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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곳 : 미술과 문학 밴드
글쓴이 : 정목우
뉴질랜드를 관광해 본 적이 있는 이라면 가이드로부터 두 이름을 듣게 된다. 바로 ‘모아새(Moa)’와 ‘랜스우드(Lancewood)’다.
모아새는 뉴질랜드에서 서식한 적이 있는 새다. '서식한 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살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해지는 뼈와 화석으로 추정한 결과 모아새는 3m 가까이 이르는 큰 조류였다고 한다.
또한 알 하나에 스무 명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을 담을 수 있었다니 그 크기를 짐작하리라.
뉴질랜드는 뱀, 독충, 그리고 맹수가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여서 모아새에게는 천적이 없는 말 그대로 낙원이었다.
이런 낙원에 살다보니 모아새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여 사람들이 다가와도 도망갈 줄 모르는 순박한(?) 새가 되었다.
게다가 천적이 없으니 날 필요가 없어 날개는 퇴화하여 날 기능을 상실하였다. 이러니 원주민들의 식량자원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엄청난 양의 고기에다, 알은 그릇과 물통으로 사용했고, 깃털을 휴지로 사용하며, 뼈를 장신구 등에 사용했으니 원주민들에게 모아새는 얼마나 소중한 자원이었을까는 불을 보듯 환하다.
그에 비하면 '랜스우드'라는 나무는 다르다. 랜스우드는 보통 10m가 넘는데(30m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함), 아래로는 가시가 붙은 잎이 나 있고 2m 이상이 되는 지점부터 넓은 잎이 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바로 아래에 나 있는 가시잎이다. 원래 랜스우드는 모아새의 먹이였다고 한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모아새는 언제든 주변을 둘러보면 맛있는 잎을 제공하는 랜스우드가 있어 그걸로 배를 채웠다.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랜스우드는 어쩌면 모아새보다 더 빨리 멸종해버렸을지 모른다. 다른 어떤 잎보다 모아새가 랜스우드 잎을 좋아했다고 하니까.
헌데 랜스우드는 모아새 같은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잎에 가시를 내미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러니 잎을 뜯어먹으려 하면 반드시 가시와 부딪치게 되었고, 결국 모아새는 랜스우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모아새와 랜스우드’ 같은 글감을 갖고 글을 쓴다면 보통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연결시킨다.
랜스우드는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돼 있었기에 살아남았고, 모아새는 그러지 못했기에 멸종했다고.
나도 이 둘을 글감으로 삼으면서 그렇게 쓰려고 시작했다. 헌데 써가면서 랜스우드보다 묘하게 모아새에게 끌리는 걸 느꼈다.
마치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처럼 말이다. 아시다시피 입센은 여성해방운동의 시발점이 된 저서 [인형의 집]을 썼다.
원래 입센은 ‘노라’의 모델이 되는 여자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격분했다고 한다.
‘어떻게 여자가 저럴 수 있어? 여자란 모름지기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 ‘저런 여자는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하며 글을 시작했다.
헌데 써가면서 입센은 주인공인 노라에게 반했고, 결국 남자에 예속된 가정(소위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가는 여성 해방의 여걸로 그려놓았다.
모아새는 역사상 가장 사람을 따르는, 달리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류였으리라.
모아새는 낯선 인간이 자기들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경계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살 수 있는 친구로 여겼다. 그래서 모아새는 사람들 곁으로 갔다.
원주민(마오리족)들도 처음에는 황당했으리라. 어떤 짐승도 자기들이 다가가면 쏜살같이 달아나는데 오히려 다가오니 말이다.
게다가 덩치가 커 한 마리만 잡아도 열 명 넘게 포식할 수 있는데다, 고기맛도 기막히고, 다른 부속물은 생활도구로 쓸 수 있고 …
웬 떡이지 싶었으리라. '이렇게 어리석고도 고마운(?) 새가 다 있다니 …' 하며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달아나지 않고 인간과 친구가 되려 다가간 모아새는 인간의 음흉한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식량이 되면서 멸종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모아새와 같은 사람을 가끔 본다. 우린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쓴다. 너무 착하여 법이 없어도 법에 어긋나게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쓰는 말이다.
헌데 이제 이 말은 ‘법이 있어야 살 사람’이란 말로 바뀌어야 한다. 흔히 착한 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은 법이라도 보호해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 우리들은 어릴 때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착한 일을 강요받으며(?) 자랐다.
이제 나이가 드니 정말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말이 맞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오래 전에 실업계 여고에 근무하는 아는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 술 한 잔 하는 내내 그는 열 받아 못 살겠다고 하면서 "이 더런 놈의 세상!"이란 말을 연발했다.
자기 반 제자를 취업시킬 때였단다. 제법 괜찮은 자리가 나 두 학생을 보냈다. 자리는 하나나 둘을 보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리 했고 ...
한 학생은 3년 개근을 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매사에 열성적인 전형적인 모범생,
다른 학생은 가출도 한 적 있고, 공부보다는 거울 보는데 더 시간을 보내고, 담임 말도 잘 안 듣는 애.
그러니 그 둘을 보낼 때는 앞의 애를 취업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다분히 깔려 있었고, 면접관이 누구든 선택은 한 길이라 여겼단다.
결과는 뒤의 학생만 합격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알아 보니 합격한 학생은 키가 크고 늘씬한데다 이쁜 얼굴이었으나 떨어진 학생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 선생님은 그 날 술이 취해 이렇게 말했다.
"정 선생, 이제 나는 애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공부 열심히 해라. 착하게 행동해라. 결석하지 마라. 다 소용 없는 말이잖아.
내일부터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다른 것 필요없고 얼굴 가꾸기에만 목숨 걸어라."
나는 사람과 함께 지내려 다가온 모아새의 어리석음보다 마오리족이 참 원망스럽다.
닭이나 오리처럼 기를 수는 없었을까. 더없이 온순한 동물이었다 하니 말이다. 키우려 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
모아새는 랜스우드 가시잎에 접근이 힘들지만 사람은 사다리를 이용하든지 하여 잎을 따서 제공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랬더라면 모아새가 사람과 공존하며 계속 살아남았을 텐데 ... 그랬더라면 원주민도 덕을 많이 보았을 텐데 ...
우리 사회에도 모아새와 같은 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들은 스스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약지 못한 사람을 약게 살아라고 하는 건 죄악이다.'
약지 못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 조성이 정말 필요한 때다.
앞으로 모아새와 같은 사람을 자주 보았으면 한다. 코로나 시국을 이겨내는 최고의 백신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https://band.us/band/60721154/post/15750
첫댓글 이 글을 읽고 착한 약자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 너무도 잔인합니다.
집도,교육도,취직도, 소득도, 미래도,노후도...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하기도 힘든 세상의 질서 속에 삽니다.
우리 자식과 후대들을 위해 공정하고, 약자와 함께 공생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우리가 솔선해야합니다.
랜스우드를 보니 북의 모습같네요.
지킬려다 보니 어느덧... 상대방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고인물은 썩는다.
절대자는 외롭다.
모아는 너무 낙원에 안착하여
멸망했고
타조는 아직도 남아있죠
이시아와 아프리카가 서구열강에
겨우 살아남았죠
이제 서서히 복수의 칼을 갈아야지요
모아가 되지 않으려면
문제는 자기의 주소를 모르는
반골들이 문제지요.
세상은 법 없어도 살사람을 개인주의가 괴롭혀다 막말로 도둑과 사기로 순둥이 괴롭혀다
교훈이 될 수있는 좋은 글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회상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