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죄를 저질러도 서민들과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국인들처럼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국민들도 드물다
중국TV를 보면서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피의자의 얼굴과 신원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다. 최근에 보았던 법정 프로그램 가운데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일으킨 피의자의 재판 현장을 녹화 방영하였는데, 피고인이 피해자 가족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 피해자 어머니가 그의 뺨을 때리면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다 보여줬다. 피해자 가족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피고인은 포승에 묶이고 수갑을 찬 모습은 물론 이름과 나이, 거주도시까지 그대로 노출되었다. 물론 피고인이 사건당시 음주상태이긴 했지만, 어떻게보면 과실치사 사건인데, 저렇게까지 공개를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벌백계의 차원이리라.
몇 해 전 지인이 불행한 일로 중국의 파출소에 잡혀있다고 전화를 걸어와 한밤중에 뛰어나간 적이 있다. 거기서 어느 중국인이 다른 일로 붙들려오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피의자가 조사실에 들어가지 않으려하자 경찰이 그의 머리카락을 뒤에서 움켜쥐고 발길질을 하며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만취하여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려도 인권침해 시비가 두려워 경찰관이 피의자의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한다는 한국의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 중국은,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공권력의 준엄함(!)이 살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한국인들처럼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국민들도 세상에 드물 것이다. 독재와 권위주의에 저항하며 인권의식은 크게 성장하였으나 공권력의 존엄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초등학생이 대통령을 특정동물에 비유하며 육두문자를 내뱉고, 거기에 어른들이 기특하다 박수를 치고, 폴리스라인을 넘어 거리를 무법천지를 만드는 행위를 ‘참여민주주의’라 말한다. 이러한 권력불신과 무차별한 공격 행위가 장기적으로 한국인들에게 득이 될 것인가, 실이 될 것인가. 가슴이 먹먹해진다.
1990년대 초 독일에서 오랫동안 유학했던 어느 선배가, 그 자신은 386 운동권 출신인데, 독일경찰의 시위진압 광경을 보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기마경찰들이 시위행렬 주위에 대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 시위자가 폴리스라인을 넘어서자마자 과감하게 몽둥이로 내리치고 끌고가더란다. 그런데 시위대 가운데 어느 누구도 거기에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나. 필자 역시 미국 뉴욕에서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시위가 한창이었는데, 시위대가 적법한 한계를 넘어서자 진압도구를 사용하여 어찌보면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하긴 얼마 전에는 상원빌딩 앞에서 시위를 하던 워싱턴 시장을 불법시위 혐의로 수갑을 채워 연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법집행 앞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막연히 한국을 ‘까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한국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묵혀두었던 고민 하나를 마침 던져보는 것이다. 어제(7일) 중국 산시성에서는 스물두 살 청년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야오쟈신(药家鑫)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밤중에 차를 몰고 가다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중년의 아줌마가 쓰러졌는데, 차량번호를 기억하고 신고할까봐 두려워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죽였다. 도주하다가 다시 사고를 내 행인을 치었고, 사흘 후에 부모와 함께 자수했다. 1심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10월말 발생한 이 사건은 한동안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발생 초기에는 야오쟈신에 대한 공분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지난 4월 사형판결이 내려지고 나서는 동정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야오 부모의 직업까지 인터넷에 공개되며 “없는 집 자식은 이런 일로 사형까지 당하는구나”라는 댓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필자 역시, 평소의 습관처럼, 이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됐다면 어떠한 판결을 받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여러 가지 ‘정상’이 참작되었으리라. 그는 이제 갓 스물두 살로, 얼마든지 이성을 잃고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이이며, 게다가 자수를 했다. 그런데 사형이다.
야오는 항소를 했지만 2심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중국은 2심제다), 곧바로 보름만에 형이 집행되었다. 꽃다운 청춘이 단 한 번의 판단착오로 스러진 것이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사형집행국가다. 매년 전세계 사형집행의 70~80%가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형제도를 굳이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중화인민공화국의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말한다. 외국인까지도 중국 국내법에 따라 사형시켜 버린다. 이런 모습을 전적으로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돌아보아야할’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피고인도 깨끗하게 인정한 범죄행위로 판결된 사형대상자에 대한 사형집행을 왜 그리 미루는 것인가. 그렇다고 인간존엄이 더욱 살아나고, 젖과 꿀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정의의 새 세상이 펼쳐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물론 중국의 사형판결이나 집행에 약간 과도하거나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어있다고 의심되는 사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07년 7월 사형이 집행된 정샤오위(郑筱萸) 사건이 그렇다. 그는 한국의 식약청에 해당하는 중국 식품약품감독국의 최고책임자로 일하다가, 200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중국산 항생제 사망사건으로 면직되어 조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조사결과 정샤오위는 제약회사들의 뇌물을 받고 무분별하게 의약품 승인 도장을 찍어주었고, 그것이 귀중한 목숨들을 앗아가게 만들었다. 물론 도의적으로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이러한 죄목으로 사형판결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게다가 정샤오위에 대한 사형집행은 1심 판결후 단 40일만에, 항소 2심을 거쳐 곧바로 집행되었다. 정샤오위가 횡령하였다고 알려진 액수는 한화 7억원 정도이다. 그 정도에 사형이면, 묵묵히 일하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공무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에는 사형당해야 할 공직자가 길바닥에 깔려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뇌물수수 행위의 불법성은 엄중하지만 그동안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여 어쩌고 저쩌고……’하는 판결문이 작성되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이 더 낫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한국이 따라 배우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당시 중국산 분유와 완구 문제로 또다시 ‘메이드인 차이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보란 듯이’ 생명 하나를 재빨리 치워버렸다. 우리 중국은 이렇게 엄격하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것이다. 이것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시사점’은 있다고 보인다.
이번에 야오쟈신 사건도 그렇다. 중국 법원에서 결정한 내용에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물두 살 청년을 그리 전격적으로 사형 처리해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되어 안타깝다. 중국은 ‘사형집행유예’라는 특별한 제도가 있다. 일단 사형을 판결한 후, 2년동안 여죄가 발견되지 않거나 수형태도가 좋으면 무기로 감형하는 것이다. 야오에게 그러한 패자부활전의 기회마저 주지 않은 데에도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야오 사건 이후로 유사한 사건이 몇 차례 잇따랐다. 교통사고를 내고 피해자에게 휘발유를 끼얹어 확인 살인을 해버린 경우도 있고, 자동차를 후진시켜 일부러 압사시켜버린 경우 또한 있었다. 지난 연말에는 대학 캠퍼스 안에서 교통사고를 낸 후 뺑소니를 치고는 나중에 체포되자 “내 아버지가 공안국장 리깡이야!”라고 큰소리를 쳐서 중국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리깡 아들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뺑소니 사건, 고의살인사건에 대해 ‘그러면 사형’이라는 경고를 중국 만방에 알리기 위해 야오에 대한 사형을 서둘러 집행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광장 한복판에 죽은 자의 머리를 효수하는 것처럼, 개명천지 21세기에 사람의 생명을 앗아 계몽의 수단으로 삼는 인간문명의 미개(未開)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다소의 공포 속에서 오늘 중국의 치안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점은 이해할만하다.
그렇다고 필자가 열렬한(?) 사형옹호론자는 아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따질 사람이 있겠지만, 사형이라는 법적 형벌이 엄연히 존재하는 형편에서는 그것을 집행하자는 입장이다. 아니면 법을 바꾸던가. 요는, 법이 있으면 법을 착실히, 그리고 확실히 지키자는 것이다.
1949년 홍군이 베이징(당시 베이핑)에 입성하던 때,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와 나란히 행진을 했던 또다른 초상화의 얼굴이 있다. 바로 홍군의 아버지 주더(朱德)다. 권력서열 2인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손자 주궈화(朱国华)가 1983년 톈진의 인민은행장으로 재직중 체포되었다. 사생활이 문란하여 많은 여성들을 희롱하였다는 죄였다.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국가 최고원로의 친손자를 그 정도의 죄목으로 사형시켜도 되느냐는 논란이 있었을 때, 주더의 아내 캉커칭(康克清)은 이렇게 말했다.
“당에는 당의 기율이 있고, 국가에는 국가의 법이 있다. 왕자가 죄를 저질러도 서민들과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 (党有党纪,国有国法。王子犯法,与庶民同罪!)”
결국 주더화에 대한 사형집행은 이루어졌다. 중국인들은 법집행의 준엄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사건을 두고두고 꺼내놓는다. 고위층의 솔선수범과 법집행의 엄격함이야말로 국가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그곳이 중국이든, 그리고 한국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