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간다]는 한국 영화 속에서는 [동감]이나 [시월애] 이후 [인어공주][소년, 천국에 가다] 등의 영화를 통해 자주 사용되고 있는, 시간의 파괴를 주된 테마로 하고 있다. 현재의 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재로서는 웰즈 박사가 백년 전에 쓴 소설 [타임머신]이 가장 고전이다. 여러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던 [타임머신]은 모든 인류의 공통된 호기심인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바라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시리즈물로 만들어졌던 [백 투더 퓨처]나 프랑스 영화 [비지터] 등도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들로서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언니가 간다]는 오히려 [페기슈 결혼하다]와 비슷하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다. 실수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는 서른 살의 의상 디자이너 나정주(고소영 분)는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삶이 모두 첫사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첫사랑 남자에게 배신당한 후 남자를 믿을 수도 없게 되었고 제대로 사랑 한 번 못해본 것이다. 어느날 그녀의 노트북에 시간 여행 프로그램이 뜬다. 그것을 이용해서 나정주는 자신이 첫사랑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2학년 때로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1994년, 고등학교 2학년 나정주는 1년 선배로서 노래를 하는 조하늬(이중문 분)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런 나정주를 동급생이며 전교 1등인 김태훈은 짝사랑한다. 과거로 돌아간 어른 나정주(고소영 분)는 어린 나정주(조안 분)가 첫사랑의 상대를 바꾸도록 노력한다. 문제의 출발은 나정주가 하니와 1박 2일 춘천여행을 가서 그와 잤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정주가 조하늬와 사귀지 못하도록, 그리고 1박 2일의 춘천여행에 따라가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방해공작을 한다.
[언니가 간다]의 시나리오는 영리하다. 현실에서 과거로 돌아가 충돌하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과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크게 뒤바꾸는 모험은 하지 않고 있다. 학교 교사로 나오는 윤종신에게 어른 나정주가 그도 아직 모르고 있는 미래에 나올 윤종신의 노래를 가르쳐 준다든지, 2천년대의 유행어나 TV 드라마를 통해 인구에 회자된 유명 대사들을 동원하는 장면들은 시간파괴라는 소재를 충분히 활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가 간다]는 무리수를 범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의 삶을 교정하거나, 첫경험의 상대를 하니에서 태훈이나 다른 그 누구로 바꾸는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언니가 간다]는 또한 90년대에 바치는 송가이기도 하다. 특히 고 김성재가 활동했던 듀스는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적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 90년대 초가 서태지라면 영화의 과거 시간배경인 1994년은 듀스의 해였다. 듀스의 노래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 태훈(이범수 분)에 의해 절정을 이룬다. 과거의 삶을 통해 현재의 삶을 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보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뭉클함이 [언니가 간다]에는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직 깊지 않은 연출의 내공은 이야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하고 있고 고소영의 쇳소리 나는 발음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귓가를 어지럽힌다. 연기자들의 표피적 연기도 이 영화가 깊은 울림을 갖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