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孫膑)
손빈(孫膑)은
제나라 동아, 지금의 산동성 양곡
동북지대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사기-손자오기열전"에는
손빈은 손자의 후대로서 손자가 죽은 후 100년이 지난 후에
태어났다고 기재되어 있다.
사기에는
손빈이 손무의 자손으로만 되어 있지
몇 대 자손이란 언급이 없어 확실치 않으나 손무의 자손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 기재에 따르면
손빈은 기원전 4세기 중엽에 군사가로
활동한 사람이다.
손빈은 옛날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생이고, 동문으로는 방연(庞涓)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두 사람은 귀곡자에게서 병법을 배우면서 결의형제를 맺었다. 결의형제를 맺으면서 방연은 손빈에게 "우리는 동문으로서 누가 공을 세우든 공을 함께 나누어 갖자.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나는 만 개의 화살을 맞아 죽겠다"라고 맹세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방연은 위(魏)나라에 갔다. 방연은 위나라의 장군으로 등용되어 위나라가 위(僞)나라, 송(宋)나라를 징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방연은 위나라 혜왕에게 결의 행제를 맺은 손빈을 천거해 손빈도 위나라에 자리를 옮겼다.
위나라에 온 후 손빈이 위혜왕의 신임을 받게 되자 방연은 자신의 재능이 도저히 손빈을 따를 수 없다고 스스로 느끼고 손빈이 위나라에서 벼슬을 할 경우 자신의 자리가 위태하다고 생각하여 손빈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음모를 꾸미였다. 그는 손빈이 집에 보내는 편지를 뜯어 고쳐 손빈이 제나라와 사통했다는 거짓 증거를 위혜왕에게 제시했다. 노한 위혜왕은 즉시 손빈을 참하라고 했지만 방연은 손빈이 자기를 위해 병법을 저술하게 하기 위해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자자를 새겨 넣는 벌을 주자고 혜왕에게 간언했다. 결과 손빈은 두 다리를 잘리고 얼굴에 외국과 사통한 사람이라는 자자를 새기는 형벌을 받았다. 두 다리를 잘린 손빈은 밖에도 못나가고 종일 방에서 은거해 살수 밖에 없었다. 방연은 손빈에게 자신을 위해 병법을 저술하라고 했지만 손빈은 미친 것처럼 가장해 방연을 위해 병법을 저술하지 않았다. 그 뒤 제나라 사자가 위나라로 갔을 때 손빈의 재능을 알고 몰래 수레에 태워 제나라에 데려다가 장수 전기(田忌)에게 천거했다. 손빈의 재능을 알고 있는 전기는 손빈을 깍듯이 대했다. 손빈은 장수 전기의 군사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손빈과 방연과의 겨룸은 전쟁터에서 이루어 졌다. 전쟁터에서 손빈은 뛰어난 군사모략으로 방연에게 당한 원한을 풀었다. 기원 전 354년, 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해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는 각국에 구원을 요청해, 제나라 장수 전기가 병사들을 이끌고 조나라로 가려고 하자 손빈이 이렇게 말했다.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도 안 됩니다. 지금 위나라 군사들은 모두 전쟁터로 빠져나가 수도는 무방비 상태로 텅 비어 있으니 그 곳을 치면 위나라는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자기 나라를 구하려 할 것입니다."
전기가 손빈의 계책을 따르니 과연 위나라는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물러나 계릉에서 제나라 군사와 격돌했으나 위나라 군사들은 조나라와의 전쟁에서 피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위나라는 제나라 군대에게 대패했다. 이 싸움이 손빈과 방연이 처음 맞붙은 계릉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자기 우세로 적수의 열세를 누르고 적수의 허점을 노려 돌연 습격으로 전반적인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손빈의 군사전략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13년 뒤, 위나라는 방연을 파견하여 위나라와 조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한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제나라 왕은 전기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손빈을 군사로 임명하여 출병하도록 하였다. 전기는 손빈의 계책을 이용하여 위나라의 도성인 대량까지 진격해 들어가려 했다. 위나라 장군 방연은 이 소식을 듣고 한나라에서 철수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미 제나라 군대는 국경을 넘어 서진하여 위나라 국내로 침입하는 중이었다.
이때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쪽 군사들은 원래 사납고 용맹스러울 뿐 아니라 제나라 군사를 겁쟁이라며 경멸하고 있습니다. 무릇 전쟁을 잘하는 자는 주어진 형세를 잘 이용하여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판을 짜 나갑니다. 병법에 이르길 '백 리 밖 먼 곳에서 승리하고자 급히 진격하면 상장군을 잃게 되고, 오십 리 떨어진 곳에서 승리하고자 급히 진격하면 부대를 제대로 정비하여 나아갈 수 없어 전군의 반밖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싸움은 손빈과 방연의 두 번째 격돌로 되였다. 손빈은 방연을 꾀어내기 위해 한 계책을 전기에게 말했다."제나라 군대가 위나라에 들어서면 첫날은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고, 다음날에는 5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3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십시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뒤쫓은 지 사흘째가 되자 아궁이 숫자를 보고 제나라 군사들이 겁장인줄 알고 보병들은 내버려 두고 정예병만을 이끌고 제나라 군대를 뒤쫓았다. 손빈은 방연의 추격속도를 계산해 보니 저녁 무렵이면 위나라의 마릉(馬陵)에 도착할 것 같았다. 마릉은 길이 좁고 험악해 손빈은 군사들을 이곳에 매복시킨 다음 길옆의 큰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고 흰 나무 속에 이런 글을 써놓았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밤에 불빛이 보이면 일제히 활을 쏘도록 하라고 명했다. 방연이 과연 저녁때가 되어 마릉에 도착했다. 군사 중 한사람이 나무에 무엇인가 문자가 씌어져 있는 것을 보고하자 방연은 불을 밝혀 읽어 보도록 했다. 방연이 나무의 글자를 채 읽기도 전에 무수한 화살이 방연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손빈은 복수를 하였고 방연은 의리를 버린 대가로 자기가 약속한 대로 만 개의 화살을 맞고 죽었던 것이다. 손빈의 계략에 속은 방연의 군대는 결국 마릉에서 섬멸 당했다. 마릉 격전은 제나라 승리로 막을 내렸고 손빈은 이 싸움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병법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출처] 손빈(孫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