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
고완수
꽃짐을 한 짐 지느라
벚나무가 불안한 밤이다
온몸으로 진 짐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헉헉거린다
거친 숨을 훅훅 내지를 때마다
뿌리로부터 빨아올린 악몽이
벚나무의 표정을 표백시킨다
꽃들의 잠꼬대가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내지른 숨이
허공 가득 쌓여 혼령처럼 떠돈다
그럴 때 허공은 절망보다 무겁다
가끔씩 내뱉지 못한 숨으로 꽉 찬 달이
한 덩이 구름을 지고 환자인양 걷기도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짐을 벗으려는 환부가 빗방울처럼 창백하다
벌들도 어둠을 한 짐씩 지느라
거친 숨을 훅훅 내뱉는 밤이다
혼자 져야하는 짐이 얼마나 무서운지
퀭한 눈동자마다 공포로 글썽거린다
가숭구지*
고완수
푸른 발음으로 바다의 언어를 가르쳐
내가 뭍으로 떠돌며 흔들릴 때에도
수평선 끌어올려 머리 꼭두까지 덮어주던
잊지 말아달란 그렁한 눈빛도 없었다
잊지 않겠단 손가락도 걸지 않았다
가슴은 늘 바다라는 심장만으로 뛰었다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에야
그리움의 인화지에 현상되던 얼굴들
바다는 날마다 별을 불러 마을을 이루는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흉곶(胸串), 가슴곶
고완수 : 충남 보령 출생. 1999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나는 자주 망설인다』, 『누군가 나를 두드렸다』, 큰시동인, 당진 석문중학교 교사.
첫댓글 귀한 시 잘 보았습니다. 가승구지 - 바다 그 끝없는, 심장이 뛰는, 사라진, 그리고, 날마다 별을 부르는 그리움이 그 철썩임이 들리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