봐도 좋겠지만, 고구려의 영양왕[연개소문이 시해]과 온건파 귀족들도 사대주의라 할수 있겠고. 결정적으로 연남생이 당나라에 붙음으로서 고구려는 끝을 고하게 됩니다. 백제의 경우도 백제판 연남생이라 할 예식진의 배반으로 멸망하고 예식진은 당의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데 http://cafe.daum.net/mookto/GUJC/3361 이쯤되면 백제도 말기에 당에 사대하는 집단이 있었으리라 생각할수 있습니다. 즉, 신라만 사대주의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이렇게 놓고 보면 어쩌면 김부식이 서술한 만큼 신라는 당에 굴종적 태도를 취한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화사상의 완성은 불교가 아닌 유교니까요.
호두까기님 안녕하세요.
이 찗은 댓글로 다 말할수는 없지만 서구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화된 아시아국가중 자기말과 자기글과 자기문화와 자기역사를 완전히 잃어버린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의 악순환 속에서 어떤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고 있읍니다.
제가 후대신라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글과 문화와 정신과 역사가 비틀려 버리면 그 다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복구되기가 힘이듭니다.
정권을 누가 잡았든 그런것은 증요한게 아니라봅니다.
당시 당나라 유학생들이 지은 시를 보면 오늘은 징안에서 저녁을 먹고 내일은 서라벌에서 금의환양의 축배를 들리라와 같은
흔적이 발견됩니다.
그만큼 당나라 유학은 출세의 보증수표였다는 것으로 그사람의 인격이나 학문적인 소양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라이트 세력이 장악했던 후대신라의 분위기를 우리현대사로 예를들면 높은 인격과 학문적인 소양을 쌓으며 수십년을 강단에 섰던 민족진영의 노교수와 미국가서 거지같은 따라지 대학 돈주고 겨우겨우 따온 힉위와 기독교 신자라는 간판을 가진 젊은놈중 우선순위는 젊은넘이었다는 거지요.
지금도 사회적인 븐위기는 비슷하다 보는데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봐도 확연하게 노골적으로 들어난 것입니다.
<김 덕수 사물놀이 패의 이야기를 떠 올려보시면 아시리라 보는데 국내에서 렇게 천대를 받다가
유럽에서 따봉이라는 극찬을 하며 떠벌리니까 그제서야 국내에서 인정을 받는 웃지못할 일이 일어난 시간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라 봅니다.
요즘처럼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절대 왕권에 의해 약 오백년 가까이 세습형태로 당라이트 세력이 장기적인 집권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세기 정도의 식민 지배를 받아도 과거의 조상들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다싶이 한 아시아국가들의 후대 비참한 상황에 비교했을 때 오백년의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 아닐까요?
저는 후대신라를 전대신라와는 완전히 다른 반 민족 성향의 세력으로 단정합니다.
당의 국력에 대항할 세력이 거의 없던 국제상황
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식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나 첨수도에 나오는 돈자와 노자의 의미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우리말 그대로 돈자는 재물과 관련된 돈으로 노자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재물은 쌀이고 쌀이 나오는 곳이 논이니 논을 뜻하는 것이 노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읍니까?
윗글에서도 수저에서 저의 의미를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의미로 말했는데 저와 관련된 말로 저울 제다 재대로 해라 등등이 있다고 봅니다.
후대신라인들이 당나라에 심취하며 비틀린 언어와 문자 체계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말과 문자의 혼돈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 흔적중의
여러 단서들중 중요한 기록이 범어그대로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고 봅니다
불교경전이다보니 거의 변형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 우리말과 범어의 유사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천수경의 진언의 말 하나하나가 명사처럼 뜻말이 됨으로 우리말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범어로 전해진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 봅니다.
끝으로 고려시대나 이씨조선에 전해진 사서들은 대진국 즉 발해에서 전해진 것으로 봐야합니다
후대신라가 저질러놓은 민족정기의 비틀림을 대진국의 유민들이 고려에 귀의하며 상당히 바로 잡혔다고 보나 그것에 결정타를 날린것이 이씨조선이고 일제이고 실증사관이라고 봅니다.
늘 안녕하시기를
답글 잘 읽어습니다. 대진국이 당시에 당을 견제할만한 세력이었다 봅니다,저는. 그리고 신라와도 많은 교역을 했겠지만 이조시대 모화사상에 근거한 분서생유로 없어진것이라 보고. 물론 돌둘님이 생각하시는것 처럼 사대주의에 의한 폐혜도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라 후기의 장보고 청해진이 산동성에 있었다는
성훈님의 칼럼처럼 당시의 국가관이 후에 이조만큼 자주성이나 진취성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대진국과 당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햇을수도 있구요. 후대신라의 기록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등. 모화사상과 숭불사상에 쓰인 책들에서 주로 나오다보니 그로인한 왜곡도 가늠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수리수리나 수저,젓가락에 관한 해석은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의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얘 호두까기님이 잘 보신 것 같읍니다.
동아시아에서 당에 대항할 유일한 세력이 대진국이었다고 저도 봅니다.
문제는 당과 대진국 사이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에 놓여진 동해와 비교할 정도로 큰 장에물이 있었는데 만주일대인 요동이었다고 봅니다.
수와 당이 고전을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닙니까?
서로 눈치만 봤을 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당이든 대진국이든 국가의 존망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대진국은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할 정도로 우리고대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실제적으로도 아시아 각지에 흩어진 고대 사서들을 찾는데 국가적인 심혈을
기우려 역사복원에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신라에 대한 견해도 맞다고 봅니다.
당시는 너무 많은 우리전통이 널리 살아있다보니 노골적으로 이를 부정했다가는 역효과가 날건 뻔한거고 할 수 없이 우리전통에 기대는 척 하며 서서히 진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문화가 홍익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니 껍질만이라도 그에 걸맞을 정도의 흉내라도 내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이 말에도 어페가 있다 보지만 마땅한 말이 없어 그냥 쓰겠읍니다만 삼한통합이후 화랑의 철폐와 함께 진행된 것이 우리정신의 뿌리인 신교를 말살하려한 것이라 봅니다.
이흥년간 이루어진
국가적 사업중 가장 큰 역사가 사찰의 건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백성들은 끼니 걱정을 할 정도였는데 막대한 국가 제정을 거대사찰을 짓는데 쏟아 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양태가 아닙니까?
그 목적은 결국 신교의 정신을 말살하려한데 있다고 봅니다.
삼국동합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화랑을 슬며시 없앤 것이나 무당에 대한 박해들이 그 흔적이라 봅나다.
확실히 제일 먼저 원화를 없애고 그 후신인 화랑을 전후에 없애버린것은 토사구팽 이지요. 김유신과 천관녀의 야사도 있을정도로 화랑조차 출세를 위해선 전통종교계를 멀리 해야 했으니. 아마 이건 김유신의 가야출신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겠지만요. 김춘추 이후의 불교 융성과 신교의 몰락, 사대주의의 영향력은 연구가 더 되어야겠지만 천관녀 야사가 신교몰락의 신호탄이라 보고 있습니다.
글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호두까기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역사를 보는 관점이 상당히 균형이 잡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역사책으로만 역사를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어떤 분이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글을 올리신것 같은데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역사란 살아있던 사람들의 기록인데 고리타분하게 글자몇자만 가지고 따진다는 것은 이미 죽은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과 연계된 역사해석이 현실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예를 들면 이 순신장군이 훌륭했다는 이야기 말고 왜 훌륭하게 되었는지 자라온 환경이 어떠했는지 어떠힌 교육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야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자라온 배경들을 가르쳐야 제1, 제2의 이순신장군이 나올 것 아닙니까?
다른 모든 분야의 여러 훌륭한 위인들의 공적만 가르치지 말고 그런것 보다는 그런 훌륭한 공적을 이루기까지 자라온 배경을 더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후대또한 그와 같은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것 아닙니까?
지금의 역사교육을 보면 알맹이는 없고 그저 훌륭했다는 성과위주의 지식들만 달달 외우게 한다고 보는데 이래서야 진정한 역사교육이라 볼 수 있나요.
속에 담았던 소리를 조금해 봤는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늘 안녕하시기를
저도 좀 고집스런 글을 올렸는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름철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