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li, Chaconne in G minor
비탈리 ‘샤콘’
Tomaso Antonio Vitali
1663~1745
Sarah Chang, violin
Jun Markl, conductor
English Chamber Orchestra
No.1 Studio, Abbey Road, London
1998.09
세월호 참사의 비통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비탈리의 샤콘'을 듣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
▶렘브란트 <갈릴리 해의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캔버스에 오일, 1633.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그림인 이 작품은 1990년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뒤 아직까지 그 행방을 못 찾고 있습니다.
샤콘(chaconne)은 파사칼리아(passacaglia)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변주곡 양식의 곡입니다. 그중 샤콘은 17세기에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춤곡으로,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에 들어가 기악 형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비탈리의 샤콘’은 ‘바흐의 샤콘’과 더불어 이 양식에서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비탈리는 이 작품을 그 시대의 스타일을 따라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곡(Chaconne for violin and basso continuo)으로 작곡했으며, 1867년에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드(Ferdinand David)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하여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3부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가 이를 오르간 반주로 편곡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지노 프란체스카티(Zino Francescatti)는 관현악 반주로 편곡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기악 음악은 작곡 기법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4마디 또는 8마디의 짧은 선율이나 음형을 반복하여 변주하는 오스티나토(ostinato) 기법을 도입하였습니다. 베이스 음형을 반복하며 그 위에 다른 성부의 선율 진행을 얹어 변화를 주는 이 오스티나토 기법의 변주곡 양식은 단순한 음형을 가지고 계속 변화를 줌으로써 단악장의 음악이면서도 악곡에 제법 긴 지속성을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비탈리의 샤콘은 이 오스티나토 기법을 사용하여 첫 4마디의 주제가 화성적 골격을 이루면서 상성부의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조성과 리듬에 변화를 주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G단조 3/2박자 203마디의 48개 변주로 이루어진 곡입니다.
바흐보다 22년 먼저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현악기 연주자였던 음악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조반니 비탈리는 모데나의 프란체스코 공작의 궁정악단에서 첼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고, 비탈리 자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12세부터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궁정악단에서 안토니오 마리아 파초니에게 작곡을 배운 그는 1693년 <Trio Sonata 모음곡집>을 첫 출판한 이후 작곡에 힘을 기울여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었습니다, 평생을 모데나의 궁정악단에서 보냈으며, 장년에는 악장으로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볼로냐 아카데미아 필하모니를 창설했고 바로크 볼로냐 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인데, 많은 작품을 썼지만 바이올린 소나타와 실내악곡 몇 곡이 전해질 뿐입니다.
‘비탈리의 샤콘’은 진위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첫째, 바로크 시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낭만적 음색과 정서가 묻어난다는 것이죠. 둘째, 자필 악보가 없습니다. 사후 150년이 지난 1867년, 페르디난트 다비드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해서 발표하면서 “원래 작곡자가 비탈리”라고 밝혔을 뿐 그 밖의 다른 증거가 없습니다. 셋째, 비탈리가 남긴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진위를 가릴 자료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 작품이 비탈리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 또한 없으니, 여전히 ‘비탈리의 샤콘’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Sarah Chang 장영주 - Vitali Chaconne]
‘바흐의 샤콘’과 ‘비탈리의 샤콘’
‘바흐의 샤콘’은 그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BWV 1004의 마지막 곡입니다. 조성은 D단조이고, 무반주, 즉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등의 반주 없이 네 줄 바이올린 하나만 가지고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성부를 동시에 연주하려면 상당한 기교가 요구됩니다. 마치 두세 대의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죠. 후에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부조니가 이 곡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했기 때문에 피아노로도 연주됩니다. 반면 ‘비탈리의 샤콘’은 조성이 G단조이고, 바이올린 독주에 오케스트라나 오르간, 피아노 등으로 반주를 할 수 있게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이 편곡을 했습니다.
‘바흐의 샤콘’은 남성적이며 '영원을 향한 끝없는 비상(飛上)'이라고 하며, ‘비탈리의 샤콘’은 여성적이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고 합니다. 또 두 작곡가의 샤콘을 종종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그리스인의 정신세계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누었는데 이에 따른 것이지요. 아폴론은 그리스인들에게 지혜와 평정을 상징하는 신인데 ‘바흐의 샤콘’은 선율적인 요소보다는 화성적인 진행이 강조된 만큼 아폴론적이라는 것이고,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격정을 상징하는 신인데 ‘비탈리의 샤콘’은 심금을 울리면서도 격정적인 선율적 진행이 강조된 만큼 디오니소스적이라 하는 것이겠지요. 어쨌든 바흐의 작품은 ‘영원을 향한 끝없는 비상’으로, 비탈리의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므로 요즘처럼 슬플 때 들으면 위안이 될까요? 아니면 그 슬픔의 깊이를 더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