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날로부터 한 달 뒤, 진인이 다시 동굴에 나타났다. 그는 동굴 저편의 지하수를 바라보다 이연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마소를 지었다.
“호오. 한 달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만 고작 여섯 살배기 꼬마가 이런 능력을 벌써 습득했다는 것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군.”
동굴에서 이연을 찾을 수 없자 흔적을 찾고자 동굴 입구를 향해 발을 돌렸다. 진인이 동굴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동굴 위, 날카롭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우렁찬 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진인이 고개를 위로 올리자 절벽에서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바로 옆에 쾅!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가?
“허허. 곰이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인고, 아니라면 악동의 소행인가.”
도인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곰의 왼쪽 발목에 여러 번 꼰 듯한 밧줄이 묶여 있었고, 그 밧줄은 어느 정도 굵기가 있는 나뭇가지에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그 나뭇가지도 곰과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를 봐선 곰은 누군가 설치한 함정에 발이 걸려 절벽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곰은 이미 추락하면서 머리와 배가 터져 죽어있었다.
곰이 떨어지고 일다경이 지나갈 즈음, 동굴 근처의 가파른 언덕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산길을 내려오는 모습이 흡사 다람쥐처럼 재빠르고 제법 앙증맞았다. 마침내 나타난 자는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는지 무척 꾀죄죄한 옷가지를 걸친 이연이었다. 처음 동굴에 왔을 때 입고 있던 의복과 같은 옷인 것 같은데, 색이 바라고 이곳저곳 긁혀 찢긴 흔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신체에서는 먼지는커녕 오히려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곰에게 다가가던 이연의 시야에 이제야 진인이 들어왔다.
“슬슬 오실거라 생각했어요. 진인 그간 무고하셨나요?”
“별 탈 없었느니라. 그보다 이 주변에는 흐르는 물이 없거늘, 건너편 산에 있는 개울까지 가서 씻고 다니던 게나?”
“맞아요. 열흘쯤 그대로 씻지도 않고 지내니 저 자신도 괴로울 정도로 간지럽고 냄새도 나길래 몸을 씻을만한 장소를 찾아다니다 발견하였는데, 종종 갔다 오곤 해요. 집에서 시종들이 씻겨줄 땐 귀찮기만 했는데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꽤나 괜찮더군요.”
이 말을 들은 진인이 순간 생각했다.
‘그렇다면 열흘도 안되어서 동굴을 나왔다는 것인가?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저 산의 냇가라면, 바로 밑에 마을이 있을지언데 마을을 따라 관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으로 다시 올 생각을 했구나. 명석한 너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터. 왜 다시 돌아온 건지 듣고 싶구나.”
“그건 단순하죠. 진인께서 절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으니 기다렸을 뿐이에요. 여기 다시 올 어르신께 허탕치게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이연이 말을 하다말고 동굴로 서서히 걸어간다.
“허허, 다른 이유는 무엇인고? 역시 네 녀석도 이 동굴이 마음에 들었느냐? 어린 녀석이 맛을 한 번 들이더니 보는 눈이 생겼구나.”
어느덧 동굴 안에 들어선 이연이 말을 받았다.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진인께서 저를 데려오신 이 동굴, 이곳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동굴의 기운이 제 몸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전신을 포근한 기운이 감싸고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진인, 잠시 보여드릴게 있어요.”
“무엇인고? 에잇, 들어가기 귀찮구나. 어린 것이 늙은이더러 오라는 게냐? 네가 갖고 나와보거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구요. 이곳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지요. 정 보는 게 싫으시다면……. 뭐 하는 수 없겠지만요.”
이연의 말에 호기심이 동한 진인은 수염을 두어 번 쓸어내리며 골똘이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 동굴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때 이연을 보니,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가는게 아닌가. 옅게 보조개도 보이는 것이 어린 아이가 여간 귀여워 보일 수가 없다.
“허허. 네가 아무래도 내게 장난을 치려는 모양인데,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한 게냐? 아무리 냄새를 가렸다고 하여도 이 정도로 진한 냄새가 다 가려지지는 않는다는 걸 모르는구나. 하하하.”
도인이 입구 앞에 서서 바닥을 슬며시 들여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산나물들과 숯을 이용해 오물의 악취를 감추려던 것은 참 좋은 생각이었느니라. 또한 그 위를 풀과 흙으로 메꾸어 어디가 함정인지 구별이 가지 않게 한 것도 잘했다만, 한 달 전에는 깨끗했던 곳이 이리 변하면 너무 눈에 띄지 않겠느냐? 허허. 그래도 네 나이 또래의 아해는 이런…….”
도인이 한창 말을 하며 동굴 안에 들어섰을 즈음이었다. 동굴 내부에 들어서자 갑자기 위에서 성인 한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그물에서 무언가가 도인을 향해 와장창 떨어져 버렸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전부 동물의 뼈였다. 토끼와 닭 같은 작은 동물에서 곰만한 뼈까지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참 다양하게 있었다. 그리고 사건 현장 바로 옆에는 손에 밧줄을 잡고 있는 이연이 서있다. 밧줄을 잡은 그의 손에는 긴장 때문인지 땀이 묻어나고 있었다.
‘으아……. 괜한 짓을 했나. 아무리 날 이곳에 버려두고 간 걸 복수했다지만 어르신인데……. 게다가 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괜찮았잖아? 이러다 날 놓고 가시면 어쩌지. 아냐. 아냐. 그것보다 진인께서 나 때문에 황궁을 떠나시면 시황제께서 노하실지도 몰라.’
진인이 뼈무덤에 파묻힌 뒤, 일어날 때까지 이런저런 걱정을 바삐하던 이연은 어느덧 일어나 옷가지를 털고 있는 진인과 눈이 마주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진인의 호통이 들리지 않자 곁눈질로 슬며시 진인의 행동거지를 보는데 진인은 바닥에 어질러진 뼈들을 보는데 정신이 빠진 것 같았다.

첫댓글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