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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기 남양주 천점산 봉영사(泉岾山 奉永寺)를 찾아서 ①
- 약수터에서 무량수전까지 -
지난 4월 30일, 흥국사순례를 마치고 절 아래의 한 식당에서 보리비빔밥으로 위기장(慰飢腸) 한 후 다음 행선지로 삼은 것이 봉영사(奉永寺)입니다. 흥국사가 선조(宣祖)의 아버지인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찰이라면 봉영사는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원찰입니다. 공교롭게도 선조와 관계있는 원찰(願刹)을 순례하게 된 것입니다. 흥국사에서 봉영사까지는 약 8.7km인데 요즘은 네비가 안내해 주니 절을 찾아가는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봉영사 입구에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묘소 순강원(順康園)이 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그냥 지나쳤는데 바로 봉영사가 나오더군요. 오후 2시경 봉영사에 도착했습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집은 '휴(休)'라는 다원
봉영사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보이는 것이 '휴(休)'라는 다원인데 들어갈 마음을 내지 못했기 에 무심히 넘겼는데 이 다원은 봉영사에서 운영하는 쉼터이자 작은 도서관이라 합니다.
전각배치도
봉영사(奉永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48번지(진접읍 내각2로 84-77) 천점산(泉 岾山)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입니다.
천점산(泉岾山 해발 393m)은 일명 천견산(天見山)이라고도 하는데 천겸산이라고도 부른다 고 합니다. 천점산의 천점(泉岾)이 '샘재'라는 뜻이니 이곳의 약수가 유명한가 봅니다. 이 산은 천년 고찰 봉영사와 순강원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산은 아닌가 봅니다.
봉영사 약수터
이 약수터에는 주민들이 쉼새없이 물통을 가지고 와 물을 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니초님 과 다가가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자 하니 물을 받던 분이 물을 받으라고 양보하여 물맛을 보니 참 시원했습니다.
물줄기가 두 군데로 흘러 물을 받기가 참 좋더군요.
봉영사 약수터는 물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더군요. 이 약수는 주민들을 위해 사 찰에서 200m를 파이프로 연결하여 제공하는 것으로 주민들과 사찰이 뜻을 모아 깨끗하고 정갈한 약수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약수회원제를 통해 가꾸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약수터의 포대화상
약수터와 그 뒤의 관세음보살
정병(淨甁)을 들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 옆모습
이곳의 여건상 관세음보살입상의 전모를 담기는 어렵습니다. 약수터 위에서 계신 관세음보 살님, 그러고 보면 이 약수는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입니다.
이런 글귀가 생각납니다.
甘露淸茶 감로청다 청정하고 시원한 감로청정수 普益衆生 보익중생 널리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네.
이 감로청다 마시는 이 기갈을 면하시고 이 청정수를 마시는 이 윤회고를 벗어나소서. _()_
이제 도량으로 들어갑니다.
버섯모양의 두 기둥은 천점산봉영사(泉岾山奉永寺)가 무량원력도량(無量願力道場)임을 밝히 고 있는데 봉영사로 들어가는 첫 문이니 일주문에 해당하는 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 없는 문 으로 들어갑니다.
무량원력도량(無量願力道場) 천점산봉영사(泉岾山奉永寺)
봉영사로 들어갑니다.
봉영사(奉永寺)는 신라 진평왕(眞平王) 21년(599)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봉인암(奉仁庵) 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역사가 엄청 오래된 1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다만 역사의 풍 랑 속에서 부침을 계속하여 이를 고증할만한 기록이나 유물, 유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조선 영조(英祖) 13년(1737)에 태전(太顚)ㆍ해청(海淸)ㆍ치학(致學) 삼사(三師)가 황폐해진 절을 중창하였습니다. 영조 31년(1756)에는 선조(宣祖)의 후궁인 인빈 (仁嬪) 등의 묘(墓)가 있던 순강묘소(順康墓所)가 순강원(順康園)으로 승격되면서 이 절을 인빈 의 원찰로 삼아 이곳에 신실(神室)을 지으면서 절 이름을 봉영사(奉永寺)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조의 후궁인 인빈은 추존왕 원종(元宗)의 생모이자 인조(仁祖)의 조모(祖母)입니다.
새로 지은 전각 옆에는 밭이 있네요.
고종 14년(1877)에는 당시 고종의 숙부이면서 정승으로 있던 이공(李公)이 내탕금을 내어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고, 1902년에는 전동희화상에 의해 법당에 삼존불상이 봉안되었고, 1920년 여름의 수해로 인해 거의 폐사 직전에 있던 것을 1924년 서경(西耕) 스님이 중수하 였습니다.
그 뒤 1968년 혜경(慧鏡) 스님이 절의 면모를 일신시킨 중수작업을 벌였고, 이어 1971년에 는 대웅전 앞에 있던 큰방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고, 또 1980년에는 법당 동쪽에 있던 어실각을 2칸에서 3칸으로 늘려 짓고, 명부전에 시왕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이상은 《전통사찰총서》 『봉영사』편에서 옮겨 정리했는데 그 이후의 정보는 알 수가 없 습니다. 봉영사 홈페이지가 있으나 부실하여 어떤 정보도 얻을 수가 없네요. ^^
근래에 신축한 듯한 심검당(尋劒堂)
심검당은 대개 주지 스님이 주석하시는 주석처이자 수행처인데 본 법당과는 많이 떨어져 있네요.
황매화를 닮은 겹백매화입니다.
정성들여 쌓은 양 돌답은 제2관문이 아닌가 합니다.
봉영사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는데 이곳이 천왕문이라 생각 하며 들어갑니다.
한 개 한 개 큰 돌 작은 돌을 모아 정성 들여 공든탑을 쌓았네요.
이곳은 종무소입니다.
봉영사 전경
앞에 보이는 중앙의 전각은 무량수전이고, 왼쪽은 관음전 오른쪽은 지장전입니다. 차 앞쪽엔 연못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량수전의 뒷 배경 산이 천점산(泉岾山)입니다.
황매화와 철쭉, 단풍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멋진 광경을 이루어 담아 보았습니다.
법당에 오르기 전에 있는 연못입니다.
연못가에 걸려있는 소원캡슐
무량수전 앞의 연못. 임의로 봉영지(奉永池)라 이름 붙여 봅니다.
무량수전 앞에 연못이 있으니 <불설아미타경>의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리불아, 극락국토에는 7보(七寶)로 된 연못이 있으니, 8공덕수(功德水)가 그 안에 가득 차 있느니라. 연못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고, 사방의 계단은 금(金)ㆍ은(銀)ㆍ유리(琉璃) ㆍ파리(頗梨)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또 그 위에는 누각이 있는데, 역시 금(金)ㆍ은(銀)ㆍ유리(琉璃)ㆍ파리(頗梨)ㆍ차거(車渠)ㆍ 붉은 구슬[赤珠]ㆍ마노(馬瑙)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느니라.
연못 속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데, 그 크기가 수레바퀴만하며, 푸른색에서는 푸른빛이 나고 황색에서는 황색빛이 나고 붉은색에는 붉은빛이 나고 흰색에서는 흰빛이 나며, 맑고도 미묘 한 향기가 나느니라. 사리불아, 극락국토는 이와 같은 공덕(功德)과 장엄(莊嚴)을 이루고 있느니라.」
연못가에 있는 석물들
연못가에 피어난 무성한 할미꽃
무량수전쪽에서 바라본 풍광
봉영사 주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법당입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 계의 교주(敎主)이십니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 도 합니다. 그래서 무량수전은 아미타전(阿彌陀殿)ㆍ미타전(彌陀殿)ㆍ무량수전(無量壽殿)ㆍ 극락전(極樂殿)이라고도 부릅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지붕과 단청이 새로운 것으로 보아 근래에 중건된 건물이 아닌가 합니다. 안에는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셨고 불단 한 옆엔 약사 여래불도 모셨습니다. 옛 사진을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안에는 아미 타불을 모셨음에도 대웅전이란 편액을 달고 있었는데, 근래에 새롭게 중건하면서 무량수전 으로 편액을 바로잡아 달은 것 같습니다.
무량수전에 주련이 걸려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極樂堂前滿月容 극락당전만월용 서방정토 극락세계 만월같은 아미타불 玉毫金色照虛空 옥호금색조허공 금색신과 옥호광명 허공세계 비추시네. 若人一念稱名號 약인일념칭명호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 부르오면 頃刻圓成無量功 경각원성무량공 찰나간에 무량공덕 원만하게 이루리라.
무량수전(無量壽殿) 편액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 하는데 아미타불을 한역하여 무 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합니다.
한없는 생명이요, 빛인 아미타불(阿彌陀佛)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범어 아미타붓다(Amitā Buddha)를 음역한 말입니다. 아미타붓다(Amitā Buddha)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아미타유스 붓다(Amitāyus Buddha)와 아미타바 붓다(Amitābha Buddha)입니다.
아미타유스(Amitāyus)는 한없는 수명(壽命)을 말하므로 아미타유스 붓다(Amitāyus Buddha)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번역하고, 아미타바(Amitābha)는 한없는 광명(光明, 지혜)을 뜻하므 로 아미타바 붓다(Amitābha Buddha)는 무량광불(無量光佛)로 번역합니다.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āyus Buddha)은 한없는 수명의 부처님이요,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ābha Buddha)은 한없는 광명의 부처님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한없는 생명이요, 빛입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로, 오랜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를 기원하며 48원(願)을 세워 한량 없는 수행 끝에 성불(成佛)하여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아미타불 왼쪽에 봉안된 소형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국운융창남북통일원성취(國運隆昌南北統一願成就) 축원패
시방삼세일체삼보자존전(十方三世一切三寶慈尊前) 축원패
신중목각탱화(神衆木刻幀畵)
새의 깃털 모양의 투구를 쓴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한 신중탱화입니다. 사찰마다
예적금강성자(穢跡金剛聖者. 穢跡明王)는 상단급 신장(神將)이고, 동진보살(童眞菩薩. 韋駄 天)은 중단급 신장(神將)입니다.
봉영사는 무량수전은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앙으로 모신 신중탱화입니다. 동진보살(童眞菩薩)은 위타천(違駄天)이라고도 하는데 위태천이라고도 합니다.
위타천(違陀天. 違駄天)은 범어로 스칸다데바(Skanda-deva)입니다. 음역하여 사건다제바 (私建陀提婆)입니다. 사건다(私建陀)는 범어로 스칸다(Skanda)를 음역한 말인데 새건타 (塞建駄), 사건다(娑乾陀ㆍ娑健馱)라고도 음사합니다. 줄여서 건타(建陀)라 하며, 또는 위타(違駄.違陀)라고 하며, 위타장군(韋駄將軍), 위장군(韋將軍)이라고도 부릅니다.
위타천(違駄天)은 원래 스칸다(Skanda)를 음역하여 사건다(私建陀)를 했는데 필사하는 과 정에서 필사하는사람이 건(建)을 위(違)로 오기하여 전해진 것인데 이것을 바로잡지 못한 채 후세에 전해져 위타천(違陀天. 違駄天)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또 위타천(韋陀天. 韋駄 天)되었고 타(駄)를 '태'로 발음하여 '위태천'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오기도 굳어지면 바로 잡기 힘듭니다. 그나마 위태천보타는 위타천이 발음상 조금 가까운 것이라 위타천이 타당하다고 합니다. ^^
위타천신(韋駄天神)은 위타천(韋陀天) 이라고도 합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으로 위천장 군(韋天將軍)이라고도 합니다. 4천왕 가운데 남방 증장천(增長天)의 8장(將)의 하나이며 32천의 우두머리라 합니다. 신중 중에서 주로 경전의 첫장에 그려져 불법을 수호하는 대표 적인 신중이 동진보안대보살(童眞普眼大菩薩)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리광불(琉璃光佛)이 출현하였을 때는 보안보살(普眼菩薩)이라 하였으며, 그 후 석가여래회 상에서도 도를 이루어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 이름하였습니다. 8만 4천근이나 되는 금강저 (金剛杵)를 손에 들고 불불(佛佛)이 출세토록 불법을 보호하겠다고 서원하였는데 신중탱화에 서도 예적명왕(穢跡明王)과 더불어 주요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위타천신은 당나라 도선(道宣) 율사가 만난 후부터 가람에 모시게 되었는데, 속설에 는 마군(魔軍)이 와서 부처님 어금니사리를 도둑질하여 갔을 적에 추적하여 찾아 왔다고도 합니다. ^^ _()_
용두(龍頭)의 모습
무량수전 뒷편모습 1
《무량수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름지기 다 각기 부지런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공덕을 닦을지니라. 그러면 반드시 생사의 바다를 뛰어넘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수라와 인간 등 오악취(五惡趣)의 인연을 여의고 공덕이 한량없는 성불의 길에 오르게 되느니라.
참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길은 쉽건마는 가는 사람이 없구나! 저 아미타불의 정토인 극락세계는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며, 아미타불의 원력을 의심 없이 믿기만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자연히 이끌려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될 터인데, 어찌하여 세상 일을 뒤로 미루고 부지런히 성불의 공덕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영원히 불멸한 한량없는 수명을 얻고 지극한 즐거움이 한이 없느니라."
무량수전 뒷편모습 2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저속하여 급히 닦아야 할 성불의 길은 뒤로 미루고, 하잘 것 없는 세속 일에 골몰하여 서로 다투느니라. 그들은 세상의 모진 죄악과 심난한 고통 속에서 다만 자신을 위하여 생활에 허덕이고 있느니라.
그래서 그 신분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결같이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 애를 쓰니, 있는 이나 없는 이나 그 시름은 마찬가지 니라. 그리하여 매양 서둘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얽히고 쌓인 욕심과 근심으로 사뭇 쫓 기고 싸대야 하나니, 잠시도 마음 편할 사이가 없느니라."
무량수전 뒷편모습 3
"그래서 논밭이 있으면 논밭 때문에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걱정하며, 소나 말 등의 가축이나 노비나 금전ㆍ의복ㆍ음식 등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재산을 가진 사람은 또한 그것 때문에 근심과 걱정을 거듭하여 시름과 두려움이 끊이지 않느니라.
그런데 뜻밖에 수재나 화재를 만나서 불에 태우고 물에 떠날리기도 하며, 도적이나 원한이 있는 이나 빚쟁이들한테 빼앗기기도 하여 재물이 흩어지고 없어지면 마음은 답답하고 분한 괴로움에서 풀릴 날이 없으며, 옹졸하고 굳어진 마음에서 헤어날 수 없느니라.
그래서 마음이 멍들고 몸이 허물어져 목숨이 다하게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수 없건만, 그 아무것도 따르는 것이 없나니, 이러한 서글픔은 존귀한 이나 부자나 매 한가지니 라.
이와같이 갖가지 근심과 두려움과 애타는 괴로움은 끝이 없으니, 마치 어둠 속이나 불 속의 괴로움과 같으니라."
무량수전 뒷편모습 4
"그런데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매양 군색하고 불만한 마음이 그치지 않으며 논밭이 없으면 논밭을 가지려고 애쓰고, 집이 없으면 또한 그것을 가지려고 애쓰며, 마소 등의 가축이나 종들이나 금전ㆍ의복ㆍ음식 등의 재산이 없으면 이를 가지려고 사뭇 안달하며 괴로워하느 니라.
그래서 한 가지가 있으면 다른 것이 부족하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부족하여, 애써 이것 저것을 다함께 가지려 하며, 어쩌다가 모두 갖추어 가졌다 할지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어느 덧 없어지고 마느니라.
그래서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다시금 구하려 찾아 헤매이나 얻을 수 없으면 부질없이 마음만 태우고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하여 안절부절못하게 되느니라."
무량수전 뒷편모습 5
"그리하여 매양 근심과 괴로움이 끊이지 않고 마치 얼음을 안고 불을 품고 있는 것과 같으 니라. 그리고 그러한 괴로움과 근심 때문에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나니, 평소에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진리를 닦거나 공덕을 쌓지도 못한 채 몸을 버리고 허무히 홀로 돌아 가게 되느니라. 그래서 악업에 이끌려 악도(惡道)에 태어날 수밖에 없지마는 그 선악의 길 마저도 모르고 가느니라."
무량수전 뒷편 모습 6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부자나 형제나 부부ㆍ가족ㆍ일가 친척간에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결코 미워하고 시새우지 말지니, 있는 것 없는 것을 서로 상 통하여 탐내거나 인색하지 말며, 매양 상냥한 말과 부드럽고 화평한 얼굴로 상대하여 아예 다투지 말아야 하느니라. <중략>
이 세상 일이란 서로서로 미워하고 괴롭히고 하여도 그것이 바로 드러나서 크게 벌어지지는 않지마는, 서로 마음 속으로 독을 품고 노여움을 쌓고 분함을 맺어서 풀지 않으면 자연히 마 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자라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 그래서 필경에는 다같이 한 세상에 태 어나서 서로 앙갚음을 하게 되느니라."
무량수전 뒷편 모습 7
"인간은 이 세상 애욕의 바다에서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 것이며, 어떠한 고락(苦樂)의 처소에도 자기가 지은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는 스스로 받고 스스로 감당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느니라. 그래서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몸을 바꿀 때 행복한 처소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재앙이 많은 처소로, 각기 태어날 곳을 달리하여 이미 업에 따라 엄연히 정해진 처소로 어김없이 나아가야 하느니라." <중략>
무량수전 뒷편 모습 8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선을 행하여 안락을 얻고 진리를 닦으면 불도를 성취하는 도리를 믿지 않고, 또한 사람은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과, 은혜를 베풀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선악 인과의 엄연한 사실을 믿지도 않으며, 세상 일이란 그렇지가 않다고 그릇 생각하고 끝 내 바른 가르침을 믿으려 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그릇된 생각에 의지하여 더욱 이것을 옳다고 고집하여 우기는데,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 한결같이 그러하니라. 그래서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그릇된 생각을 대대로 이어받고 부모는 자식에게 그것을 도리어 교훈으로 끼치게 되느니라." <중략>
무량수전 뒷편 모습 9
"세상은 온통 혼탁하여 인심은 어리석고 어지러워 거의 다 애욕만을 탐하고 있으니, 인생의 길을 헤매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진리를 깨달은 이는 지극히 드무니라. 그러니 세상 일이란 부질없이 바쁘고 어지럽기만 하여 믿고 의지할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리고 빈부ㆍ귀천이 나 어른ㆍ아이 할 것 없이 다 한결같이 애쓰고 싸대며 그러다가 서로 이해가 충돌하면 원수 같이 미워하나니, 그 사납고 표독한 마음은 마침내 불행한 재앙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이렇듯 천지의 바른 도리를 거스르고 인간의 참다운 본심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그 릇된 악업은 앞뒤를 다투어 거듭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다만 그 죄업의 결과만을 기다 릴 뿐 달리 어찌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미처 그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죄업의 힘은 별안간 에 그의 목숨을 빼앗아 악도(惡道)에 떨어뜨리고 마는 것이니, 몇 생을 거듭하며 지독한 괴 로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그 사나운 악도 가운데서 돌고 돌며 몇천만 겁의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나올 기약이 없고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나니,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일이니라."
이상 무량수전 뒤편의 축대 부분에 불심을 담아 무수한 불상이나 인형을 군데군데 벌여 놓 았기에 《무량수경》에서 설하신 삼독의 고통에 대한 부처님 말씀을 옮겨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봉영사 2탄을 올려 보겠습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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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봉영사 순례기(1편) 잘 봤습니다. _()_
감사합니다. _()_ _(())_
순례기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