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참나' 라고 합니까?
현존(Presence)의 경험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심오하게 주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신이 '다른 어딘가' 에, 말하자면 저 위에 저 너머에, 초월적으로,
하늘나라에, 혹은 과거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다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신은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참나' 라는 용어는
신이 ' 여기 그리고 지금 ' 자신의 실제 존재의 바탕을 이루는 궁극적 실상으로서
내면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하늘나라는 너희들 안에있다.)
붓다는 '신' 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그릇된 개념이 만연했던 까닭에
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피했다고 합니다.
붓다는 개념화가 가중시키는 모든 한계를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앎(Awareness)으로서의 참나는
문헌에서 빛 (Light)으로 지칭되는 일이 많습니다.
창세기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나타나지 않은 것(Unmanifest)은 처음에 빛(Light)으로소 나타난 것(Manifest)이 되었는데,
이 빛은 우주로서의 형상을 취한 신의 에너지의 광휘였습니다.
'참나' 라는 용어는 또한 사람이 신과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적 개념을 극복합니다.
역사적으로, 죄인은 여기 지상에 있고
저 위 하늘나라 어딘가에 신이 있다는 상상은 에고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 이라는 용어는 '타자성' 을 암시하지요,
하지만 창조의 전부임(Allvess of Creation) 속에는 어떠한 분리도 없고
그래서 창조된 것이 장조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깨달음이란, 그러므로
실상은 분리된 자기라는 환상이 제거될 때의 참나의 드러남입니다.
'나' 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항상적 앎은
참나라는 타고난 신성의 항상 현존하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보편저깅며 항상적인 경험이고, 순수히 주관적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가능하거나 필요하지 않습니다.
참나인 '나' 는 앎(Awareness)으로서의 신성(Divinity)의 표현이며,
따라서 시간과 형상 너머에 있지요,
이러한 정체(Identity)에 대한 진실은
지각에 의해 창조된 이원성으로 가려져 있고,
모든 위치성을 포기할 때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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