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6:8~20)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처럼 잘 단련시켜 주셨습니다.’ (10절)
하나님의 나, 우리를 향한 사랑이 깊다.
우리를 단련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라도
변화하게 하시고 생명과 선한 영향력을 보유하게 하신다.
단련은 우리에게 힘든 과정이고
단련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부담과 피로감이 밀려오지만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그만큼 깊고 단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필연적인 것은
우리가 죄성으로 인해 마땅히 걸어야 할 궤도를 이탈하였기 때문에
다시 정상 궤도로 옮기게 하는 일종의 ‘진통’이기도 하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오늘 묵상에세이는 평소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고난은 우리를 예수님에게 멀어지게 만들 수도,
오히려 그분께로 더 가까이 이끌수도 있다.
스펄전이 경험한 것 같은 영적 성장은 파도라는 고난에
기꺼이 입을 맞출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고통과 고난을
경험할 때 본능적으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사용해
우리를 그분과 강하게 연결시키기 때문에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그 힘든 시간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다.
오직 그 고난 속에서만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있다.’
일단 하나님의 지속적인 두드림이 영혼에게 있다.
그런 두드림에도 불구하고 미적지근한 태도나
죄, 죽음으로부터 절연하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을 지나도록 지속된다면,
그때 하나님은 영혼들에게 ‘절망’을 경험하게 한다.
여기서는 ‘고난’이라고 표현한다.
그 절망 또는 고난은 어떤 기능을 하게 되냐면
하나님과 진리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죄와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양자택일하는 순간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니, 지금의 부적절한 위치로부터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면
그것이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집한다면
거의 죄를 확정짓게 되는 시점이 된다.
말은 쉽지만
너무나 절대절명의 순간이다.
지금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과 절망은
존재, 생존 자체가 통째로 흔들리는
시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비롯된 심리적 충격의 시간 속에서
나도 조금은 맛보았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순간.
그렇지만 나의 지금 모습은
하나님께서 그 고난과 절망의 카드를 만지작거리시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강박에 싸여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지금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은혜와 사랑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어떠한 명목으로든
고난과 절망이 내게 다시 찾아온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선택을 하기 바란다.
그 일을 위해 기도한다.
<오늘의 명언>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나쁜 일보다 더 두려워할 것은
우리 영혼이 죄 가운데 그대로 있는 것이다.’ -찰스 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지금 이 시간에도 고난과 절망 속에서
너무나 힘든 과정을 겪는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하오니
그들을 도와주시옵소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고통을 이기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 천안으로 내려갑니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잘 관리하고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복귀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정환이 항상 기억해 주셔서
남은 4차 항암에 효과가 있게 하시고
수술한 곳에 고통이 절감되게 해 주소서.
건강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헌신의 삶을 살도록 그의 인생을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내년 1.31부터 3일간 일본 여행을 친가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느끼는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