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에서 퍼온거랍니다.. 젬있어영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M고와 S고
그것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능가하는 차이였다.
최신식 하얀 석조 건물에 게다가 남녀공학인 S고는 서구적 교육방침을 지닌
이사장 덕분에 자유로운 교외활동 인간적인 학생지도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M고는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회색 건물에
(처음엔 흰색이었으나 워낙 페인트칠을 안해 때가 꼬질 꼬질 끼어 그리 됐다 함)
시커먼 남자놈들만 드글드글하고 일제시대 왜경의 교육방침을 그대로 전수받은
이사장 덕분에 앞머리 3센티를 넘지 못하고 뒤, 옆머리는 하얗게 드러나야만 했다.
M고와 S고의 차이는 두 형을 통해 피부로 절감 할 수 있었다.
S고 출신의 다섯살위인 큰형은 턱시도를 연상시킬 깔끔한 교복에
여학생들의 선물과 편지를 곧잘 들고 집으로 왔으며
최신 기자재가 갖춰진 방송부에서 대학 부럽지 않은 서클활동을 하다가
나름의 일류대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세살 위인 작은형은 밤마다 엉덩이와 피로 엉겨 붙은 팬티를 남 몰래
목욕탕에서 세탁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일찍 중국 인민복같은 교복을 주섬 주섬 챙겨입고
어그적거리며 조조 체력단련이란 미명아래 행해지던
학교 뒷산 구보를 위해 집을 나서야만 했다.
학교 뒷 산 지리를 잘 익힌 덕이었는지 헝그리 정신이 너무 충만했던지
작은형은 패싸움을 일삼다가 부모님을 파출소로 몇번 호출하더니 고3때
그나마 공부를 해서 전라도 어느 산구석에 처박힌 생전 이름도 첨 들어본
전문대 기계과로 진학했다.
매일 불안 공포 초조로 불면의 밤을 지새던 내게 작은형은 M고에는 무림에
고수가 산적하듯이 구타의 고수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변형태란 수학선생을 가장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교무실 자기 책상에 베트콩의 머리를 잘라들고 씨익 웃고 서있는 조그마한
액자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는 그는 냉혹한 승부사 아니 냉혹한 구타사의
기질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맹호부대 출신으로 월남전에 다녀온 그는 군대 체질이다 파악하고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광주항쟁까지 투입됐던 구타사로서의
남 부럽지 않은 화려한 전력을 갖춘데다 몇백대의 빠따를 때리더라도
그 강도가 처음보다 덜하거나 더하지않는 완벽한 스태미너를 갖췄고
학생을 때리다가 자신이 스스로 흥분해 얼굴이 시뻘개지며 이성을 잃는 법이
없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구타를 위해 미래에서 파견된
터미네이터 구타 전사라는 것이다.
그가 어찌된 연유로 선생이 되었는진 아무도 모르지만 구타라면 일가견이 있다는
다른 선생들도 혀를 내두르며 그를 멀리한다는 말을 남기고 형은 동생에게
위로는 못해줄 망정 더욱 공포에 떨게 하는 말만을 남긴채 명복을 빈다며
머나먼 전라도로 떠났다.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거나 태풍이 몰아쳐 M고가 날아가버리길 기원했지만
세상은 나의 바램과는 달리 평온하기만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라기보다는 두눈을 가리우고 양손을 결박당한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기다리는 안기부 지하실에 전기고문 물고문 통닭고문을
제 발로 받으러 가는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정규교육 과정은 마쳐야 겠기에
M고로 첫등교를 했다.
간단히 입학식을 치르고 담임을 배정받는 순간이었다.
운동장 마이크에선 각기 배정받은 반으로 들어가란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반 앞에 서있는 선생을 흘끗 보았는데 분명히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런게 불행중 다행이라는 거구나'
나는 배정받은 1학년 4반으로 향했다. 한결 발걸음도 가볍게
담임 선생이 들어오기전 우리들은 같은 중학 출신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지옥같은 3년을 잘버티자고 서로에게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덜컹'하며 열렸다.
좀전의 여선셍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짧은 머리에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구의 시커먼 얼굴의 사나이가 들어왔다.
순간 교실은 태초의 고요 그 자체
출석부와 쇠로 된 삼각자를 교탁에 내려놓고 교실내부를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쫘악 한번 훑었다.
그리고 그는 뒤로 돌아서 백묵을 들고 자신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그토록 저주하던
'변 형 태'
'으~ 어머니 이 풍진 세상에 왜 저를 낳으셨나요?'
- WRITTEN by YIYAP -
*이 글을 단백질 성분의 엉덩이와 면 성분의 팬티가
한번이라도 엉겨붙은 적이 있는 학생과
수차례의 왕복 따귀 내지 어퍼컷으로
코에서 뜨거운 선지를 흘린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구타교실] -2- 피를 부른 첫 등교일
* "내 이름은 변형태다. 만약에 이 학교를 다닌 형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변태 내지 똥행패로 불렀다."
낮게 깔린 목소리였으나 교실뒤까지 어김없이 같은 톤으로 전달되는
공수부대 지옥의 헬기레펠 조교 목소리였다.
"너희들은 나를 만나게 된것을 행운으로 생각해라.
전국 최악의 대학진학율을 자랑하는 이 학교지만 내가 맡은 반은 항상
다른반보다 반평균이 5점 이상 높았으며 나를 거쳐간 학생들의 대학 진학율은
누구보다 높았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의 다소 독특한 교육방침에 따라준다면
여러분들은 편하게 학교 생활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기횔
얻겠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고 대가리 컸다고 삐딱선을 타고 어영 부영 개기고
흐지부지 하는 녀석들은 하루 하루 살아 숨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알겠나아~~~~?"
누구랄것도 없이 아이들은 "넷!"하며 크게 대답했다.
우리는 고교에 진학한 것이 아니라 낙하산만 안탔지 특수부대에 입대한
꼴이었다.
"먼저 출석을 불러 보겠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짧게 '넷' 하고 끊어서
대답해라"
"김의기"
"넷"
"최진철"
"넷".......
"최동혁"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너무도 긴장한 탓에 "엣"하고 대답했다.
똥행패의 매서운 눈초리가 나에게 꽂혔다.
'아뿔싸'
"나는 같은 말을 두번 하기 싫어 한다. 최동혁"
"넷"
'휴우~ 십년 감수 했다.' 등에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넷" ... "넷"
"조병국"
"예에~"
"조병국"
"에에~"
변형태의 시퍼런 서슬에 정면으로 도전 한 것은 나와 같은 C중학교를 나온
이름난 쌈꾼 병국이었다.
이미 중3때 180에 80킬로그램을 넘어 고3 둘을 두들겨 팼다는 전설의 파이터
C중학 캡장 병국이가 모두가 무릎에 손을 가지런히 얹은 부동자세인데 반해
맨뒤 책상에 의자를 뒤로 빼고 한쪽다리를 포갠채 불성실한 대답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해댔다.
중학교때 자신을 때린 체육선생을 하교길에 각목으로 때려 5주간 병원으로
보냈다는 병국이, 패싸움 두번 끝에 일년을 꿇고 같은 반 급우들에게
형이라고 부를 것을 강요하던 병국이,
C중학은 물론 인근 웬만한 학교에선 다 알아주던 고등학생들까지
두려워 하던 병국이
선생들도 빨리 졸업하기만 바라던 C중학의 시라소니 조병국
(여기서 잠시 회상......
병국이가 중3때 무섭기로 소문난 기술 선생에게 뒷자리에 앉아 잠을 자다
걸려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병국이는 좀체 건들지 않던 기술 선생이었지만 전날 부부싸움을 했는지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수업을 하던중 잠을 자던 병국이가 코까지 드르렁
드르렁 골자 병국이 자리로 냅다 달려와 구두발로 등짝을 찍고 순간
기습을 당해 교실 바닥에 엎어진 병국이를 보이는대로 구두발로
작신 작신 밟아댔다.
병국이가 비틀 비틀 일어나자 따귀를 왕복 십여대를 갈겼고 나중엔 주먹까지
쥐어 연신 턱에 올려붙였다.
기술 미친개가 광풍이 몰아치듯 한 구타를 일단 마치고 숨을 헐떡이자.
병국이는 입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쓰윽 닦더니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더니
"이제 된겁니까" 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제자리에 털퍼덕 앉았다.
곧이어 수업 종료종이 울려 기술 선생은 질렸는지 그냥 나가버렸고
며칠후 기술 선생은 이유는 모르지만 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 학교에 왔고
병국이가 수업시간에 코를 곯더라도 못들은체 수업만을 진행했다.
여기서 회상 끝)
그러나 내가 사전 정보를 입수한 바로는 변형태는 신기식 기술 선생과는
레벨이 다른 인물이었다.
변형태와 조병국 두 고수간의 치열한 신경전의 시작이었다.
변형태는 고수 특수의 비웃는 듯한 입가의 웃음마저 삼가한 채 무표정으로
조병국의 이름을 재차 불렀다. '에에'하는 소리만 더 커졌을뿐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변형태는 출석부를 조용히 접어 교탁 한쪽에 놓더니 쇠로 된 삼각자를
조병국에게 박찬호가 마크 맥과이어를 맞이하여 최강의 강속구를 던지듯이
던졌다.
저격수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병국이의 이마에 정통으로 꽂혔다.
그리고 발은 그대로이지만 축지법을 써서 가듯 천천히 가는 듯 보이지만
어느새 교실 맨뒤 병국의 자리로 다가가 구두발을 병국의 오른턱에
그대로 꽂았다.
게임은 그대로 끝났다.
"이제 된겁니까"라는 선생을 압도하는 굵직한 말을 남기지도 못한채
교실바닥에 쭉 뻗은 개구리처럼 널부러지고 말았다.
변형태는 땀도 흘리지 않고 숨도 헐떡거리지 않으며 교단으로 돌아가
마저 출석을 불렀다.
출석을 다 부를 무렵 병국은 정신을 차리며 제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변형태는 "조병국 삼각자 주워 갖고 튀어와"라고 했다.
그러나 조병국은 기습을 당했다 뿐이지 바람의 파이터 아닌가
쇠자를 움켜쥐고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금새 똥행패를 내려칠 듯한 기세로, 조병국이 똥행패의 3미터 앞쯤
다가섰을때 변형태는 교탁을 작은 밥상 들듯 들어 교탁의 다리로
병국의 명치께를 냅다 찔렀다.
변형태는 분명히 말했다
"이 자식은 개조가 필요한 녀석이군"
켁켁거리는 병국을 구두발로 아주 평온한듯 자근 자근 밟으며
'아~ 아~ 정녕 그는 지옥에서 온 수라 대왕이란 말인가'
- WRITTEN by YIYAP -
* 사회의 무자비한 폭력에 힘없이 노출된 분들께도 이 글을 바칩니다.
[구타교실] -3- 지옥의 체력단련
* 변형태 (똥행패)가 머리에 붕대를 감거나 다리에 기브스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병국이가 똥행패의 충직한 개가 되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똥행패와 더불어 조병국의 감시와 폭력에도 시달려야 했다.
똥행패가 없을때는 조병국이 반분위기를 장악했으며
중학때는 그리 많던 잠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날카로운 눈을 희번득이며 우리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다
종례시간에 앞서 교무실에 집에서 기르는 '쫑'보다도 더 빨리
쪼르르 달려가 동태를 보고했다.
이것은 공개된 학원사찰이었으며 똥행패의 지능적이고도 교활한
지휘방법이었다.
역시 똥개는 똥개를 알아보는법
조병국은 똥행패의 아주 잘 조련된 애완견이었다.
그동안 몇몇의 학우들이 여러 종류의 시범케이스로 피흘리며 쓰러져갔고
나 역시 며칠전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며 손때가 묻어 기름이 번들번들한
박달나무 몽둥이 (그의 말에 의하면 정신단련봉 제 5 호.
호수가 낮아질수록 그 강도와 고통은 더해갔다.)로 히프 20대를 맞고
작은형의 애환이 서린 작은 대야에 내 피묻은 팬티를
남몰래 빨아야 했다.
부모에게 그 사실을 들켜 부모가 항의라도 하러 오는 날이면
똥행패는 부모님들에게 대놓고
'이런 자식 부모가 대체 어떤가 궁금했는데 마침 잘 만났다'며
삿대질을 해대고 게거품을 물어
하는 수 없이 질린채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날은 좀체 보기 힘든 똥행패의 흥분한 모습을 보며
수업이 끝난후 세시간 가량은 삼청교육대 순화교육을 무색케하는
혹독한 기합을 각오해야만 했다.
"너희들이 입학한지도 이제 2주일이 지났다. 우리 학교는 설립자이신
김학렬 이사장님의 건강한 체력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학교 설립 방침에 따라 등교시에는 교실로 직접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 뒷산으로 난 오솔길 1킬로를 뛴 후 입실하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말하겠는데 다른 반은 8시까지 등교하지만
우리반은 내일부터는 7시까지 등교해라
질문 사항 있나?"
항상 행패의 종례 끝은 질문사항 있나 였지만 단 한번도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똥행패의 종례가 끝나자 절반은 하교를 하고 절반은 남아 청소를 했다.
다른 반은 분단별로 청소를 하지만 우리반은 절반씩이 하루 걸러가며
매일 대청소를 해야했다.
그것도 한시간씩 매일 물청소를 해야했으며 유리창도 파리가
너무 투명해서 머리를 부딪고 죽을 정도로 깨끗이 닦아야만 했다.
청소가 끝나면 똥행패의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언제나 하얀 목장갑을 끼고 검사를 했다.
세번중의 두번은 재청소였으며 똥행패의 흰장갑에 검은 먼지가
묻어나는 날에는 곡소리가 났다.
드디어 그 악명 높은 조조체력 단련 시작의 날이었다.
김학렬 이사장은 똥행패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사장이 무슨 조화였는지 어느날 학교 뒷산을 뛰게 되었다.
그것이 20년 전 이었다.
그다음날부터 학생은 물론 선생, 급사, 수위까지 아침에는
뒷산을 뛰어어야만 했다.
다만 1학년은 입학후 2주일 가량이 지난 후부터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해도 뜨기전인 어스름한 새벽녘에 중국 인민복을 주섬 주섬 챙겨입고
'킹덤'병원 보다 더 끔찍한 M고로 향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고3 선도부가 사복경찰이 시위지역에서 보초를 서듯
쭈욱 늘어서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이미 새벽 6시에 등교하여 산길을 뛴 후 였다.
나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산길이 이어지는 듯 하더니 곧 급경사가 나타났다.
50여미터를 달리다 숨이 깔딱 깔딱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자 어디선가
"야, 거기 1학년놈 이리 튀어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 3 선도부였다.
그쪽에는 이미 열댓명의 아이들이 깍지를 끼고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었다.
나는 5분여간을 깍지를 끼고 엎드려 있다가
숨이 넘어가든 말든 선도부들의 감시아래 산길 한바퀴를 뛰었다.
평지 1킬로를 뛰어도 녹초가 될 판에 산길 1킬로는
태릉선수촌 국가대표들도 올림픽이나 다가와야 할 운동량이었다.
콧물을 입으로 한컵은 받아마시며 들어선 교실
조병국이 내게로 다가왔다.
"야, 최동혁"
"으 응"
병국은 고등학교에 오자 급우들에게 더이상 형이라 부르라고
강요는 안했지만 상대하기 싫은 독사같은 존재였다.
"너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찾아오랜다"
으허어어어어어어억~~~~~~~~~~~~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그가 나를 부르는 것일까?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으라고 할 것이지
아~ 내 인생 최대의 위기여......
- WRITTEN by YIYAP -
* 고교 시절 우리 학교에도 전교조의 바람이 몰아쳤다.
우리가 감자라고 부르며 우습게 알던 선생님, 아이들이 떠들든 말든
조용히 수업만 하시다가 가끔씩 '조용히들 하거라' 라 말씀하셨다.
학교에서 본격적인 전교조 탄압이 있자 대부분의 선생이 중도하차했지만
그분은 의외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셔서 끝내 해직당하셨다.
감자 선생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구타교실]-4- 이중인격자 교장 난동
* 나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교무실로 향했다.
똥행패가 무슨 일로 날 불렀을까.
혹 피묻은 팬티를 몰래 빨던 내모습을 어머니가 보시고 학교에 다녀 가신걸까.
'음~ 그렇다면 난 죽음이다. 현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지 않은가'
똥행패가 학교에서 짤릴리도 없지만 (그는 김학렬 이사장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었다.)
만약에 국가까지 개입해 똥행패가 짤린다면 그는 나를 반드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놓고 그만 둘 것이 틀림없다.
사형이냐 무기징역이냐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으로 교무실 그의 자리로
찾아갔다.
그의 자리에는 당구 큐대를 비롯하여 박달나무, 참나무, 나무 야구 배트,
알루미늄 야구배트등 온갖 흉기가 즐비했다.
그래도 소문으로 듣던 베트콩 머리를 짤라 들고서 씨익 웃고 찍었다는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설마 근거없는 소문이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똥행패 앞에 서자
故 박정희 대통령이 무표정으로 혁명과업을 읽어내리듯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최동혁"
나는 양팔을 겨드랑이에 꼬옥 붙이고 두주먹을 불끈 쥔 채
"넷" 하고 대답했다.
"음~ 네 중학교때 생활기록부를 보니 미술반 활동도 했었고 미술에 소질이
있더군. 앞으로 교실 환경미화 심사가 있을테니 네가 주축이 돼서
교실 환경미화에 힘쓰도록 자세한 얘긴 조회 시간에 할테니
그리 알고 교실에 가서 아이들한텐 아침 8시까지 책에 대가리
처박고 열심히 자습하고 있으라고 전해라.
만약 내가 불시에 들러봤을때 한 놈이라도 떠드는 놈이 있으면
너부터 죽이고 차례 차례 죽여주겠다. 질문 있나?"
나는 하마터면 "넷,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뻔 했다.
내가 뒤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똥행패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급사 내 액자 청소하다 치웠어"
급사 누나도 빨딱 일어나 긴장된 목소리로
"아뇨, 그 근처에 있을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급사 누나가 걸레로 똥행패의 책상을 닦다가 액자를 건드려
쓰러뜨렸었나 보다.
똥행패는 건너편 책상으로 넘어간 액자를 발견하고 소중히 챙겼다.
그 액자 속에는 똥행패가 양쪽 귀가 짤린채 두눈을 뜨고 죽은
베트콩의 머리를 들고 죽은 베트콩보다 더 끔찍한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은 '토요미스테리 극장', '다큐 이야기 속으로',
'전설의 고향'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귀신이 떼거지로 몰려나와도
감당치 못 할 전율이었다.
'아~ 아~ 내가 이런 자와 앞으로 1년을 보내야 하다니 혹 일년후에는
베트콩의 머리대신 내머리를 짤라 들고 서 있는 사진이 놓이진 않을까'
똥행패의 분부를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조병국의 감시와
똥행패의 공포를 익히 아는 아이들이 떠들리는 전혀없었다.
조회 시간에 행패는 앞으로 일주일후 있을 환경미화 심사에
우리반이 반드시 일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말을 이례적으로
두번씩이나 강조했다.
그가 두번 입밖에 냈다는 건 일등 외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거명하며 최동혁을 환경미화 담당으로 정했으니
내 말을 자신의 말처럼 듣고 따르라 했다.
나에게는 똥행패를 등에 업은 모처럼의 권력의 단맛인 시기임과 동시에
그 과업이 실패했을시엔 그의 철권에 희생당하기 전에 독약 앰플이라도
마셔야 할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나는 골머리를 앓으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음악수업 시간 열여섯명의 선생중 비교적
정상인에 가까운 단 둘 뿐인 여선생중의 한명인 윤미정 선생 시간
아이들은 일주일의 수업중 몇 안돼는 숨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 이었다.
모처럼 옆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부르던 그때
음악실문이 드르륵~ 열렸다.
우리는 소란한 수업분위기를 목격한 똥행패의 습격인가 아연
긴장했지만 주인공은 대머리가 반쯤 벗겨진 이중인 교장이었다.
우리가 이중인격자라 부르는 이중인 교장
그는 교장이지만 전혀 실권이 없고 김학렬 이사장의 허수아비였다.
평소에 그는 온순하다기 보다 무기력하게 지내는데 이사장실에 불려가
구두발로 조인트라도 찍히는 날이면 전투력 3만의 마인으로 변모하여
무슨 먹이거리가 없나 살피는 하이에나처럼 온 학교를 뒤지고 다녔다.
그 케이스로 오늘은 윤 선생이 걸렸다.
교장이 이런 날엔 제 아무리 똥행패도 슬금 슬금 피해다닐 정돈데 가냘픈
음악선생이 걸려들다니
교장은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야 이년아 니가 선생이야 음악실 팻말이 반쯤 떨어져
덜렁거리는데 그것도 몰라"
하며 음악책을 집어들어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윤미정선생에게
던지고 나가버렸다.
윤미정 선생은 순간 와락 눈물을 쏟으며 피아노 건반에 엎드렸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그녀의 불행이고 내 앞에 닥친 이 험난한 과업은
어쩌란 말인가.
반쯤 망령난 이사장과 이중인격의 교장 인간 백정 똥행패가 다스리는 M고
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첫 관문은 환경미화 심사였다.
내가 환경미화 따위에 목숨을 걸게 되리라곤 1년전엔 상상이나 했더란 말이냐
운명의 환경미화 심사는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 WRITTEN by YIYAP -
[구타교실] -5- 정신 단련봉의 정체 (상)
나와 우리 반원들의 운명을 결정 짓게 될 환경미화 심사로 그나마
격일제의 교실청소도 비상시국인지라 모든 반원이 남아 매일
두,세시간씩을 할애해야 했다.
환경미화 심사 기준이란게 피겨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 심사 기준보다
더 까다로워 100점 만점에 창의성 20점 면학성 30점 청결성 50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의성보다는 면학이 면학보다는 청결이 최우선이라니 무슨
식당 위생 검열같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청결에 최우선 과제를 두고 몇 몇은 칫솔을 들고
모서리진 부분을 열심히 닦고 교실 천장도 책상을 두개나 포개고
올라가 손걸레로 박박 문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반 아이들은 극도의 초긴장 상태속에 한달을 지내고 있었는데
진철이가 쓰레기통 주변 눌은 때를 칫솔로 문대다 이런 더러운 짓은
더이상 못해먹겠다며 칫솔을 부러뜨려 던져버렸다.
한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분노는 우리들에겐 사치였다.
옆에 있던 의기는 진철이에게 화를 내며 빨리 계속 닦으라 했다.
한동안 둘이 티격태격하다 엉겨붙고 말았다.
악랄한 사용자가 노동자를 극도로 탄압하고 공권력이 사용자를
비호할 때 노동자들끼리 대가리 깨지게 싸우는 꼴이었다.
그러나 수십킬로 밖에서도 썩은 고기의 냄새를 기막히게도 찾아내는
구타에 굶주린 한마리 하이에나(우~~오~~워~~~)가 이를 놓칠리 없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똥행패의 등장이었다.
우리들은 칫솔, 빗자루, 손걸레, 대걸레를 각기 든채
이상한 나라의 폴의 시간여행때처럼 모두 굳고 말았다.
진철이와 의기는 삐삐, 찌찌는 커녕 가엾은 니나였다.
똥행패는 울트라 대마왕이었다.
똥행패는 늪지에서 누우떼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던 엘리게이터처럼
이순간에도 냉정을 잃진 않았다.
똥행패가 대마왕이라면 버섯돌이는 병국이었다.
버섯돌이 병국에게 그는 우리가 아직까지 구경치 못했던
정신단련봉 1호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조병국 교무실 철제캐비넷 3번에서 단련봉 1호를 가져오도록"
(우리는 여기서 똥행패의 정신단련봉을 살펴보기로 하자
똥행패의 정신단련봉 10호는 그가 항시 소지하고 다니는 철제삼각자였다.
삼각자가 봉이라니 말이 안돼지만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10호는 휴대가 간편할 뿐 아니라 철제라는 재료의 특수성과
삼각자의 특성상 뾰족함이 더해져 말이 10호지 가장 두려운 무기이기도 했다.
9호는 바둑판이나 만들어 쓰며 신선놀음 해야 할 오동나무에
니스를 칠한 길이 1미터가량의 몽둥이였다.
8호는 참나무에 검은 페인트칠을 한 1미터 50 가량의 몽둥이였고
7호는 당구 큐대의 손잡이 부분,
6호는 전경의 곤봉을 연상시키는 재료미상의 곤봉이었다.
대개 6호부터 9호는 경범자를 다스릴때 썼지만 호수 선택은 똥행패의
그날 기분에 따라 좌우됐고 아이들의 의견은 대개 당구큐대가 걔중
맞을만 하다는 것이었다.
5호는 그의 10여년 손때가 묻은 박달나무 방망이였다.
그가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그 몽둥이는 똥행패와 함께
동고동락을 해온터라 학우들의 애환이 가장 많이 서린 몽둥이이기도 하다.
4호와 3호는 나무배트와 알루미늄 배트였다.
손잡이부분에는 착용감이 좋게 고무로 테이핑이 되어 있고
나무배트로 때릴때는 단타를 때린다는 기분으로 짧게 끊어쳤고
알루미늄 배트로 때릴때는 하일성의 표현대로 괴물 양준혁이
장타를 의식하여 공을 몸쪽에 끌어놓고 때리듯 풀 스윙 후
한동안 허벅지나 히프를 배트로 매만지는 동작을 취하곤 했는데
이는 반드시 시퍼런 멍자국을 동반하여 그 후유증을 10여일에
이르게 하는 장타였다.
그리고 1호와 2호는 우리가 아직까지 구경하지 못했다.)
그런데 2호도 아니고 1호라니
"겁대가리 상실한 녀석들 내가 보는 앞에서 싸움질을 하다니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오늘 단단히 뜯어고쳐주겠다."
우리들은 아직도 시간여행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굳어 있었다.
진철이와 의기는 번지점프대에 오른 것처럼 다리를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똥행패는 머리를 입김으로 후 불었다.
그러나 짧은 스포츠형 머리라 머리는 흩날리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감색양복을 벗어제쳤다.
김두한이 우미관 앞에서 시라소니와 대결하듯
그의 흰색 와이셔츠는 터질듯한 근육에 단추가 대롱대롱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와이셔츠 소매깃을 걷어 올렸다.
거무튀튀한 피부와 그의 팔뚝은 한참 물이오른 타이슨이었다.
그때 병국이가 단련봉 1호를 들고 교실문을 열었다.
'흐허허허허헉~'
- WRITTEN by YIY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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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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