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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원문보기 글쓴이: 새언약
거짓 기독교와 서머나 교회가 당한 환난/ 요한계시록 강해
요한계시록 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머나는 에베소 북쪽 약 80km 지점에 있었고,당시 인구는 약 25만 정도로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습니다.'서머나'란 '유향'이란 뜻이 담겨 있는데 이곳은 향료 수출지로도 유명하였습니다. 또한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종교적으로는 온갖 종류의 신들이 모여 있었고 특히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를들어, 서머나에는 기원전 195년에 로마의 여신 키벨레(Cybele)를 위해 성전이 지어졌고, 서기 26년에는 로마 황제티베리우스를 위한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서머나 도시는 로마 황제 숭배의 본부였습니다. 황제 숭배는 요한 계시록에서 사탄의 성육신이라 할 수 있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편, 요한이 계시록을 쓰던 당시 서머나에는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에 그리스도인들을 밀고하면서 고통 당하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조롱하였습니다. 서머나 도시의 유대인들은 황제 숭배를 환영하였기 떄문에 핍박은 커녕 환대를 받으며 고위층에서한자리씩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많은 죽음과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안디옥의 감독이던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보내는서신>을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서머나 교인들이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사랑때문에 조금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핍박을 감당하고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주께 충성스러운 서머나 교회는 사도 요한이 편지를 보낸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빌라델피아교회와 더불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을 받지 않은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8절 후반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기를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고 살아나신 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뜻은 역사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주권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즉,그분의 허락없이는 참새 한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역사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장 18절은 그 의미를 이미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즉, 죽음과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달려있는 것이지 사탄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믿으십니까? 겉으로 볼 때는 마치 악당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 같고 마귀가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허락 하에서 발생하는 사건일 뿐 궁극적으로는 죽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그 죽음은 우리를 사랑하시는주 예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아무 때라도 로마병사들에 의해 죽음에 처할지도 모를 그러한 핍박을 받던 서머나 교회를 향해 우리 주님은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합니다. 이는 그들이 죽더라도 살아날 것을 확실하게 하신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히 사시는 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머나교회는 이 편지를 받으면서 자신들이 혹시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허락된 뜻이며 나아가 죽음을 당하더라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이 약속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9절을 보니 서머나교회는 외적으로는 환난과 궁핍을 겪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그 당시 황제 숭배를 거부하느라 시장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고 파는 행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고 믿으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차단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재정적으로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서머나 성도들이 사고 파는행위를 하지 못한 이유는 로마 황제를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 13장을 보면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짐승의 표를 받지아니한 자들로 하여금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로마 제국을 짐승으로보고 로마 황제를 과거의 적그리스도 중에 하나로 이해하면 정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즉,주님의 재림이 있기 바로 직전에 누군가 로마 제국처럼 통일된 세상 제국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로마 황제처럼 온 세상을 향하여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부를 것을 요구하며 그 신앙의 고백으로 짐승의 표를 받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매매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아무튼 서머나 교회는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한다는 이유 때문에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아십니다. 왜 서머나 교인들이 환난을 당하고 궁핍하게 되었는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 때문이었습니다.그러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서머나 교인들을 향해 대견하며 자랑스러우며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이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주의해야 할 복음의 원수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바로 그 원수는 자칭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바로 서 있는 서머나 교인들을 비방하였습니다.그들은 참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서머나에는 로마 황제 숭배가 아주 극심하였는데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아주 많이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하면 로마 당국에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면 로마 병사가 달려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한 후 황제를 신으로 모시기를 거부하는‘무신론자들’이라는 죄목으로 옥에 가두거나 죽였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착각 가운데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은 사탄의 모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자칭 유대인이란 무엇입니까? 유대인에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센파라는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복음과 원수된 자들입니다. 오직 참된 유대인은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입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바울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은 유대인들중에서 오직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남은 자들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6-8).
한편, 자칭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복음의 길을 막아왔으며 가장 무섭게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왔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의 주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 받은 자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철저하게 사탄에게 속아 사탄 편에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오죽했으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가장 앞장을 섰겠습니까? 따라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을 빗대어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하는 자들은 성령이 없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또한 데살로니가 전서 2장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유대인의 정체를 밝힙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살전 2:14-16).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을 향하여 구원을 받아야 할 복음의 전도의 대상으로 보아야지 유대교를 선호하거나 배울 것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교회는 유대교의 자녀 교육이라 하여 영재 교육의 비결 등을 배우기 위해 교회 강단에 랍비를 세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분별력이 전혀 없는 어리석음의 극치로서 사탄의 하수꾼을 주의 거룩한 제단에 세우는 신성 모독인 것입니다.
또한 ‘백투예루살렘’이라 하여 유대 민족을 우월하게 여기는 교훈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 사탄의 농간입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매우 엄중한 주의를 주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그러면 왜 사탄의 회당입니까?
먼저 신학적인 측면에서 보겠습니다.
첫째, 사두개파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세상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사두개파에 속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미혹할 때 주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신자의 믿음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부활과 기업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수단으로 하여 이생의 자랑을 추구했다는 뜻입니다.
둘째, 바리새파 유대인들은 율법을 인간의 힘으로 지켜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하나님의 합격을 받고자 하던 무리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볼 때,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의는 상당히 뛰어 났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인 의는 결코 하나님께서 받아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의를 세우려는 바리새인의 동기는 사탄처럼 교만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바리새파에 속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 영생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안 이후에 바울이 깨달은 것은 인간이 율법을 지켜 천국에 들어가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원수로 행하는 것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은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하였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은 바리새파의 거짓되고 교만한 의에서 벗어나서 고백합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5-9).
마지막으로 에센파 유대인들이있었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많은 핍박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복음에 큰 혼동을 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극기와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라고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산속이나 먼 광야로 나아가 역사의 종말을 준비하며 금식과 예언 활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산속에 들어가 중들처럼 지내며 구원을 얻기 위해 수도승 생활을 하는 것은 마귀의 가르침에 속은 것이라고선포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라”(딤전 4:1-3).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복음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3-44).
이제 정치적인 면에서 유대인들이 왜 사탄의 회당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그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정치적으로 복음의 확장을 막던 자들이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행 13:50)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 유대인들이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2, 5, 19).
“바울이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더라”(행 17:2-5).
특히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울을 죽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바울(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바울(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라”(행9:22-23).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는 말을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더라”(행 22:22-23).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마침내 공언합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5-46).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주님의 교회 전체에 율법으로 구원을 얻자고 외치는 유대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유대인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 5:9-12).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교회와 회당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며 거룩의 길임을 고백하는 자들이고, 회당은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겠노라고 스스로 서는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녀도 얼마든지 회당을 다니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두개파가 될 수 있고, 바리새파가 될 수 있으며 에센파의 유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본인들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마귀에게 속은 자들로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느새 복음이 외쳐질 때 은혜의 복음에 대항하며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회당에 속한 자들은 인간의 도덕과 의를 외치면서 복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과는 무관한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속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마 23:33-36).
또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막 13:9)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눅 21:10-13)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 당시에도 그리고 계시록이 쓰이던 당시에도 로마 황제 및 유대인들의 핍박을 면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유대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약간만 받으면 됩니다. 또한 황제 숭배도 형식적으로 수긍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마귀의 음성입니다.
마찬가지로 교리적으로도 마귀는 구원을 얻으려면 믿음과 은혜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가 약간 들어가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조건을 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을 감소시키는 그 어떤 음성도 마귀의 음성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카톨릭처럼 은혜로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선행이 있어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유대교 회당의 가르침으로써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알미니언 처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이루신 의’ 외에 뭔가 더 인간의 순종이나 조건이 있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마귀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최근 계시록을 가르치는 자들중에는 예수님만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순교의 정신으로 가난하게 살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또는 예수님 제자들처럼 가난한 자들이 되어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로 가서 선교를 해야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고, 심지어 이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오직 순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들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뭔가 인간적인 의를 추가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 복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의 근원은 마귀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도, 사탄의 회당이 언급됩니다. 물론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빌리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도 유대인에 대한 주의를 요구합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 3:9)
이처럼 우리는 주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유대인들에 대한 경계를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10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충성된 서머나교회를 향한 주님의 위로입니다.
10절에서 제가 깨닫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그가 그 고난 가운데 충성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임하고 그들이 믿음으로 그 고난을 대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여지면서 예수님을 닮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서머나 교회는 앞으로도 10일 동안 더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십’이라는 숫자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상 ‘완전수’입니다.이 의미는 그 고난의 기간이 우리 주님의 주권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이 짧은 기간 동안 고통을 당하지만 결국 그 고통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위로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가 당하는 여러 유형의 고통 때문에 괴롭고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주께 충성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통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반드시 감깐 있다가 끝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이처럼 믿음의 고난과 관련하여 ‘잠깐’이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고, 그 고난으로 인하여 성도들은 더욱 굳건하고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님은 충성된 서머나 교회에 더 큰 위로와 약속을 남기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11절).
둘째 사망의 해란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사망은 모든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육체적 사망이 아니라 불신자들이 당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分離)을 의미합니다. 즉, 둘째 사망은 영원한 죽음으로써 불신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수치의 부활체를 입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4).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그러나 생명까지 바치는 서머나 교회에는 영원토록 둘째 사망의 해는 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니 순교에 직면하여 있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주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이 다 지나고 이 세상의 모든 영화와 영광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영광이 하나 남을 것인데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의 영광입니다.
이 영광은 충성된 자에게 주십니다. 충성이란 죽음에 이르기까지 혹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주님을 향해서 언제나 일관된 자세를 지니며 변함없이 주께 신실함과 성실함과 진실함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고난을 당할지라도 주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충성입니다.
앞으로 장차 미래에 이 세상의 참된 교회에 많은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핍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상의 모든 권세를 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과 나중이시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시련이 있습니까? 신앙때문에 겪는 환난과 궁핍이 있습니까? 가난과 물질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혹시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세상과 타협하기 때문에 환난과 궁핍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라”(요 15:18-20).
“그러나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7-19).
여기서 인내는 환난과 궁핍가운데서도 주를 향한 믿음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는 충성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충성된 신자가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그리고 충성된 신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