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국민을 찍어누르는 정부
국민은 ‘근거가 뭔지 궁금해도 닥치고 내라는 대로 내야 한다’, 세금내기 어려우면 ‘집팔아 세금내고 이사가는 게 사회정의’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윤희숙(국회의원) 페이스북
지난 주 본회의장에서 홍남기 부총리는 ‘공시가 동결이 정의에 맞냐’며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실소가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공정과 정의를 아무데나 끼워넣는 게 아무리 유행이지만, 관료가, 그것도 경제부총리가 자기 분야를 배신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민망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산가격이 오르면 세금도 응당 올라야 하지만, 어떤 속도로 자산증가를 세금으로 전환할 것인지는 세수 필요와 납세자의 담세능력에 따라 결정할 일입니다. 자산가격이 올라도 아직 소득으로 실현된 것이 아닌데, 세금은 소득으로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산과 소득을 구분하는 것은 조세원칙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즉, 세금부담이 급속히 증가해 소득 증가 속도가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올해 동결했다 내년에 공시가 조정을 재개한다 해도 공정하지 않다, 올해 집값 오른 만큼 올해 다 반영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부총리가 ‘교과서 무시를 업으로 하는’ 청와대를 대변하기 위해 이런 기본을 천연덕스럽게 ‘사회불의’로 둔갑시키는 장면은 관료 전문성이란 가치가 이 정부 하에서 깨끗이 포기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문성만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에서 정부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 의무인 ‘책무성’도 내버렸습니다. 책무성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입니다. 전국에서 공시가 관련 이의신청이 5만 건에 이르는데 조정된 것이 극소수일 뿐 아니라, ‘내집에 왜 세금이 이만큼 매겨졌는지’를 알려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현실화율 관리가 아직 편차가 심해 이를 공개하면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랍니다.
요약하자면, 논란의 소지가 될 만큼 아직 시스템이 불완전하고 정부가 제대로 시세를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세금은 일단 올려놓고 본다, 국민은 ‘근거가 뭔지 궁금해도 닥치고 내라는 대로 내야 한다’, 월급이 안 올라 세금내기 어려우면 ‘집팔아 세금내고 이사가는 게 사회정의’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이건 그냥 대놓고 국민을 찍어누르는 것이지요.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렇게 높아진 이상 공시가 인상을 위해서는 '세액산정을 자신있게 국민에게 밝힐 수 있을 만큼의 정보시스템 정비'가 전제돼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가 국민에게 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