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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Orient)과 오리엔탈리즘
동양은 서양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특히 유럽 연합과 영미권에서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주변국을 포괄해 일컫는 말이다.
현재의 '동양'이란 단어는 Orient를 번역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Orient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한자문화권의 국가가 아니라 고대 지중해 세계의 그리스나 로마인들이 이집트나 페르시아같은 중동의 국가들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에 극동인들을 잠시 'Oriental'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지만 지금은 그냥 'Asian'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다. 아시아(Asia)도 본래는 소아시아를 가리키는 말이라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이 번역어는 본디 중국에서 광저우 동녘의 바다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후에 서구 열강과의 접촉이 많아지자, 이는 '서양(서구열강)'에 대비하여 일본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화이론에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동쪽이 될 수 없었다)
이 용어는 일본으로 옮겨가서 서양에 대비되는 열등한 비문명을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가 태평양 전쟁 이후 현재와 같은 의미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널리 사용하고 있다.
'동양'의 실체?
동양이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여러 문명권 사이에는 본질적인 연관점이 없다. 이 단어는 서구에게 있어서의 타자, 즉 비서구권을 가리키는, 명백히 서구의 산물인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동양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하나의 일관된 문명권이 존재한다는 전제는 오리엔탈리즘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지금도, 심지어는 '동양'에 속하는 국가에서도 폭넓게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이 단어을 사용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익숙한 '동양'의 문화권에만 그 외연을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Asian이라고 하면, 보통 영국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남아시아를 가리킨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단어는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시아, 혹은 동아시아를 주로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동양이라는 단어는 거의 한중일 3국을 가리키는 데에 쓰이며, 동남아시아와 인도, 중동은 넓은 범주에서 집어넣지만 전혀 친근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동양철학' 개론서에서 이슬람과 힌두철학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인도철학은 인도철학으로 별도의 철학으로 분류하고 동양철학은 주로 중국의 유교, 도교 철학으로 분류한다.
이것은 왜냐하면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두 문화권은 자신이 속하는 동아시아의 문화권과 서양의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즉, 마치 지구가 동양과 서양으로 이분되기라도 하듯이, '동/서양'이라는 대립항을 운운할 때 한국인의 뇌내에는 '그 외의 동양'에 속하는 제국의 심상이 맺히지 않고 '나 내지는 우리(동아시아)'와 '너희(서구)'를 제외한 제3자는 전부 누락되는 것이다. '그 외의 동양'에 속하지도 않는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일례로, 한국의 역사학과나 철학과는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며, 그 중 서양엔 미국이 껴들어가고 동양에선 서, 남 아시아가 누락되며, 위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지방의 철학에 대해 보통 대학교에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서양의 범주에는 엄연한 유럽 문화권인 남아프리카, 중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오세아니아의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집어넣어야 하는게 맞다.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한국에서 동양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동부 아시아를 지칭하는 데 쓰이지만 번역어로서 동양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때 반드시 동아시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단순히 서양에 대비하는 의미로서 동양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아시아 전부, 즉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을 모두 포함하여야 한다. 물론 문제는 한국인에게 인도나 중앙아시아, 중동은 상대적으로 낯설다는 것이 문제. 허나 서구에서는 동양연구의 범주에 엄연히 동북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중동)등이 들어간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역시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동양 문화권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반면 남아프리카는 유럽 이주민인 보어인이 개척하고 이들이(비율상 소수였음에도) 주류 지배층이었던 관계로 문화권으론 완벽한 유럽 문화권이라 서양에 집어넣으며 아시아와 가까운 오세아니아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서양에 포함시킨다.
굳이 동양이라는 개념을 서양의 상대적 개념으로 쓰고 싶다면 아시아 전체+북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써야 한다.
한국인끼리 동양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만 외국에는 각자 동양에 대한 인식이 다름으로 외국인과의 대화에선 주의하자.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탕>. 대표적인 오리엔탈리즘 화풍의 작품. 누드화라서 링크 처리한다.
20세기 중 70년대에 팔레스티나(팔레스타인) 의 재미 망명객이자 문학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처음으로 지적한, 서구 중심의 동양관(비서구권)에 기초한 각종 언설(discourse, 강연)을 총칭하는 명칭. 사이드 이전에는 주로 동양연구, 즉 동양학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드러내는 언설들을 정리했다. 저서의 핵심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지식은 현실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동양'의 여러 사회가 본질적으로 서로 닮아있으며 '서구'의 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선험적 지식이 '동양'을 '서양'의 안티테제로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관계에는 힘이 작용한다.
예시 :
• 동양 사람들은 전부 머리가 새카맣고 눈이 째지고 키가 작다.
◦특히 중국만을 염두에 두고 "중국인들은 전부 손톱이 길고 요사스럽게 생겼다"는 표현도 많다. 땡땡의 모험에서도 잠깐 등장.
• 동양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강하다.
흔히 말하는 '동양'을 깔보는 선입견이나 풍조가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동양이라는 범주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전혀 상관이 없는 수많은 제국을 서구의 입장에서 타자화해 동일한 담론으로 묶는 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기본전제다. 따라서 사이드의 이 저서가 출간된 이후로는 '오리엔트'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단어가 되어 사장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장된 것은 아니며, 예전에 쓰던 명칭인 중동(Middle East)은 '지중해 입장에서의 용어'이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의 국가들을 '오리엔트'라고 부르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는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렸다. 현재에 와서는 아시아라든지 동양같은 단어가 거의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서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지만.
즉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비난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며 서구가 동양을 인식하고 정의하고 묘사하고 연구하는 그 담론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학문, 희곡, 회화, 문학 등 서구에서 생성된 담론에서 '서구가 동양을 인식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기 때문에 비서구권 나라의 문화를 깔보는 서양인에게 '이런 오리엔탈리스트!'라고 일갈하는 식으로 써서는 안 된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비서구 문명을 깎아내리는 매체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동양 문명을 찬양하는 논조의 작품도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하는 것이다. 불교, 힌두교나 그에 기반한 문화들은 평화주의적이고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사회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나 몇몇 공동체주의 성향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동양권에는 서구권에서 잃어버린 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식의 주장들도 이런 '포지티브 오리엔탈리즘'의 예로 볼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으로 지적되는 부정적 인식들 사이에도 대조적인 것들이 있어서 예를 들어, "동양인들은 비굴하고 소극적이며 겁이 많다." <-> "동양인들은 잔인하고 무례하며 사기를 잘 친다." 류의 모순된 편견도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동과 인도를 제외한 비서구권에 대한 논의는 없으나, 이후 서구 근대의 비서구권에 대한 시각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근대 서구문명의 강력한 영향하에 남은 나머지, 비서구권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을 자신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언설로 소위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에서 외쳐진 구호인 '근대로의 초극(近代への超克: 동양의 정신문명으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을 극복하자라는 의미)'이 있다.
서구권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작품에 따라 상당히 미묘하게 녹아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동양의 신비성이나 이념을 강조하는 형태부터, 직접적으로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나 때론 중국과 일본풍이 짬뽕된 닌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은 만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서구권에서는 영어식 이름이나 지명,소재를 쓰는 만화보다 동양풍의 배경과 소재를 쓰는 만화가 더 인기있다 동양풍 복장과 소재를 이용하는 드래곤볼, 나루토, 블리치등이 이 오리엔탈리즘과 맞아떨어져서 영미권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리엔탈리즘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쪽 계열의 학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문제이지만 이론의 검토대상이 너무 방대하다 보니 사실문제를 정확히 검토하지 않고 논증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 설득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동명의 저서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교보문고 출판, 영남대학교 박홍규 교수가 번역했다. 역주 및 역자의 후기 등에서 번역자 본인의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다가 오히려 옥시덴탈리즘 성향을 보이기도 하니 주의할 것을 권한다.
역사적 변천
언급한대로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용어 자체는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가 기원이기는 하지만 서구의 동양학을 지칭하는 말은 그 전부터 있어왔다.
역사적으로 먼 과거에는 서양에서 동양을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페르시아 제국은 수준높은 문명국이었고, 로마 제국 시절에도 파르티아, 사산 왕조는 결코 열등한 야만국이 아니었으며 이들과 교류하던 유럽인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국에 대해서도 교역을 통해서 세리카(비단을 뜻하는 라틴어 sericum에 a를 붙인것) 등으로 부르며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저 멀리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일단 알고는 있었다.
중세의 이슬람 제국 전성기에는 서구 유럽 문명은 항상 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받는 입장이었다. 십자군 전쟁, 레콘키스타, 시칠리아 탈환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유럽 문명의 기원인 고대 로마의 영토인 팔레스티나,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 등이 모두 이슬람 세력의 손에 넘어갔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동부 유럽이 모두 먹히고 중부 유럽까지 공격을 받았다. 중세 유럽인들도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이슬람 세력과의 교역, 포로생활, 십자군 전쟁, 레콘키스타, 시칠리아 탈환 과정에서 남겨진 이슬람 문명의 모습 등을 통해 동양의 이슬람 문명이 결코 야만국이 아니라 유럽 문명 못지 않게 발달한 문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업신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중세 유럽인들은 동양인들을 신심없는 이교도라고는 욕할지언정, 열등한 야만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세까지만 해도 기독교적 가치관이 깊게 남아 있던 탓에 동방 문명을 상종못할 이교도라 볼 뿐이지 이들을 연구하고 관심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17~18세기에 이르면 유럽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먼저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중동을 인도나 중국과도 교류하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또 계몽주의의 발현으로 유럽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옅어짐에 따라 동양인들을 사악한 이교도들로 보는 관점에서 우리들(유럽)과는 또다른 문명을 가진 세계로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이 시점부터 유럽의 작가나 예술가들이 동양의 문화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동양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당시 이들을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라고 불렀다.
이 시절 전 유럽에 걸쳐서 동양식 유행이 나타나게 된다. 중국풍이라고도 번역하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 터키풍의 튀르크리 등이 퍼졌으며 로코코 양식 전반에 동양적인 유행이 나타났다. 치펜델 양식(chippendale style)으로 불리는 중국식 가구 스타일이 널리 유행했으며, 중국산 도자기가 널리 쓰였고 아예 유럽인들이 우리도 중국풍 도자기 한 번 만들어보자해서 나온게 오늘날에도 유명한 본차이나 도자기이다. 건축양식에서는 영국의 로열 파빌리온,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트리아농궁 등 동양적 색채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널리 등장했으며, 동양식 파고다 스타일의 건축이 널리 쓰였다. 회화양식에서도 프랑수아 부셰, 크리스토프 위에 같은 동양적 화풍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의 오리엔탈리즘은 오히려 동양을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면 서구의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다시 달라졌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패권문명이 되면서 제국주의 시대가 열려 동양 각국이 유럽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렇게되자 이 때부터는 서양에서 동양인들을 열등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하는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은 바로 이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자기들의 우월함을 내새우기 위해 동양을 열등한 존재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정의를 떠나서 원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은 반드시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동양을 열등하게 바라본는 것만이 아니라, 서양이 동양에 인식하고 정의하는 시각 전반을 지침하는 말이라는 것은 위와 같다.
3. 비동양권의 경우에
오리엔트라는 말은 라틴어 oriens에서 왔으며 oriens는 원래 '뜨다'를 의미한다. 물론 해가 뜨는 곳 즉 동쪽을 뜻한다. 오리엔탈리즘은 물론 동양 즉 아시아 문명에 대한 시각을 말한다. 그런데 백인우월주의적인 시각에서 타 문명을 낮추어 보는 경우에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원주민, 오세아니아, 태평양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원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이곳은 오리엔트도 아니고, 따라서 엄밀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도 성립할 수 없다. 지금도 영어의 오리엔탈리즘은 원칙적으로는 이들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럴때는 그냥 간단하게 인종차별이라고 부른다. 사실 유럽에서는 고대부터 교류하던 동양과는 달리 신대륙,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한 적도 없고 인종주의가 타파되는 20세기 전까지는 아예 처음부터 열등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이런 단어가 생겨날 여지도 없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있다는 걸로 비판받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경우 "Indiana jones","Orientalism"으로 검색하면 학술 서적,문서, 언론기사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물론 인디아나 존스는 4편을 제외하고는 동양이 배경이니 오리엔탈리즘이 맞다. 300(영화) 같은 경우도 오리엔탈리즘 적이라며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역시 식민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 아포칼립토의 경우 "Apocalypto","Orientalism"으로는 학술 서적이나 언론 기사가 잘 나오질 않는다. 물론 "Apocalypto", "Racism"이라고 검색하면 숱하게 나온다.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고 해서 비판하지 않겠다는게 아니라 그냥 인종차별로 비판한다는 말이다. 다만, 원칙적으로 이렇다는 것이고 영어에서도 신대륙에 대해서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로 일반인들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등에서 잘 모르고 쓰는 경우이지 학술적, 전문적으로는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