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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리틀엔젤스
예술단 일행 64명 평양 방문
1998년 5월 1일 오전 첫 민간차원의 평양
공연을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한 한국
문화재단의 리틀엔젤스 예술단이 환송객
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박보희(朴普熙) 한국문화재단 이사장과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2일 오후 평양에 도
착, 송호경(宋浩京) 북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 부위원장 등 관계자들로부터 환영
을 받은 후,공항에서 북한 만경대소년궁전 예술단원들과 함께 ‘우리의 소원’,북한 애
창곡인 ‘반갑습니다’를 불렀다.이어 이날 저녁에는 인민문화궁전대연회장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참석,한복차림으로 ‘그리운 금
강산’과 ‘선구자’를 불렀다.
송 부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아태평화
위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환영한다”며“조
국통일을 위한 하나의 목소리를 내자”고 말했고, 박보희 단장은 “리틀엔젤스 평양
공연의 꿈이 이루어져 북녘동포들의 열렬
한 환영을 받고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평양에서의 첫밤을 보통강호텔에서 보낸 후, 평양 시내를 둘러
봤고, 평양 시민들은 리틀엔젤스 단원들이 손을 흔들자 손을 마주 흔들며 환영했다.
방문 이틀째인 3일에는 평양 시내 개선문
과 주체사상탑, 노동당 창건 50주년 기념
탑, 놀이동산 등을 방문했다.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4, 5일 평양봉화
극장에서, 7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세 차례 공연을 갖고 금강산과 묘향산을 관광했다.
▶ 2014년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 사고
▶2011년오사마 빈 라덴 사망
👉🏿 테러의 배후,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54)을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최종 작전 단초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2일 미국은 빈 라덴을 사살하고 그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水葬)하는 것으로 10년간의 끈질긴 추적을 마무리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일 오후 11시 35분(미 동부시각) 백악관에서 발표한 특별 성명을 통해 “오늘(1일) 미군 특수부대가 빈 라덴이 숨어 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가옥을 급습해 교전 끝에 그를 사살했다”며 “이제 정의는 실현됐다(Justice has been done)”고 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물론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과 9·11 테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이들의 승리”라고 했다.
▶2008년 대한민국의 게임 라피스에서 라피스데 이를 선포하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
산조사 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열고 위원 9명 전원 찬성 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
완용 송병준 등 9명과 그 후손이 일본 제국
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 처음으로 국가귀속 결정을 내 렸다고 밝혔
다.
▶2007년 1 기 대법원 양형위원회 발족(위원장에 김석수 전총리)
▶2006년 한국기독교장로회 평화공동체 운동본 부 창립기념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칼 국제 심포지움"(호텔 아카데미하우스 2~4일)
▶2003년 미, 부시 대통령 이라크전 종전 선언.
▶2003년중국 잠수함 사고, 70명 전원 사망
👉🏿 중국 산둥(山東)성의 옌타이(煙台) 해군기지 소속 중국 재래식 잠수함 361호가 한국 영해와 접해있는 서해의 네이창산(內長山)섬 동부해역에서 훈련 중 사고가 발생, 탑승했던 해군 장병 70명 전원이 사망했다. 신화통신은 해군 소식통들을 인용, “문제의 잠수함 함체에서 발생한 기술적 결함 때문에 70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고 전했다. 중국 해군은 90대의 잠수함 함대를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노후됐고, 아직 첨단 잠수함 건조 기술에 문제점이 많아 작년 러시아와 대함(對艦) 미사일 시스템을 갖춘 636급 잠수함 8척 도입 협상을 벌인 것으로 보도됐다.
▶ 2001 년 미국 부시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공식 천명
▶2000년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45명 사망.
▶1999년파나마 대통령에 미레야 모스코소(女) 당선
👉🏿 1999년 5월 2일 실시된 파나마 대통령 선거에서 제1야당인 아르눌피스타당 후보로 나선 미레야 모스코소(52)가 집권 민주혁명당(DRP)의 마르틴 토리호스(35)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모스코소는 파나마 첫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모스코소는 세차례나 당선됐지만 그때마다 쿠테타로 물러나야했던 고(故) 아르눌포 아리아스(1901-1988)대통령의 부인으로 파나마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선거를 `독재자의 미망인`과 `장군의 아들`이 죽은 자들의 후광을 등에 업고 싸운 대리전이라고 평했다. 실업률 12.8%라는 경제 실정에 지친 파나마 민심은 집권 민주혁명당에 등을 돌리고, 아리아스의 미망인에게 표를 던졌다.
▶1998년집중호우로 지하철 7호선 침수
▶ 1998년 일본의 음악가 히데(X JAPAN) 사망
👉🏿히데(1964~1998)는 일본 대중음악 음악가로, 본명은 마츠모토 히데토(松本秀人)다. 일본의 록 밴드 엑스 재팬의 기타리스트, 솔로 뮤지션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아마추어 시절의 Saver Tiger, 솔로 프로젝트 hide with spread beaver, 인더스트리얼 밴드 zilch라는 팀 들을 결성해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8년 5월 2일, 히데는 자택 맨션에서 자살을 시도했는데, 발견 직후 곧바로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결국 오전 8시 52분을 기점으로 향년 33세로 사망했다. 밴드 내 단합을 중요시 했으며 자신의 팬을 위해 골수를 기증할 만큼 따뜻하고 인격으로 살았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98년민속학자 임석재씨 별세
👉🏿 설화, 민요, 무가 수집에 평생을 바친 민속학자 임석재씨는 송석하와 더불어 우리 민속학을 개척한 민속학계의 제 1세대 학자였다. 1958년 문화인류학회를 결성, 초대 회장을 맡은 것을 비롯, 굿 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그의 업적은 설화-민요-무가-민속극 등 민속학 전반에 걸친 자료조사와 연구에 있다. 그의 학자적 혜안은 1960년대 이후 녹음기를 둘러메고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민요를 수집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1995년 5장의 음반과 책으로 된 `한국구연민요`가 발간돼 근대화에 밀려 자칫 사라질 뻔한 우리 민요가 보존될 수 있는 길이 트게 됐다.
▶1992년한국-중국, 투자보장협정 체결
▶1990년중국 정계거물 신화통신 허가둔 미국으로 망명
👉🏿 중국공산당 중앙고문위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으로 관영 신화통신의 홍콩 분사장이었던 허가둔의 망명은 그가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양상곤의 측근이며, 중공당의 고급기밀은 물론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사생활까지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중국지도부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허는 1983년 6월 홍콩 분사장으로 부임한 이래 약 7년간 재직해왔으며, 그의 망명은 천안문 사태 때 그 동기가 마련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천안문 시위지지 입장에 언론과 등소평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신화통신 홍콩 분사에서도 인사보복으로 물러나게 되자 미국으로 망명을 한 것이다.
▶1986년올림픽대로 개통1986년대처 영국총리 방한
▶1983년성교육 교재 초-중-고교 교사에 보급
▶1982년영국 잠수함 포클랜드전서 아르헨티나 순양함 격침
▶1981년미국 심리학자 데이빗 웩슬러 사망
▶1980년한국-키리바시 국교 수립
▶1980년서울형사지법, 남조선민족해
방전선 사건 선고공판(이재문등 4명사형)
▶1977년단국대 학술조사단 진천군서 국내최대 마애여래입상 발견
▶1972년이후락, 평양 극비방문
👉🏿 적대적 관계였던 미국과 중국이 이른바 ‘핑퐁외교’를 통해 양국 간 거리를 서로 좁혀가고 있던 1972년, 한반도에도 데탕트(긴장완화)의 바람이 불었다. 미·중 간의 밀사가 키신저였다면 한국의 밀사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1972년 5월 2일, 만일을 대비해 청산가리를 챙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판문점을 경유, 평양을 방문해 5월 5일까지 나흘간을 평양에 머물며 김일성과 두 차례 면담을 가졌다. 김일성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해 5월 29일 박성철 제2부수상도 서울로 보냈다. 상호 방문으로 최소한의 신뢰를 쌓았다고 판단한 남북한은 마침내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7·4 남북공동성명’을 동시에 발표했다.
▶1965년한국-벨기에, 국교 수립
▶1964년서울 도동서 4층집 무너져 14명 사망 27명 부상
▶1964년민주, 자민, 국민 3당 통합 선언
▶1962년국가재건최고회의, 주민등록법 통과
▶1960년곽상훈 국회의장 피선
▶1958년제4대 민의원 선거
▶1957년‘매카시즘’의 선동자 매카시 사망
👉🏿 “정부의 가장 중요한 부처인 국무성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 나는 그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 매카시가 자신의 빈약한 전국적 지명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뱉은 연설은 소위 ‘적색 사냥’ 소동을 일으켜 언론을 폭주시키고 사고를 마비시켰다. 석달 후에 그의 발언이 ‘근거 없음’으로 결론났음에도 매카시선풍의 마수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군부에까지 미치자 1954년 마침내 상원 공청회가 열렸다. 전 국민은 공청회를 통해 무책임하고 야만적이며 정략적인 매카시의 언동에 속았음을 깨달았고, 마녀사냥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매카시는 상원으로부터 파문을 당했고 4년간 미국 사회를 광기에 춤추게 했던 그는 1957년 5월 2일 간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46세).
▶1956년중국최고국무회의 백가쟁명 시사
▶1955년한미민간원조협정 조인
▶1953년요르단 후세인 1세 즉위
▶1953년이라크 파이잘 2세 즉위
▶1952년세계 첫 제트여객기 영국서 취항
👉🏿 드 하빌랜드 DH 106 코멧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 여객기로, 길이 28.35 m, 너비 35 m 크기의 터보제트 엔진 4기를 탑재하고 후퇴날개와 여압객실(與壓客室)을 갖추고 있으며, 승객 정원은 36명이다. 정기항공에 취항한 것은 1952년 5월 2일 런던∼요하네스버그 노선이 시초이다. 1953년, 1954년 잇달아 2건의 공중폭발사고가 발생해 높은 고도를 비행에서 지상의 높은 기압과 고공의 낮은 기압을 자주 겪으면서 동체가 신축과 팽창을 반복하여 피로가 쌓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각으로 설계된 유리창 모서리 부분에 하중이 걸리는 것이 문제임을 밝혀내 이후 항공기 외피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다.
▶1945년영국-인도군 랑군점령
▶1945년소련, 독일 베를린 점령
▶1936년영화감독 임권택 출생
▶1927년흥남 질소비료공장 설립
▶1924년경성제국대학 관제공포. 예과 개설
▶1921년시인 조병화 출생
▶1902년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섬 펠레이 화산 분출로 4만명 사망
▶ 1519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망
👉🏿천재 중의 천재, 몇 세기를 앞서간 과학자, 르네상스를 이끈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둘러싼 수사는 실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기의 뛰어난 화가, 기계학·해부학·건축학 등에 비상한 능력을 보인 자연과학자가 구체적으로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다빈치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외에는 화가로서 이름을 알릴만한 작품이 흔치 않은 화가다. 그가 신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듯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손꼽히는 것은 어느 분야든지 그가 관심을 갖고 파고든 후에는 여느 전문가 못지않은 업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처 분화되지 않은 해부학, 천문학, 지질학, 항공학, 기계공학, 지리학, 광학 등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고 사물에 대한 정교한 습작과 라이트 형제에 영감을 준 비행기 설계도 등의 각종 기록을 1만 3,000쪽 분량의 노트에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일종의 성형술을 창안하고 정교한 카메라의 반사장치를 발전시키고 콘택트 렌즈와 증기의 힘 등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그가 발명가의 반열에 오르는 데 손색이 없지만, 특히 교회가 인체의 분해를 엄격히 금했음에도 인체의 비밀을 풀기 위해 30여구의 시체를 해부해서 이룬 성과와 노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평생을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생활했으나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519년 5월 2일 67세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