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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 시학의 흐름 3
어둠처럼 빛처럼 광막한
깊고 어두운 통일성 속에서
아스라히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답한다.
어린아이 살결처럼 싱그러운 향기, 오보에 소리처럼
부드러운 향기, 초원처럼 푸르른 향기가 있다.
세로좌표로서의 수직적 상응은 수평적 상응과는 달리 훨씬 더 절묘하고 본질적이다. 수직적 상응에 있어서는 감각적 현실의 흩어져 있는 요소들을 서로 접근시키고 화답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요소들이 지니는 의미가 천상적인 계시나 정신적인 신성함을 지닐 수 있게끔 어떤 지고한 합일의 상태, 즉 열광의 절정 상태에까지 고양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소네트의 마지막 4행의 시귀는 이같은 ꡐ확신ꡑ과 ꡐ열광적 전이ꡑ를 역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또한 썩고, 풍부하고, 호기로운 향기
무한한 것들의 확산을 지니면서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정신과 감각의 열광을 노래하는 향기도 있다.
이러한 보들레르의 상응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그의 주목할 만한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외계의 자연을 ꡐ아날로지의 거대한 저장고, 일종의 상상력의 자극제ꡑ로 간주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ꡒ가시적 세계는 시인의 상상력이 그것들에게 제각기 알맞는 자리와 가치를 부여하기를 기다리는 이미지와 기호들의 저장고일 뿐이며, 그것은 상상력이 먹어서 소화하여 다른 것으로 변형시켜주지 않으면 안될 일종의 목초지인 것이다.ꡓ
그러기 때문에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의 역할이다. 그는 1856년 1월 21일자 알퐁스 뚜스넬에게 보낸 편지에서 ꡒ상상력이 기능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것ꡓ으로, ꡒ이 기능의 여왕으로서의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 즉 참다운 시인만이 가시적인 것과 물질적인 대상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번역하고 해독할 수 있다ꡓ고 쓰고 있다. 우주만상이 상형문자이지만 그 뜻을 해독할 줄 아는 사람(시인)에게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독력이란 지식의 영역이 아니고 합리적인 사고를 초월한 ꡐ거의 초자연적인 어떤 영혼의 상태ꡑ에 도달한 시인의 투시력에 속한다. 그러한 영혼의 상태에서 시인은 ꡒ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답하는ꡓ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ꡐ어둡고 깊은 통일성ꡑ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스웨덴보르그, 호프만, 라바테르, 네르발, 발자크 등에 의해 개발된 신비주의의 전통을 참조하여, 그렇지만 스스로의 상상력을 희생시킴이 없이 <상응>의 소네트를 씀으로써 상징주의의 시조가 된다. 이 유명한 상응의 시학은 보들레르의 자연관과 우주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1890년대의 상징파 시인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이론의 복음이 되었을 뿐 아니라 20세기의 후계자들의 시창작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1924년 <보들레르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행한 한 강연에시 발레리는 ꡒ베를렌느나 말라르메 그리고 랭보가 결정적인 시기에 <악의 꽃들>을 읽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누렸던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ꡓ 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는 보들레르가 상징주의 시의 제 2세대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는 세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의 깊이를 말해 준다.
마르셀 레이몽이 <보들레르에서 쉬르레알리즘까지>에서 명쾌하게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발레리 역시 보들레르를 근원으로 해서 두 개의 줄기로 흘러 내려가는 계보를 그려 보여준다. ꡒ베를렌느와 랭보가 감성과 감각의 질서 속에서 보들레르를 이어 받았다면, 말라르메는 완벽성과 시적 순수성의 분야에서 보들레르를 신장시켰다.ꡓ 이 두 가닥의 계열은 다같이 <악의 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한편에서는 ꡐ여행ꡑ의 시인인 보들레르가 그 입구에서 멈추어 선 ꡐ심연의 밑바닥ꡑ에까지 내려가보려는 모험을 감행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존재와 세계의 신비를 언어로 번역하고 암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베를렌느, 랭보, 로트레아몽, 초현실주의 시인 등의 ꡐ연금술사들ꡑ을 가리키며, 후자는 말라르메를 비롯한 상징파 시인들과 발레리 등의 ꡐ예술가들ꡑ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