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문4 : 신앙 간증
첫사랑 ‘임’ 손잡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남편께 편지를 씁니다.
같은 갈비뼈로 만들어진 한 몸인 무촌(無寸)에게는 더 이상 침묵 할 수 없어서 사실을 고백하렵니다.
그동안 벙어리가 평생의 침묵을 깨고 ‘영생의 길’에서 진심을 토로(吐露)합니다.
6.25 전쟁 후, 황량한 두메산골 고향 자양면에는 신기루 같은 봄바람이 불었지요. 그 봄바람 타고 새로 생긴 작은 예배당에서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찬미하던 그때 나는 초등학교 졸업 전이었습니다. 손녀가 예배당에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선비할아버지가 가만 둘 리가 없었지요. “남녀 칠세 부동석인데, 예수당에서 무슨 짓거리냐. 당장 그만 두지 못할까” ‘공자 왈 맹자 왈’ 사서삼경(四書三經)만 읽는 조부님의 호통은 호랑이 모습! 청천벽력과 함께 수염은 곤두서고 장죽(杖竹)은 땅을 두드리고 도포자락은 쌩쌩 찬바람 일었지요. 그 호통이 유교가문 체통과 체면세우는, 손녀딸을 위한 사랑의 표현으로 끝내 엄마에게까지 불똥이 튀었습니다. “어찌, 딸 하나 근사하지 못하고 … 쩌쩌 쯧” 손녀의 예수당 출입이 할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고, 손녀의 맹랑한 소행, 즉 불편한 괘심증이 하늘을 찔렸지요. 그럼에도 산촌의 무료한 일상에 싫증을 느낀, 호기심 많든 소녀의 발길은 계속 예배당을 찾았지요. 그곳에서 천지창조의 신기함과 영생의 삶, 말씀에 매료(魅了)되어 새벽예배까지 빠지지 않았기에. 결국 '몹쓸 계집아이'로 낙인찍힌 나는, 궁지에 몰린 엄마를 보면서 부재중인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한마디 말없이 기약도 없이 떠난 아버지가 계실 도시를 평소부터 동경하던 터. 저산너머 넓은 세상 어딘가에 계실 내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의 엄마 품을 떠났습니다.
시골 좁은 방 하나인 교회, 조사님(당시전도사)의 주선으로 고향을 떠나면서 나는 하늘에 약속했습니다. '타향사리 어떤 비바람 몰아쳐도 예수동행하며 살겠다.’는, 그렇게 성경을 품고 고학하던 학창시절을 대과(大過)없이 견뎌냈습니다. 여학교시절 개척과 도전정신, 나의 꿈 많은 상상의 날갯짓은 끝이 없었지요.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기에,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야간통신학교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자유롭게 오대양육대주를 누비고 싶다는 소망에서…. 그러나 가족을 내려놓을 수 없는 가장(家長)인 나는, 자신을 헐어내는 기형적인 결혼을 선택했지요. 결혼할 그때 나는 일생일대의 시행착오를 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랬지요. “종교가 있다”고요. 그 말 대신, ‘앞으로 하늘이 점지해 줄 새 생명(자식) 안고 교회는 가야하고. 아무리 부부라도 경제면은 독립되어야 한다.’고. 이 두 가지는 분명해야 했었거늘, 첫사랑주님만 의지하던 나는 참으로 순진했고 우매(愚昧)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나는 “시집온 여자는 시댁가풍에 따라야 한다.”는 당신 말에 순종했었지요. 서른 해 동안 교회에 빗장을 채우고 하늘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결혼생활! 살아도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고, 마음이 늘 좌불안석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학창시절 고달픈 육체 심난한 마음, 외로움이 허기질 때면 희망을 안겨주던 성경은 멀어져갔고, 신의 영광을 위한 나의 찬미는 메아리로 흘러갔습니다. 긴장과 불안! 그래서 병났을까요? 소화기에 적신호가 왔습니다. 사람은 잘 먹고 배설이 원활해야 연명(延命)할진데. 음식습취는 풍선된 헛배로 숨 차올랐고. 작은 긴장에도 대장이 경직되면서 배설구가 막히더이다. 픽픽 털털 털 삐리 릭! 시원찮은 따발총설사로 잦은 화장실 들락거리며 - 의욕상실로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지요. 당신이 가끔 내게 ‘청소부 대장했느냐’고 농담 걸 정도로, 깔 끔과 부지런을 떨던 일상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웃음 잃은 얼굴에는 음영이 깊어갔겠지요. 속내를 알 턱없는 당신은 깊은 까닭을 알려고도 않고 짜증부터 내곤 하였지요. 대화소통이 단절된 긴 부부생활, 종교의 부자유는 소송감이고 재판하면 이긴다고들 귀 뜸했었지만, 말씀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십자가에 비유되는 모성에는 참을 인(忍)자를 가슴에 묻고 살아내었습니다.
서로 다른 둘이가 한 곳을 바라보는 결혼생활, 무엇보다 야속한 사실은 남편이었습니다. 아이 삼남매의 진로결정과 결혼은 어떠했던가요. 부부는 일심동체인데도 의론 없이 밀어붙이는 독단(獨斷)! 가장 중요한 경제면에서도 일방통행! 언제 수하들이나 손주에게 용돈 한 푼 주도록 ‘윗사람 위신’ 한번이라도 세워준 배려가 있었던가요? “주머니의 돈이 삼지 돈이다.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는 독선이었을 뿐. 포용과 설득력 전혀 없는 완고한 유교적 위신과 체통으로 “길가는 사람 다 붙들고 물어 보아라. 내가 잘못한 게 있더냐?”라고 소리소리 질렸지요. 그 말들은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고 토로(吐露)합니다. 결혼생활동안 친정으로 인한 경제적 잦은 불화, 내겐 자존심이나 자존감, 아예 자아(自我)는 뭉개버린, 언어의 발언권은 말살(抹殺)된 삶 자체이었으니까요. 한 몸인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가 이려할진데 내가 그 누구와 가까울 수 있었을까요?
1984년, 대장종양 개복수술은 의사의 오진이었고. 그 수술 후유증이 평생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늘어져 흔들리는 신장으로는 ‘속 매스껍고 어지럽고 심하면 길에서도 기절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 1987년, 콩팥 끌어올려 복부에 고정하는 개복수술은 다시 원점으로 떨어지고. 그렇게 건강과 싸우는 동안 깊은 우울증 수렁에서 비관(悲觀)이 치밀면서 목청이 쉬기 시작 - 끝내 ‘말’ 잃은 실어증 “언어를 찾으려면 조용한 곳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권유로 1992년, 미개척지든 경기도에 혼자만의 동지를 틀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자연식 요양원을 전전하며 말씀 있고 공기 좋은 <뉴 스타트 생활> 세미나에서 5년 넘는 세월임에도, 밑도 끝도 없는 투병생활에 지쳐가든 나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죽으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낭떠러지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안고. 2000년 예수님과 새 결혼, 침례 식을 치룬 뒤. 벽 뚫는 탈각! 자신의 존재, 참정체성을 찾아서 가정이탈 고국을 탈출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밭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시편119:105)”
인생여정, 하늘에 주사위를 던지며, 15살 나이로 고향 떠날 때 ‘예수와 함께 살겠다.’는 언약을 이행하지 못, 홀로 서야하는 투병의 삶으로 살았지만. 첫사랑주님은 내가 살아내는 동안 내 마음 밭의 등이었고 세상어두움 밝히는 등대였습니다. 당신 말대로 “하나님은 교회만 있는 것 아니고 … ” 내 가슴 안에 살아계셨기에, 인간으로는 의지할 곳 없고 영어도 짧은 이국하늘 밴쿠버에서 3년 반 동안 투병생활의 극복도 기복이 심한 감정의 극기도 할 수 있었지요. 아가페 영혼사랑도 에로스 부부사랑도 오직 예수향한 일편단심! 검은머리 파뿌리 되는 동안 남편 뜻 따라 흔들리고 몸부림치며 남편원망으로 도망치며 살아온 나에게도 당신이 이젠 종교의 자유를 줬습니다. 교회를 가든 아니가든 상관지 않는 종교의 자유! 늦게나마 하늘과의 약속을 지키게 했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진리요, 철학 인문학 문학이 함축(含蓄)된 말씀안의 인물! “죽으면 죽으리다(에4:16)”하고 믿음으로 나라를 구한 ‘에스더’나, 쓰러져가는 이스라엘을 구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절절한기도(사무엘상1:11~)를 따라서 나는 기도의 선지자 그녀들 닮기를 원했습니다. ‘손(孫)귀한 시댁에 대(代)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안고 ‘잉태와 출산’기간 동안 줄곧 기도로 보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나는 생명의 말씀 성경을 믿습니다. 그리고 참 진정성은 살아있다고 확신합니다.
“선비는 두 길을 가지 않는다.”는 소신 있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존경하는 남편과 예향의 반석에서 황혼의 무지개를 그려봅니다. 유교관습에서 생명처럼 대(代)를 생각하여 자손(子孫)만을 위해 외골수로 살아온 당신도 지금은 비켜갈 수 없는 세월, 골진 주름 앞에 백발로 서산노을 바라봅니다. 유전적인 약질(弱質)임에도 놀라운 의지로 건강을 기적으로 잘 다스리던 당신도 자주 병원신세를 집니다. 작년에는 부정맥으로, 금년은 폐에 물차서 입·퇴원을 했습니다. 그 위병(萎病)에 놀라서 지구 끝 남반구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봉사하는 장손(희권)이 다녀갔다지요. 조부(祖父)와 손자간의 숭고한 사랑은 참 창조주에 의한 생명적이지요. 희권의 진한 원액을 보셨나요? 신의 사랑을 교감하는 장한 장손이 조부모로 해서 눈물 흘리게 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남 서변(徐辯)이 아버지 뜻 따라 토하고 통곡하면서도 대학진로를 바꾸었듯. 이제는 조부의 소원대로 공부 잘하는 성실한 손자의 뜻에 따라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쟁이는 다른 종교보다 교활하다”고 칠색 팔 색 뛰든 당신이, 며느리 볼 때는 신앙을 무시할 정도로 매사가 자신만만했겠지요. 그러나 어쩌죠. 며느리는 촌수(寸數)가 있는 것을요. 우리손자가 자기생모 뜻 받드는 것은 당연한 천륜(天倫)! 희권이가 신앙으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장손의 소원 ‘영생’ 길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신과 나는 황혼의 언덕 끝자락에 섰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강만을 잘 챙기기를 바라며 서로를 믿고 있습니다. 당신만난 결혼생활, 30여년 넘게 성전을 등지고 투병의 골짜기를 방황하였지만, 이젠 첫사랑님 은혜로운 말씀 속에서 파도치던 신앙의 연단도, 미칠 것 같은 억울한 생존도, 팔딱 뛸 듯 절망하든 자존심도 그 알량한 자아(自我)도 고요한 수평선! 석양노을아래서 당신과 나의 불후의 명작! 우리의 열매들은 석류처럼 알알이 영글어갑니다. 조물주가 준 생명의 선물, 아이 삼남매에 이어진 그 일곱 열매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반석, 말씀진리 안에서 지식을 쌓고 지혜로운 인향으로 사람답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참 행복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부활의 삶을 위해서.
아! 내가 첫사랑주님 손잡고 인내하며 살아내었음으로 인생은 이리도 고귀하고 신의 역 작품 천연 계는 저리도 아름다운 것을.
“하나님을 내가 사랑인줄 알고 믿었나니, 당신은 바로 나의 첫사랑이시라.” (요한1서 4:16~ 인용) / -아내 : 淸香 정정숙 (2018.5.21.부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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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앙간증은교단체 살려고 노력할따름이지 그리고 향기님의 독백을 생각할수록 무거움을 느껴 몸이 아푸거나 말거나
현실을 겁다고 생각하며 팔순 구순 넘은 명예교수들의 이야기들으며 저 사람들은겁다며 지내려 합니다
너무 어려워 저는
개신교나 천주님이나 석가모니
유교 흰두교 원불교 많은
어느곳에고 접목시켜 내 삶을 비유해 보지도 않았고
다만 어릴때는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아버지(4살에 타개)
어머니(5살에 떠났으니) 부모가 무엇인지 느낄새도 없었고 한갑이
넘고 내가 부모되니 어떻게 해야 잘하는것인지 조차 그렇습니다
삶이 너무 어려워
읽어도 무엇이 그렇게 했었는지
저렇게 하고
구구절절,
격고 살아온 이 아니라면 하나님 말고는 어찌 그 아픔을 쉬 헤아리리오.
날과 씨에 담긴 아픔과 애달픔이 읽는 이가 제 아무리 살피고 살펴 읽는다해도
어찌 그 속을 다 헤아리리오.
이 모두는 다만, 주님의 이끄심의 결과이시니, 마지막 말씀대로
"하나님을 내가 사랑인줄 알고 믿었나니, 당신은 바로 나의 첫사랑이시라.”
(요한1서 4:16~)로 갈음하심이 마땅하시리라.
세상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고 거꾸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는데 청향 작가님도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고 사랑으로 이겨내시고 있군요~! 편지 잘 읽었습니다 계속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