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4.7.28) 말씀/ 딤전 4:15-16
이 일을 계속하라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오늘은 책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기 시작한지 벌써 3년이 넘었지 않습니까? 지난 수요일에는 쇼펜하우워와 경영학에서보다 소설에서 배워라는 책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 책을 프랑수아스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책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공 시몽은 25살인데 자신보다 연상인 39살의 독신 여성 폴에 사랑에 빠져 애정 공세를 펼칩니다. 온 열정을 다해 그녀에게 밤새워 길게 쓴 편지 보내기, 무작정 기다리기, 데이트 신청하기등.. 그러나 폴은 시몽의 적극적인 태도를 부담스러워 피하기만 합니다. 39살이 되도록 사랑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자기 원하는 삶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애정공세 마져 소극적으로 피하는 그녀를 보면서 '시몽'은 다음과 같은 선고를 내립니다.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홀로 깊은 고독으로들어가 자신을 살펴보라는 선고입니다.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 폴이 웃으면서 말하자 시몽이 다시 대답합니다. “가장 지독한 형벌이죠. 저로서는 그보다 더 나쁜 것, 그 보다 더 피할 수 없는 것을 달리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래요.” 그녀는 의지와 달리 속내를 들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오늘 6시 플레엘 홀에서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놓아하세요?” 폴은 미소를 짓습니다. 두 번째 구절 때문 이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은 열일곱 살 무렵부터 남자아이들에게 받곤했던 질문인데...대답같은 것을 한적이 없었습니다.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그동안 책을 읽어도 집중력이 떨어졌고 자아를 잃어버린 채로 살았고, 자신의 흔적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습니다. 그런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넘어에 것을 좋아할 것을 여전히 갖고 있기를 한 것일까? 이 질문은 근본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살다 보면 작은 사건 하나가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때가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듣는 뜬금 없는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 " 라는 질문이 자기 성찰로 이어지고 삶을 환기시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 푸랑수아즈 사강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고 있는가? 1년 후 죽느다고 해도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는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때만이 자기만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까?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을 때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명작 소설을 읽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삶을 환기시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탈 없이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좁고 짧은 자신의 시야 속에 갇혀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며 겨우 남들이 가는 길이나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삶이 끝나는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후회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똑같이 고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성실의 이름으로 살아왔는데 먹고싶은 것 입고싶은 것, 하고싶은 것도 안하면서 근면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무슨 죄가 있단말입니까?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 이런 죈ㄴ 어찌할 것입니까? 우리는 강도 살인 긴음 사기 등등 죄를 나쁜 죄라고 하지만 이런 것은 소극적이 죄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답게 살지 못한 죄, 사랑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죄, 행복해야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허비한 죄. 체념 자포자기하며 살아온 본질적인 죄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독 됩니다. 그저 명부상 틀에 박힌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주어진 삶을 후히 살아야 잘 사는 것임을 우리는 새로이 인식해야 합니다. 독서는 이렇게 우리를 깊은 사고의 세계로 인도하며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해주는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CEO들이 경영학보다 소설을 많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지? 자신에 대해서 인간과 모든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면 제대로 책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인간답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란 소설을 생전 처음 읽고 한참 먹먹했습니다. 누이들이 읽으려고 어디서 빌려온 것을 제 눈에 띄어서 읽어보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 이 소설은 사물 속의 보이지 않는 핵심을 보게 하고, 사고의 깊이를 길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고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 다 인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된 인간 내면의 세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나도 소설 책을 읽고 스스로 질문을 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그리고 파란 책 신양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작은 성경책 속에 인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입시공부보다 문학책에 더 관심이 많았고 신앙에 몰입을 하게되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박경리의 토지를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 같습니까? 물론 글도 좋지만 그 속에 다양한 성격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집필기간 25년, 원고지 4만매, 등장인물 자그마치 600명. 저는 6개월에 걸쳐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을 접하면서 나의 근본을 돌아볼 수 있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참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계속 내 마음에 떠나지 않고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미국 미시시피 강 근처 흑인 빈민가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9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고, 아기는 2주 만에 죽고, 20살에 마약에 손을 대서 감옥을 드나들고, 그러는 사이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못난이가 되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포춘지 선정 최고의 비즈니스 우먼 2위, 2003년 실시된 해리슨 여론 조사에서 3년 연속 미국인이 좋아하는 방송인 선정이 되었습니다. 영화 tv 프로그램, 인터넷 사업 총 막라 해서 10억 달러 이상 자산을 가지자가 되고, 25년 동안 자기 이름을 딴 토크쇼를 진행했고, 그가 언급하는 물건은 방송 즉시 품절되고, 그가 특정 정치인을 지목하면 판세가 달라지는 그런 영향력을 가진 여자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이런 이생 역전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독서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불행하게 살았지만 뒤늦게 만난 새 아버지가 조언을 해준 것이 독서였습니다. “책을 읽어라 그러면 너의 인생이 180도 달라질 것이다.” 그녀는 이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2주에 한권씩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독서 습관을 길러 나가게 되었는데....덕분에 글쓰기 어휘 실력이 늘고 공부에도 좋은 결과를 얻게되고.. 시야도 넓어지고 자신감을 갖게되고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소설 인문 고전과 성경 그리고 신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예수님도 제자교육을 하실 때 독서 지도를 하셨을까요? 성경도 이문 고전이 필요하다고 하는가요? 인문고전 철학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셨지만 예수님도 단지 복음만을 천국 메시지로 전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복음서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비유와 예화를 들으시며 다양하게 은유적 설교를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이야기를 세상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고 좁은 제자들의 생각으로 소화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여러 이야기를 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내용만 강조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듣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주시면서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이야기를 하시면서 복음을 듣는 마음가짐이 어떠하여야 하는가 이야기 하셨습니다. 천국을 소개하기 위해서 겨자씨 비유를 들어주셨고, 누룩 비유, 고기잡는 어부의 그물 비유를 들으시고, 한 영혼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잃은 양의 비유를 들어주셨고, 선한 이웃이 누구인지 가르치기 위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주셨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비유가 우리 말로 사유의 시선을 높혀주고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독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또 남아서 보충수업을 하며 이해못한 것들을 다시 질문하면서 들었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겨자씨 비유, 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자들은 귀로 듣는 독서를 한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4장을 보면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13 내가 이를 때까지 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렴하라 바울 역시도 교회 지도자가 될 디모데에게 구원의 지식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디모데가 사역자가 되어 섬기게 될 때 없신여김을 받지 않기 위해서 말과 행실과 사랑과 정절에 대해서 믿는 자들에게 어떻게 본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권면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 심리상담 교육 철학, 리더쉽 강론이 되는 것입니다. 이 권면 중에 가장 먼저가 눈에 띄는 것이 읽는 것입니다. 당시 바울도 읽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읽는 것은 뭡니까? 먼저 자기가 되어가는 과정, 성숙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배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듯이지만 서경만이겠습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인문 고전 독서를 끊임없이하여 자기를 성장시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잘 권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달라지지 않고 성장하여 변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착념하라는 것은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이 모든 일을 전심전력하라고 합니다. 무엇인던지 마음에 두고 온 힘을 다해야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적당히 하면 용두사미가 되고 하다가 중단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매일의 큐티 말씀 새기기, 수요독서 책 읽기, 주일 말씀 새기기 어떤 것도 전심전력할 때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고, 진보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일을 계속하라! 중단 없이 계속하는 이것이 배움의 기본 자세입니다. 이렇게 조금식이라도 열심히 읽고 깨닫고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때 결과적으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가르쳐서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권면을 잘 듣고 실천하려면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우선 삶을 단순화 해야 합니다. 잡다한 삶의 가지를 쳐야 합니다. 잡다한 일들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많은 일을 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일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하면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주교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름만 들으면 엄청 큰 교회 같고 다양하게 많은 일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주 단순합니다. 일주일에 주일 예배. 수요 독서모임 딱 두 번 모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사이버 큐티 묵상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에 생명을 다할 것을 늘 마음에 새기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들 말씀 묵상과 독서에 매달립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고 잡다한 모임도 생략합니다. 오히려 자유를 누림과 고독 속으로 들어가 자기 성장에 힘을 쏟습니다. 재중 집사님도 뇌경색 아픈 후로 삶이 아주 단순해져서 오히려 업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독서 그리고 새벽기도와 큐티에 집중합니다. 오히려 삶이 풍성해지고 지나온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물론 일을 줄인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을 단순화한 후에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을 통해서 우리도 열심히 읽고 묵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당연 성경 말씀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생명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 성경 책 뿐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살찌게 하는 인문 고전 양서들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근본 뼈대를 이룬다고 할 때 인문 고전 양서들은 살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같이 12제자보다 늦게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띄어난 활략을 하게 된 이유가 세상 초등 학문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예수님 한 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고 붙들었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가말리에 문하에서 사사를 받으면 많은 배움의 과정을 거쳤으며 율법으로도 전통 바리새파였습니다. 그의 서신서들 보면 얼마나 깊고 심오합니까? 단지 물고기 잡다가 갑자기 믿음으로 제자가 된 사람의 글이 아닙니다. 깊은 학문을 하고 철학을 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밖에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복음 외에 알려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러한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성경만이 생명을 주는 유일한 초고의 책입니다. 날마다 진보하고 성숙해지는 것이 스스로 느끼면 됩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예수님만 자랑하면 됩니다.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1) 그러면서 겸손히 또 한 손에 인문고전을 들고 읽고 배우는 삶을 산다면 많은 사람에게 어떤모양이든 영향력을 끼치는 바울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 고지곧대로 다 필요 없다고 바울처럼 세상 것 다 배설물로 여기고 읽는 것을 게을리하면 바울이 되기 어렵습니다 날은 덥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성경을 읽고 책을 읽으며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시간을 갖고 이 일을 계속하여 무더위를 극복하는 휴가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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