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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1장 교회의 위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1-3장 까지는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자리에 있는가를 보여 주고 4-6장 까지는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기전부터 교회를 예정하셨습니다.(4)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피값으로 산 사람들입니다.(7)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으로 교회에 찾아오셔서 함께 사십니다.(13) 그리고 장차 천국을 상속시켜 주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차지하는 교회의 위치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지구를 특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지구에는 수많은 무생물과 생물이 있지만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가장 특별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피로 죄씻음받은 교회가 가장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모든 만물보다 위에 있습니다. 장차 교회는 만물을 완성하고 다스릴 사람들입니다.(2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자신의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입니다.(23)
우리가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더욱 순종함으로 그리스도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평생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계획을 생각하며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우리가 너무나 좋아서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감사와 찬양을 하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6,12,14)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평생이 기쁨과 감사의 찬양으로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나눔
1.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임을 세개 정도 말해 보자.
2. 교회는 몇번처럼 생각하고 섬겼는가?
3. 앞으로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지 나눈다.(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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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감사와 기도
에베소서 1장 15-23절
우리나라에서도 원정출산(遠征出産)이 문제된 적이 있지만, 중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원정출산이란 다른 나라 안에서 출산하면 출산한 나라의 시민권과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출산을 말합니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좀 더 좋은 나라에서 출산하기를 동경합니다. 대부분 미국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미국령인 괌이나 하와이 같은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출산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과 모든 복을 누리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한없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본문은 찬양이 이어 그의 기도가 기록된 부분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세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의 영광을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길 바랍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의 특권을 누리면서 영광된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 성도들은 ‘찬양’과 ‘기도’가 동반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교회에 대한 감사(15-16)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흔들립니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부모와 자녀들 간에 가정교육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기 뿌리에 대한 교육도 없어 자존감(自尊感)도 사라져 갑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존감을 인식하면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지만, 반대는 좋은 환경 속에서도 쉽게 흔들려서 방황합니다.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15-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 관심은 교회들을 위해 중보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는 로마에서 감옥에 투옥된 상태에서도 교회와 성도들 생각뿐이었습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그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정말 어려움 가운데 헌신하면서 세운 교회(사도행전 20:34)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관심은 매우 깊었으므로, 그들을 위해 당연히 기도했을 겁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표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빠지지 않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에베소 교회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고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⑴ 감사의 근원(15a)
에베소 성도들에 대한 좋은 소식은 먼 로마까지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소식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들려졌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듣고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바울은 더욱 그들을 한사람 한사람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성장할 수 있는 근원을 “이로 말미암아”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3-14절에서 설명한 주권적인 하나님의 구원에서 근원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성도들에게 감사할 조건은 사람의 능력이나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⑵ 감사의 조건(15b)
에베소 성도의 ‘사랑’과 ‘믿음’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결실이며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완벽하지 않지만 에베소 교회는 꾸준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말씀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본문으로 돌아와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한 공동체라고 합니다. 충만한 공동체의 요소인 ‘믿음’과 ‘사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① 믿음
먼저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대해 감사합니다. 이 ‘믿음(πίστις)’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햇볕처럼 내리시는 은혜 아래 머물러 있는 능동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 지배 아래 있는 식민지들은 모두 황제를 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교를 무릎 쓰고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뿌려진 복음이 ‘주 예수 안에’ 성장하여 열매 맺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거론한 것처럼 에베소 지역은 믿음이 성장하기에 매우 척박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 황제 숭배뿐만 아니라 이방적인 우상과 풍요로운 물질 그리고 방탕한 문화 등이 산재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지뢰밭처럼 유혹과 시험이 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3년 동안 이런 에베소에서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지만 에베소 성도에게 겨자씨처럼 성장했던 것입니다. 유혹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고 의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 연약해 보이던 이들이 굳건한 믿음을 서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매우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② 사랑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를 향한 실천적인 ‘사랑(την αγαπην)’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로 개종이나 종교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도 나타납니다. 그 실천적 믿음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1서 4:20)
에베소 성도들이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구성원들이 다른 출신과 배경으로-혈통과 신분,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노예들이-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차별과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친한 동료들에게만 속 좁은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하나 되어 모든 성도들을 향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의 연합과 충만한 공동체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평판이 주변 소아시아 지역에 교회에 대한 펴졌습니다. 교회들을 개척할 때, 여러 모습으로 물심양면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에베소 교회가 ‘믿음’과 ‘사랑’이 가득하다는 소식은 바울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형상인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었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은 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⑶ 믿음의 결과(16)
건강한 농작물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성숙한 믿음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은 영적인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기쁨과 동일합니다. 마치 농부들이 농작물이 성장해서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볼 때처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더 나가서 그들의 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 사실에 근거해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은 바울이 기록했던 서신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참고 로마서 1:8-9; 빌립보서 1:3-4; 골로새서 1:3,9; 데살로니가전서 1:2; 데살로니가후서 1:3,11). 이러한 ‘감사’와 ‘기도’는 믿음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에베소 교회는 좋은 면도 있었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현재 미숙한 상태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장차 미래 성숙한 모습을 보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부족하지만, 장차 성장해서 온 세상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 청사진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감사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를 위한 기도(17-19)
중보기도는 타인을 위한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모든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하나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7-19)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던 바울은, 더 나가서 이제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근거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숫자의 부흥, 성장, 출세, 성공 그리고 부귀영화와 같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닙니다.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핵심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깊게 인격적으로 안다는 것’, 즉 ‘하나님 자녀임’을 확신하길 원했습니다.
⑴ 에베소를 위한 중보기도(17)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울은 3-14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에베소 성도들에게 소개했었습니다. 그러나 짧은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다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영광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들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더욱 인격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먼저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臨)하시길 기도합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임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역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도 성령께서 자녀에게 임재를 통한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사도 바울도 같은 의미로 고린도 교회에게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0)
그렇다면 이제 성령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은 많지만, 그 사역 중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비밀을 사도와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시고(에베소서 3:5),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려진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특히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요한복음 14:15-21; 16:7-15).
엘리사 시대에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합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대의 많은 규모를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를 위해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환의 눈을 열어 아람군대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합니다(열왕기하 6:15-17).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간구합니다. 임한 성령께서 성도들의 눈을 밝혀줌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비밀을 정확히 깨닫고 깊이 통찰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을 성도들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⑵ 중보기도의 제목(18-19)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그의 기도 구체적으로 세 가지였습니다. 그 제목 하나하나에 신앙의 핵심적인 실체들이 담겨 있습니다. 차례로 기도 제목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부르심에 대한 소망(18)
먼저,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린 눈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단순히 영혼 구원을 위해 부르신 것만 아니라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부르심이었습니다. 과거 세상에서 사단의 자녀로 죄악에 소망이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는 것이며(1:14; 5:5), 교회적인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신부로 세우시는 것입니다(5:26-27). 마지막으로 우주적인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과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부르실 때 이러한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성도들을 불러주셨습니다.
하지만 허물과 죄로 어두워진 사람들은 한없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임하셔서 사람들의 영안을 여시고 깨닫게 할 때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영안을 열어야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②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18)
둘째로 그들이 깨달아야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움’이었습니다. 본문을 정확히 번역하면, ‘성도 안에 있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것’이나 ‘성도들이 소유하거나 앞으로 소유하게 될 기업’을 의미합니다.
이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기업의 풍성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성령께서 보증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기업을 계속 누리며 살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어가서 모두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풍성하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존재로 대하신다는 것, 즉 ‘영적 자존감’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함에 기뻐할 수 있고, 또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광스러운 풍성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능력의 지극히 크심(19)
마지막으로 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녀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큰 능력’입니다. 본문을 쉬운 해석을 한다면, ‘그의 강력한 힘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여러분으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강력’, ‘힘’, ‘역사하심’으로 반복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 위에 매우 뛰어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능력은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구원 사역의 예를 들어서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2:1-5),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시며(2:8-9) 그리고 전에 악하게 살던 사람에게 선한 뜻과 행위로 살도록 깨닫게 하십니다(2:10).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생명을 주관하시고, 그리스도를 하늘에 오르게 하시고, 그리고 만물 위에 뛰어난 존재가 되게 하실 만큼 크고 위대한 능력입니다.
이 뛰어난 능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성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임하셔서 마음의 눈을 밝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바울은 구원의 능력은 깨닫기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눈이 밝아진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능력인지를 깨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모든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확실하게 상기시키려 합니다.
정리하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성도들도 자신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실을 깨닫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임재 하셔서,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더 깊고 풍성함을 깨달을 걸 원합니다. 지금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바울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기를 기대합니다.
능력을 통한 기도의 근원(20-22)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거 하는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사단은 매우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바른 하나님의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고 흩어 놓으려 합니다. 여러 가지 궤계를 사용해서 바른 공동체가 분열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20-22)
사도 바울은 계속적으로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대해 언급하고,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19절에서 설명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강력하고 웅장한 기도의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20)
사도 바울이 능력 있게 기도할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에는 모든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소망이 부활하였습니다. 보란 듯이 죽음을 이기고 삼일만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셨고, 더 나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본문을 ‘하나님께서 자기의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하늘에서 자기 우편에 앉히셨다’라고 알맞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연장선상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아 만물의 통치하시는 주요 구원자라는 의미로 받아 들렸습니다. 이미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것입니다.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시편 110:1-2)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만물을 통일하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이전에 모든 영광의 지위를 회복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고 세우시며 주관하시는 강력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이 강력한 능력을 근거로 기도한 것입니다.
⑵ 만물을 복종케 하심(21-22a)
기도할 수 있는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복종케 하신 능력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부터 지금까지 온 천하 만물을 통치하시고 찬양 받으실 분입니다(로마서 9:5). 더욱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고,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다시 한 번 온 천하를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의 대상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들, 즉 세상에 존재한 모든 권세들을 통치하실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시편에서 다윗은 잘 설명합니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시편 8: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만물의 의미는 하늘과 땅, 하늘에 존재한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영적인 존재들과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우주 만물입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발 아래 두신 것은 그리스도가 만물을 통치하시는 우주 만물의 주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자기 우편에 앉히시고, 모든 존재들까지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을 통일시키시고 화목케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사단을 우리 발아래 굴복케 하시고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로마서 16:20). 단지 영적 존재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까지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그의 통치권 아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히브리서 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해 세력도 기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상달되고 응답됩니다.
⑶ 만물 위에 계신 그리스도(22b)
기도할 마지막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통치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하나님께서) 그를 만물 위에 계신 머리로 교회에 주셨습니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머리(κεφαλη)’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권위’, ‘지배자’나 또는 ‘원천’, ‘근원’으로 사용합니다.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요(골 1:18) ‘정사와 권세의 머리’(골 2:10)라고 소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머리’란 그리스도가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소서에서 그리스도의 만물의 주되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9-11)
그리스도는 만물을 통치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신 머리로, 바로 교회의 머리,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으로 항상 교회를 보호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서 금대접에 향으로 담아서 흠향하실 것(요한계시록 5:8)이며, 그 기도를 선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로 해서 기도한다는 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무기력한 푸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을 근거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사적 기도나 공적 기도든지, 조용한 골방 기도이나 강한 외치는 기도든지, 그리고 새벽 기도든지 저녁 기도든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도를 흠향하고 계십니다. 그 기도의 제목보다 더 풍성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더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신 자의 교회(23)
세상적으로 물들어 가는 교회는 그만큼 영적 능력을 상실해 갑니다. 그리고 종종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무능력한 교회일지라도 그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곳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치 그리고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회가 연약해 보일지라도 함부로 폄하할 수 없습니다.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
사도 바울은 앞 절에서 거론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부연 설명합니다. 두 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간결하지만 에베소서에서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⑴ 그리스도의 몸(23a)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또는 ‘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1:23;2:16;4:4,12,16;5:23,28,30).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란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와 ‘생명을 가진 유기적 통일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는 생명적인 관계입니다. 반대로 분리되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실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생명을 공급 받을 때만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존재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가 ‘유기적 통일체’란 많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4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들은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고 한 몸이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2:13).
지금도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임재 하시고 각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접붙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 또한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⑵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23b)
이 부분은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먼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곳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임재로 온 세상을 가득히 채우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주권적으로 만물을 통치하며 그리고 그 능력으로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죄와 타락으로 상실한 만물을 평화와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회복하여 다시 완전하게 만드시는 것이 곧 만물의 충만인 것입니다.
‘교회가 충만하게 되었다’는 구약에 하나님께서 성막이나 성전에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33:22).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2:21-22). 종말에 새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는 만물을 통일하신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이 가장 먼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임재와 통치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성령의 은사들과 능력을 체험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 만물을 온전히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선교의 도구이자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으로 만물에게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오염된 세상을 새롭게 회복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인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어떤 역할을 살피고 감당하실 원합니다. 자신의 몸인 성도들이 기도할 때, 그리스도께서 확실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 나가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임하셔서 마음의 눈을 밝히길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계신 머리’이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주인이심을 깨닫길 원하십니다. 성령 임재를 통해 에베소 성도들처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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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 1- 16
“영원토록 찬양할 주제,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여성민 목사
에베소서는 바울에 의해 기록된 서신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얻어지는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있어서의 신앙의 일치와 개인적이나 사회적으로 도덕과 영성에 의한 생활의 실천 방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하며 서신 첫마디에 하나님 우리 주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고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과 그 가정에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신령한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 심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들음과 믿음과 성령과 보증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는 구원의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우리도 주님 안에서 구원을 받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의 강의 인도하고 은혜의 샘이 솟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화평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주님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를 택하여 주시고
거룩하고 흠 없는 자녀로 삼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님과 더불어 친밀하며 우리 삶이 더욱더 풍성한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