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 일본 도쿄의 고라쿠엔구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대결이 벌어졌다. 일본의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와 메이저리그의 행크 애런간의 홈런레이스. 일본 투수가 던진 공을 20차례 스윙해 누가 더 많은 홈런을 때리느냐로 승부를 내기로 했다. 구장을 찾은 5만 관중뿐만 아니라 열도 전체가 들썩였고, 미국 CBS도 이 대결을 생중계했다.
먼저 왕정치가 쳤다. 20스윙 중 9홈런. 애런은 18스윙에서 10번째 홈런을 때린 뒤 방망이를 놓았다. 애런의 승리.
당시 애런은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714개)을 넘어 신기록을 작성 중이었고, 왕정치는 통산 600홈런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캐리어는 애런이 앞섰지만 사실 그는 은퇴를 눈앞에 마흔살 노장이었다. 방망이와 스파이크도 없이 일본을 방문했던 터였다.
반면 애런보다 6살 적었던 왕정치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팬들은 왕정치가 애런을 이기리라 믿었다. 그러나 둘의 대결은 미국과 일본야구의 격차만 확인했다.
왕정치가 3년 후 애런의 통산 홈런(755개)를 뛰어넘어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때도, 80년 868홈런을 끝으로 은퇴했을 때도 미국은 코웃음만 쳤다. 왕정치의 기록은 세계신기록이 아닌 일본신기록이라는 논리였다.
왕정치는 미국의 오만에 분노했다. 당시에는 노모 히데오와 스즈키 이치로처럼 메이저리그로 건너가 실력을 겨뤄 볼 여건도 되지 못했다. 왕정치는 애런과의 맞대결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평생 동안 우물 안 개구리 대접을 받았다.
왕정치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이 되자 "세계 제패"를 부르짖었다. 그가 드러내 놓고 말은 안했지만 일본 언론과 팬들은 `왕정치가 선수 시절 이루지 못한 세계 최고의 꿈을 이제서야 이루게 됐다`며 기대했다.
그러나 왕정치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사실상 4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하긴 했지만 결국 패배했고, 한 수 아래로 깔보던 한국에 굴욕의 2연패를 했다. 특히 아시아라운드 첫 대결에서 왕정치 감독은 이승엽의 역전 홈런에 무릎을 꿇었다.
이승엽이 2003년 삼성 시절 56홈런으로 왕정치 감독이 가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을 때 일본은 시큰둥했다. 마치 미국이 왕정치를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그런데 일본은 이승엽의 홈런을 맞고 우승은 커녕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첫댓글 일본 준결승 진출했는데... 글 쓰신분 좀만 더 보시고 쓰셨으면 좋았을걸-0-;;
왕정치 기록을 인정해? 웃긴다, 일본 애덜..마쓰이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몇개 치나 보라지...지금도 차이가 나는데, 당시에는 훨 차이가 심했지..그리고, 당시 왕정치 홈런 많이 치게 할라고 요미우리에서 왼쪽 펜스를 앞당겼었지..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기록은? 일본에서 인정해 줄까요? 생각좀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