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次栗亭李先生韻(근차율정이선생운)
정여창(鄭汝昌:1450~1504)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옥(伯勗), 호는 일두(一蠹)· 수 옹(睡翁).
조선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며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종성으로 유배되어 1504년(연산군 10) 죽었다.
그 뒤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되었다가 1517년(중종 12)에 복권되어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1610년(광해 2) 정몽주·김굉필·이언적·조광조와 더불어 동방 5현으로 문묘에 종사하였다.
『용학주소(庸學註疏)』·『주객문답설(主客問答說)』·『진수잡저(進修雜著)』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무오사화 때 불태워졌고 지금은 정구가 엮은 『문헌공실기(文憲公實記)』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학문을 연구함에 있어서 하늘과 사람이 시대의 으뜸이지만
學究天人冠一時 학구천인관일시
누추한 집에 살면서도 이름이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네
而居陋巷不求知 이거루항불구지
임금께서 특별히 불러 정치와 도에 관해 물으시고
聖君特召問治道 성군특소문치도
산림에 은거하는 뜻을 윤허하셨네
因許山林意所之 인허산림의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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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율정 이관의의 운(韻)에 차운 한 시이다
이관의(李寬義?~?)의 학문은 성리학을 비롯, 천문· 지리· 기상·역학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있어 당대의 으뜸이었고 일가를 이루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이름을 구하지 않았다
성종(成宗)이 특별히 불러 치도(治道)에 관해 물었는데
막힘이 없이 답하였다.
곁에 두고 자문을 구하고자 벼슬을 내려도
사양하고 산림에 은거하려 하자,
성종이 그 뜻을 헤아려 특별히 윤허(允許)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