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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향수로 -
일본에서 수입한 새나라 택시와 기아산업에서 제조한 삼륜차, 그리 고 찝차, 이쪽 저쪽 용접 투성이의 험상궂은 추럭이 줄을 지어 시 흥로를 가고있습니다. 편도 1차선인 아스팔트 도로가 구불구불 논 사이를 뱀 마냥 놓여있습니다. 이따금 하동환 자동차 공업사에서 제조한 버스가 구색을 갖추듯 끼어 가고있었습니다. 당시 시발 택 시가 있었는데 운행중 시동이 꺼지는일이 빈번하고 시동 거는 방법 이 수동형식이어서 그저 볼폼 없었답니다. 어쩔수 없이 일본에서 수입한 차가있는데 이것이 새나라 택시입니다. 둥굴 납작하며 우리 가 끼워 맞춘 시발택시와 비교한다면 날씬한게 괜찮게 보였지요.
추럭은 엔진이며 기타 모든 부품이 군수품이거나 폐차에서 떼어낸 부품을 끼워 맞춰 이름도 모를 공업사에서 제조했답니다. 역시 고장 이 잦으며 보기가 흉직 스럽게 보였지요. 이때 기아산업에서 엔진과 부품은 일본에서 수입하고 짐실는 부분과 앞의 카바만 우리 손으로 만든 1톤형 삼륜차가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위를 시속 80키로 정도 달릴수가 있었는데 고장 잘나고 털털 거리는 우리가 만든 추럭 보다 쌩쌩 달리는 삼륜차가 좋았지요. 엔진과 부품이 모두 수입이지 만 깔끔한 철판을 리벳팅하여 말끔하게 꾸민 버스를 제조하는 하동 환 자동차 공업사가 있었답니다. 시속 60여 키로 정도 달리면 운전 대와 버스 몸체에 진동이 있었답니다. 아마 한달에 몇대 못만드는 것으로 알고있었죠. 당시 미제와 일제는 똥도 좋다는 말을 했지요.
우리 나라 항공사는 없었으므로 일본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서 다른 항공사 비행기를 갈어타고 유럽 또는 미국등을 갔답니다 채소 가게에는 배추,무우, 파등을 뿌리와 흙이 붙어있는 채로 다발 로 묶어 팔고있었죠. 동내에 쌀가게가 많었는데 맷방석에 쌀과 보리 를 수북히 쌓아놓고 말이나 되에 넣어 1말씩,1되씩 팔았답니다. 어 느 쌀 가게에선 두꺼운 종이를 밑바닥에 붙인 말로 되어 팔다가 간 혹 걸렸다는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곤 했었지요. 봄이면 논에 물을 대고 동내 사람들이 모여서 못 줄을 잡고 모를 심습니다. 가을에는 낫으로 벼를 베어 단으로 묶어 논두렁에서 말린다음 소나 말이 끄는 나무 마차에 싣고 집에와 홀태로 나락을 벼에서 흝어 내는 일을 아 낙네들이 모여와 했답니다. 벼를 벤후 마른 논바닥에서 캐어내듯 잡 아온 우렁을 삶어 초 고추장에 찍어 먹음, 맛이 최고였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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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지금생각하면 향수에 젖는 일들이네요..제가 아주 어렸을적 일이니깐요...잘 읽고 갑니다..
불과 몇년전인데, 이젠 추억으로 넘겨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