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 황동규(1938년~ , 서울)
베란다 벤자민 화분 부근에서 며칠 저녁 울던 귀뚜라미가
어제는 뒤켠 다용도실에서 울었다,
다소 힘없이.
무엇이 그를 그곳으로 이사가게 했을까,
가을은 점차 쓸쓸히 깊어가는데?
기어서 거실을 통과했을까,
아니면 날아서?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그가 열린 베란다 문턱을 넘어
천천히 걸어 거실을 건넜으리라 상상해본다.
우선 텔레비 앞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저녁마다 집 안에 사는 생물과 가구의 얼굴에
한참씩 이상한 빛 던지던 기계.
한번 날아올라 예민한 촉각으로
매끄러운 브라운관 표면을 만져보려 했을 것이다.
아 눈이 어두워졌다!
손 헛짚고 떨어지듯 착륙하여
깔개 위에서 귀뚜라미잠을 한숨 잤을 것이다.
그리곤 어슬렁어슬렁 걸어 부엌에 들어가
바닥에 흘린 찻물 마른 자리 핥아보고
뒤돌아보며 고개 두어 번 끄덕이고
문턱을 넘어
다용도실로 들어섰을 것이다.
아파트의 가장 외진 공간으로 ···
··· 오늘은 그의 소리가 없다.
- 황동규 시집 「미시령 큰바람」(문학과지성사, 1993년) 중에서
2. 늙수그레한 귀뚜라미의 쓸쓸한 이사에 대하여
이 시 '귀뚜라미'를 쓴 시인님이 되어봅니다. 며칠 동안이나 그 조그만, 아니 보이지도 않는 귀뚜라미를
울음소리로 쫓아다니는 시인님이 되어보면 무엇이 보일까요?
베란다 벤자민 화분 부근에서 며칠 저녁 울던 귀뚜라미가 / 어제는 뒤켠 다용도실에서 울었다, / 다소 힘없이.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황동규 시인님 특유의 첫행이 돋보입니다. '베란다에서 며칠 울던'이 아니고 '베란다 벤자민 화분 부근에서'라
하네요. 장소를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해 우리를 시 쪽으로 쓱 끌어당깁니다.
시인님, 요즘 그 벤자민 잘 있습니까? 하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가을날, 베란다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었네요. '며칠 저녁 울던'이라 했으니 시인님은 며칠 동안
귀뚜라미와 대화를 했네요. 이 시가 쓰인 시점은 시인님 50대 중반, 귀뚜라미 소리에 며칠 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시인님을 생각합니다. 너는 어쩌다 거기 와서 홀로 울고 있니? 가족은 어쩌고? 먹을 건 넉넉하니?
춥진 않고?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이젠 아파트 베란다 반대편인 다용도실에서 들려온다고 하네요. 그것도 힘이 빠진
울음소리였다 하고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며칠이나 귀를 기울이고, 또 그 소리에 힘이 있는지 없는지를
간파하는 50대 중반은 아마 시인님 말고는 세상에 없을 겁니다.
시행 배치 좀 보셔요. 2행에서 3행으로 넘어가면서 찍은 쉼표와 3행의 마침표에서 시인님의 숨결이
느껴지네요. 어찌 이리 섬세한지요. 시인님 숨결대로 쉼표와 마침표에 유의(!)하면서 읽어봅니다.
어제는 뒤켠 다용도실에서 울었다, 다소 힘없이.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다소 힘없이' 들렸다는 건 시인님의 요즘이 그렇다는 말이겠네요. 50대 중반의
가을입니다. 가파른 삶의 언덕에서 누구라도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니까요. 이리저리 하여 시인님은
'다소 힘없이' 울게 된 귀뚜라미가 되었네요.
무엇이 그를 그곳으로 이사가게 했을까, / 가을은 점차 쓸쓸히 깊어가는데? / 기어서 거실을 통과했을까, /
아니면 날아서?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기어서? 날아서? 하면서 손짓을 해 보이는 시인님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가을이 깊어가서 점점 쓸쓸해지는
판국에 이사까지 해야 했을 어떤 고단한 사정이 있었을까요? 늙수그레한 귀뚜라미에 대한 연민이 가득
느껴지네요.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3. 귀뚜라미가 바라본, 귀뚜라미가 되어 바라본 어떤 고독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그가 열린 베란다 문턱을 넘어 / 천천히 걸어 거실을 건넜으리라 상상해본다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50대 중반의 귀뚜라미는 사람이 싫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요? 아무렇지 않게 타자를 제거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요. 그래서 모두 출근하고 등교해서 집안에 아무도 없는 때에
거실을 가로질러갑니다.
우선 텔레비 앞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 저녁마다 집 안에 사는 생물과 가구의 얼굴에 / 한참씩 이상한 빛 던지던
기계 / 한번 날아올라 예민한 촉각으로 / 매끄러운 브라운관 표면을 만져보려 했을 것이다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이 50대 중반의 귀뚜라미에게 가장 기이했던 것이 '텔레비'였네요. 저녁마다 '생물과 가구'들의 시선이
빨려들던 블랙홀. 서로 아무 말 없이. 가끔 낮게 울고 희미하게 웃으며. 여기서 식구는 '생물'로 통칭되면서
개별성을 잃어버리네요. 가구도 '텔레비'를 보고 있었다니! 귀뚜라미 눈에 보인 것은 귀뚜라미의 진실입니다.
아 눈이 어두워졌다! / 손 헛짚고 떨어지듯 착륙하여 / 깔개 위에서 귀뚜라미잠을 한숨 잤을 것이다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늙수그레한 귀뚜라미의 시련이네요. 날마다 출몰하는 신문물에 얼마나 당황스러운지요. 세상 사는 일은
얼마나 아찔한지요. '손 헛짚고 떨어지듯' 날마다 허방 치기네요.
앗, '귀뚜라미잠'. 이 구절에 그만 우리도 '귀뚜라미잠'을 자고 싶네요. 아마도 까무룩 기절한 듯 깊고 짧은
잠이겠지요?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노루잠이나 토끼잠은 들어봤어도 '귀뚜라미잠'은 처음 들어보네요.
새로운 잠의 발명이네요.
그리곤 어슬렁어슬렁 걸어 부엌에 들어가 / 바닥에 흘린 찻물 마른 자리 핥아보고 / 뒤돌아보며 고개 두어 번
끄덕이고 / 문턱을 넘어 / 다용도실로 들어섰을 것이다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연극의 한 장면 같네요. 연극 제목은 '귀뚜라미의 비애' 정도? 휘청이는 50대 중반 귀뚜라미의 저 몸짓 좀
보셔요. '바닥에 흘린 찻물 마른 자리 핥아보고 / 뒤돌아보며 고개 두어 번 끄덕이고’. 이 부문이 연극 '귀뚜
라미의 비애'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네요.
이런 차를 마시며 고독을 달래고 있었군!
떫은맛을 떫은맛으로 누르고 있었군!
귀뚜라미의 독백이 들려오네요. 이 독백은 쓸쓸한 시인님의 것이겠지만요. 이 마지막 무대에서 귀뚜라미가 '
고개 두어 번' 끄덕여준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것도 뒤돌아보면서요. 이렇게 귀뚜라미로부터 위안을
다 받아보다니, 참 따뜻하네요. 이건 시인님이 스스로에게, 우리에게 보내는 위안이겠지요?
아파트의 가장 외진 공간으로 ···
··· 오늘은 그의 소리가 없다.
- 황동규 시 '귀뚜라미' 중에서
우리도 '가장 외진 공간으로' 숨고 싶습니다. 거기서 까무룩 '귀뚜라미잠'을 자고만 싶습니다. 세상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몸을 한 번 뒤척여 돌아눕겠습니다. 얼마나 환한 외로움일지요? 황동규 시인님이 발명한
그 '홀로움'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