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드디어 한나라당 경선이 끝났고, 이명박씨가 후보로 확정됐다. 본선 보다 몇 배나 길고 지루한 경선이었다. 주관적 선호도를 떠나 경선을 보고 느낀 바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경선 방식, 이대로 좋은가
첫째, 한나라당은 과연 이런 식의 경선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정당의 후보는 원칙적으로 당원들이 뽑는 것이다. 그런 경우 지나치게 폐쇄적일 수 있으나,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당원의 자격과 요건을 개방시키면 그런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비록 이명박씨가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하나, 그 차이가 1.5%에 불과하다. 그나마 여론 조사에서 이겨서 그리 된 것이다. 본선에서 한나라당을 찍지 않을 사람도 국민선거인단과 여론 조사 응답자로 대거 참가했을 것을 고려한다면, 한나라당 지지성향 유권자 중에서는 박근혜씨가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전남북 지역에서 이명박씨 지지표가 많이 나왔지만 한나라당은 본선에서 전남북 표를 거의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 표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결국 홍준표 의원이 마련한 포퓰리즘식 경선을 당 대표이던 박근혜씨가 수용한 탓에,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도 맹형규 의원 대신 오세훈 씨가 승리했고, 대통령 후보경선에선 본인이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하루에 경선을 치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예비선거는 아이오와, 뉴햄프셔에서 시작해서 주(州)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예비선거가 진행되면 선두주자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러면 선두를 놓친 후보는 선두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에서 전당대회는 이미 결정된 후보를 부각시키는 쇼일 뿐이다. (이에 대한 드문 예외는 1976년 공화당 경선이었다. *참조 )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이 노무현씨를 후보로 뽑았던 경선은 미국식이었다. 지역을 돌아가면서 경선을 해서 흥행을 한 것이다. 반면 이번 한나라당 경선은 완전히 진검승부(眞劍勝負)를 한 셈이고,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큰 상처를 입었다. 어차피 나올 문제에 대해 미리 검증을 받았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지는 두고 볼일이다.
많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겨우 이긴 이명박 후보
둘째, 많은 여론 조사의 예측과 달리 이명박씨는 낙승(樂勝)하지 못하고 신승(辛勝)하는데 그쳤다. 속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이씨가 경선 준비에 퍼부은 물질적 인적 자원은 박씨의 몇 배 내지 열 배는 될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이씨의 승리는 초라한 편이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씨에 대해서 제기된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점, 지나치게 준비된 진영에 대한 저항감 등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씨의 공약과 정책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넘치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캠프, 무슨 포럼이라는 외곽 조직들,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이 과연 이씨의 당선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번에도 여론 조사에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 사람이 많음을 잘 보여 주었다. 여론 조사에선 대세에 따라 답하지만, 투표는 달리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본선에서 여론 조사나 믿고 있다간 큰 일 날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근혜씨가 벌인 이명박씨에 대한 검증과 네거티브도 상당히 효과적이었지만 결정적 요소는 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본선에서 여권이 그런 전략을 본격적으로 쓸 경우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일 따름이다.
어느 선거이든 후보자가 경선에서 여유있게 이겨야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 점에서 이명박씨는 부담을 안고 있다. 또한 이명박씨가 본선에서 당선된다고 해도 박근혜씨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만일에 이명박씨가 불행하게 본선에서 실패한다면 이씨의 정치 운(運)은 다하겠지만, 당심(黨心)에서 승리한 박근혜씨는 건재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앞날에 있어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수도권 갈대표(票)와 TK 표가 관건
셋째,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명박씨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느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수도권 표를 얼마나 잘 붙들 수 있고, 또한 영남의 박근혜 지지표를 얼마나 지킬 수 있나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이번 경선은 대구 경북 정서가 간단치 않음을 잘 보여 주었다. 충청표가 본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보장도 없다. 여권의 유력 주자인 이해찬씨는 다름 아닌 충청 출신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씨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아슬아슬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씨의 위기’가 바로 ‘대한민국의 위기’라는 데 있다. 더 이상의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그가 무너지면 남북 연방제를 이루어서 대한민국을 해체할 골수 좌익 정권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명박씨가 중도와 보수 세력을 아우르면서, 집권세력의 치열한 검증 공세를 이겨내고, 험난한 후보자 토론에서 선방(善防)하기를 기원한다.
운하 공약, 지금이라도 철회를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이라도 이명박씨가 운하건설 공약을 철회해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씨를 운하 때문에 지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왜 저런 것을 들고 나왔나 하고 답답해하는 유권자가 더 많을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 토론에서도 이명박씨는 운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지지도가 단번에 10% 가까이 떨어지지 않았던가. 운하는 여권과 TV에게 최고의 호재(好材)라는 점을 이명박씨와 그 측근들은 깨달았으면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아서 슐레진저, 헨리 키신저 같은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를 옆에 두어야 한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그렇고 그런 토목공학 교수, 수질 교수 등 지엽적인 인물들을 주변에 두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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