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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이사야 7:10-16
2023년7월16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인간이 통제할 수 없거나 관리가 어려운 것이 생로병사화복이다. 태어나거나 늙거나 병들거나 죽거나 화를 당하거나 복을 받는 것은 사람이
맘대로 선택할 수 없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사람이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다. 병이 들거나 재앙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런 일이다. 이번 폭우로 인해서 사람들이 수십명이 죽었다. 군산의
일시 300밀리 폭우는 백년에 한번 정도, 청양의 일시 500밀리 폭우는 500내지 천년에 한번 있을 폭우라고 한다.
폭우, 홍수, 지진, 가뭄, 전염병 등도 인간이 통제하기 어렵다. 이 시간에 지구촌 어딘가 에서는 전쟁, 폭력,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오늘 본문의 남유다 왕 아하스와 그 백성은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리고 두려웠다. 북이스라엘 즉 에브라임 왕 베가와 아람 왕 즉
지금의 시리아 왕 르신이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니라
열왕기하 16:5 KRV
남유다 지역이 거의 모두 침략 당하고 예루살렘 성만 겨우 살아남은 것이다.
르신은 아람 왕이었다(주전 740-733). 앗수르 디글랏 빌레셋 3세에게 조공을 바치던 여러 왕들 중 하나였다. 르신은 앗수르를
배반하는데 앞장섰다(주전 735).
르말랴 아들 베가는 메나헴 아들 베가야를 암살하고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다(주전 740; 왕하 15:25). 베가는
학자들에 따라서 20년 통치 혹은 5-6년 통치한 것으로 본다. 베가는 아람 왕 르신의 영향력 속에 들어갔다. 베가와 팔레스타인이 르신을
추종했다(John D. W. Watts, Isaiah 1-33, Texas: Word books, 1985, 87).
유다왕 아하스가 반앗수르 동맹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이십세에 왕이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십육년을 다스렸다. 유다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다. 유다왕 아하스는
북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다(왕하 16:1-4).
유다 왕의 모델은 다윗왕이었다. 그는 그 조상 다윗과 달랐다. 오히려 아하스는 북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했다. 몰렉을 섬기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게 해서
엎어지면 죽고 통과하면 사는 것이다. 아하스는 자기 중심적이어서 자기만 좋으면 자식은 죽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았다
율법과 규례를 따라서 성전에서 제사장들을 통해 드리는 제사 즉 예배를 무시했다. 아하스는 성전 문을 닫고 율법에 근거한 성전 예배를 멈추게
했다(C. F. Keil and F. Delitzsch, 1&2 Kings, Grand Rapids:William B. Eerdmans,
1982, 398).
아하스 왕 자신과 백성들이 높은 곳, 언덕, 작은산, 푸른나무 아래서 자기들 좋을대로 제사를 드리고 복을 비는 우상 숭배에 빠졌다.
얼마 전 동네 사람 부부가 딸과 자기 집 안마당에 새 차를 주차하고 그 앞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하는 것을 보았다. 딸이 차를
샀는데 알지 못하는 어떤 신에게 딸의 무사고를 비는 것이었다.
역대하 28장에 보면 아하스가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했다. 그 자녀를 불살랐다. 힌놈 아들 골짜기에서
자식을 불사르는 제사를 지냈다(Raymond B. Dillard, 2Chronicles, Texas:Word books, 1987, 221).
하나님은 남유다에 진노하셨다.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왕 베가가 유다를 침공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명을 죽였으며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역대하 28:5-7 KRV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침공한 것은 유다왕 아하스의 불순종과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유다를 아람과 북이스라엘 손에 넘기신
것이다. 물론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을 몰랐다.
아람이 북이스라엘 즉 에브라임과 동맹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유다 아하스 왕의 마음과 유다 백성의 마음이 흔들렸다.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다(이사야 7:2).
북이스라엘 왕 베가의 군대가 하루에 남유다 용사 십 이만명을 죽였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이십만명을 포로로 사마리아로 잡아갔다. 재물을 많이
빼앗아 사마리아로 가져갔다.
아람 왕 르신의 군대가 유다를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포로로 다메섹에 데려갔다. 숫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사마리아 선지자 오뎃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설득하여 유다 포로 이십만명을 남유다에 돌려 보냈다(역대하 28:8-15).
남유다가 아하스 왕과 백성들의 우상 숭배로 나라가 약해지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서 여러 주변 나라들이 남유다를 침략했다. 이번에는 에돔
사람이 와서 유다를 치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블레셋 사람도 유다 평지와 남방 도시들을 침략했고 거기에 거주했다(역대하 28:17-18).
남유다가 사방 적들의 침략을 받아서 망하게 생겼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와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유다왕 아하스 에게 보냈다. 이사야는
여호와가 예수 즉 구원자이다 라는 의미이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 오리라는 말이다. 이사야와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유다왕 아하스에게 보낸
이유는 두 사람 이름 자체가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구원자다.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하나님은 두 사람을 아하스에게 보내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돌아오라고 권면했다.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는 연기나는 부지깽이 같아서
곧 망할 자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들은 얼마 안가서 망하여 죽었다.
그러나 유다왕 아하스는 하나님과 선지자를 불신하고 말씀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이사야 7:10-11 KRV
아하스가 너무 악해서 그 약속을 믿지 못하니 추가로 징조를 구하도록 하셨다. 여기서 그 약속은 3절에서 9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유다왕 아하스는 하나님 보다 앗수르를 의지하고 다메섹이나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고 의지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KRV
이사야 7:14의 히브리어 '하알마'(haalma)는 칠십인경에 헬라어 '헤 파르쎄노스'(he parcenos) 즉 '그 처녀'로 옮긴다.
다른 헬라어 역본들(아킬라, 시마쿠스, 테오도티안)은 '헤 네아니스'(he neanis) 즉 '그 젊은 여인'으로 옮긴다(John D. W.
Watts, Isaiah 1-33, Texas:Word books, 1985, 103).
창 24:43에 '알마'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인, 즉 결혼 적령기 여인에게 쓰였다. 이삭의 아내가 될 처녀 리브가가 물을 길으러 오는
장면에서 쓰였다. 출 2:8에 아기 모세의 누나 미리암에게 쓰였다.
'알마'는 흠이 없는 결혼 적령기 여성을 가리킨다. 혹은 야웨 규범이나 율법이 허용하지 않는 성적 대상으로 쓰인다(잠언 30:19). 혹은
성적으로 성숙한 여인을 가리킨다. '알마'를 영어로 표현할 경우, '처녀'(virgin)는 너무 좁은 의미이고, '젊은 여인'(young
woman)은 너무 넒은 의미이다(John D. W. Watts, 같은 책, 99).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그 처녀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적 답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John D.
W. Watts, 같은책, 99).
이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예수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를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인류의 대속주 예수님이
성육신 하는 과정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오신다는 사실을 몰랐다 할지라도 그의 예언은 처녀 마리아를 예언하는데 쓰임받은 것이다. 성경
전체 맥락에서 보면 그렇게 해석되는 합리성을 갖는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책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와 다시 오실 메시야 예수를
가리키는 책이다.
다른 하나는 본문의 문맥적 해석이다.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이사야 7:16 KRV
알마 즉 처녀는 그 왕에게 알려진 여인이다. 아하즈 왕가에 갓 들어간 어떤 공주일수도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친구 스가랴의 딸 아비아
일수도 있다(왕하 18:2). 아비아는 히즈키야의 어머니가 된다. 태어날 아이는 왕위 상속자이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 왕의 왕가
사람이다(John D. W. Watts, Isaiah 1-33, 99).
당시 왕가의 여인을 통해 태어나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는 과정에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망하리라는 것이다. 이 아이를 히스기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이스기야는 이미 이때 열살 가까운 나이였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2-23 KRV
마태는 이사야 7:14의 예언이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함으로 성취된 것으로 보았다.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칠십인경에 '헤 파르쎄노스'(그 처녀)라고 옮긴 것은 마태의 의도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칠십인경 번역 작업에도 역사하신
것이다(John D. W. Watts, Isaiah 1-33, 103).
아하즈 왕은 하나님 혹은 그의 선지자와 진지한 영적 교감 능력이 없다. 아하즈 왕의 정책은 종교적 혹은 영적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제의적
혹은 종교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하즈는 그의 할아버지 웃시야가 저지른 실수를 생각했을 수 있다. 웃시야는 강성해지매 마음이 교만해져서 악을 행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했다. 여호와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했다(대하 26:16). 아론의 제사장들이 할 일을 하고자 했다. 결국 나병이 들었다(대하
26:18,19).
아하즈는 징조를 구하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거부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를 거부한 아하즈는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KRV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평범한 인간에게 붙일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이다(John Calvin, Isaiah vol.1,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53,
245).
왜 여기 메시야, 구속주가 언급되었는가? 아하즈 왕은 하나님이 제시한 징조를 거부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언약의 토대를 아하즈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메시아가 나셔야 한다. 모든 민족의 구원이 달린 문제이다(Calvin, 같은책, 245).
아하즈 왕 같은 악한 자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침내 메시야를 일으키실 것이다.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약속의 토대를 이룬다(Calvin, 245).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KRV
기근, 역병,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이다. 자연재해, 역병, 전쟁의 세 가지 절망 속에서 구원의 희망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다.
교회의 구원의 토대는 그리스도이다.
유다왕 아하즈 같은 악한 불신자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이다. 예루살렘 도시를 보호하실 것이다(Calvin, 같은책,
246).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 아하즈 같은 악한 불신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택한 자들을 위함이다. 언약의 복을
누릴 남은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신다(Calvin, 같은책, 247).
이제 2023년을 살고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리고 산다. 다시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하루하루 따뜻하고
온기가 있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