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따윈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 유병록
참 애쓰는구나
지구 멸망을 막으려 분투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화관을 나와
자주 들르던 칼국숫집에 간다
사정이 생겨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상 칼국숫집이 그 집뿐이겠냐만
그 비빔칼국수와 황태칼국수를 먹지 못한다니
친구 같기도 하고 자매 같기도 한
한 명은 사장님 같고 한 명은 직원 같기도 한
아주머니두분
도대체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슬픈 일이 있었는지
임대료가 턱없이 올랐는지
멸망한 지구처럼 불 꺼진 가게 앞에서 머뭇거리다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하다
앞으로 칼국수를 먹지 않겠다 다짐하다
지구 따윈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칼국숫집이 없어지는 건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우리 사랑은 왜 여기까지인지
집까지 걷기로 한다
칼국수의 맛을 기억하는 데 온 저녁을 할애하기로 한다
- 시집『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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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껏 살아보면서 함께 해 온 사람들이 낯설어지는 요즘입니다
법 없이도 살 것 같던 이들이 분법 위법 탈법에 민감해지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대놓고 정권교체 혹은 정권 유지를 입에 올립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그런대로 잘 나가던 이들이 다른 영역을 기웃거리다 구설에 오릅니다
그네들은 모두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든 투표만 끝나면 남의 일로 여겼지요
가끔 만나게 되면 자주 들리던 음식점에서 한끼 식사를 하고 술 한 잔 나누던 이웃이었는데
정치 이야기 말고도 웃으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얼굴 마주하기가 껄끄러워졌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근황마저 '좋아요' 누르기가 망설여지니 살맛이 줄어듭니다
오늘은 모종을 좀 구입해서 텃밭에 나가 심고,
싹이 튼 작물에 비료나 조금 보태줘야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