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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최후의 일인
동혁은 관 모서리에 얼굴을 부비며, 연거푸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영신 씨, 영신 씨! 내가 왔소. 여기 박동혁이가 왔소!”
하고 목이 메어 부르나, 대답은 있을 리 없는데, 눈물에 어리운 탓일까, 관 뚜껑이 소리 없이 열리며, 면사포와 같은 하얀 수의를 입은 영신이가, 미소를 띠고 푸시시 일어나, 팔을 벌리는 것 같다.
이러한 환각에 사로잡히는 찰나에, 동혁은 당장에 뛰어나가서 도끼라도 들고 들어와 관을 뻐개고, 시체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는 가슴 벅차게 용솟음치는 과격한 감정을, 발뒤꿈치로 누룩을 디디듯이, 이지(理智)의 힘으로 꽉꽉 밟았다. 어찌나 원통하고 모든 일이 뉘우쳐지는지, 땅바닥을 땅땅 치며, 몸부림을 하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건만, 여러 사람 앞에서 그다지 수통스러이[부끄럽고 아픈 데가 있다] 굴 수도 없었다. 다만 한마디,
“왜 당신은, 일허는 것밖에, 좀 더 다른 허영심이 없었드란 말요!”
하고 꾸짖듯 하고는, 한참이나 엎드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다가,
‘영신 씨 같은 여자두, 이런 자리에서 남에게 눈물을 보이나요?’
라고, 경찰서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에, 제 입으로 한 말이 문뜩 생각이나서, 주먹으로 눈두덩을 부비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다시 관머리를 짚고,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침묵하다가, 바로 영신의 귀에다 대고 말을 하듯이, 머리맡을 조금씩 흔들면서,
“영신 씨! 안심허세요. 나는 이렇게 꿋꿋허게 살어 있소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당신이 못다 허구 간 일과, 두 몫을 허리다!”
하고, 새로운 결심과 영결의 인사를 겹쳐 한 뒤에, 여러 사람과 함께 관머리를 들고 앞서 나와서, 조심스러이 상여에 옮겼다.
영신의 육신은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여 떠나려 한다.
동혁의 기념품인 학원의 종을, 아침저녁으로 치던 사람의 상여머리에서, 요령 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울린다. 상여는 청년들이 메었는데, 수백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부인네들과 동민이 가득 들어선 속에서, 다시금 울음소리가 일어난다. 아이들은 장강목[길고 굵은 멜대. 물건을 가운데 올려놓거나 매달고 앞뒤로 들어서 멘다]에 조롱조롱 매달려 제 힘껏 버팅겨서, 상여도 차마 못 떠나겠는 듯이 뒷걸음을 친다.
앞채를 꼲아주던[무게가 좀 나가는 물건의 한쪽 끝을 쥐고 치켜들어서 내뻗치다] 동혁은, 엄숙한 얼굴로 여러 사람의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조상 온 사람 전체를 향해서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다.
“여러분! 이 채영신 양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농촌의 계발과 무산 아동의 교육을 위해서 너무나 과도히 일을 하다가, 둘도 없는 생명을 바쳤습니다. 완전히 희생했습니다. 즉 오늘 이 마당에 모인 여러분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하고 한층 더 언성을 높여,
“지금 여러분에게 바친 채 양의 육체는, 흙 보탬을 하려고 떠나갑니다. 그러나 이분이 끼쳐준 위대한 정신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살어 있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의 조그만 골수에도, 그 정신이 박혔을 겝니다.”
하고는, 손길을 마주 모으고 서고, 혹은 머리를 떨어트리고 듣는 여러 청중들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서며,
“그러나 여러분, 조금두 설워허지 마십시오. 이 채 선생은 결단코 죽지않었습니다. 살과 뼈는 썩을지언정, 저 가엾은 아이들과 가난한 동족을 위해서 흘린 피는, 벌써 여러분의 혈관 속에 섞였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가슴속에서도, 그 뜨거운 피가 끓고 있습니다!”
하고 주먹으로 제 가슴 한복판을 친다. 여러 사람의 머리 위로는, 감격의 물결이 사리[한사리. 음력 보름과 그믐날에 조수가 가장 높은 때] 때의 조수와 같이 밀리는 듯. 서울서 온 백현경은, 몇 번이나 안경을 벗어서 저고리 고름으로 닦았다.
동혁은 목소리를 낮추어,
“사사로운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마는, 나는 이 청석골에서 사랑하던 사람의 사업을, 당분간이라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나마 소용이 되신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길을 밟는 것이, 나 개인에게도 가장 기쁜 의무일 줄로 생각합니다.”
말이 끝나자, 청년들은 상여를 메고 선 채, 박수를 하였다.
장사가 끝난 뒤에, 백현경과 장래의 일을 의논하며, 산에서 내려왔던 동혁은, 황혼에 몸을 숨기고, 홀로 영신의 무덤으로 올라갔다.
이른 봄 산기슭으로 스며드는 저녁 바람은, 소름이 끼칠 만치 쌀쌀하다. 그러나 그는 추운 줄을 몰랐다. 머리 위에서 새파란 광채를 흘리며 반짝거리는, 외따른 별 하나를 우러러보고 섰으니까, 극도의 슬픔과 원한에 사무쳤던 동혁의 머리는, 차츰차츰 식어가는 것 같다. 마음이 가라앉는 대로, 사람의 생명이 하염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스러이 느꼈다.
‘그만 죽을걸, 그닥지도 애를 썻구나!’
하니, 세상만사가 다 허무하고, 무덤 앞에 앉은 저 자신도, 판결을 받은 죄수처럼, 언제 어느 때 죽음의 사자에게 덜미를 잡혀갈는지? 제 입으로 숨 쉬는 소리를 제 귀로 들으면서도, 도무지 살아 잇는 것 같지가 않다.
‘수수께끼다! 왜 무엇하러 뒤를 이어 나고, 뒤를 이어 죽고 하는지 모르는 인생 —요컨대 영원히 풀어볼 수 없는 수수께끼에 지나지 못한다.’
‘내가 이 ‘채영신’이란 여자와 인연을 맺었던 것도, 결국은 한바탕 꾸어버린 악몽이다. 이제 와서 남은 것은 깨어진 꿈의 한 조각이 아니고 무엇이냐.’
될 수 있는 대로 인생을 명랑하게 보려고 노력하여오던 동혁이건만, 너무도 뜻밖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보고는, 회의와 일종 염세의 회색 구름에, 온몸이 에워싸이는 것이다.
‘별은 왜 저렇게 무엇이 반가워서 반짝거리느냐. 뻐국새는 무엇이 서러워서 밤 깊도록 저다지 청승맞게 우느냐. 영신은 왜 무엇 하러 나왔다 죽었고, 나는 왜 무엇 허러 이 무덤 앞에 올빼미처럼, 두 눈을 껌벅거리며 쭈그리고 앉었느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순환소수와 같이 쪼개보지 못하는 채, 사사오입을 하는 것이 인생 문제일까?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모양으로, 까닭도 모르고 또한 아무 필요도 없이, 제자리에서 맴을 돌며 허위적거리는 것이 인생의 길일까?
오직 먹기를 위해서, 씨를 퍼트리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잡어먹지를 못해서 앙앙거리고, 발버둥질을 치다가, 끝판에는 한 삼태기의 흙을 뒤집어쓰는것이, 인생의 본연한 자태일까.’
동혁의, 머릿속은 천 갈래로 찢기고 만 갈래로 얽혀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는 가슴이 무엇에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해서, 벌떡 일어났다. 팔짱을 끼고 제절[자손들이 늘어서서 절을 할 수 있도록 산소 앞에 마련된 평평하고 널찍한 부분] 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 봉분의 주위를 돌았다. 열 바퀴를 돌고 스무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가는 무덤을 베개 삼고 쓰러지며, 하늘을 쳐다본다. 별은 그 수가 버쩍 늘었다. 북두칠성은 금강석을 바수어서 끼얹은 듯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중에도 큰 별 몇 개는, 땅 위의 인간들을 비웃는 듯이 눈웃음을 치는 것 같다. 동혁은 그 별을 향해서 침이라도 탁 뱉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을 홱 뒤집었다.
‘그렇다. 인생 문제는 그 자체인 인생의 머리로 해결을 짓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가 있은 후,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술가가, 머리를 썩이다가 해결의 실마리도 잡어보지 못한 문제다. 그것을 손쉽게 풀어보려고 덤비는 것버텀, 망령된 짓이다.’
하고는, 단념을 해버린 뒤에,
‘그렇지만 채연신이가 죽은 것과 같이, 박동혁이가 살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생명이 있는 동안은, 값이 있게 살어보자! 산 보람이 있게 살어보자! 구차하게 살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미 타고난 목숨을 제 손으로 끊어버리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하고 영신이가 반은 자살한 것처럼 생각도 하여보았다.
‘일을 하자! 이 영신이와 같이, 죽는 날까지 일을 하자! 인생의 고독과 고민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한다. 사랑하던 사람의 사업을 뒤를 이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울어주고 서러워해주는 것버덤, 내가 청석골로 와서 자기가 끼친 사업을 계속해준다면, 그의 혼백이라도 오죽이나 기뻐할까. 든든히 여길까. ‘일에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하고 몇 번이나 생각을 뒤집었다.
‘그럼, 우리 한곡리는 어떡허나? 흐트러진 진영을 수습할 사람도 없는데……’
동혁은 다시금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혁은 앞으로 해나갈 일을 궁리하기보다도, 우선 저의 신변이 몹시 외로운 것을 느꼈다. 애인의 무덤을 호롤 앉아 지키는 밤, 그 밤도 깊어가서, 저의 숨소리조차 듣기에 무서우리만치나 온 누리는 괴괴한데, 추위와 함께 등허리에 오싹오싹 소름이 끼치게 하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고독감이다.
처음부터 서로 믿고 손이 맞아서, 일을 하여오던 동지에게 배반을 당하고, 부모의 골육을 나눈, 단지 한 사람인 친동생은, 만리타국으로 탈수한 후, 생사를 알 길 없는데,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저의 반렬르 삼아 한 쌍의 수리와 같이, 이 세상과 용감히 싸워나가려던 사랑하던 사람조차, 죽음으로써 영원히 이별한 동혁은, 외로웠다. 무변대해에서 키를 잃은 쪽배와도 같고, 수백 길이나 되는 절벽 아래서, 격랑에 부딪히는, 불 꺼진 등대만치나 외로웠다. 무한히 외로웠다.
그러나 한참 만에 동혁은, 무거운 짐이나 부린 모군꾼처럼,
“휘유—.”
하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다시 마음을 돌이켜보니, 저의 일신이 홀가분한 것도 같았던 것이다.
‘채영신만한 여자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진댄, 차라리 한평생 독신으로 지내리라.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은 몸을, 오로지 농촌사업에다만 바치리라.’
하고 일어서면서도, 차마 무덤 앞을 떠나지 못하는데, 멀리 눈 아래에서 등불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원재와 다른 청년들이 동혁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혹시 산소에나 있나 하고 뗄ㄹ 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동혁은 잠자코 청년들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 장로의 집에 잠시 들러, 곤해서 쓰러진 백현경을 일으키고, 몇 마디 앞일을 의논해보았다. 백 씨는 여전히 값비싼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종아리가 하얗게 내비치는 비단 양말을 신은 것이 불쾌해서, 동혁은 될 수 있는 대로 외면을 하고 그의 의견을 들었다.
“여기 일은 우리 연합회 농촌사업부에서 시작헌 게니까, 속히 후임자를 한 사람 내려보내서, 사업을 계속하기로 작정했어요. 영신이만 헐 수야 없겠지만, 나이두 지긋허구 퍽 진실한 여자가 한 사람 있으니까요.”
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동혁은 더 묻지 않았다. 부탁 비슷한 말도 하기 싫어서,
“그럼 나두 안심허겠소이다.”
하고 원재네 집으로 내려왔다. 영결식장에서 여러 사람 앞에 선언한 대로 당분간이라도 청석골에 머물러 있어, 뒷일을 제 손으로 수습해주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였다. 그러나 이미 후임자까지 내정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온다는데, 부득부득 ‘나를 여기 있게 해주시오’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영신이가 거처하던, 원재네 집 텅 빈 건넌방에서 하룻밤을 드새자니, 동혁은 참으로 무량한 감개에 몸 둘 바가 없었다. 앉았다 누웠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세상 모르도록, 술이나 취해봤으면…….
하고 난생처음으로 술 생각까지 해보는데, 원재가 저의 이부자리를 안고 건너왔다.
두 사람은 형제와 같이 나란히 누워서, 불을 끈 뒤에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였다. 동혁은,
“나는 새루 온다는 여자버덤두, 원재를 믿구 가네. 나도 틈이 있는 데루와서 보살펴주겠지만, 조끔두 낙심 말구 일을 해주게!”
하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원재도,
“채 선생님 영혼이, 우리들헌테 붙어 댕기시는 것 같어서, 일을 안 헐래야 안 헐 수가 없겠세요.”
하고, 끝까지 잘 지도를 해달라는 마레, 동혁은 이불 속에서 나이 어린 동지의 손을 더듬어, 꽉 지어주었다.
닭은 두 홰를 울고 새 회를 울었다. 그래도 동혁은 이 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던 사람과 지내오던 일이, 너무나 또렷또렷이 눈앞에 나타나서,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잠은 아니 왔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감기는 눈앞에서, 뜻밖에 이러한 글발이 나타났다. 청석학원 낙성식 때, 식장 맞은편 벽에 영신이가 써 붙였던 슬로건 같은 글발이, 비문처럼 천장에 옴폭옴폭하게 새겨지는 것이었다.
과거를 돌아보고 슬퍼하지 마라. 그 시절은 결코 돌아오지 아니할지니, 오직 현재를 의지하라. 그리하야 억세게, 사내답게 미래를 맞으라!
이튿날 아침, 동혁은 산소로 올라가서,
‘당신이 못다 한 일고 두 몫을 하겠다.’
고 맹세한 것을 이제로부터 실행하겠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한 뒤에 홱 돌아서서 그 길로 내처 걸어 ‘한곡리’로 향하였다. 그러나 시꺼먼 눈썹이 숱하게 난 그의 양미간은, 생목(生木)이 도끼에 찍힌 그 흠집처럼 찌푸려졌다. 아마 그 주름살만은, 한평생 펴지지 못하리라.
어머니의 병이 염려는 되었으나, 그는 바로 집으로 가기 싫어서, 역로에 몇 군데 모범촌이라고 소문난 마을을 들렀다.
어느 곳에서는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청년이, 오막살이 한 채를 빌려가지고, 혼자서 야학을 시작한 곳이 있고, 어떤 마을에서는 제법 크게 차리고, 여러 해 동안 한글과 여러 가지 과정을 강습해 내려오다가, 당국과 말썽이 생겨 강습소 인가를 취소당하고, 구석구석이 도적글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한곡리서 오십 리쯤 되는, 장거리에서 멀지 않은 촌에서는, 청년이 서너 명이나 보수 한푼 받지 않고, 삼 년 동안 주야학을 겸해서 하는 곳이 있는데, 그들은 겨우내 두루마기도 못 얻어 입고, 동저고리 바람으로 손끝을 호호 불어가며, 교편을 잡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편허게 지냈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는 그러한 지도자분들과 굳게 악수를 하고, 하룻밤씩 같이 자면서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방침을 토론도 하였다. 어느 곳에를 가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계몽적인 문화활동도 해야 하지만, 무슨 일에든지 토대가 되는, 경제운동이 더욱 시급하다.”
는 것을 역설하고,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는 동시에, 그는,
‘이제부터 한곡리에만 들어앉었을 게 아니라, 다시 일에 기초가 잡히기만 하면, 전 조선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며, 널리 듣고 보기도 하고, 또는 내 주의와 주장을 세워보리라. 그네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서, 같은 정신과 계획 아래에서, 농촌운동을 통일시키도록 힘써보리라.’
하니, 어느 구석에선지 새로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들이 그러한 고생을 달게 받으며, 굽히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실지로 보니, 동혁은 ‘한곡리’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의 생각이 바로 어제런 듯이 났다. 동시에 옛날의 동지가 불현듯이 보고 싶었다. 일체의 과거를 파묻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려는 생각이 굳을수록 동지들의 얼굴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건배를 찾아가 보자.’
지난날의 경우는 어찌 되었든,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건배였다. 보고만 싶은 게 아니라,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박봉 생활을 하는 사람이, 두 번이나 적지 않은 돈을 부쳐준 치사도 할 겸, 그가 일을 보는 군청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건배는 군청에도, 거기서 멀지 않은 사글세로 들어 있는, 그의 집에도 없었다. 건배의 아내와 아이들은 반겼으나,
“엊저녁에 ‘한곡리’꺼정 다녀올 일이 있다구, 자전거를 타구 가서 여태 안 들어왔어요.”
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무슨 일일가? 나를 찾어가지나 않었나?’
하고 동혁은 일어서는데, 안주인이 한사코 붙들어서, 더운 점심을 대접 받으며 지내는 형편을 들었다.
“노루 꼬리만한 월급에, 그나마 반은 술값으로 나가서, 어렵긴 매일반이야요. 일구월심에 다시 한곡리루 가서 살 생각만 나요. 굶어두 제 고장에서 굶는 게 맘이나 편하죠.”
건배의 아내는 당장에 따라 일어서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동혁은 그와 의형제까지 한 사이를 알면서도, 영신의 죽음은 짐짓 말하지 안핬다. 그가 영신의 소식을 묻고, 혼인 때는 꼭 청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네에, 청허구 말구요.”
하고 쓰디쓴 웃음을 웃어 보였다.
‘한곡리’가 십 리쯤 남은, 주막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 양복쟁이와 마주치자, 동혁은,
“여어, 건배 군 아닌가?”
하고 손을 들었다.
“요오, 동혁이!”
키장다리 건배는, 자전거를 내던지고 달려들어, 동혁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피차에 눈을 꽉 감고 잠시 말이 없다가,
“이게 얼마 만인가?”
“어디루 해 오는 길인가?”
하고 동시에 묻고는, 함께 대답이 없다.
“아무튼 저 집으루 좀 들어가세.”
건배는 동혁을 끌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아, 신문에까지 났데만, 영신 씨가 온 그런……”
건배는 대뜸 동혁의 가슴속의 가장 아픈 구석을 찌르고는, 말끝을 맺지 못한다. 동혁은 손을 들며,
“우리 그 사람의 말은 입 밖에두 내지 말세. 제발 그래 주게!”
하고 손을 들어, 친구의 입을 막았다. 건배는 머리를 떨어트리고 있다가, 한숨 섞어,
“그렇지, 남자헌테는 사랑이 그 생활의 전부는 아니니까……허지만, 어디 그이허구야 단순한 연애 관계뿐이었었나? 참 정말 아까운…..”
하는데,
“글쎄 이 사람, 고만둬!”
하고 동혁은 성을 더럭 내었다.
두 친구는 말머리를 돌렸다. 둘이 서로 집을 찾아갔더라는 것과, 그동안에 격조했던 이야기를 대강대강 하는데, 청하지도 않은 술상이 들어왔다. 건배는,
“나 오늘은 술 안 먹겠네.”
하고 막걸리 보시기를 폭삭 엎어놓더니 각반 친 다리만 문지르며 말 꺼내기를 주저하다가,
“자네, 그동안 ‘한곡리’서 변사(變事)가 생긴 줄은 모르지?” 한다.
“아아니, 무슨 변사?”
동혁의 눈은 둥그레졌다.
“그저께 강기천이가 죽었네!”
“뭐? 누가 죽어?”
동혁은 거짓말을 듣는 것 같았다.
“사실은 강기천이 조상을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건배는, 듣고 본 대로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기천이는 연전부터 주막 갈보에게 올린 매독을, 체면상 드러내놓고 치료를 못 하다가, 술 때문에 갑자기 덧쳐서, 짤짤매던 중, 그 병에는 수은을 피우면 특효가 있다는 말을 곧이듣고 비밀히 구해다가 서너 돈쭝씩이나 콧구멍에다 피웠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레 고만 중독이 되어서, 온 몸이 시퍼래가지고, 저 혼자 팔팔 뛰다가, 방구석에 머리를 틀어박고는, 이빨만 빠드득 빠드득 갈다가, 고만 뻐드러졌다는 것이었다. 동혁은,
“흥, 저두 고만 살걸.”
하고 젓가락도 들지 않은 술상을 들여다보며, 아무런 감상도 더 입 밖에 내지를 않았다.
건배는 마코[일제시대 담배의 한 상표]를 꺼내 붙이며
“가보니, 아주 난가(亂家)데 난가야. 헌데, 형이 죽은 줄도 모르는 ‘건살포’는, 서울서 웬 단발헌 계집을 데리구 왔네그려. 마침 쫓겨 갔던 본처가 시아주범 통부[부고]를 받고 왔다가, 외동서끼리 마주쳐서, 송장을 뻗쳐놓구 대판으루 쌈이 벌어졌는데, 참 정말 구경헐 만허데.”
하고 여전히 손짓을 해가며, 수다를 늘어놓는다. 동혁은 고개만 끄덕이며 듣다가,
“망할 건 진작 망해여지.”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그런데, 자넨……..”
하고 전보다 두 볼이 더 여윈, 건배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자네 그 노릇을 오래 헐 텐가?”
하고 묻는다. 건배는 그런 말 꺼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만 집어치겠네. 이 연도 말꺼정만 댕기구, 먹거나 굶거나 ‘한곡리’루 다시 가겠네. 되레 빚만 더끔더끔 지게 돼서 고만둔다는 것버덤두, 아니꼽구 눈꼴 틀리는 거 많아서, 인젠 너덜머리가 났네.”
하고, 담배 연기를 한숨 섞어 내뿜으며,
“월급푼에 목을 매다느니버덤은, 정든 내 고장에서 동네 사람이나 아이들의 종노릇을 허는 게, 얼마나 맘 편허구 사는 보람이 있을 걸, 인제야 절실히 깨달었네.”
하고 진저을 토한다. 그 말에 동혁은 벌떡 일어서며,
“자아 그럼 우리 일터에서 다시 만나세! 나는 지금 자네가 헌 말을 다시 한 번 믿겠네.”
하고 맨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굳게굳게 건배의 손을 쥐었다.
“염려 말게. 자네랑은 벌판의 모래버덤 한 줌의 소금이 되어주게!”
건배도 잡힌 손을 되잡아 흔들었다.
아무리 지루하던 겨울도 한 번 지나만 가면,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닥쳐온다. 반가운 손님은 신 끄는 소리를 내지 않듯이, 자취 없이 걸어오기로서니, 얼어붙었던 개천 바닥을 뚫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말랐던 나뭇가지에서 새 움이 뾰족뾰족 돋아나는 것을 볼 때, 뉘라서 새봄이 오지 않았다 하랴.
동혁은 신작로 가에서,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해진 것을 비로소 보았다. 미루나무 껍질을 손톱 끝으로 제겨보니[팔꿈치나 발꿈치 따위로 지르다], 벌써 물이 올라서, 나무하는 아이들의 피리 소리도 멀지 않아 들릴 듯.
“인제 완구히 봄이로구나!”
한마디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짖어졌다.
그는 논둑으로 건너서며, 발을 탁탁 굴러보았다. 흠씬 풀린 땅바닥은 우단 방석을 딛는 것처럼 물씬물씬하다.
동혁은 가슴을 봉긋이 내밀며, 숨을 깊닿게 들여마셨다. 마음의 들창이 활짝 열리며, 그리로 훈훈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 그는 다시 속 깊이 서리어 있는 묵은 시름과 함께,
“후—.”
하고 마셨던 바람을, 기다랗게 내뿜었다. 화로에 꺼졌던 숯불이 발갛게 피어난 방 속같이, 온 몸이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혁이가 동리 어귀로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불그스름하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언덕 위에 우뚝우뚝 서 있는 전나무와 소나무와 향나무들이었다. 회관이 낙성되던 날, 그 기쁨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외원들과 함께 패다 심은 상록수들이, 키 돋움을 하며, 동혁을 반기는 듯.
“오오,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구두 싱싱허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동혁의 걸음은 차츰차츰 빨라졌다. 숨 가쁘게 잿배기를 넘으려니까, 회관 근처에서 <애향가>를 떼를 지어 부르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웅장하게 들려오는 듯하여서, 그는 부지중에 두 팔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동리의 초가집들을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떠나 있던 주인이, 저의 집 대문간으로 들어서는 것처럼,
“에헴, 에헴!”
하고 골짜구니가 울리도록 커다랗게 기침을 하였다.
그의 눈에는, 회관 앞마당에 전보다 몇 곱절이나 빽빽하게 모여 선 회원들이, 팔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며, 체조를 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꿈벅하고 감았다가 떴다. 이번에는 훠언하게 터진 벌판에, 물이 가득히 잡혔는데, 회원들이 오리떼처럼 논바닥에 가 하얗게 깔려서, 일제히 <이앙가>를 부르며 모를 심는 장면이, 망원경을 대고 보는 듯이 지척에서 보였다.
동혁은 졸지에 안계(眼界)가 시원해졌다. 고향의 산천이 새삼스러이 아름다워 보여서, 높은 묏부리에서부터 골짜구니까지, 산허리를 한바탕 떼굴떼굴 굴러보고 싶었다.
앞으로 가지가지 새로이 활동할 생각을 하며 걷자니, 그는 제풀에 어깻 바람이 났다. 회관 근처까지 다가온 동혁은, 누가 등 뒤에서,
“엇 둘! 엇 둘!”
하고 구령을 불러주는 것처럼, 다리를 쭉쭉 내뻗었다.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을해년 유월 이십육일 당진(唐津) 필경사(筆耕舍)에서 탈고(脫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