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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카페] 밤이슬을 맞으며...
 
 
 
카페 게시글
▷ 휴게실 스크랩 아내에게 미안하다
그 사람 추천 0 조회 507 13.05.18 19:30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

시인 서정홍님,

지금은 경남 합천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서정홍님의 아내에 관한 시들만 모아

나름 편집해서 올려봅니다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을 몰래 훔쳐 보다가

결국에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58년 개띠 농부시인 서정홍님의 꾸밈없고 소박한 시

우리네 삶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글이라

다소 길더라도 부담없이 읽어실 수 있을겁니다

 

오월이 가정의 달이라지요

많이들 이해해 주시고

많이들 사랑해 주십시요

그런 사람 또 없담니다...

 

 

어른이 되면

 

여보, 여기 앉아 보세요.

발톱 깎아 드릴 테니."


"아니, 만날 어깨 아프다면서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해요."


하루 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 아버지는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발톱을 깎아 주고

서로 어깨를 주물러 줍니다


그 모습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빨리 장가들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면

어머니 같은 여자 만나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습니다...

 

 

맞선 보던 날

 

그대
처음 만나던 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 가슴으로
그대 앞에 앉아 있으니
나보다
그대 가슴이
더 아파 보였습니다

고집투성이 가난한 사내를 만나
평생토록

험한 삶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 삶보다
그대 삶이
더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대
처음 만나던 날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가
땅을 적시고
우리의 야윈 어깨 사이로 스며들어
가슴으로 흘렀습니다

 

 

맞선을 보고, 그 뒤

 

다방은 언제나

남의 집같이

서먹서먹하다고 말하던 그대

 

밝은 대낮에

다방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 보면

모두 일 않고

놀고먹는 놈팡이처럼

보인다던 그대

 

그래서 우린

창동 학문당 책방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두 사람 찻값이면

괜찮은 책 한 권 살 수 있다는

그대의 알뜰함에

놀라는 눈치 보이지 않으려고

능청을 떨던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허풍선이 사내의 가난을

보기 좋게 길들이던 그대 앞에서

내 허물이 하나씩 벗겨지고

나는 그대의 사람으로

그대는 나의 사람으로

포근히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장가 가던 날


꽃가마 타지 않아도
따뜻한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해도
옷이 수백 벌 된다는 영화 배우 견줄 데 없이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사람아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새 옷처럼 갈아입고 신혼 여행 떠날 때
늘 입던 옷이 편하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마음 넉넉한 사람아

배부른 사람들이야
미국, 일본, 프랑스로 나 돌아 다니며
우리 수십 날 굶고 벌어야
하롯밤 잘 수 있는 호텔방에서
무지무지하게 비싼 개꿈들 꾼다지만

우리야 이웃같이 가까운
부곡 온천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고향 마을 아지매 닮은 여관 주인에게
돈 주고 잠자 본 일은 평생 처음이라면서
싱긋이 웃으며 맞이하던
신혼의 첫날 아침

겨울 햇살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고
포근한 사람아

 

 

첫 월급날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다

혼인하고 첫 월급날

아내는 그 월급봉투를

장롱 속에 깊이 넣어 두었다

동상 걸린 발이 아침마다 퉁퉁 부어

구두 한 번 신지 못하고

주야 근무와 특급 작업해서 받아 온 첫 월급을

어찌 함부로 쓰겠느냐며...

 

나는 검정 고무신과

나일론 양말조차 살 수 없는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동상과 축농증

그밖에 여러 잔병을 달고 다녔다

 

첫 월급날 밤 아내는

얼어 터진 내 발을 주무르며 울었다

그 눈물이 내 발등에 떨어졌다

그날 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잊는다고 어찌 잊혀지겠는가...

 

 

혼인 10주년

 

저 작은 덩치로
나를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싶었단다

 

저 여린 눈빛으로
이 험한 세상 이겨 나갈 수 있을까 싶었단다

 

그래도 남자는

여자하기 달렸지
성질 못된 사내 만나
날마다 티격태격하느니
혼인 첫날부터
꽉 잡아서
내 사람 만들어야지

싶었단다

 

몇달 살고 보니
어쭈, 좁은 방에서 담배를 피우질 않나

연락도 없이 밤늦게

손님을 데려오질 않나

술마시고 난 다음 날
늦잠 자고는 오히려

큰소리치지를 않나

 

십년 살고 보니
굵고 단단하고 모난
것들

치이고 시달려
어느 새 서로 닮은 모습을 보고 놀란단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는
세상에 한 사람뿐인

내 사랑,

 

이웃끼리

얼굴 붉그락 푸르락하지 않아도
모두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만들 것이라며

많은 사람 만나고 헤어지면서도
딴 곳에 한눈팔지 않는 내 사랑,

 

그 마음 하나 믿고

살아간단다
내 아내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하나...

 

화장품 거꾸로 세워

마지막 남은 한 방울 까지

다 쓰고 말겠다는 아내를 보면서

 

세상은 늘 거꾸로 돌아가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참기름, 꿀병 할 것 없이 거꾸로 세워

마지막 남은 한 방울 까지

다 쓰고 말겠다는 아내를 보면서

가난한 우리들의 사랑을 생각했다

 

가난할수록 깊어만 가는...

 

 

둘...

 

멀건 대낮에

여성회관 뒤뜰회관 교육회관으로

취미교실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아내에게 미안하다

 

생활꽃꽂이, 동양화, 인체화

서예, 사진교실, 풍물장고, 생활기공

교실마다 가득 찬 여성들을 보면

아내에게 미안하다

 

혼인한 지 십칠년

철없는 자식들 키우느라

취미교실 문 옆에도 못 가보고

뒤돌아볼 새도 없이 십칠년

 

하루일 마치고

별빛 달빛을 머리에 이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아내에게 미안하다

 

 

재형저축

줄일것도 없는 살림살이
쪼개고 또 쪼개어 재형 저축을 들려니
기쁨보다 서글픔이 앞선다

저축을 하기 위해
더욱 더 허름하게 살아야 할
아내와 자식놈들 때문일까...

빈 살림살이 만큼이나
텅 빈 가슴으로
오 년짜리 재형 저축 신청서에
도장을 찍는다

오년 뒤엔
열 평짜리 아파트라도
마련해보자고 눈물을 모았다

삼백만원 하던 아파트 값이
삼천만원으로 오를 줄 모르고
어리석게도
참으로 어리석게도
헛된 꿈 하나 이루기 위해
온 식구의 눈물을 모았다

재형저축 타던 날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챙기고 있었다
처음 만져보는 큰 돈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일러 주면서
빛 바랜 통장을
내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돈을 쑥 내미는 은행직원에게서
일천만원짜리 수표 한장 받아쥐고
은행문을 나섰다

오년전 재형저축 신청서에
도장을 찍던 날처럼
노오란 은행잎이
공단 거리에 마구 흩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꿈이 흩어지듯...

그때는

아주 작은 꿈 하나 품었지만
오늘은 텅빈 가슴뿐
눈가에 눈물이 어리었다
눈물 속으로
가난한 아내의 꿈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눈물 그리고 사랑

 

그토록 눈물 많던 아내가
갈수록 눈물이 없어졌다

몇년전 텔레비전에서
헤어진 이산가족들 만나
얼싸안고 기뻐할 때에
이산가족도 없는 아내는
아침 밥숟가락을 들다가도
멀건 콩나물국에

눈물 뚝뚝 떨어 뜨렸다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는
삼류 연속극 보다가도
제 일처럼 울던 아내였다

오늘은

위도 앞바다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로
291명이 죽었다는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속 메마른 자신이
갈수록 무서워진다는 아내를 꼭 안고
내가 울었다

 

 

엉터리 시인

 

시를 쓴다고

모두 시인은 아닙니다

 

시를 쓰지 않아도

아내는 시인 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잠자리 들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아내의 삶이 시가 되어

온 식구들을 기쁘게 하니

아내는 시인입니다

 

아내에 견주면

저는 늘 엉터리 시인 입니다

 

 

차이

 

넉넉한 사람들은
죽기가 두려워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기가 두려워 기도한다 

 

 

못난이 철학

 

땅 한평, 방 한칸,

물려주지 않고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 덕에
가난한 이웃들과

땀 흘려 일하고
즐겁게 밥을 나누어 먹을 줄 알고
밤새도록 마음 나눌 줄 알고
큰 슬픔도 가슴에 품고

말없이 견딜 줄 알고
아무리 작은 일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무엇보다 사람 귀한 줄 알고...

 

 

밥 한 숟가락

 

밥 한 숟가락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사흘 밤낮을 꼼짝 못하고

끙끙 앓고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밥 한숟가락에 기대어

여태 살아왔다는 것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이승철

 

천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을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나의 심장쯤이야 얼마든 아파도 좋은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걸 줄수있어서 사랑할수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나 태어나 처음 가슴 떨리는 이런 사랑 또 없을테죠
몰래 감춰둔 오랜 기억속에 단 하나의 사랑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아픈 눈물 쯤이야 얼마든 참을수있는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걸 줄수있어서 사랑할수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그대 웃어준다면 난 행복할텐데
사랑은 주는거니까 그저 주는거니까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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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3.05.18 21:46

    ? 근데 심야님은옆집 달빛카페로가셧나 통 안보이네요

  • 작성자 13.05.19 20:10

    알아본다에 약지걸어 봅니다...

  • 13.05.18 21:08

    아내에게 미안 합니다..
    이시간 까지 생활전선에..ㅎ

  • 13.05.18 21:44

    헐 고스톱으로?

  • 작성자 13.05.19 20:11

    청단...고? 스돕?

  • 13.05.18 21:45

    시가참 읽기가쉽고 와닿네요 소박한우리네일상을담고

  • 작성자 13.05.19 20:11

    네...그렇지요~^^

  • 13.05.19 01:47

    좋은글 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 13.05.19 20:12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3.05.19 20:13

    배경음악이 있는데 이상하네요...

  • 13.05.19 13:31

    애잔합니다....
    오늘은 음악은 없나 봅니더.(이승철의~~~)

  • 작성자 13.05.19 20:14

    이상타~?? 제컴에선 들리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 13.05.20 11:45

    애잔합니다....
    오늘은 음악은 없나 봅니더.(이승철의~~~) 2

  • 13.05.19 17:38

    돌아보면~~ 어느 남자라도 미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삶에 찌들어 살다보니 챙기고 가지못할 뿐이지요?

  • 작성자 13.05.19 20:15

    그러게요..
    사람 사는데 다 그렇고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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