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린 축구 선수들이 세계를 놀래키고 있습니다. 지금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올랐습니다. 한국이 FIFA 주관 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은 83년 멕시코청소년대회,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지난해에는 남자 청소년 대표도 잘 했죠.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대표팀은 8강에 올랐고 이광종 감독이 지휘하는 18세 이하 대표팀도 8강이라는 성적을 냈습니다. 이쯤 되면 남녀 모두 한국청소년축구가 전성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죠.
20세 이하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26일(한국시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치러진 U-20 여자월드컵 8강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3 대 1로 승리해 4강을 확정짓고 나서 응원단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사진=연합)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현재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헌신적인 지도가 있었기 가능했죠. 하지만 그건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보다 앞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 오직 좋은 선수를 키워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묵묵히 버텨온 학교 축구 지도자들의 희생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없었을 겁니다.
학교축구 지도자들의 삶은 고됩니다. 정식 교사가 축구부 감독을 하는 경우는 무척 드뭅니다. 정식 교사는 금전이나 신분 등 모든 면에서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도자들은 여전히 학부모들이 내는 돈 중에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성적도 좋고 학생들을 좋은 학교, 좋은 직장, 프로팀에 보내는 지도자들은 왕대접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입니다. 대부분 지도자들은 엄청난 금전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압박 속에서 처해 있습니다.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은 한달 평균 200만원 안팎 월급을 받습니다. 코치 월급은 물론 이보다 적죠. 중학교 감독, 코치는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축구 지도자들은 생활고를 겪고 있죠. 그렇다고 정부에 축구부 지도자에게 월급을 보전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종목 지도자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 애쓰고 있으니까요. 축구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노릇입니다.
성적도 좋고 학생들을 좋은 대학, 실업, 프로로 보내는 지도자들은 형편이 괜찮죠. 학부모로부터 월급을 받을 때도 떳떳하고 큰소리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축구명문고 감독들은 학부모들에게 왕대우를 받습니다. 자기 자녀를 명문대, 프로팀, 실업팀에 보내주는 지도자는 신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성적, 진학률, 취업률이 좋지 않은 지도자들은 학부모의 눈치를 봐야합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그 중에서 돈을 많이 내는 학부모에게 휘둘리기 십상입니다. 그 학부모 선수는 더 많이 뛰게 해주고 졸업 때가 되면 어느 대학이든, 실업이든, 프로든 보내야한다는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죠. 이런 감독들에게 연구, 공부라는 단어는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대학 감독, 실업 감독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 한명이라도 받아달라고 애걸복걸을 해야 하죠. 시즌 중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팀, 실업팀 찾아다니면서 연습경기라도 한 번 더 해달라고 사정해야합니다. 연습경기는 자기 선수들을 사달라고 선을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연습경기는 우리 선수 좀 봐주고 한명이라도 받아달라고 사정하는 곳이죠. 우리들은 학원 지도자들이 연구와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들 비판합니다. 맞기는 맞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공부를 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 축구 시스템에서 지도자들은 공부와 연구 대신 이른바 '로비'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그냥 감독 때려치우고 다른 일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학창시절부터 20년 가까이 공만 찾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하루 네 탕 다섯 탕씩 훈련만 했습니다. 공을 차는 것 이외에 다른 걸 배워야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시간도 없었죠. 이런 사람들이 선수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어쩔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는줄 알면서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학부모의 고충도 엄청납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지만 지금 교육시스템 하에서는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그 때부터는 전문 선수로 키워야합니다. 그 때부터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그 때부터 공부를 사실상 포기해야 하죠. 아이가 그나마 공을 잘 차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자녀의 부모는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갑니다. 돈이 많으면 축구부에 많은 돈을 내고 감독에게 좋은 학교,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사정 또는 압박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이는 공을 못 차고 부모도 돈이 없으면 걱정이 큽니다. 결국 이런 어머니는 감독에게 잘 보이기 위해 축구부 따라다니면서 설거지,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합니다. 몸으로 때우는 거죠. 그렇게 해서라도 자녀를 좋은 곳에 진학하거나 취직한다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너무 어렵습니다. 결국 이름 모를 대학교에 가거나 아예 백수 생활을 하는 어린 선수들이 양산되고 말죠. 20세 이하 여자 대표팀 지소연이 26일(한국시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치러진 U-20 여자월드컵 8강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나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
대학교도 특기생으로 가야지 등록금, 수업료 등을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절반 이상 선수들은 일반학생처럼 등록금을 다 내고 대학교에 다닙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 대부분은 결국 선수로 크게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는 대학교가 너무 너무 많죠. 이름이 생소한 대학교도 많고 그 중에는 축구부가 있는 대학교도 꽤 있습니다. 축구부가 있는 대학교가 많으면 좋지 않냐고요? 글쎄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대학교 중 대다수는 부족한 일반 학생수를 메우기 위해 축구부를 만듭니다. 축구부가 축구의 발전과 좋은 선수 육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부족한 학교 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거죠. 이런 곳에 입학하는 선수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른바 축구명문 대학교, 실업팀 또는 프로팀 가지 못해 갈 곳 없는 불쌍한 고교 졸업반들이 하는 수 없이 택하는 게 이런 대학교이며 이곳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선수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축구를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어린 선수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큰 꿈을 꿀 겨를도 없이 냉혹한 사회의 쓴맛만 보고 마는 셈이죠. 축구를 포기하는 것을 넘어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학생도 괴롭고 부모 마음도 찢어집니다.
지금 한국 남녀 청소년 축구가 세계 8강, 4강에 오르는 데는 어쨌든 이런 학원 지도자, 학부모의 눈물과 고통이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들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했다면 지금 한국축구가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에게 또 다시 이런 궁핍한 삶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축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지도자들은 연구와 공부에 집중하는 등 있는 힘을 모두 선수 교육에 쏟아내게 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축구를 계속 할 때뿐만 아니라 축구를 중도 포기해야할 때도 마음 편하게 지켜볼 수 있어야합니다. 또 선수들도 축구를 즐기면서 하다가 선수를 포기할 때도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완비될 때만 한국축구가 진정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지금과 같은 지도자, 학부모의 고통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계속 반복될 겁니다. 그건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체육기자로서 이들에게 조금 후면 좋은 날이 올 테니까 그 때까지 조금 더 참아달라고, 조금 더 버텨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너무 안타깝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축구 기자를 10년 넘게 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라고는 그런 좋은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관련 기사를 하나라도 더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 뿐입니다.
팬들 여러분.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유소년축구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한국축구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 때가 될 때 그 때 모든 힘을 그곳에 집중시켜주세요.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모두 지금부터 포기하기 말고 큰 꿈을 계속 꿉시다. 우리가 사는 이 곳에 축구를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엄청나게 고생하는 지도자, 학부모, 어린 선수들이 없어질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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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소연의 프리킥 넘 멋져요.....양광영 大선배님께 전수 받았나봐요.....
ㅎㅎㅎㅎ 너너 컴에 1인자?
너무 덥나봐 희상아 냉동실에 머리 식혀봐
축구사랑하면 희상후배 쫒아갈 사람이 없지요 바쁜일과 중에도 꼼꼼히 스크립 하여 카폐에 올려주셔 감사하고요 우리 지소연후배가 대견하고 늘 소연이 후배의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격려와 응원하겠습니다. 천위동문축구회원님들 우승컵을 안길수 있게 격려의 메시지를 합시다. 화이팅 지소연
희상아 넌 재주가 많은 놈인데 ㅎㅎㅎㅎㅎ
그 다음이 무지하게 궁금하네요.....별로 맘에 안드는게 많다는건 아니시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