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를 부정하는 향봉스님
후박나무 (허정) 2023. 7. 22. 21:11
요즘에 불광출판사에서 향봉스님의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이라는 책을 내더니 불광미디어에서는 유튜브에 향봉스님의 설법을 지속적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경전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과학과 상식에 맞지 않는 향봉스님의 설법은 불자들과 비불자에게 눈살을 찌푸리게한다. 윤회를 부정하는 그의 설법을 불광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책장사만 잘 되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인가? 이런 스님을 찾아가 설법을 유튜브에 올리는 불광출판사는 불광(佛光)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불광(佛光)을 꺼뜨리는 짓을 하고있다. 또한 향봉스님을 모셔다가 법석을 만들어 드리는 상도동 보문사 지범주지스님도 제대로 된 불교관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든다. 부처님은 아래처럼 명쾌하게 윤회를 설명한다.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 :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受者是(금생수자시) : 금생에 겪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欲知來生事(욕지내생사) :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作者是(금생작자시) : 금생에 짓는 업이 바로 그것이다."
앙굿따라 경우 경(A5:57)에서는 설명이 더욱 자상하다.
‘나의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내가 선업을 짓건 악업을 짓건 나는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위 게송들처럼 전생과 내생은 업의 흐름임을 설하고 계신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인과응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전생과 금생과 내생이 업의 흐름임을 설하는 부처님께 대항하여 향봉스님은 전생과 내생이 없다,윤회는 없다고 주장하고있다. 윤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뒷바침하는 논거들도 경을 잘못 해석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비유를 들고있다. 향봉스님은 윤회설은 인도 〈리그베다〉에서 비롯된 조령제(祖靈祭, 조상제사)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부처님의 생존시기에 5도 윤회설이 등장하고 6도윤회설은 불설(佛說)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성도후 3~4년째 웨살리(바이샬리)에설해진 보배경에는 4가지 악처라는 내용이 분명히 나온다.
"통찰지를 구족하여 세 가지 족쇄를 버린 이들은 네 가지 악처에서(Catūhapāyehi)벗어나고 여섯 가지 악행을 범하지 않네. 승가 안에 이 으뜸가는 보배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모두 행복하기를!"
여기서 네가지 악처란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에 태어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미 네가지 세계를 악처로 표현하고 인간과 하늘세계에 태어나는 것은 선처(善處)에 나는 것이라며 이미 육도를 말하고 있다.
경전의 인용도 어긋나있다. 왓차곳따 불 경(M72)에서 부처님은 타고 있는 불이 꺼졌다면 그 불이 어디로 갔다고 말하지 못하듯이 아라한이 죽은 뒤에 어디로 갔다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향봉스님은 사람이 죽으면 윤회하는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결과적으로 윤회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아라한이나 부처님처럼 다시 윤회를 하지 않는 분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비유이다. 향봉스님처럼 무아와 윤회를 일직선상에 놓고 서로 모순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중생은 무아를 모르기에 윤회하는 것이고 아라한은 무아를 깨쳤기에 윤회하지 않는다. 무아를 모르는 자는 '나의 것'이라는 갈애와 '나'라는 자만과 '나의 자아'라는 무지를 갖고 살아간다. 부처님은 갈애와 자만과 무지를 없애기 위해 8정도를 실천하라고 설하는 것이다.
향봉스님은 또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서 아이가 생기는데 쌍둥이가 생기지 않고 하나의 아이가 생긴다면 영혼이 두 개가 만나서 하나의 영혼이 생기는 것이므로 이 것은 인과법칙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일반상식에도 못미치는 말을 하면서 윤회를 부정하는 것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남자 여자는 각각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 둘이 만나야 하나의 생명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데 향봉스님은 정자와 난자를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 보고 있다. 기초적인 상식도 없는 스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향봉스님은 연기법칙을 인정하면서도 태어남을 있게한 원인과 조건은 부정한다. 부처님은 갈애(taṇhā) - 취착(upādāna) - 유(bhava)가 있기에 태어남(jāti)이 있다고 말한다. 향봉스님은 "이것이 있을때 저것이 있다"는 연기공식은 인정하면서도 태어남(jāti)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함으로서 연기법을 부정한다. 연기공식에서 이것과 저것은 12연기의 각지를 말하는 것이다.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지금의 향봉이라는 존재가 우연히 태어났다는 말이다. 전생도 없고 어떤 이유도 없이 우연히 태어났다는 것을 누가 믿으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보다 더 황당하지 않은가? 또한 죽으면 아무런 이어짐도 없이 단절되는게 인생이라면 과연 향봉스님이 250계의 비구계를 받고 출가 수행을 할 필요가 있을까? 적당히 즐기고 오히려 욕망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내생이 없는데 어떻게 살다가 죽은 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부처님 경전을 부정하는 것이고, 수행의 방법인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부정하는 것이고, 수행의 결과인 해탈열반을 부정하는 것이다. 향봉스님은 한마디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떠들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가보지 않은 사후세계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향봉스님처럼 가사를 수하고 있으면서 경전에 나와있는 부처님 말씀을 함부로 부정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향봉스님 이전에도 윤회를 부정하는 자들이 많아서 "윤회를 증거하는 경전들(https://whoami555.tistory.com/13742594)”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을 향봉스님이 나오는 유튜브에 댓글로 달았더니 두 번이나 지워졌다.
첫댓글 어릴때 어느 책에서 읽은 말 '다음생의 내가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데 선업을 짓는 것은 다음생의 나아닌 누군가를 위해하는 보시행이다' 라는 의미였는데 공감됐어요 ㅎ 현실적이죠.
저 스님 유튜브에서 잠깐 뵌것 같네요.
가령 이런 상상을 해봐요. 일생동안 착한 일하고 몸과 마음 맑히는 일을 했던 사람을 구성했던 60조의 세포, 그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 또 원자는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우주공간에 낱낱히 흩어지더라도, 그 선업의 에너지를 함유한 세포와 분자와 원자들은 모두 다른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다시 흡수되어 재사용될 터이다. 그러니 우주의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정화하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우주적으로 공헌하는 셈이다. 곧 무한한 공덕을 쌓아 불특정 다수에게 무조건 보시하는 게 생명활동이다.
존재에 실체는 없다는 측면에서 윤회하는 나의 실체가 없으니 윤회가 없다는 말씀이 향봉스님의 말씀이고 실체는 없으나 윤회하는 작용이 있으니 윤회가 있다는 것이 허정스님 말씀이겠지요 두분의 말씀이 윤회의 두 측면을 말씀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수행자에게 중요한 건 실체없음을 통찰하며 다만 공덕쌓음을 무한이 실천해 나가야한다는게 원담스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것이겠지요
저는 불자든 비불자든 윤회를 믿든 안믿든 각자 생각대로 살겠지만 8정도를 실천하면서 살면 내가 살아있을때 스스로 기쁘고 장차 후손들도 본받아서 살테니 좋고 이세상 모두를 위해서도 8정도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법륜스님도
그 당시 인도에 이미 전래되고 있었던 걸로 말씀하셨구요~
언젠가 본 BBC다큐인가에서도 자타카 등등 세월이 지나면서 보태진 구전설화쯤으로 여기더이다~
장차 누가 윤회를 믿으며 살까요? 글쎄요~&&
윤회란 무엇인가?
(밀린다왕과 나가세나 문답)
어떤 사람이 잘 익은 망고를 먹고 씨를 땅에 심었다고 합시다.그 씨로부터 망고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나무에 열린 망고를 따 먹고 씨를 땅에 심으면,다시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망고나무는 끝없이 이어갈 것입니다.
윤회도 이와 같습니다.
맞아요. 법륜스님도 윤회는 믿음의 차원일뿐 확실한것은 아니라 했죠.
조현 기자도 수많은 고승들 만나봤지만.. 깨달음 얻었다는 분들 보다도.. 일상에서 8정도 실천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고개가 숙여지더라는 말을 했다네요 ㅎ 조현기자 유튜브 재밌어요
이 영상 15분부터 향봉스님이 윤회에 관해 말씀하시는데 거의다 맞는 말씀 같은데요.
https://youtu.be/Rktv_3ZvUWU
허정스님은 뭔가 경직된 사고하시는 느낌이에요.
참고로, 저는 향봉스님의 아트만에 관한 이야기는 수긍 못해요. 중관학파(겔룩파) 쪽에서 힌두교와 차별성 두려고 강조하는데..저는 그런것도 다 희론(?) 같아요. 제 직관으로는 아트만과 법신불이 차이 없을꺼라고 보거든요. 교학중에서 그런 공부하느라 내 인생 낭비하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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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허망한 분들이 많군요. 이런 분들은 허정스님 말씀대로 힘든 불교공부 하지말고 그냥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다가 가면 될텐데요.
부처님 재세시에 평균수명이 40도 채 안되었을것인데(조선시대 평균수명이 37세인가 했다니 말이죠.) 윤회를 말씀하지 않았다면 고작 그 짧은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자고 부처님이 그 오랜기간동안 힘들게 가르침을 펴셨다는 것이군요.
그마저도 생노병사에 눈뜨는 시기는 20세이상은 되어야 하니까 평균적으로 봐서 기껏 십몇년 남은 삶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율을 지키고 그 어려운 수행을 하도록 말씀하셨다는 것이니 ..이런 되도않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더 불가사의하군요.
법륜 '스님'? 향봉 '스님'?
윤회를 부정하고서도 승려 자격을 버젓이 유지할 수 있는게 바로 한국불교의 현주소이니 허허..웃을수 밖에요.
향봉스님의 "윤회는 없다"의 반론을 따라 가입한
기독교도도,불자도 아닌 그냥 한세상 살다보니
나이먹은 범부입니다.
목사 몇분에게 과연 천국은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였지만
인간 누구나 예수믿고 천국간다는 말과
과연 천국은 우리가 보지않고 겪지않은
하지만...
(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세상에서의 모든관계는 소멸된다고도 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후생은....?
(현생에서 전생을 기억 못하고...
또 우리의 조상들이 자손들에게
아무런 영향을끼칠 수 없다면....)
논리적으로는 같은내용 아닐까요?
살아온 인생이 남에게 못되게 살아온
그누구도 그러한 번뇌나 미안함이 없는 것을
수없이 보아온 저로서는
결국...
그러한 삶의 죄책감을 느끼게하는 기능이
종교의 존재이유가 크지 않을까요?
좋은사람,나쁜사람이 구분지어 태어나지 않듯이
자라면서 부모형제나,환경,교육의 영향이 크지않을까요?
가입인사로
스님께 법문이 아닌
인반무종교인의 의문점을
질문 드려봅니다...
1955 12 21 갑오생 허성열 드림
반갑습니다. 제가 스님 아니지만 님 글 읽고 일부 공감되는바가 있어 말씀드려요.
세상은 참 불평등 하죠. 어떤 이는 일생 어려움없이 행복하게 살다가고 어떤이는 고생만 하다 가고..
인과응보가 금생에서 이루어지면 좋으련만.그렇지 못하죠.
그래서 전생 내생이나 윤회의 개념이 나온것 같아요.
참 위안이 되거든요.
저희 엄마도 오랜 투병으로 힘들게 살다 가셨지만.. 그것이 전생의 업을 푼것이라고 여기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죠.
1969 기유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