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의 말씀 (2024. 8.4) 말씀/ 누가복음 10:41-42 인생은 선택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큰 선물로 자유를 주셨습니다. 피히테는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유 자체가 행복은 아닙니다. 자유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그 자유로 불행을 선택할 수도 있고, 행복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란 그 자유를 어떻게 쓰는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선택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하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성경을 통해서 그 예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위해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으로 이끌어들이시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주셨습니다. 그곳에는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과일나무들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각종 보석, 그리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임의로 먹으라는 자유를 주시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하셨습니다. 먹고 안 먹고 그것은 최초의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행복은 조건만 되면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택으 잘 해야 합니다. 돈도 무조건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권력과 힘이 주어졌어도 어떻게 쓰는가 선택해야 합니다. 결과에 따라 행복이 될 수 있고, 불행이 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우리는 주일 예배 후 식당에 가서 물냉면이냐 비빔냉면이냐 선택을 합니다.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좀 더 행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잘 못 선택을 하였습니다. 사단의 미혹을 받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여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하나의 잘못 선택으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축복과 각종 맛있는 과실을 실컷 먹을 수 있는 특권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 수 있는 모든 은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조상들이 참 바보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같으면 안 그랬을텐데...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동일한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비록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여 땀 흘려 수고하며 일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다시 생명나무의 열매를 다기 먹을 수 있지만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12을 보세요.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음에도 자유가 있고, 선택이 있습니다.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가 주어지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선탁하여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쉬운 선택임에도 거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주변 지인들 이웃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를 선택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겠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영생이냐 심판이냐를 결정하는 문제뿐 아니라 삶속에 성장과 삶의 가치와 질을 선택할 뿐 아니라 장래의 축복의 계승까지 결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큰 민족을 이루며 복음의 근원이 되리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너의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길을 가야했을 때 그 앞에 닥치는 문제들이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는데 아브라함의 목자 양들과 롯의 양들이 함께 거주하기 어려워 목초지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창 13:9). 네가 동하면 나는 서하고, 네가 서하면 나는 동하리라. 롯은 삼촌을 생각지 않고 먼저 기름진 소알 평지를 택하였습니다. 그것은 좋아보였지만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멸망의 죄악된 도시 소돔 고모라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소돔고모라 멸망당시 롯은 겨우 몸만 빠저나와 암몬과 모압의 조상이 됩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차선지를 택하여 당장에는 손해를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손해 보는 일을 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목 때문에 당장에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믿음의 선택은 손해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축복합니다. 롯은 저주받은 암몬과 모압의 이방 족속의 조상이 되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하늘의 못별같은 후손을 얻게 됩니다. 현옥 집사님도 한 때 울산으로 가서 직장 생할을 하려고 떠날 것인가 갈등하다 목사님 방향을 듣고 남을 것을 택한적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아주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엄청나게 성장하였습니다.
여호수아에 보면 이런 예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성에들어와 기생 라합의 집에 머물렀는데 누가 신고를 하였습니다. 왕이 사람들을 보내 잡으러 왔습니다. 그 때 라합은 정탐꾼들을 이끌로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겨주었습니다. 민족적인 입장에서 보면 매국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미 상천하지의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는 라합은 이 중대한 상황에서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서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그런 일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매국적 행동이었지만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이 함락되어 전멸당할 때 라합과 그 가족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합은 기생 출신임에도 후에 살몬의 아내가 되어 보아스를 낳고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기록됩니다. 옳은 선택이 이렇게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선택이 하나님 편에서 영적인 것이 될 때 영혼의 후대에 미칠 영향도 대단합니다. 나 한 사람을 인해서 후손들 대대가 영적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라합뿐 아니라 룻의 선택도 그렇습니다. 시어머니가 유대 여자 나오미가 흉년의 기근을 피해서 모압 땅에 살다가 유대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홀로 남게 된 두 며느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됩니다. 남편도 잃고 어머니는 유대로 돌아가는데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남아서 재혼을 하여 새로운 삶을 살 것인가? 동서 오르바는 그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시어머니에게 입맞추지만, 롯은 아무 가진 것 없는 바라볼 것도 없는 시어머니를 따라갈 것을 결심을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도 없고 극구 만류하였지만 룻 자신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어디든 갈 것이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결코 죽는 일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으니 자신을 만류하지 말라고 하며 어머니를 따를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인생의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동서 오르바는 사실 모든 사람이 가는 합리적인 길을 택한 것이고, 룻은 자신의 장래보다 늙은 시어머니를 따르므로 비합리적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아주 상반되었습니다. 오르바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가 선택을 잘못해서 멸망의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 믿음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룻은 어머니를 좇음으로 구원받을 백성과 함께 생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멋진 신랑 보아스도 만나 재혼도 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자격 없는 이방 여인으로서 룻 역시 예수그리스도 족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누구와함께 하는가? 그 선택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달라지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과 함께 함으로 믿음 가치관 사상도 닮게 되고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역사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누누히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잘 몰라서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사리를 판단하여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또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구와 동행할 것인가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미래가 결국 내가 선택한 사건과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룻은 모압의 이방 여인으로 영적인 구속 역사에 아무런 자격이 없는 여인이었고 남편도 잃어버린 빈털터리가 된 소망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하나 선택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가문의 여인인 어머니를 택한 것입니다. 결과 모든 축복이 호박 넝쿨처럼 따라왔습니다. 할렐루야! 2 년전 서광호 목사님은 푸른초장교회에 딱 한번 참석하고 우주호에 승선할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만 되면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아마 본인 입으로 가장 잘 한 선택이라면 이 우주교회를 선택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은숙 집사님도 오래 전에 UBF를 떠났지만 단 한번 우주교히에 예배에 참석하고 우주호 승선을 선택한 지혜로운 믿음의 여인입니다. 서광호 목사님이 보실 때 아주 잘한 선택일 것ㅇㅂ니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큐티 나눔도 하고 독서모임도 참여하면서 배움과 성장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훈련되고 준비되면 선교사의 꿈도 이룰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막연히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실 때 바로 행동 실천으로 연결시키십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도 꾸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어린 요셉도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꾼 후에 하나님은 집을 떠나게하시고 꿈을 이룰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주 호에 승선하신 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하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모든 좋은 일들이 우주적으로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많은 일들을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탁월한 선택이 우리의 꿈을 앞당길 것입니다.
최근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중에 달과 6펜스라는 섬머셋 모험의 책이 있습니다. 나이 35세. 증권회사의 회계원이었다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붓을 들은 화가 고갱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것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얼마나 끈기로 이어갔나 하는 사실뿐이다. 책에 달과 6펜스이지만 이게 무슨뜻인지 그 소설 안에 이야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달과 6펜스 두 개는 비숫합니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납니다. 공통점만 빼면 전혀 다른 세계를 상징합니다. 자연의 달은 인간의 ,영혼, 예술.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말하고, 반면 가장 흔한 동전인 6펜스는 세속의 세계, 물질과 경제적 관념이 중요시되는 사회를 가리킵니다. 세속적 삶에 충실했던 주인공이 스트릭 랜드가 자유로운 삶과 열정에 투신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띄어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 합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빠져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한 번뿐인 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면서 찾아나가는 것, 그것을 이 책에서 자유라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삶의 목적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목적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고 그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삶이 다채로울 수 있는 것은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며 이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질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몰입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라도 바라고 꿈을 꾸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달의 세계로의 몰입입니다. 이것도 선택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회인으로 6펜스의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열정을 불태울 높은 차원의 달의 삶을 살 것인가? 이 선택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입니다. 가치 기준이 분명한 사람만이 최상의 가치를 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기준이 다르겟지만 저는오늘 성경을 통해서 최고의 가치 기준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마르다의 집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어느 한 사람의 집에 심방 오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마르다는 모처럼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기 분주했고, 마리아는 만사 제쳐놓고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말씀을 들었습니다. 언니 마르다가 이런 마리아의 모습이 못 마땅해서 예수님께 마리아를 보내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놀랍고 귀한 선택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41-42) 예수님은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일까? 주님을 음식으로 대접해드리는 일, 아니면 오히려 만사 제쳐두고 주님의 말씀 듣는 일? 둘 다 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타이밍입니다. 때론 섬기는 일을 먼저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불교로 말하면 생불, 살아계신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언제 다시 이렇게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이 찬스를 마리아는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도 섬김 받으시는 것보다 당신의 자녀들이 먼저 말씀을 듣는 것을 더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택하는 것이 더 지헤롭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우리가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 말과 행동의 가장 합당한 선택의 기준이 될 때 그 다음 삶속에 올바른 선택이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교회 개혁 후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가장 잘 한 선택은 독서라고 봅니다. 독서를 계기로 우주교회 단톡이 세워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독서를 계기로 해서 그 다음에 새벽 첫 시간 큐티 말씀을 선택한 것은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저는 매일 큐를 위해서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 열심까지 기도하며 댓글이 이어지지만 우리 지체들이 한 분 한분이 빠짐없이 큐티 묵상을 하고 댓글에 참여하는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벽부터 말씀을 묵상하며 큐티나눔을 하는 것은 세계에서 우주교회밖에 없다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운 마음도 갖습니다. 어디 내놔도 자랑할만합니다. 그리고 책을 끊임없이 읽고 배우며 성장하는 우주교회! 한마디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앞으로도 저와 여러분들 모두 탁월한 선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단순해져서 오히려 업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독서 그리고 새벽기도와 큐티에 집중합니다. 오히려 삶이 풍성해지고 지나온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물론 일을 줄인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을 단순화한 후에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을 통해서 우리도 열심히 읽고 묵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당연 성경 말씀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생명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 성경 책 뿐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살찌게 하는 인문 고전 양서들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근본 뼈대를 이룬다고 할 때 인문 고전 양서들은 살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같이 12제자보다 늦게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띄어난 활략을 하게 된 이유가 세상 초등 학문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예수님 한 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고 붙들었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가말리에 문하에서 사사를 받으면 많은 배움의 과정을 거쳤으며 율법으로도 전통 바리새파였습니다. 그의 서신서들 보면 얼마나 깊고 심오합니까? 단지 물고기 잡다가 갑자기 믿음으로 제자가 된 사람의 글이 아닙니다. 깊은 학문을 하고 철학을 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밖에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복음 외에 알려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러한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성경만이 생명을 주는 유일한 초고의 책입니다. 날마다 진보하고 성숙해지는 것이 스스로 느끼면 됩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예수님만 자랑하면 됩니다.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1) 그러면서 겸손히 또 한 손에 인문고전을 들고 읽고 배우는 삶을 산다면 많은 사람에게 어떤모양이든 영향력을 끼치는 바울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 고지곧대로 다 필요 없다고 바울처럼 세상 것 다 배설물로 여기고 읽는 것을 게을리하면 바울이 되기 어렵습니다 날은 덥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성경을 읽고 책을 읽으며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시간을 갖고 이 일을 계속하여 무더위를 극복하는 휴가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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