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리트박,Anatole Litvak(왼쪽)
1902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아나톨리 리트박은 1974년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살아생전 모두 40편의 영화를 감독하는가 하면 20편의 영화를 제작한 누구 못지 않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장 뤽 고다르가 한때 그의 시나리오 대사 조수일을 할 정도로 아나톨리 리트박은 헐리우드 감독들 중 유일하게 시네마 데끄 운동을 이끌어온 예술가였다. 동시에 그는 완벽주의자로 소문나서 그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갈끔하고 정돈된 미장센을 보여주는데, 한 장면을 12번 이상 찍는 걸로 유명해서 심지어 배우들 사이에서 별명이 "12번"이라고 붙여지기도 했다. 누군가 그에게 "왜 좋은 장면조차 12번이나 찍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한 장면을 백번이상 찍으면 그건 리트박이라고 할 수 있고, 만약 한 장면을 한 방에 끝내면 그건 내가 아니고 에와손이지..." 이 황당한 대답에 질문자는 집에 와서 에와손이 누군지 찾아보니 그는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싸구려 서부영화를 찍던 B. Reeves "Breezy" Eason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감독이었다. 이 대답에서 우리는 리트박의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란 자고로 도예가가 도자기를 찍어내듯이, 한 장면 한 장면을 수를 놓아 그 중에서 최고의 테이크를 선택해내어야 한다는 장인의 기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리트박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융단이 깔린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막스 오퓔스와도 절친한 친구였던 리트박은 한 평생을 영화에 모든 열정을 바친 진정한 영화광이었다. [DR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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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로>의 원제는 같은 뜻을 가진 The Journey이다. 1959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작품의 감독은 러시아 출생의 <아나톨 리토바크>로 유럽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감독이다. 남,녀 주인공으로는 뮤지컬 <왕과 나>의 명콤비 <율 브린너>와 <데보라 카>가 열연을 하였고, 60년대 초반 <브리지트 바르도>와 쌍벽을 이룬 프랑스 여배우 <아누크 에메>와 영국의 <로버트 모러이>등의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1950년대, 러시아의 내정간섭에 분노한 부다페스트시민들이 러시아군에 격렬하게 대항하면서 전쟁이 일어난다. 이런 난리통에 자유를 찾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의 탈주기와 그 와중에 싹튼 애틋한 사랑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 장교(경비대 대장)으로 분한 <율 브린너>와 탈주자중 한명인 <데보라 카>. 그 카리스마 넘치던 매력적인 대머리 장교는 “순정”앞에 굴복하고, 그녀와 일행을 무사히 탈출하게 해주는 댓가로 자신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국경을 무사히 넘어선 <데보라 카>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총소리와 함께 <율 브린너>가 차속에서 늘부러져 죽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을 한순간 멍하게 만들며, 긴 여운을 안겨준다. 196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여로>는 실제 헝가리 국경지대에서 촬영을 감행하였으며, 당시 20만여명의 실제 탈주자들이 인근 피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경험담을 들어가면서 만든 작품이라, 더욱 더 사실적인 화면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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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워미... 찾기 애려분거...ㅜ.ㅜ; EBS 세계의 명화에서 방영된 적이 있구먼유...
줄거리만 읽어도 가슴이 찌----잉 하네요. 영화 보고 싶어라.
워미..............기분존거.............딧따 오래된 영화인데 우찌 수배를 혔다요. 러시아장교..제 기억이 맞구먼요...정말 고마워요. 구경꾼님이 계셔서 정말 든든해요. CD를 소장하고 싶지만, 없겠지요?
영화 내용을 다시 훓어 보니 지금도 가슴이 싸아 해 집니다. 국경 다리를 건너는 데보라 카의 뒤 모습을 응시하던 율브린너의 눈빛을 잊을 수 가 없어요. .......아흐흑~~
오늘은 이 음악 깔고 일 할랍니다......................근데 죙일 우울할거 같어요.
멋장이 구경꾼님...다시 이 영화 보고싶다. 참새야 고마워!~
언니두 이 영화 아러? 야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