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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英仲 편저 * 제주4.3사건 정립. 연구유족회
김영중 (전직) 경찰공무원
출생1942년
출생지 : 제주 , 소속 : (전) 제주도지방경찰청 보안과 과장 ,서귀포경찰서,
제주경찰서 서장, 애월상업고등학교 ,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제주도지부 회장등 역임
☞본 서적은 총 309Pag로써
목차, 1~20 항목으로 구분 , 4.3사건 발생의 배경을 재조명하고 잘못됨을
바로잡아 후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려는 의지에서, 쉽게 문답 형식
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부록은 (1) 미군정청 문서 브라운 대령보고서 (2)레베데프 비망록......
(6)내가보는 제주4.3사건 수정보판 정오표 |
▶ 이 책의 출간 배경은....
제주4.3사건의 궁금한 모든 문제를 문답식으로 풀어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쟁점만 골라 편집한 것이다.
(1) 이는 2013년 DBS 제주방송국에서 “제주4.3사건 진실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7회에 걸쳐 대담하고 녹화 방영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2) 제주4.3사건은 남로당이 일으킨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인 남로당은
사라지고 좌파정권을 거치면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만 남은 괴이한 반쪽이 되고 말았다.
(3) 그들은 4.3의 성격을 “항쟁‘으로 고착시키려는 방위적 움직임은 여전하고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남로당의 반란행위를 은폐 묵인하려는 움직임이 엄존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인식에서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4.3의 핵심이고 본질인 성격규정 정도도 안 되었고 왜곡편향 되었기에 사건을 진압하게 된 원인과 원인 제공자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을 비롯해 잘못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
어린 학생, 후손들에게 잘못된 4.3 역사를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올바른 4.3 역사 정립의 일환으로 이 책을 낸다.
* 2014년 5월 10일 *제주시 우거에서 김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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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주4.3사건의 정의(定意)
(1) 문 : 도대체 “제주4.3사건” 이란 어떤 사건입니까?
답 : 제주4.3사건의 정의와 성격은 4.3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제주4.3사건은
첫째 ,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기 위한 반란이고
둘째, 진압과정에서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4남한에 있는 남로당은 UN 결의에 의한 대한민국 건국에 동참하지 않고 소련과 북한의 노선에 따라 적극적인 대한민국 건국저지 투쟁을 전개한 것이 4.3이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 4.3 사건입니다.
(2) 문 : 4.3의 정의를 비롯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4.3이 일어 나게 된 배경과 전후 국내외 정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답 : 4,3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제주지역에 국한하거나 민중사관이나 지역 저항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일부만 보게 된다. 국제정세를 파악하고북한의 관련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전체적인 맥락과 전모를 이해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태평양 전쟁, 임시정부의 구성, 일소중립불가침조약 파기선언 등....역사적 사실을 볼 때 소련보다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켰다. 그러나 김달삼(본명, 이승진)은 미국에 대해서는 “미제식인종”이라고 매도. 반면 소련에 대해 “우리 조국 해방군인 위대한 소련군과 그의 천재적인 스탈린 대원수 만세”를 외쳤다.
(3) 문 : 우리가 해방되고 미군은 언제 제주도에 도착하였는가?
답 : 1945년 9월28일 그린대령이 인솔하는 항복접수 팀과 파우웰 대령이 인솔하는 무장해제 팀이 도착하였습니다.
(4) 문 :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은 해방군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답 : 4.3 주동자 김달삼은 1948년 8월25일 “해주연설”마지막에 우리 조국 해방군 위대한 소련군과 천재적 영도자 스탈린 만세를 외쳤습니다.
참고 : P30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비판
문 : 4.3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엇입니까?
답 : 크게 분류한다면
(1) 4.3의 성격이 반란이냐? 항쟁이냐?
(2)4.3이 공산통일 투쟁이냐 아니냐?
(3)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의 지령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4) 4.3주체 세력은 몇 명인냐?
(5) 4.3의 시기(始期)와 종기(終期)를 언제로 하느냐?
(6) 인명피해는 몇 명이냐?
(7)4.3 진상조사보고서가 완벽한 보고서냐/ 당장 새로써애되는 보고서냐?
(8) 친일 청산문제
(9)불량위패 제거문제 등입니다.
* 본 서적은 : 김영중 : 010-4202-4934
e-mail : yeongjoong. kim@hanmail.net
제주4.3사건정립 .연구유족회 (전화) 064. 711-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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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반란 바로세우기
4.3사건의 원인은 남로당
제주 4.3 공원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제주 4.3 평화 기념관 전시물에 나타난 문제점-
(1) 제주시 봉래동 4.3 평화공원은 (지상1층, 지하4층)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진압의
불가피성은 무시한 채 진압작전에서 발생한 인명살상과 부정적인 면만을 과장해 전시,
결과적으로 반 이승만 반 군경사상을 각인 왜곡된 역사 교류의 장이되고 있다.
(2) 4.3 추념일 지정은 저지되어야 한다. 남로당 다수와 북한인민군사단장이 희생자로
둔갑 위패가 봉안되고 있다. 4.3국가 추념일에 대통령을 모시려고 한다.
이들의 역사인식 수준은 치매단계 아닌가? 건국저지 세력은 반성하고 무고한 희생을
한 행위도 반성하라, 남로당 지지 세력은 반란을 인정해야 한다.
첫댓글 김영중 선생은 심장 박동기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307페이지에 달하는 "제주 4.3사건 문과 답" 이란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4.3의 진실과 배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매우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위의 젊은이들에게도 권유해야 할 책자입니다. 귀한 자료를 게시판에 소개해 주신 시내산께 감사 감사합니다.
저는 위 사진에 나와있는 4.3공원 앞의 현장 궐기대회에서 5분 발표를 하기위해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가 유이수 동기에게는 왔다간다는 연락만을 하고는 하룻밤 쉬고 가라는 제안도 받아들지 못하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음 날 의정부에서 있었던 월남참전 용사의 주례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었으니 참으로 바쁜 일정이었답니다. 그 자리에서 이선교 목사와 김영중 회장의 연살도 있었습니다. 당시 제주의 일간지에는 기사화되었으나 서울의 신문들은 모두 침묵을 하였답니다. 두서없 이 몇자 더 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