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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작은 참나무들은 양성주광성(陽性走光性), 즉 해를 향하는 해굽성을 나타내는데 사람도 생활환경이 나쁠수록 현저히 해굽성을 나타내는 셈인데 그들은 나이가 많아도 뭄집을 불리지 않는것은 조금이라고 더 자라면 배가고프기 때문인데 위의 작은 참나무들은 청설모가 땅속에다가 보관을 한것이 잊어버려서 싻이 난것이니 자연의 섭리 그대로다.
좌하의 도토리나무는 잎사귀가 2개이니 초년생이 된다.
추억속의 소년시절-3
오래전의 사람들은 대게 착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한데, 만약 나쁜 짓을 하
면 저승에 가서 조상들을 대할 면목이 없고 벼락을 맞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벼락이 고압전기의 방전을 모르기 때문에 덮어놓고 겁을 내었으리라.
헌 가마니를 매달아서 화장실문을 대신할시절에 화장실에 갈 적에는 애햄하고헛기침을 하여 지금의 노크를 대신하던 시절, 다른 집은 화장지 대신 짚을 사용 하지만 우리 집 만이 이 동네에서 오직 신문지를 사용하는데 내가 하교시 김천의 성내동 삼바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동아일보 김천지국에 직접 가서 픽업하여 받아보기 때문이었다.
건너 방은 벽지를 사용했지만 큰방은 할머님께서 벽의 반 높이정도로 도배라기보다 그저 신문지로 바르셨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똑같은 내용인 거꾸로 혹은 옆으로 붙여진 야당지인 동아일보에 실린 글들을 읽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그림이 곁 드린 상업 광고로는 검은 머리가 유행(fashion)이던 시절이고 영화 제목
“신사는 흑발을 좋아한다.”
에 힘입어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 하는 약 ‘세루하겐’, 류마치스형 관절염 약, 영화 광고로는 프랑스인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을 영화화한 ‘춘희(瑃姬; 동백 아가씨, 원명; Camellia; 동백꽃)’등을 내가 읽을수가 있었다.
눈속에서 피어나는 붉은색의 동백곷을 내가 좋아하여 심었는데 사슴이 죄다 먹어버렸다.
최근에 본 오래 된 이 흑백의 명화에 창녀로 나온 여자주인공의 본명이 그뤠타 갈보(Greta Garbo)이어서 한국전쟁 후 미군상대 창녀의 대명사는 양갈보, 한국인상대는 ‘똥갈보’ 로 부르는 것은 아닌지혹시'갈보'가 아니라면 가당치 않은 지나친 나의 망상이니, 우연한 일치로 볼 수밖에 없다.
같은내용의'동백아가씨'는 세가지가 있는데 나중에 설명되는 내가 아는 일본가요에 이어 한국형 “동백아가씨”는 총각시절에 관람 한 적이 있는데 엄앵란이 나오며 서울서 섬에 온 총각(신성일)을 만나 서울의 명문집안으로 시집간 섬처녀를 시부모가 구박하는 바람에 바닷물에 스스로 뛰어들어 이루지 못한 사랑이 되는데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가 이때에 나온다.
내가 가진 DVD로 된 이 프랑스 영화는 실존 창녀를 소설화 했는데 이것역시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로, 양가(良家)의 외동아들이 동백꽃을 든 창녀와 결혼 했지만 쌍두마차를 그 당시(1848년)경매에서 5천 프랑에 살 수 있는 재력가인 그의 시아버지는 아들이 그녀의 제물(祭物; sacrifice)이 될 수가 없다하며 아들을 멀리하라고 하니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마음에도 없는 남편을 싫어한다는 말을 남긴 후 그를 실망시키고 입은 옷 그대로 총총히 집을 떠난 후 다시 창녀가 된다.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외국으로 방황하는 아들의 참마음을 알고 용서를 하니 남편이 그녀를 찾아가 재회를 하는데
“당신이 나의 제물이 됐다.”
고 말할 때는 그가 이미 폐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 는 남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숨을 거두고 축 늘어진다.
본론으로 돌아와 그래도 건너 방 한 칸만은 우리 집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벽지를 사다가 바르고 서까래 가 보이지 않게 천정을 반자로 만들었는데 줄은 철사 줄 대신 칡넝쿨이었으며 내가 누우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천정에 칼라로 인쇄된 종이에 여러 줄로 배열이 된 꼭 같은 무늬들의 갯수를 가로 새로 새어 보면서 잠이 들곤 했다.
그 당시는 오직 우리 집만이 개화의 물결이 조금 일찍 일어, 방장이라는 모기장속에서 잠을 잤고 싱가(Singer)라는 재봉틀로 누비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광목 한통(40마)과 타래실을 사다가 내가 두 손으로 잡고 있으면 어머니가 실패에다 감는데 그동안만은 지루하여 몸부림이 이는 시간이다.
남들이 옹자배기로 세수를 할 때 함석세숫대야를 처음 사용했으며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자전거, 무쇠로 된 풀빵(빵은 포르투갈어 bun 에서유래)틀, ‘관두(官斗)’라고 부르는 말(斗), 스스로 우는 세이꼬(成功)사발시계(自鳴鐘), 그리고 알루미늄으로 눈금을 일일이 박아 넣은 마호가니로 만든 대저울(저울추에 ‘官’ 자라 적혀 있다)이 있어서 계속 동네를 나돌았는데 돼지기름에 찌들어 반들반들 했다.
내가 본 재래식저울은 대나무를 잘라서 저울대를 만든 후 추는 돌멩이를 헝겊에 싼 후 실을 매어 저울추를 만들고 물건을 매다는 갈고리는 ㄱ 자로 된 대추나무가지를 사용하며 저울대에 칼로 금을 그어 1근 2근의 표시를 했었다.
잣대(竹尺)는 말 그대로 대나무를 쪼개서 만든 자이고 길이는 명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 이었다.
내가먹은 풀빵틀로 구운 빵(3x3=9개로 됨)은 태극마크(4개)와 벚꽃마크(5개)2가지가 되는데 태극마크무늬의 빵이(사구라빵 보다)더 정다웠고 맛도 더 좋았다.
돼지를 잡는 날이면 관(官)이라는 도장이 찍힌 이 저울을 꼭 사용하게 되는데 동네사람들 모두가 인정해주는 도량형기이다,
동네 사람들이 너무 자주 빌려가서 누가 가져갔는지 일일이 기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귀찮을 정도이었다.
이들 도량형기 들은 공용물(共用物)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우리 집에 보관을
해야 다음사람의 사용가능한데 필요할 때는 급하지만 쓴 후에는 돌려주는 일이 늦어지게 마련이니 아버님께서 “뒷간에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고 하신 말씀을 여러 번 들으며 나는 자랐다.
그리고 동내에서 유일한 짐 자전거가 있었는데 쌀 2가마 실을 수 있는 뒤 타이어가 일본어로 시부로꾸(6/4" 원칙은 인찌 항; 1½",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라는 최고로 굵은 타이어이며 나는 키가 작아서 안장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왼손으로 핸들을 조종하며 가랑이 사이로 타고 다닐 수는 있지만 한번이라도 넘어지는 날에는 너무나도 무거워서 일으켜 세울 힘은 없었다.
‘자전거는 왜 서있지 못하는가?’ 라는 미국수수깨끼의 정답은 투타이어(too tire, 너무 피곤하여)인데 타이어가 두개(two tire)라고 영어로는 발음이 똑같으며 1단어(tire)이지만 2개의 뜻이 있다.
칫솔(치약이 완전 제거 되지 않고 언재나 하얗게 칫솔사이에 끼어 있다)이래야 돼지털을 나무자루에 박은 것이고 치마분(齒磨粉, 갈磨자 사용)이라는 가루 치약이 있었으니 잘못하면 기도(氣道)로 들어가기가 십상이었다.
미국은 이빨반죽(tooth paste)이라 하는데 한국은 지금도 치약이라 하니 약이 아니기 때문에 실은 틀린 말이다.
이빨에 구멍이 나면 ‘벌레 먹다’가 아니면 충치(蟲齒)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구멍이라고 말 그대로 케비티(cavity)라고 한다.
이빨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말이지 이가 오복 중 하나라는 말이 있는데 실은 없는 말이며 유교에서 하는 말로 수(壽를 제일로 꼽는다),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가 된다.
심청전에서는 수부귀다남자(多男子)로 표현 하는데 외할머님 말씀이 이 말은 실은 부모 측으로 봐서는 기슴(김; 논밭에 난 잡초)이라고 하셨다.
한국전 후에 써본 투명하고 색깔 있는 미제 칫솔은 미군부대서 나온 것이며 너무 깔깔해서 잇몸에서 피가 나서 거부감이 있었지만(어쩌면 잇몸 마사지가 됨)일요일 학교가 쉬는 날 아침 두레우물에 세수 대야를 가지고 동내 아이들이 모여서 이를 닦노라면(비록 빛 좋은 개살구’격이지만)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국에는 솔의 질이 보드라운 것에서부터 딱딱한 것 까지 3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그중에서 가장 굵은 하드(hard)였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20년 후 미국에서 알게 된다.
사고로 뼈를 씹는바람에 마지막어금니2개의 뿌리중 한개의 뿌리가 부러지니 인터넷에서 별이 가장많은 치과에가서 뽑았는데 와서보니 부러진 뿌리는 그대고 잔존하니 다시방문 완전히 제거를 한것 외에는 부무님이 물려주신 치근 27개를 유지를 하고 있다.
소년시절에는 희미했던 아이는 아직도 잘 씹어니 무병이고 25년간 연중무휴[우천시는 제외]로 때리는 골프는 또래중에서는 내기골프가 만보다 조금은 앞서고 있다.
소년시절에는 약해서 흐물흐물했던 아이도 자라가면서 영글어 가정도 꾸려나왔으며 지금은 많이 똑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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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왜 /
이리 심연속으로 빠져들게 하십니까?
1부 부터 읽어야 제맛인걸 마지막 3부터 읽어도 1부로 옮길생각 없으니 조화 속 이로다.
ㅋㅋ
배고프다 말씀없이 자랐으니
그거 말고 /
나...어린시절과 다름이 있는가?
갑자기 생각나는건
서너살 위에 형들과 제기차기..딱지치기 해서 잃어본적 없어..
형들 놀림감 되는 수모을 격은게 생각 납니다
겨울 어느날 점심 시간 학교 운동장에서 점심도시락 없어 .
밖에나와 제기차기 하는데 학우들아 하나둘나와 주욱 둘러 섰는데.../
700개까지는 세었는데 .그이후는 모르겠고 5교시 시작되여 뛰어 들어가던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