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기고/안형환] “방송법개정안, 공영방송 공익성 훼손”
조선일보
안형환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입력 2023-04-03 03:00업데이트 2023-04-03 03:25
안형환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공영방송은 프로그램 내용, 재원 형태, 지배구조에서 공영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공영방송은 수십 년째 이에 대한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방송법 개정안에 따른 공영방송 지배구조 변화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공영방송은 이사회를 구성할 때 양대 정당이 비공식적으로 이사를 지명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개정안대로 하면 공영방송이 특정 방송 관련자들의 놀이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대표성과 전문성을 지닌 인물로 구성돼야 한다. 특히 경영 감독을 위해 법률, 회계, 시민단체 등 여러 분야 출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에서 추천하는 5명을 제외하고 방송·미디어 학계 6명, 시청자위원회 4명, 방송사 직능대표 6명 등 16명 모두 방송 분야 인물이어서 방송 분야가 과잉 대표된다. 지역 대표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영국 BBC는 이사 14명 중 4명이 민족·지역별 이사다. 일본 NHK 경영위원회도 12명 중 9명을 지역별로 할당한다.
방송 분야 이사도 방송기자연합회, 한국피디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서 각각 2인씩 추천하게 했다. 방송사에는 이들 외에도 아나운서협회, 경영직협회 등 10여 개 직능단체가 있다. 이들을 배제한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한 방송·미디어 학계 추천 6명도 문제다. 수십 개의 방송·미디어 학회 중 어떤 기준으로 학회를 선정할 것인가. 또 이로 인해 학회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청자위원회에서 이사 4명을 추천하도록 한 것도 짚어야 한다.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 집행부에서 위촉하고 집행부 인사도 포함돼 있다. 집행부를 감독하는 이사회에 집행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공영방송의 목표는 공익 실현이다. 이를 위해선 공정해야 하고, 그러려면 방송이 정치권력과 자본에서 독립돼야 한다. 독립은 지고지선이 아니라 공익 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전혀 공정하지 않고 공익에 대한 사명감 없이 독립만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 방송을 그들만의 무대로 만들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논할 때 ‘방송 장악’이란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방송·미디어 시장 전체를 봐야 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의 성장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공영방송이 공익을 지키며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방통위는 BBC처럼 공영방송과 협약을 맺고 공익을 위한 별도 책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방송·미디어 전체를 포괄하도록 가칭 ‘시청각미디어 서비스법’도 연구 중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방송을 언론으로만 보지 말고 미디어 시장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한국 공영방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지배구조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의 역할, 재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안형환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