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재방송의 천국인 일산에 사는 저는 오랜만의 휴가를 집에서 TV보다가 KBS 일요스페셜 재방을 봤는데 충격먹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무식해서 그런 식으로 세상 한구석이 돌아가고 있었는 지 몰라서였고
둘째는 그 한구석이 제가 저의 인생 진로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곳이며 실제로 그 중추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아..엘셋성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세상아닙니까?...배울건 너무 많군요
지금 졸리지만 제게느 ㄴ참 유익한 내용이어서 paste햇읍니다 2:30am
(이하 방송내용 중 일부)
입법스타가 된 워싱턴의 홈리스 의원들
세계 최강대국 미합중국 국회의사당.
하원의원 존 심커스는 사무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자리를 준비한다. 의사당은 그의 일터이자 숙소이기도 하다.
심커스 의원은 5년째 의사당 사무실 바닥에서 잠자고 있다.
심커스 의원처럼 의사당에서 먹고 잠자는 의원은 하원 전체의 10%인 40여명에 이른다.
"많은 외국사람들은 미국의 실체를 모른다. 그들은 영화나 TV를 통해 미국을 접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재규어나 리무진을 타고 캐비어에 샴페인을 즐기는 줄 알지만 그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한때 잘 나가는 기업의 부회장까지 지냈던
피트 훽스트라 의원도 9년째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공화당의 5선 의원인 피트 훽스트라. 포츈지가 뽑은 500대 기업인 출신 하원의원인 그는 9년째 의사당 소파에서 잠자리를 해결하고 있다.
미시간주가 지역구인 그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오대호의 유전개발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과 당의 입장이 서로 달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 보고서를 준비하느라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고 있다.
잘나가던 기업의 부회장까지 지냈던 훽스트라 의원이 가족들과 떨어져 홈리스 의원으로 지내는 이유는 입법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친구들 중에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집에 가고 싶지 사무실에 머물고 싶지 않고 사무실이나 일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다고들 한다. 그들에게는 통용되지 않겠지만 나는 만족스럽다. 나는 내게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고 다른 의원들은 그들에게 맞는 생활을 하는 것뿐이다." MBA출신인 훽스트라 의원은 하원 예산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당의 하루 일과가 끝난 늦은 밤.
킹스턴 의원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가장 큰 현안 중의 하나인 에너지 대책 특위의 일원으로 새로운 정책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의회의 일들로 머리를 채워야만 가족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킹스턴 의원 오늘밤도 그는 사무실 소파 뒤에 숨겨 놓았던 매트리스를 꺼낸다. 사무실 바닥 위의 매트리스가 킹스턴 의원이 잠자는 곳이다. 막강한 미국 하원의원의 잠자리치곤 궁색하다.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11시나 12시까지 서류나 보고서를 검토하고 컴퓨터로 일을 한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대부분의 아침 약속이 8시경에 있다. 워싱턴까지 출퇴근하느라 3, 4시간을 도로 위에다 낭비하고 싶지 않다. 여
기서 잠을 자면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다. 물론 힘들기는 하지만 일하기엔 좋다.)
킹스턴 의원처럼 의사당 사무실에서 기숙하는 홈리스 하원의원은 40여명에 이른다. 심커스 의원도 그들 중 하나다. 홈리스 의원들이 의사당에서 잠자는 데는 일외에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미국 하원의원의 일년 세비는 14만 5천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억8천만원. 세금을 빼면 1억원이 채 안된다. 심커스 같은 중산층 의원이 워싱턴과 지역구에서 두 집 살림을 하기엔 빠듯한 액수다.
어쩔 수 없이 고된 별거생활을 해야한다.
세입위원회는 미국 하원에서 가장 막강한 상임위다.
(비록 내가 이곳의 제일 후발주자가 되었지만, 적어도 당당한 위원인 것만은 분명하고, 이 자리에 앉는데 9년이란 세월이 걸렸던 셈이죠. 그래서 정말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연방정부의 세입과 지출을 다루는 세입위원회. 미국 의회 최초의 상임위원회로 국민의 세금과 관련된 법안들이 다뤄지는 미국 하원의 꽃이다.
폼러이는 올해 모든 하원의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세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사회보장과 관련된 그의 두드러진 입법활동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위원회에 임명될 때 이 자리하나를 놓고 20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경합을 벌였다. 사실 나 같은 노스다코타의 시골 출신 의원이 캘리포니아와 같은 큰 주의 의원과 경합을 벌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들은 의회 내에 지지자가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스다코타 출신 하원의원은 나 한사람뿐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년간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의 사회보장혜택을 입었다.
1992년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폼러이는 사회보장과 관련된 입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내가 10대일 당시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바로 이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으로 어려운 속에서도 난 대학을 마칠 수가 있었다. 내가 어떤 일이든
사회에 나와 해낼 수 있었던 건 그렇게 대학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 현재 사회보장을 책임지는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이다.
그것이 정치적이든 대중정책이든 여기서의 사안들은 내게는 매우 개인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나라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난 또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런 제도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성공한 하원의원인 그는 3년 전 두 명의 한국 아기를 입양했다. 두 아이를 공항에서 처음 만났던 때를 어떤 정치적 성공보다 더 큰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했다.
"이 아이들은 비록 생물학적으로 친남매는 아니지만 우리 집에서는 친남매이다. 아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절친하다. 정말 기쁜 일이다. 한 번은 내가 주말에 집에 가자 아이가 내 목을 껴안고 울먹이면서 '아빠가 이제 사람들을 그만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내가 집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희생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희생이다."
입법활동이 의원들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미국 의회.
폼러이 의원은 사회보장제도, 특히 퇴직연금과 관련된 입법 분야에서 하원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민주당 사회보장특위 공동위원장에 올라 있다.
워싱턴의 언론들이 차세대 하원지도자 중 한명으로 손꼽는 킹스턴 의원. 그의 홈리스 생활은 입법활동에 도움이 됐다 사무실 벽에는 그의 성공적인 입법활동을 증명하는 상패들로 가득하다. 그는 임기 때마다 빠짐없이 '정부의 낭비를 반대하는 시민 협회' 가 선정하는 <납세자의 영웅>으로 꼽혔다.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상은 예산 낭비를 막는데 기여해서 받은 것이다. 연방정부의 관료제가 팽창함에 따라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예산을 절약하는 것은 납세자가 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납세자를 위해 일해서 받은 이 상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예산 사용처를 결정하는 막강한 세출위원회 소속인 킹스턴 의원은 정부의 예산 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그는 1997년 이후 공화당의 하원 홍보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입법안들을 의회 연설을 통해 알리는 것이 그의 담당이다 미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돼 있다. 상원은 각주를 대표하고 하원은 미국 국민을 대표한다.
미국 하원 의원은 1년 동안 1만 건이 넘는 민원을 받는다. 435명의 하원의원 전체로 따지면 43만 건이 넘는 셈이다. 이 모두가 의원들의 입법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입법 아이디어는 평범한 시민들한테서 나올 수도 있고 이익 단체에서 나올 수도 있어요.
누구에게서든지 나올 수 있다. 집에서 문득 그런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고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후 워싱턴에 돌아와
참모들과 법 개정에 관련된 상의를 한다. 그리고 조사를 시킨다."
"어떤 법은 금방 제정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법은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에만 20~30 년 동안 매달려 있는 의원도 있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다. 문제는 상처가 났을 때 단지 지혈만을 위해 반창고를 붙일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상처는 반창고만 붙여 놓았기 때문에 나중에 꼭 문제가 된다."
미국의 의사당은 치열한 입법 경쟁의 장이다. 이 경쟁에서 승리한 의원들이 이른바 '정책의 창안자'로 불리는 스타의원으로 떠오른다. 이 과정에서 동료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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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공인회계사입니다
1995년 부터 1999년 가지 소위 잘나가는 big6 firm에서 근무했습니다(그돈안 합병을 통해서 5개 최근에는 4개로 줄어든다고 하더군요)
회계법인도 법무법인과 마찬가지로 업무량은 사람 죽일 정도로 많습니다
저희회사에서는 멀쩡하게 입사했다가 1년 6개월 만에 급성간암 선고 받고 2년만에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팀 파트너가 팀원들 모아 놓고 그랬다더군요
"니네들 중에 아픈애들 있으면 빨리빨리 나가 나중에 아파서 골치아프게 하지 말고"
이 말듣고 많은 회계사들이 억울해 했지만 그래도 지금도 그 법인에 많은 회계사들이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입이 돌아갔는데도 회사에서는 휴가도 주지 않았고 어떤 신혼이었던 회계사는 부인이 이혼과 전직중 양자택일하라고 해서 전직했습니다.
미국 회계법인의 파트너중 반은 이혼했던 전력이 있고 나머지 반은 싱글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법무법인이 일이 많다는건 말안해도 알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시간당 급여수준이 높고 법무법인 경력 2~3년 정도 쌓은 후에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옮기면 돼니까 참고 사는거라고 보는데요
물론 그 중에는 파트너가 돼겠다는 야망도 있겠지만
적은 시간을 일 하고 많은 돈을 벌기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로펌에서 일하면 mal practice insurance premium을 회사에서 내니까 그것까지 연봉에 고려해야 되겠죠?
미국에서 가장 비싼 mal practice insurance를 내는 직업은 산부인과 의사라는데 총수익의 30%를 낸다는군요 추측해보면 이것도 작은 금액은 아닙니다
변호사가 될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일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시작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바꿔야죠
인생을 즐겨야죠
많은 burden을 이겨내고 나면 정신적인 만족감이 커질거고 자신감도 생길겁니다
jd삼년 살아남고 나면 어디가서도 살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로펌에서의 야근은 충분히 견딜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족생활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제가 아는 JD 출신 변호사는 싱글이라서 가족문제는 없어 보였거든요
건강은 스스로 관리해야 하겠죠?
목표를 분명히 하세요 돈이던가 명예이던가 국가의 통상을 짊어진 역군이 되겠다던가 하는 사명감
이런 목표가 사람을 보다 강인하게 하고 인생에 기쁨을 줄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타인과 비교하지 마세요
국내에 들어와 있는 JD 출신 변호사중에 fourth tier출신도 많이 있습니다 유명한 us news 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180등하는 학교도 졸업후 9개월안의 취업률을 보면 대부분 취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도 잘아시는 엘 고어는 fourth tier의 washburn출신입니다
자신이 학교 생활을 성곡적으로 하면 취업은 문제 없다고 봅니다
tier가 낮아지면 초봉이 낮아지는거지 실력이 인정되면 그 후의 연봉은 소위 탑로스클 나온 사람과도 크게 뒤지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명 외국로펌의 파트너들의 출신학교를 서치해 보는것도 도움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학벌이라고 하기는 힘든것 같습니다 학벌은 출발에는 확실히 유리하지만 변호사의 능력은 학벌이 아니라 실력이 말해주는 거니까요
인생에 어떤 문제이든지 본인을 위한 선물을 가지고 있지않은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그 선물을 받기위해서 노력을 해야할 뿐이죠
원한다면 가질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