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괴담에서는 목탄 냄새가 난다
고선경
문고리를 붙잡는 손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사내는 펄럭이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실내에서 기르는 식물은 춥다
이 집에는 나 혼자 삽니다 식물 아니고는
우리를 슬퍼하는 동물도 없고요
혼자서 혼자를 상상하는 혼자만이
빛의 그물을 걷어 가는 밤에
격자무늬는 어떤 힘으로
격자무늬를 지속합니까
사내는 문밖에 선 채 타들어간다
진압할 수 없는 불이 계단을 떠내려간다
나는 나를 좀 붓고 싶어서
싱싱하게 눈물도 흘려
안전이 제일이라잖아
우는 사람을 해치면 나쁜 사람이잖아
울지 않는 사람이 우는 사람을 해치고 우는 사람이 울지 않는 사람을 해치고 우는 사람이 우는 사람을 해치고 울지 않는 사람이 울지 않는 사람을 해치는 일
그런데 해치는 게 더 나쁘냐 우는 게 더 나쁘냐
사내는 문을 부수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온몸이 까맣다 땀과 재를 흘린다 식탁 위 찻주전자를 들고 부리에 입술을 댄다
그래 캐모마일 티나 마셔 도움이 될 거야
코 맵다고 움켜잡지 좀 마
너는 상상력이 너무 좋아 혼자 뭘 그렇게 맨날 상상하니 내가 묻자 사내는 음악이 들린다고 했다 댕강댕강 잘린 나무줄기가 보인다고 했다 그걸로 목 조르는 상상
아 상상 좀 하지 마
사내가 조용해진다
등 뒤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이것도 음악 같니?
이빨 나간 접시들이 찬장에서 우르르 쏟아진다
음악을 흐르는 불과 불을 흐르는 음악이 집 안 곳곳으로 침투한다
이 동네는 치안이 좋지 않네
유리창에는 끓는 비가 부딪친다. 유리창의
실핏줄이 터지고
그을린 벽지가 울며
불며 얼굴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