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건의 연루자의 범위도 넓어지고 지위도 높아지는 것을 보아 점점 규모(?)가 확대되는 보양이다.
양심적인 인간이나 비양심적인 인간을 막론하고 돈 곧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니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인 경제를 중요시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욕망
이 크기 때문에 그 방법이 도덕적인가 아닌가 그리고 합법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양심보다는 행복해지려는 욕망이 크기 때
문에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거나 법을 어기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나 역사에서 욕망 앞에 양심이나 도덕, 신념 등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아 왔었다. 존경을 받던 사회
지도층이나 교육자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이나 자신들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들이다.
이런 행동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지만 구태여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면 이런 행위들은 악한 행위로 간주
할수 있을 것이다. 악한 행위들은 결국 악한 마음에서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니 그 악한 마음이 순간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악한
마음은 이미 내재가 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숨겨져 있다가 몸이 약해지면 나타나는 대상포진 바이러스처럼 기회만 있
으면 언제라도 악한 마음은 나타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이 선하다는 성선설은 사실 인간의 희망사항일 뿐 인간의 마음이 선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 사실
이나 과학적 사실로 증명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종교의 교리는 인간은 선한 존재라는 가정 아래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종교 자체가 출발을 할 수가 없
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했지만 중간에 잘못되어 악해졌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 그 악함을 제거하면 다시 선량해 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주장이다.
불교는 수양을 통해서 불성을 깨달으면 완전한 인간인 부처가 될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원죄)를
청산해주기 위해서 보내준 구세주 곧 예수를 믿으면 원죄가 청산되어서 죄가 없는 사람으로 회복이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
고 주장한다. 불교의 경전의 내용이나 성서의 내용이 어떻든지 결국은 인간을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 종교의 경
전들인 셈이다.
종교를 비롯하여 많은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기본으로 하여 교리를 만들고 자신들의 주
장을 펼쳤지만 그런 교리들이나 그런 주장들을 한 방에 정리해 버린 사람이 나타나면서 이런 교리나 주장들은 근거를 잃어버
리고 말았다.
찰스 다윈이 1831~36년에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 항해를 한 경험을 토대로 통해 생물의 진화에 대한 생각을 1859년에 펴낸
책인 ‘종(種)의 기원’ 때문이다. 이 책의 중심내용은 ‘진화론(進化論)’과 ‘자연선택설(自然選擇說)’로 지금 살아남은 종(種)들은 살
아남기 위해서 생존경쟁을 하게 되는데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도태되어 없어진다는 내용이다.
생존경쟁(生存競爭)이라는 것은 살벌한 말 그대로 생존을 하기 위한 경쟁으로 그 안에 선량함이나 악함 같은 그런 개념은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소위 약탈 시기 질투 권모술수 등 모든 수단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생존경쟁은
내가 먹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된다.
우리의 조상이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 이전에도
인류들은 있었고 유럽쪽에는 네안데르탈인들이 20만 년 전부터 살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우리의 조상인 호모사피
엔스와 조우(遭遇)하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상당기간 동안 공존하였으나 결국은 멸종이 되고 말았는데 그 멸종이유
중의 하나가 호모사피엔스와의 생존경쟁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뼈에 사람이 씹은 잇빨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심지어는 호모사피엔스가 잡아 먹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하고 있는
데 현재의 인간은 동족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인간을 잡아먹고 살아나온 후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학이 발전되기 전의 사람들의 생각 특히 종교인들의 생각은 인간뿐 아니 라 모든 동물과 식물은 신(하느님)이 만든 것으로
그들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피조물은 완전한 존재인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도 완전하
며 그 자체가 진화를 하거나 생존경쟁으로 멸종을 하거나 자연에서 도태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신을 모독(冒瀆)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되었을 때 제일 먼저 난리가 난 곳이 종교계였고 가장 격렬하게 비판을 하였다. 그러나 과학적
인 증거 앞에는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종교계라고 종의 기원의 중심 내용인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
다. 그 후 이 책은 종교계뿐만 아니라 사상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인간이 선량하다는 근거로 출발한 모든 교리
나 사상을 뿌리부터 뽑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정치적으로도 악용되면서 힘이 강한 국가가 힘이 약한 국가를 압박하거나 침략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일본
이 한국을 침략하며서 일본인은 우수하지만 조선인은 미개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침략을 정당화 하였고, 독일의 히틀러가 우수
한 종족인 아리안족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에 다윈의 생존경쟁과 자연도
태의 이론이 이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가 없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믿어
버리면 미래가 암울해지고 희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순자의 성악설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를 운영해 왔지만, 후대에 들어오면서 맹자의 성선
설이 순자의 성악설보다 더 우위에 서게 되는데 이는 결국 인간의 자존심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선량하는 기초 위에서 만들어
지는 도덕이나 법들은 현실에서는 부적합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악하다고는 하고 싶지 않은 것 때문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겠지만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믿어야 마음이 편하
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이며 과학적으로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그런 교리들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스
스로 인간은 선량하다고 믿으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고 믿고 살거나 인간이 선량하지 않다고 믿고 사는 것은 각자의 자유겠지만, 나를 비롯하여 가족과 주
변 사람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다르
다. 어떤 인간도 나에게 뒤통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상처를 덜 받고 회복도 빠를 것이니....
그렇다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하되 언제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지 않다는 것으로 도덕이나 법을 출발하게 하면 사회가 더 효율적이고 더
예방적이며 더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비리들이나 악한 일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한다면 설명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