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베들레헴 교회 신도로, 약 2년간 직접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제 영의 성장을 느낀 사람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다짜고짜 번영신학은 이단이다; 부함은 죄악이고 무조건 가난이 답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을 먼저 아십시오. 하나님이 목사님을 선교사로 파송한 곳은 물질만능주가 팽배하고 아메리칸드림의 나라인 “미국” 입니다. 목사님은 미국땅에 있는 더 많은 물질에 목마르고 알라딘 램프를 꿈꾸는 “미국인”들을 향해 번영신학을 경계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정경제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이슈를 다룰 때 처음 논의하는 것은 가난을 어떻게 무엇으로 정의하느냐 입니다. 상대적인 박탈이냐.. 절대적인 빈곤이냐.. 미국은 아프리카처럼 절대적 빈곤으로 물이 없고 음식이 없고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 굶어 죽어가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한 예로 가난을 측정하는 척도에서 10대들에게 스마트폰의 사용을 묻는데, 스마트폰을 갖지 못하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미국입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전화기를 잘 사용하지 않아서 필요가 없고, 사용하는 구형폰으로도 생활에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카톡이라는 것을 못해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쉽지만 큰 문제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아마 멀쩡히 있는 폰 내다버리고 큰 돈을 들여서 새로운 폰을 구입하고 또 신형이 나오면 그것을 사야하고.. 마치 물질의 노예가 된것처럼.. 목사님의 경계의 말씀은 이런 상대적인 빈곤에서 오는 정신적 문제를 지적하고 고리를 끊고 벗어날 것을 권면하는 것 아닐까요…
저도 성경적인 번영신학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거지같이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우리들보다 더 잘 아시고 그것을 다 주십니다.
그러나! 그 부와 가난의 기준이 누구에게서 나와야 할까요? 당연히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루치의 만나만을 주신 것처럼, 그분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필요한 것만 주시지, 그 이상의 썩어질 것들은 우리에게서 없애버리십니다. 그것은 죄 그 자체이거나 죄에 빠질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만약 어떤 크리스찬이 세상의 기준에서 가난한데 하나님이 보시기엔 그것이 그사람에게 축복이고 그사람의 필요에 족하다면 아마 그만큼만 허락하실 겁니다. 반대로 어떤 크리스찬은 굉장히 부자인데,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는 그의 부를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 10에 9를 선교에 투자하고 하나님께 다 돌려드린다면 하나님은 아마 그 사람에게 계속 부를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그사람이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쌓는 방법이고 부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니까요.
하나님의 축복과 번영을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성경속에 나온 인물들이 부자고 하나님이 부로 축복하셨다고 부자여야 한다.. 이런 무지한 생각도 잘못이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가난한게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한사람 한사람 손수 빚으실 때 그 사람마다의 특성이 다르고 축복하는 방식이 다르게 정하셨다고 봅니다. 그러나 확실히 분명한 것은 내 모든 필요를 아시고 적합한 때에 그것을 주실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받은 축복에 이미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사도바울처럼 부할 때도 가난할 때도 그런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부는 사람을 위한 삶의 도구이지 삶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첫댓글 백번 동의합니다
일용할 양식이면 그날에 충분합니다
동감합니다. 설교할때에 '듣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이부분을 더 강조해서 말하고 하는식의 변화는 있기 마련인데 그냥 동영상 한두편만 보고 판단한다면 오해할수가 있지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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